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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하시는 하나님! (창 27:15-23)

by 【고동엽】 2022. 1. 26.

강제하시는 하나님! (창 27:15-23)


과일나무를 보면 과수원지기가 가만히 놓아 두지를 않습니다. 가위를 들고 다니면서 가지를 잘라 내고, 끊어 내고, 바로잡아 주고, 받쳐 주고, 다듬어 내고 그럽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열매가 더 크고 잘 열리도록 가꾸기 위해서 그럽니다. 화초도 그렇습니다. 화분에 담겨 있는 아름다운 화초는 저절로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모두 사람의 손이 가고 정성이 들어가서 그렇습니다.
이것은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도 보면 저절로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어린아이 때부터 손이 많이 가야 합니다. 혼내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고, 설득하기도 하고, 때로는 매를 들어 때리기도 하고 그래야 하나의 의젓한 사람으로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아를 보십시오. 고아는 마치 야생마와 같습니다. 전혀 다듬어지지 않았습니다. 길들여지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손이 가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사람의 관심과 애정과 손길이 미치지 않고 무관심 속에서 자라서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부모가 있는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해보십시오. 그냥 놔 기르겠습니까? 어렸을때부터 얼마나 공을 들여 키우겠습니까? 지나치리만큼 진한 애정의 손길과 관심과 사랑의 보호 속에서 길러질 것입니다. 그래서 비로소 한 사람의 성숙한 인간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어떤 사람에게는 무한하게 자유를 주십니다. 별짓을 다해도 하나님이 간섭을 하지 않으시고 그냥 놔 두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버려진 사람입니다. 고아에게 모든 사람들이 무관심한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고아에게는 무한한 자유가 주어집니다. 누구 하나 간섭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알고 보면 이 자유는 저주스런 자유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나 강제하시고 간섭하십니다. 조금만 한눈을 팔아도 금방 매를 들고 나타나십니다. 조금만 옆길로 가도 금방 나타나셔서 길을 막으십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대상이기 때문에 그냥 놔 두지를 않으십니다. 그래서 때로 강제하시거나 간섭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아 얻어 맞고 나서 굉장히 기뻐했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금방 매를 드시는 것을 경험하고 나니까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얻어 맞고 나서도 그렇게 기뻐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사랑 체험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이렇게 애착을 가지고 강제하시고 간섭하신 대표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우리드이 잘 아는 야곱이라는 사람입니다. 이 야곱은 참 흥미 있는 사람입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재주가 많았고 또 사기성이 많은 그런 사람입니다. 그 결과 야곱은 인생을 아주 험난하게 살았습니다.

 

본문을 보면 야곱은 그러한 불성실한 인간성과 사기성이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야곱은 아버지 이삭이 말년에 눈이 어두어서 분별이 어려운 것을 이용해서 감쪽같이 속여 먹습니다.
아버지가 형 에서에게 사냥을 해서 별미를 만들어 오라고 합니다. 그때 야곱이 재빨리 어머니가 만들어 준 별미를 들고 눈이 어두운 아버지에게로 들어갑니다. 아버지의 축복 기도를 받아내야 앞으로 장자에게 주어지는 모든 상속권과 권한을 물려받게 됩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속여서라도 형 에서의 행세를 해야 했습니다.
들어갔더니 아버지가 묻습니다. "네가 누구냐?" 그때 야곱은 에서의 음성으로 변성을 하고 "나는 아버지의 아들 에서입니다. 일어나 잡수시고 마음껏 축복해 주십시오"(19절) 그럽니다. 그랬더니 이삭이 묻습니다. "어떻게 빨리 사냥을 해서 별미를 만들어 왔느냐?" 야곱이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여호와께서 쉽게 잡도록 도와주셨습니다"(20절) 얼마나 불성실합니까?
그랬더니 아버지가 야곱을 가까이 오게 해서 몸을 만져봅니다. 에서는 몸에 털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머니와 짜고 야곱이 염소새끼 털과 손목과 팔을 감고 들어갔습니다. 그 위장한 몸을 만져 보고 이삭이 하는 말이 "음성은 야곱인데 손은 에서로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에서에게 해 주어야 할 축복 기도를 야곱에게 해줍니다. 야곱은 이렇게 아버지를 속여서 끝내 축복 기도를 받아내는 데 성공을 합니다. 얼마나 지능적입니까?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는 행동입니까?
이삭이 기도를 해 주고 나서도 미덥지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24절을 보면 다시 확인을 합니다. "네가 참 내 아들 에서냐?" 하고 다시 확인을 합니다. 그때 야곱이 확신 있게 대답을 합니다. "그러하니이다." 그리고 나서 야곱은 재빨리 그 자리를 빠져 나왔습니다. 이미 모든 것은 그렇게 해서 끝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에서가 사냥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와 보니까 이미 모든 것이 끝나버린 상황입니다. 형도 속고 아버지도 감쪽같이 속았습니다. 33절을 보면 이삭이 야곱으로부터 속임을 당한 것을 알고는 "심히 크게 떨었다"고 했습니다. 이를테면 그 사기상에 치를 떨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34절을 보면 에서는 "방성 대곡했다"고 했고, 41절을 보면 "내가 야곱을 죽이리라"고 한을 품습니다. 참 불행한 모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때부터 야곱이 험난한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야곱의 인생은 첫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형태입니다. 죽이려고 벼르는 형을 피해서 외갓집으로 도망을 갑니다. 그곳에서 머슴살이를 합니다. 1, 2년도 아니고, 자그만치 20년 동안이나 양치는일을 하면서 머슴살이를 합니다. 그리고 결혼을 했는데 부인이 자그만치 넷씩이나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전혀 원히 않는 일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야곱은 굉장히 피곤한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밖에 나가면 외삼촌이 자꾸만 시기를 하고 견제를 합니다. 일터로 나가면 처남들이 시기를 하고 견제를 합니다. 안으로 들어오면 이번에는 네 여인들에게 시달려야 했습니다. 밤만 되면 고민입니다. 어느 여인에게로 가야합니까? 이것은 스위트 홈이 아니고 트러블 홈입니다.
또 자식들도 효도하는 아들들이 없습니다. 큰 아들 르우벤은 서모를 겁탈해서 아버지를 부끄럽게 했습니다. 둘째 셋째 아들은 아버지를 말신시켜서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열 아들들이 모의해서 요셉을 남의 나라로 팔아 먹고는 짐승에게 찢겨 죽었다고 거짓말을 해서 야곱은 요셉이 정말로 죽은 줄 알고 에서가 흘렸던 그 피눈물을 야곱 자신도 흘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딸 하나 있는 것은 바람이 나서 돌아다니다가 강간을 당해서 야곱이 말년에 얼마나 고심을 하고 근심을 했습니까? 또 죽었다던 요셉이 살아 있다고 해서 얼마나 놀랍니까? 죽었다고 해서 충격을 받았고 또 살아 있다고 해서 충격을 받습니다. 그뿐입니까? 형을 속이고 도망 나온 신세라서 고향에도 가지 못하고 처가에서 머슴살이를 20년이나 해야 했습니다. 참 험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니 야곱이 얼마나 한 많은 인생을 살았습니까? 그리고 야곱의 모습이 얼마나 상했겠습니까? 창세기 47장을 보면 아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야곱이 애굽으로 갑니다. 아들 요셉이 아버지를 이끌고 바로에게 가서 인사를 시킵니다.
그때 바로가 야곱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 나이가 얼마요?" 여기 보면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바로가 그렇게만 묻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물었을 것입니다. "당신 나이가 얼마인데 그렇게 형편없이 늙었소?" 요셋말로 하면 이런 말입니다. "도대체 당신 나이가 얼마인데 그렇게 팍 삭았소?"
그때 야곱의 형색이 말할 수 없이 상해 있었습니다. 그거슬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창세기 47:9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이 바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이것이 야곱의 인생입니다. 아주 험악한 인생을 살았고 산전수전 다 겪으며 살아온 그런 인생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한 가지 여러분에게 질문을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왜 야곱을 이렇게 혹독하게 훈련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왜 야곱으로 하여금 이렇게 고난스러운 인생을 살아가도록 만들었습니까? 창세기 28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이렇게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복을 주겠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겠다고 분명하게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좀 평안하고 힘들지 않게 살아가도록 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그것이 복이 아닙니까? 여러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복을 주신다고 하셨으면 세상을 좀 쉽게 살고, 평안하게 살고, 고생 없이 살아가도록 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평안하게 살고, 세상을 쉽게 살고, 돈을 벌되 고생하지 않고 많이 벌 수 있도록 해주시는 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만일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그런 것이라고 믿고 있다면 그것은 잘못 이해하셨습니다.

 

그러면 한 가지 질문을 더 하겠습니다.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가다가 예수를 믿으면 그 인생살이에 고생이 없어지고 매사가 평안하고 그렇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세상살이가 오히려 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고민이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엄격한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 아이은 생활이 굉장히 고달픕니다. 매일같이 잔소리가 많을 것입니다. 단정히 해라, 어른 보면 인사래라, 존댓말 써라, 웃을 때는 크게 웃지 말라, 밥먹을 때는 소리내지 말고 먹어라, 씻어라, 숙제했느냐, 빠리 일어나라, 공부해라 등등 얼마나 성화가 많겠습니까? 엄격한 부모 밑에서 자라면 이렇습니다. 간섭이 많습니다. 말씀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매를 들어 때립니다.
그런데 고아는 참 편안합니다. 누구 하나 참견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세수해라, 이 닦아라, 발 씻어라 하고 누가 말해 줍니까? 발을 씻지 않고 잠을 자도 누구 하나 말하는 사람 없습니다. 자고 싶을 때 마음대로 잠을 자도 공부해라, 숙제해라, 씻어라 하고 누구 하나 간섭하는 사람 없습니다. 무한한 자유를 누립니다.
그런데 엄격한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에게는 이런 것은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그렇게 하루도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간섭이 없다고 해서 이것이 진정한 평안이고 자유입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부모가 없는 아이라서 그렇습니다. 부모가 있는 아이라면 그럴 수가 없는 일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인생을 평안하게 살아가도록 내버려 두셨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사기꾼으로 태어납니다. 나올 때부터 형의 발꿈치를 잡고 먼저 나오려고 다툰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이 같은 야곱을 가만 내버려 두셨으면 야곱의 인생은 영원하 사기꾼으로 전락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엄청난 사건을 저지르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하셨기에 사기꾼을 성자로 만드시려고 그렇게 야곱에게 험난한 인생을 살아가도록 강하게 훈련을 시키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야곱을 따라 다니면서 훈련시키십니다. 사기 치고 도망 가는 야곱을 광야에서 돌베개를 하고 고민 고민하게 만드셨습니다. 생전 처음 부모 곁을 떠나서 독사와 맹수들과 도둑들이 난무하는 황량한 광야로 몰아내서 밤새도록 혹독하게 외로움 속으로 몰아넣으셨습니다.
그리고 외삼촌 집에 가서 20년 동안 머슴살이를 하도록 하십니다. 그러는 동안에 야곱이 얼마나 사기를 많이 당합니까? 외삼촌으로 하여금 몇 번이고 속고 속임을 당하는 아픔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아버지를 속이고 형을 속인 죄값으로 하나님은 야곱이 결혼하는 데도 속임을 당하게 하십니다. 야곱은 이렇게 외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를 죽이려고 벼르고 있는 형 때문에 가고 싶은 고향도, 만나고 싶은 부모도 볼 수 없는 신세로 고향집에 가지도 못하고 타향에서 처량한 인생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얼마나 험난한 인생입니까? 이런 과정을 거쳐서 야곱이 비로소 깨지고 부서지고 변화되고 마침내는 개과 천선을 하게 됩니다.

그러는 사이에 양심적인 야곱이 됩니다. 완전히 변화된 인생으로 바뀝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마침내 야곱이 성자가 됩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강하게 훈련하지 않으셨으면 야곱이라는 인간은 벌써 타락하고 망해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성자가 된 후에 야곱이 20년 만에 고향으로 가서 형 에서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고 절을 일곱 번씩이나 합니다. 이 말은 야곱이 이제 완숙한 인간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야곱이 이렇게 된 것은 오랜 기간 동안 강하게 훈련을 받은 결과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이 때로 세상 살기가 불신자들보다 고달픈 이유를 이제 아시겠습니까? 일반 불신자들은 세상에서 별짓을 다해도 괜찮은데, 여러분들은 조금만 옆길로만 가도 금방 매가 오고, 고통이 오고, 채찍이 오는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들에게 이렇게 강하게 훈련하시고 간섭하시고 강제하시는 그 까닭을 이제 아시겠습니까?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과 관심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강제하시고 간섭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이 같은 하나님의 두손에 이렇게 붙들려 살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강제하시는 두 손길에 묶여 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이 같은 따뜻한 관심과 강제하시는 사랑 안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읷이 우리들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힘있는 축복의 생활입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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