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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강 시련에는 끝이 있습니다(8:9-14)

by 【고동엽】 2022. 4. 14.

제85강 시련에는 끝이 있습니다(8:9-14)

 

8:9-14
그 중 한 뿔에서 또 작은 뿔 하나가 나서 남편과 동편과 또 영화로운 땅을 향하여 심히 커지더니 그것이 하늘 군대에 미칠만큼 커져서 그 군대와 별 중에 몇을 땅에 떨어뜨리고 그것을 짓밟고 또 스스로 높아져서 군대의 주재를 대적하며 그에게 매일 드리는 제사를 제하여 버렸고 그의 성소를 헐었으며 범죄함을 인하여 백성과 매일 드리는 제사가 그것에게 붙인 바 되었고 그것이 또 진리를 땅에 던지며 자의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 내가 들은즉 거룩한 자가 말하더니 다른 거룩한 자가 그 말하는 자에게 묻되 이상에 나타난 바 매일 드리는 제사와 망하게 하는 죄악에 대한 일과 성소와 백성이 내어준 바 되며 짓밟힐 일이 어느 때까지 이를꼬 하매 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 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하였느니라


알렉산더 대왕이 죽고 난 뒤에 헬라 제국이 네 나라로 나뉘어졌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때의 상황을 좀 더 자세하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9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중 한 뿔에서 또 작은 뿔 하나가 나서." 네 나라 가운데 한 나라에서 특이한 왕이 나왔다는 뜻입니다. 여기서의 뿔은 왕을 상징합니다. 그 왕은 처음에는 작은 뿔이었으니까 세력이 미미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뒤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남편과 동편과 또 영화로운 땅을 향하여 심히 커지더니." 작은 뿔은 점점 자랐습니다. 남편과 동편과 영화로운 땅에서 그 세력이 커졌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애굽을 가리키는 말일 것입니다. 동편은 바벨론과 바사를 가리키는 말일 것입니다. 그러면 영화로운 땅은 어디겠습니까?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에게 주신 땅인 팔레스타인, 곧 가나안 땅입니다. 작은 뿔은 이곳들에서 그 세력을 점점 키워 나갔습니다.
계속해서 10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것이 하늘 군대에 미칠만큼 커져서." 하늘 군대라는 것은 본시 별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작은 뿔이 점점 커집니다. 십미터, 이십 미터, 남산만하게 커지더니 더 나아가서는 하늘 꼭대기에 닿을 정도로 커졌습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두번째 꾸었던 꿈에 보면 땅 중앙에 서있던 나무가 점점 자라서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지 않습니까? 본문에서는 작은 뿔이 하늘 군대에 미칠만큼 커졌다고 했습니다.
"그 군대와 별 중에 몇을 땅에 떨어뜨리고 그것을 짓밟고."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입니까? 이미 말씀 드린 대로 하늘 군대는 하늘의 별들을 가리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단12:3에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들어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성도들이 하늘의 별로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의 뜻은 작은 뿔이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을 핍박하고 짓밟는 것을 의미합니다. 후일의 역사는 이 작은 뿔의 실체가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라는 폭군이었음을 보여줍니다. 구약성경의 외경인 마카비서를 보면 이 사람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주전 171년, 자신에게 대항하는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추종하지 않는 유대인들을 십만 명 가량 죽였습니다. 그리고 사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들을 사로잡아 종으로 팔았습니다. 그때 유대인들은 이 사람에 의해서 엄청난 핍박을 당했습니다. 그는 장차 나타날 적그리스도의 그림자 역할을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아주 사악한 왕이었습니다.
11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또 스스로 높아져서 군대의 주재를 대적하며." 여기서 말하는 군대의 주재가 누구이겠습니까? 만군을 다스리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안티오커스는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나중에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참람한 말을 하면서 자기가 마치 하나님인 것처럼 행세하듯이,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도 스스로 높아져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마치 자기가 신인 것처럼 행동을 했습니다.
본시 그의 이름은 안티오커스였습니다. 그 뒤에 스스로 에피파네스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에피파네스라고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A glorious manifestation," 곧 "영광스럽게 나타나셨다"라는 뜻입니다. 신이 자기 몸에 영광스럽게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마치 자기가 하나님인 것처럼 행동을 했습니다.
계속해서 보시겠습니다. "그에게 매일 드리는 제사를 제하여 버리고."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하나님께 상번제를 드렸습니다. 안티오커스는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일을 금지시켰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그의 성소를 헐었으며." 안티오커스는 예루살렘 성전의 일부를 헐고 그곳에 헬라 신이었던 제우스를 위한 단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돼지를 잡아서 제우스에게 제사를 드렸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와 같은 불경스러운 일이 일어났겠습니까? 12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범죄함을 인하여."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이 하나님을 저버리고 죄악된 길로 나아갔기 때문에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에 의해서 엄청난 시련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계속해서 보시겠습니다. "백성과 매일 드리는 제사가 그것에게 붙인 바 되었고." 유다 백성들은 작은 뿔에 의해서 핍박을 당하여 그들이 매일 하나님께 드리는 상번제를 드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또 그것이 진리를 땅에 던지며." 안티오커스는 율법 책, 즉 진리의 말씀인 성경책을 보이는 대로 다 찢어서 불태워 버렸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성경을 소유하는 자는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자의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 그는 자신의 권력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휘둘렀습니다. 그 시련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고통을 당했겠습니까?
계속해서 13절 말씀을 보십시다. "내가 들은즉 거룩한 자가 말하더니 다른 거룩한 자가 그 말하는 자에게 묻되." 갑자기 또 다른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한 천사가 다른 천사에게 질문을 합니다. "이상에 나타난바 매일 드리는 제사와 망하게 하는 죄악에 대한 일과 성소와 백성이 내어준바 되며 짓밟힐 일이 어느 때까지 이를꼬 하매." 우리는 천사가 던진 이 질문을 통해서 천사도 택하신 백성들이 시련을 당하고 고난을 당할 때 함께 염려해 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려운 시련을 당할 때 우리만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때까지 이를꼬? 어느 때까지 이를꼬?" 천사들도 우리를 염려해 주고 걱정해 주고 있습니다.
14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내게 이르되." 천사가 질문을 했는데 대답은 다니엘에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고난을 당해야 할 주된 당사자는 천사가 아닙니다. 다니엘과 그의 민족이 고난을 당할 것이기 때문에 대답이 다니엘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이천 삼백 주야까지니." 이천 삼백 주야의 정해진 기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함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징계를 하시는데 그 징계가 무한히 계속되지는 않습니다. 이천 삼백 주야에 한한 것입니다. 이천 삼백 주야면 몇 년 정도입니까? 대략 6년 4개월 정도가 됩니다. 그러니까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가 주전 171년에 대제사장을 죽이면서부터 유대인들에 대한 핍박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뒤 165년, 유다 마카비(Judas Maccabeus)라고 하는 사람이 그를 따르는 유대인들과 함께 안티오커스의 군대를 기습했습니다. 순교할 각오로 대항을 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안티오커스를 몰아 냈습니다. 그때 당시 안티오커스의 본부가 예루살렘 성전 안에 있었습니다. 안티오커스는 수리아로 도망을 쳤습니다. 드디어 주전 165년 12월 25일, 유다 마카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러워진 예루살렘 성전을 정결케 하고 다시금 하나님께 재 봉헌하는 의식을 성대하게 지켰습니다. "그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하였느니라." 그 말씀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12월 25일이 되면 성탄절을 지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12월 25일이 되면 하누카(Chanukah)라는 절기를 지킵니다. 유다 마카비와 그의 추종자들이 성전을 하나님께 재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보여 주신 그대로 그 뒤에 다 이루어 졌습니다. 참 놀랍지요?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받아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어려운 시련이 닥치면 우리는 괴로워합니다. "하나님, 어느 때까지 입니까?" 우리는 이런 기도를 드리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당하는 시련은 무한한 것이 아닙니다. 끝없이 계속 되지는 않습니다. 정해진 기한이 있습니다. 끝날 때가 있습니다. 시련 너머에는 영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지나간 날들을 한번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께서 늘 같이 하시면서 모든 시련을 이기게 하시고 에벤에셀로 도우시면서 우리를 지금까지 인도해 주셨지 않습니까? 지금 내가 당하는 시련도 끝나는 시점이 있습니다. 그 너머에는 영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을 생각하시면서 소망 가운데 인내로 하루하루의 삶을 기쁘게 승리하면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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