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전도의 이유와 방법 /마가복음 16:15-20

by 【고동엽】 2022. 3. 23.
 
 
목록가기

 

전도의 이유와 방법

 마가복음 16:15-20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여 예배드리는 모든 분들은 누군가에 의해 예수님의 복음과 우리 교회를 소개받아 나오신 분들입니다. 우리는 혼자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누군가에 의해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가는 과정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어떤 이들은 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 우리는 기독교 신앙에 대해 말을 해야 하는가? 그것은 사적(私的)인 문제가 아닌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올바로 살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오늘은 전도에 대해 함께 생각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왜 그리고 어떻게 전도해야 합니까? 전도의 이유와 방법을 분명히 알고, 전도의 대열에 용감히 나서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붙여주신 불신 오이코스들에게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영광스런 사명이 아닐 수 없습니다.


1. 왜 전도해야 하는가?

왜 우리는 나 자신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에게 전해야 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복음은 혼자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며 함께 복을 누리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 전도는 예수님이 직접 명령하신 일임

15절=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무엇보다도 전도는 예수님이 힘주어 명령하신 일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가르치시면서 만민에게로 가 서 복음을 전파할 것을 직접적으로 명령하셨습니다. 어떤 신학자는 “성경에 ‘가라’는 말이 1514번 나오는데, 신약에 233번, 그 중에 마태복음에만 54번 나온다”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가서 요한에게 전해라.” “가서 네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초청해라.“ ”가서 제자를 삼으라.“

사실 이 말씀들은 마태복음에 기록된 마지막 말씀들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18-20).
왜 전도해야 합니까? 왜 나는 내가 믿는 예수님에 대하여 주위사람들에 게 말을 해야 합니까? 그 이유는 전도야말로 예수님이 직접 주신 최대의 명 령이기 때문입니다.

2) 세상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복음을 들어야 할 절박한 필요가 있음

16절=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사람들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되어 있고, 그 결과 모든 면에서 욕구불만이요 죄의 권세, 마귀 권세 아래에서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들의 목마른 가슴을 만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 이름으로 세례받는 사람은 구원을 받지만,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복음을 들어야 할 절박한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거대한 사막에 있는데 오아시스를 발견했다면, 우리 주위의 목마른 사람들에게 목을 축일 수 있는 곳을 말해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왜 전도해야 합니까? 세상 사람들에게는 복음을 들어야 할 절대절명의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3) 복음을 발견하면 그것을 나누고 싶은 강한 소망을 느끼게 됨

좋은 소식, 기쁜 소식을 우리가 들으면,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싶어집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 사건이 우리에게 미치는 모든 것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제대로 알고 믿게 되면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열망이 솟아납니다. 우리가 십자가와 보혈의 깊은 의미를 깨달아 알게 되고, 부활의 영광이 얼마나 위대한 소식인지를 알게 되고, 천국의 소망으로 가득차게 될 때, 우리는 이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어서 가슴이 터질 것입니다.


2. 어떻게 전도해야 하는가?

이제 우리는 전도의 효과적인 방법에 대해 알아볼 차례가 되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가서 이야기를 해야 합니까? 어떤 그리스도인은 철없는 망아지처럼 돌격합니다. 자신이 발견한 것에 너무도 흥분되어서 다른 모든 사람들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상대방을 헤아리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전도자는 상대와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게 됩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불신자에게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할지를 모르기 때문에 그 결과를 무서워합니다. 따라서 이런 사람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고자 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입에 담기조차 무서워하게 됩니다.

평소에 전도에 자신이 없던 사람이 큰 용기를 내어 아파트에 전도를 갔습니다. 벨을 누르고는 안에서 사람이 나와서 욕할 것을 상상하고 윗층으로 몸을 피했습니다. 한참 후에 ‘그래도 해야지’ 하고 또 벨을 눌렀습니다. 그런데 겁이 나서 또다시 몸을 피했습니다. 얼마 후 꼭 해야겠다는 각오를 하고 세 번 째 벨을 눌렀습니다. 이번에는 몸을 피하지 않고 욕을 얻어먹을 각오를 하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습니다. “왜 그래요?” “예수 믿습니까?” “이사왔는데요. 그렇찮아도 교회를 정하지 못하여서 생각 중인데 반갑습니다. 들어오셔요.” 그리하여 쉽게 한 가정을 인도하였습니다.

사실 전도는 하나님과 우리 자신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나와 친한 오이코스에게 예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평소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는 성령님과 협력하여 사람들에게 그 관계에 대해 말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어떻게 전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까요? 다음의 네 가지 제목으로 생각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첫째, 주위 사람들에게 소금과 빛의 삶을 보인다
마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

마 5:14-16=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소금과 빛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이 사실을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상에 대하여 널리 영향력을 끼치라고 명령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이렇게 세상에 영향을 끼치려면, 존 스토트가 말했듯이, 우리의 ‘우아하고 작은 종교라는 소금방’으로 숨어들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남과 달라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방식은 세상의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구별되어서, 세상 속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냉장고가 발명되기 전에는 생선을 상하지 않기 위해 소금을 썼습니다. 우리는 사회가 썩는 것을 막기 위해 그리스도인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우리는 말로써 하나님의 기준을 주변의 사회에 알려 우리의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우리는 또한 행동으로 시민으로서의 본분을 다하며, 정의와 자유와 개인의 존엄성을 위해 일하고, 차별을 없애는 일에 협조합니다. 소외된 사람들을 돕는 사회적 행동으로도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의 빛이 나타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삶을 보고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이 “너희의 착한 행실” 이라고 하신 그것을 모든 말과 행동으로 실천할 때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이 되며 주위 사람들의 마음이 열리고 복음을 받을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 충성 봉사하는 부인이 있었는데, 남편과 자녀들은 한번도 교회 예배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목사님이 그 가정을 방문하여 남편과 단 둘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남편되는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교회생활 할 것을 권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의 아내가 교회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제 아내는 불같은 고약한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집에서 한번만 화를 냈다 하면 아이들과 저는 숨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정도입니다. 저는 이러한 것이 올바른 교회생활이라고 생각지를 않습니다.”

목사님은 곧 부인을 만나서 남편에게 들은 말을 사실대로 다 이야기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부인은 진실히 뉘우치며 앞으로는 잘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부인은 목사님과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한 후에 헤어졌습니다. 이 일이 있은지 바로 며칠 후였습니다. 남편이 낚싯대를 가지고 집안으로 들어 오다가 실수로 새로 산 지 며칠밖에 안 되는 전등을 산산조각으로 깨뜨린 것이었습니다. 당황한 남편은 아내의 불과 같은 성질의 벼락이 떨어질 것을 알고 멈칫 서서 기다렸으나 벼락이 떨어지지를 않았습니다. 그 대신 빗자루를 들고 와서 깨어진 조각을 쓸어 담는 아내가 미소로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보, 괜찮아요. 전등이야 다시 사면 되지요. 당신, 다치지 않으셨어요?” 그 다음 주일 오전예배에 그 남편은 아내와 나란히 교회에 나왔고, 몇 주일 후에는 그의 마음을 그리스도에게 바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실천하는 것은 우리와 아주 가깝게 살고 있는 사람들(=오이코스)에게 복음을 전하는 가장 적합한 방법입니다. 우리의 가족, 직장 동료들이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들에게 어느 정도의 부담을 주는 셈입니다. 직장에서는 우리가 성실하고 정직하며 열심히 일하고 신뢰할 만하며 남의 험담을 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고자 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해야 합니다. 집에서는 우리의 말보다는 타인에 대한 봉사와 인내심, 친절함으로 부모님, 가족, 그리고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쳐야 합니다.

그렇지만 “세상의 빛”이 되는 것은 삶의 모습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입술도 포함됩니다. 우리의 오이코스들은 결국에는 우리가 가진 신앙에 대해 질문할 것입니다. 많은 경우 그들이 질문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더 좋습니다. 질문을 받으면 언제라도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벧전 3:15).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알리고 대화하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설명하는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는 전도자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6장 9절 이하의 바울사도의 증언에서 성경적인 모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집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에는 어떠했으며(9-11절), 예수님과의 만남이 그에게 어떤 의미였으며(12-15절), 그 이후로 그 만남이 그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19-23절)를 말합니다.

불신자에게 복음을 소개하고 적용하는 데는 정해진 규칙은 없습니다. 다만, 진리에 대한 확신을 얻고자 하는 자에게는 보다 세밀하고 정교한 진리 체계를 보여줄 준비를 갖춰서 토론과 해석과 증명을 두려워말아야 하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나쁜 선입견을 가진 자들에게는 그들의 연막전술에 빠지지 않고 대화의 주도권을 이어가도록 예민성이 요구됩니다.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한 사람이 전도하고자 할 경우에는 스스로 복음을 설명하려는 것보다 자기 외의 다른 사람에게 복음에 대한 설명을 듣도록 사람들을 데려오도록 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일 것입니다.

셋째, 복음의 능력을 증명해 보인다
막 16:17-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신약성경에는 복음이 선포될 때 말씀과 함께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본절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전도의 명령과 함께 주신 표적과 능력에 대한 약속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전도하러 나서는 자들에게는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를 주시고, 새방언을 말하게 하며, 치유의 능력을 주시겠다는 엄청난 약속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이미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하시는 동안 보이셨던 능력입니다. 예수님은 악한 영을 쫓아내셨고(막 1:21-28), 병든 사람들을 고치심(막 1:19-34, 40-45)으로써 복음의 능력을 증명해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이 가지신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능력’을 주셨습니다(마 10:1). 그리고 당신이 해오신 일들을 그들도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는 것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눅 10:9). 복음서들과 사도행전을 읽어 보면 그것이 바로 제자들이 행한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막 16:20). 후일에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이렇게 편지했습니다.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살전 1:5).

말씀선포와 능력은 함께 갑니다. 때로는 하나가 다른 하나를 끌어내기도 합니다. 기적은 세상 사람들에게 대단한 관심을 불러 일으킵니다. 한번은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성전 밖에는 날 때부터 두 다리를 못쓰는 장애인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그곳에 수년 동안 앉아서 돈을 구걸해오던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이 사람에게 솔직히 이렇게 말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행 3:6). 손을 잡아 일으켰더니 그 즉시 벌떡 일어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 남자가 오랫동안 다리를 쓰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사도들 주위에 몰려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증명되자 이어서 복음이 선포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가?” 하고 묻고 있었고, 베드로는 그들에게 예수님에 대해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행 3:16).

어떻게 전도하는 것이 효과적입니까? 예수 이름의 권세와 능력을 보임으로써 하나님의 나라가 단순히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있다는 사실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넷째, 자신과 오이코스를 위해 계속 기도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기도는 필수적입니다. 기도가 예수님의 생애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는지는 복음서를 한 번만 읽어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복음을 선포하고 증거하는 동안 계속해서 기도하셨습니다(막 1:35-37).

우리는 전도대상자의 닫힌 눈이 떠져서 볼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에 대해 눈이 멀어 있습니다(고후 4:4). 육체의 눈은 정상이지만 영의 세계에서는 눈이 멀어 있습니다. 성령께서 그 감겨진 눈을 뜨게 하셔서 그들이 예수님에 관 진리를 이해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먼저 믿은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음을 뒤늦게 알고 감격해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가족 중 한 사람이거나 친구일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이코스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지만, 동시에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게 예수님에 대해 말할 때, 많은 경우 부정적인 반응을 얻게 되고 그때마다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받기 때문입니다.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하체장애인을 고쳐주고 몰려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했을 때, 그들은 체포되었고 생명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기도했습니다. 무엇을 구했습니까? 자신들을 보호해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말씀을 전하는 데 더 큰 용기를 주실 것과 예수 이름으로 더 많은 표적과 기사들을 보여주시기를 간구하는 기도였습니다(행 4:29-30).

스미스목사님이 에버딘에서 부흥집회를 인도하고 있었을 때입니다. 집회를 마치고 돌아가는데 어떤 손이 그의 코트를 잡아당겼습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다보니 옷차림이 남루한 한 작은 소녀가 손에 무엇인가 종이로 싼 물건을 쥐고 서 있었습니다. 스미스 목사님은 헐떡거리고 있는 소녀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왜 그러니?” 소녀는 종이에 싼 뭉치를 그에게 불쑥 내밀면서, “목사님, 이것 받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그게 뭔데 그러지.”그는 부드럽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드리려고 가져온 캔디예요.” 소녀는 부끄럽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오. 캔디. 무슨 캔딘데?” “목사님, 저는 새 아빠를 가지게 되었어요.”

“우리 아빠는 지난 토요일까지는 매일 술 취하지 않은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지난 토요일은 이상하게 술을 마시지 않고 들어오셨지 뭐예요. ‘이상하다. 오늘은 아빠가 어떻게 술을 마시지 않으셨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그날 이후 아빠는 언제나 맑은 정신으로 계시면서 늘 얼굴이 환히 밝아 있는 거예요. 그래서 어제는 제가 여쭤 보았지요. 그랬더니 아빠는 지난 토요일 목사님의 집회에 참석하셔서 큰 은혜를 받았다고 하셨어요. 이제는 술도 마시지 않고 올바르게 살겠대요.” 그 말을 들은 스미스 목사는 너무도 반가웠고 용기백배 하였습니다. 스미스 목사는 나중에 당시의 감격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일생에 그처럼 귀한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내 일생이 그 한 순간을 위해 지어졌던 것같이 느껴져요. 주님을 위한 봉사의 대가로서의 그 적은 캔디. 그것이 이 다음 주님이 주시는 상급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전도의 이유와 방법을 짧은 시간에 개괄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왜 전도해야 합니까? 그 이유는 복음 전도야 말로 우리 주님의 최대 관심사요 명령이기 때문이고, 우리의 이웃들이 복음 없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입니다. 생명의 복음을 발견하고 그것을 소유하게 된 사람은 누구나 이것을 전하고 싶은 강한 열망을 갖게 됩니다. 영혼을 살리고 세우는 일은 모든 성도에게 주신 지상사명입니다.

어떻게 전도해야 합니까? 먼저 우리의 삶을 통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오이코스들에게 예수님에 대해, 십자가와 부활과 천국에 대해 설명하고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는 것을 굳게 믿고 담대히 전하십시오.

성도가 믿음으로 복음을 선포할 때 기사와 표적이 뒤따를 것입니다. 질병이 떠나가고 새방언을 말하게 되고 귀신들이 쫓겨날 것입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우리는 쉬지 않고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출처 : 전도카페
글쓴이 : 전도자:박목사 원글보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