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δεδομένα 18,185편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제44강 현실로 이루어진 꿈(4:32-33)

by 【고동엽】 2022. 4. 13.

제44강 현실로 이루어진 꿈(4:32-33)

 

4:32-33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거하며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니 그 동시에 이 일이 나 느부갓네살에게 응하므로 내가 사람에게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았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았었느니라

느부갓네살 임금이 계속해서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들려 오는 음성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음성일 수도 있고, 순찰자, 거룩한 자, 곧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의 음성일 수도 있습니다.
어떠한 심판의 소리를 듣게 되었는지 3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나온 내용은 이미 다니엘이 25절에서 예언했던 내용 그대로입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은 하나님의 종 다니엘이 조언한 대로 주어진 일 년 동안에 회개했다면, 즉 하나님의 절대 주권 앞에서 항복하고 죄를 속하기 위해서 공의를 행하며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겼다면 이와 같은 심판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주어진 기회를 느부갓네살 임금은 놓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종을 존경할 줄 알고 귀하게 섬길 줄 알고 하나님의 종의 말에 경청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복받는 길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금란교회의 김홍도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분은 어린 시절에 제일 싫어했던 사람이 목사님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어려운 형편 속에 목사님만 심방 오시면 이상하게도 어머니가 없는 형편에서도 꼭 쌀밥을 대접했다고 합니다. 보리밥도 제대로 못 먹는데, 보리밥이라도 한번 배불리 먹었으면 좋겠는데, 목사님만 오시면 쌀밥을 정성껏 만들어서 대접을 하셨다고 합니다. 형제들이 목사님께서 저 밥을 몇 숟갈이라도 남기시면 좋겠는데 하면서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으면 야속하게도 쌀 한 톨도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서 다 먹는다고 합니다. 거기다가 물까지 부어서 그릇을 깨끗하게 비운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야속하겠습니까? 그래서 목사님이 제일 싫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커서 생각하니까 자기 형제들이 하나님의 은혜 속에 크게 쓰임 받는 것은 어머니가 주의 종들을 잘 받들어서 섬기고 존중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도 똑같은 인간입니다. 왜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잘못을 할 수도 있습니다. 실수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이 세우십니다. 인간이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을 해도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이 벌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다저렇다 따질 것 없습니다. 여러분, 노아의 이야기를 잘 아시지요? 노아가 분명히 잘못했습니다. 그러나 함이 노아의 잘못을 들추어내고 비판했을 때 하나님이 함을 벌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잘못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다만 우리는 하나님의 종을 잘 받들어 섬기고, 하나님의 종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고, 하나님의 종의 말에 순종하고 귀담아 들을 때 나와 나의 자손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만약 다니엘의 조언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다면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회를 놓쳐 버렸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이 예언한 대로 심판이 느부갓네살 임금에게 임하게 되었습니다.
3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느부갓네살 임금은 보좌에서만 쫓겨난 것이 아니라, 인간 세상에서도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짐승의 마음을 품고서 짐승처럼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자꾸 들로 뛰쳐나갑니다. 자기의 옷을 찢습니다. 그리고 성난 소처럼 사람을 보기만 하면 머리를 받고 뒷발길질을 합니다. "음매!" 소리를 내니 어떻게 사람들과 함께 살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사람에게서 쫓겨났습니다.
그 다음에 "들짐승과 함께 거하며"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사는 집에서 같이 살 수가 없습니다. 들짐승과 함께 거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다니엘이 신하들에게 말했을 것입니다. 지금 다니엘은 박수장입니다. 또 바벨론의 총리 대신이라고 하는 높은 지위에 있습니다. "지금 느부갓네살 임금이 정신병이 들어서 미쳐 있지만 7년이 지나면 다시 정신이 돌아올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왕을 잘 보살펴야 한다." 청와대에 가면 청와대 뒷산이 있습니다. 사람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바벨론 도성 안에도 사람의 출입이 금지되고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곳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곳에 비록 정신이 이상하지만 왕을 모셔다 놓고 잘보살폈을 것입니다. 철과 놋줄로 울타리를 치고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면서 왕을 보살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소처럼 생각하는 정신병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비참합니까? 자기를 인간 이상으로 생각했던 느부갓네살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반대로 인간 이하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자기를 높이려고 한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가 높아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절대 진리입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은 자고했습니다. 높아지고자 했습니다. 그러다 짐승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처럼 되려고 했는데 오히려 짐승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7년의 기간을 지내서라는 말입니다. 이 7년의 기간 동안 느부갓네살 임금의 아들 아멜말둑이 아버지를 대신해서 바벨론을 통치했습니다. 나중에 느부갓네살 임금이 다시 정신이 돌아오고 나서 그 사실을 알고 아멜말둑을 종신토록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감히 아버지가 멀쩡하게 살아 있는데 왕 노릇했다는 것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루리라 하더니." 느부갓네살 임금이 교만해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교만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생각지 못하고 나만 생각하면서 나만 높이는 것이 교만 아니겠습니까? 30절에서 느부갓네살 임금이 뭐라고 자기를 높였습니까?
"이 큰 바벨론 도성은 내 능력과 내 권세로 내가 만들었고 내가 건설했고 내 위엄의 영광을 삼았느니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우러러 볼 줄 모르고 자기만 생각하면서 자기를 높인 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겸손은 무엇이겠습니까?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우러러 볼 줄 아는 것이 바로 겸손입니다. 오늘 아침 우리가 겸손히 주님 앞에 머리 숙였습니다. "주여, 내 힘으로는 살 수 없는 줄 알아서, 주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줄 알아서 오늘도 주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주님만을 바라보는 것이 겸손입니다. 늘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나를 바라보지 말고 나를 높이려고 하지 말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우러러보면서 살아가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울이 겸손했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도록 기름을 부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이 자고할 때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빼앗아서 겸손했던 다윗 임금에게 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겸손한 자, 비천한 자에게 주신다는 사실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에 3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동시에 이 일이 나 느부갓네살에게 응하므로." 지금 느부갓네살 임금이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 느부갓네살 임금이 왕궁 안에 있습니까? 식당에 앉아 있습니까?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29절에 보니까 "열두 달이 지난 후에 내가 바벨론 궁 지붕에서 거닐새"라고 했습니다. 바벨론 궁의 지붕에 올라가서 바벨론을 바라보면서 자고하면서 만족해하고 있을 바로 그때에, 아직도 마음속에 교만이 가득 차서 자고하고 있을 그때에 일어난 일입니다.
"이 일이 나 느부갓네살에게 응하므로 내가 사람에게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라고 했습니다. 들에서 사니까 비바람을 다 그대로 맞으면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낮이 되면 들에 나갔다가도 밤이 되면 집에 들어옵니다. 그런데 자기를 짐승으로 생각을 하니까 그대로 들에서 밤을 지샜습니다. 비가 오면 비를 맞아 몸이 젖을 수밖에 없고, 또 눈이 내리면 눈을 맞으면서 살아가는 가련한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화씨로 여름철에 110도까지 올라간다고 합니다. 제가 계산을 하지 않았지만은 110도면 섭씨 40도가 넘는다고 합니다. 엄청나게 뜨거운 날씨입니다. 비가 오면 비를 맞을 수밖에 없고 또 겨울철에는 화씨 20도까지 내려갑니다. 20도는 영하입니다. 그러니까 눈이 오면 눈을 맞으면서 7년 동안 그렇게 산 것입니다. 자기를 인간 이상으로 생각하다가 결국은 인간 이하의 처참한 지경에 처하고 만 것입니다.
또 어떻게 되었습니까?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았고"라고 했습니다. 머리는 깎을 수 없으므로 계속해서 자랍니다. 머리를 빗지 않으니까 머리카락이 헝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신하가 가까이 가서 머리 깎으려고 하면 가만히 있겠습니까? 소처럼 머리로 사람을 받아 버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접근을 할 수가 없습니다. 머리를 깎을 수가 없습니다.
"손톱은 새 발톱과 같았었느니라." 손톱과 발톱도 깎지 않으니까 길어서 새 발톱과 같았습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자고하다가 결국은 소처럼 생활하게 되고, 모습은 새처럼 비참한 모습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사실을 생각하면서 이 아침 나를 낮추고 겸손한 마음으로 애통하는 심정으로 하루를 지낼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애통하는 심정을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자기에게 주어진 열두 달 동안 애통하는 마음으로 두 손 들고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라고 했다면 왜 하나님께서 그를 용서해 주지 아니하셨겠습니까?
인생의 수고하고 무거운 모든 짐들을 다 주님 앞에 내려놓으시고 주님이 주시는 평강과 주님이 주시는 마음의 쉼을 다 받으시는 이 아침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