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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기둥 같은 일꾼이 되자! (왕상 7:13-21)

by 【고동엽】 2022. 2. 26.

교회의 기둥 같은 일꾼이 되자! (왕상 7:13-21)

 

오늘 우리 교회가 세 분의 권사님을 세우는 임직예배를 드리게 됨을 먼저 하나님 앞에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아멘!/
집안에 자식을 기르는 부모들은 '저 애가 우리 집의 기둥이야!' 희망을 걸어봅니다. 또 한 나라의 큰 인물이 있을 경우, 그를 가리켜 나라의 기둥이라고 부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에도 기둥들이 있습니다. 교회에는 그 시대와 역사를 이끌어 나갈 하나님의 일꾼들이 우뚝 우뚝 큰 기둥처럼 세워집니다.
이 일꾼들은 키워지는 것이고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즉 평신도에서 권찰로, 권찰에서 집사로, 여 집사로, 안수집사로, 권사로, 장로로 세워집니다.
그런데 기둥은 하나만으로는 건물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대들보가 있는가 하면, 그 대들보를 받쳐 주는 크고 적은 석가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시대에 많은 교회들 속에 교파와 교권을 초월해서 또 나라와 역사를 초월해서 지역마다 기둥 되는 교회를 세우십니다.
여러분! 우리교회를 이곳 성수동 한 복판에 역사의 기둥으로 우뚝 세워주셨습니다. 그리고 먼저 부족한 저를 목사로 세우시고,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귀한 성도님들을 불러 교회의 기둥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 성도님들은 하나님이 세워 주신 우리 참 행복한 교회를 잘 키우고, 다듬고, 성장 시켜 나아가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행여나 '나는 직분도 없는데 무슨 일꾼이고, 기둥이냐?' 이렇게 반문하는 성도들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질서를 세우시기 위하여 주의 종을 세우시고, 그 밑에 제직과 기관장을 두었으며, 또한 여러 성도들을 지체 삼아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여러분이 없으면 교회는 되어 지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세워 주신 청지기임을 믿으시고 '내가 하나님께 충성하리라! 내가 이 제단의 기둥이 되리라! 내가 이 제단에서 복을 받고, 내가 내 손으로 우리 교회를 높이 세우리라!'는 투철한 주인의식과 사명감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하나님의 의를 위하는 일이요, 이 일에 충성하면 하나님은 사랑하는 성도님들의 가정과, 사업과 자녀와, 범사에 모든 것이 넘치는 큰 풍요로움을 주실 것입니다. /믿/
여러분! 예수님께서 맨 먼저 하신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람을 찾았습니다. 즉 일꾼, 제자를 모았습니다. 교회나 사회가 필요로 한 것은 언제나 일꾼들입니다.
성경 전체를 통하여 보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사람을 찾는 일이었고, 그 사람 중에 일꾼을 세워 자신의 일을 맡기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유대나라가 로마의 식민지가 되어 노예처럼 살고 있을 때 제자들을 향하여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심히 적으니 주인에게 청하여 일꾼을 보내어 주소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에도 주님은 일꾼(제자)을 찾으셨고, 지금도 교회를 세우시고 일꾼(제자)을 찾으시고 계십니다. 세 분의 권사님들이 일꾼으로 뽑힌 것이고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성도님들은 우리 예수님이 찾아 세운 일꾼들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성전의 기둥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떠나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요긴한 인물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처음에는 열심히 하다가도, 언젠가 그만 슬그머니 주님 곁을 떠나갑니다. 그러면서 교회가 마음에 안 든다, 목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합니다.
▶옛날 중국에 '백리해'라는 사람은 초년에 매우 가난했습니다만, 고난을 참고 굶주림 속에서도 공부를 계속해서 끝내는 과거에 급제하여 어사가 되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살림이 매우 궁색하니까 견디다 못해 남편 버리고 재가를 했는데, 그 쪽 집 형편도 그리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이 어사가 고향으로 어떤 국사를 맡아 하향하는 길에 한 주막에서 잠시 쉬는 일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우연히 그 아내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손을 잡아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면서도 감히 직접 나서지 못하고 밖에서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문빗장 깎아 씨암탉 삶아주던 그 옛날 그 수고를 그대는 잊었는가? 손잡고 영화의 길 함께 가고 싶어라> 노래를 다 들은 '백리해'는 '담 넘어 노래하는 여인을 불러 오라'고 하여 그 여인에게 물 한 동이를 길러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물을 땅에 부으라고 합니다. 붓자 다시 물을 동이에 담아라 했습니다. 여인은 어리둥절했습니다. 어사가 말하기를 '너와 나 사이는 엎질러진 물이로다' 하고 백리해는 떠나 버렸습니다. 여인은 슬피 울며 통곡했습니다. 그러나 백리해가 아내를 버린 것이 아닙니다. 살기 어렵다고 자신이 먼저 남편을 버리고 개가해서 산 것이라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어사보다도 더 영광스러운 심판장으로 이 땅에 오실 것입니다. 그때까지 참고 기다렸다가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하는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개척(적은)교회는 어려움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 고비를 넘기고 나면 보람도 큽니다. 옛말에 꼬리보다는 머리가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큰 교회에서 꼬리보다는 작은 교회에서 머리가 되어 일할 수 있다는 그 자체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축복입니다.

 

1. 직분은 축복입니다.

 

딤전1:12절 "나를 능하게 하신 우리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라" 왜 영광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얘야. 나와 같이 일하자'고 나를 불러서 내게 직분을 맡겨주셨기 때문입니다. 죄송하게도 충성되게 보셨답니다.
그러니 직분은 영광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함께 일하자고 부르면 거절할 사람 있습니까? '아, 각하! 영광입니다. 감격스럽습니다.' 그리고 쫓아갑니다. 대통령이 불러도 이렇게 영광인데 하물며 만 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면서 '얘야. 나와 같이 일하자'고 내게 직분을 맡겼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영광입니까? 오늘 권사로 취임하는 분들은 이 직분이 영광인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권사님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 성도라는 직분이 귀합니다. /믿으시면 크게 아멘!/할/
사실 바울이 그렇게 말한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내가 누구였느냐?' 바울은 자기 자신을 고백합니다. '내가 과거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는데, 그러니까 하나님의 원수된 생활을 했었는데. 하나님은 나를 용서해주실 뿐만 아니라. 나를 들어서 같이 일하자고 직분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누구의 이야기입니까? 저의 이야기이고, 여러분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악가운데 멸망 받을 우리였습니다. 그런데 용서해준 것도 감사한데 우리에게 같이 일하자는 것입니다. /할/
오래 전에 영화가운데 '가문의 영광'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보셨습니까? 그런데 진짜 가문의 영광은 내 가문에 '하나님의 직분을 맡은 자가 있다'는 것이 가문의 영광인줄 믿습니다. 국회의원, 장관이 아무리 많이 나와도 하나님이 맡겨주는 직분 없는 가문은 영광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의 가정에 집사님이 나오고, 장로님이 나오고, 권사님이 나오고, 전도사님, 목사님, 하나님의 직분을 많이 맡는 자들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국회의원 그 명암 가지고는 천국에 가서 문지기도 못합니다. 장관, 그 명암 가지고는 천국에 가서 문지기도 못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영광스러운 직분을 얻도록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할/

 

2. 권사는 어떤 직분인가?

 

①권사란 말은 무엇인가?
권사란 직분은 맨 처음 미국감리교회에서 쓰기 시작한 용어로서 '권고하도록' 허가를 받고 임명절차를 거쳐 임명된 평신도 임원을 가리킨 말로, 권사란 말의 '히'어의 어원을 보면 '돕기 위하여 간청하다. 권면하다. 위로하다, 화해시키다.'는 뜻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권사님들은 '간청하는 자', 즉 '기도의 어머니가 되라'는 말씀이고, '권면하고 위로해 주고 시험에 든 자들을 화해시키는 중간자의 역할'을 잘 해야 합니다. /아멘!/ 분명한 것은 권사는 교회 안에서 결코 명예직이 아님을 밝혀 둡니다. 그 사명이 얼마나 막중하고 귀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훌륭한 권사님은 네 가지 면에서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⑴좋은 인격으로 자신이 자신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고, ⑵사랑과 존경으로 이웃 사람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며, ⑶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께로 인정을 받아야 하고, ⑷시험과 유혹을 물리침으로 마귀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할/

 

②권사의 언어행실이 바로 되어야 합니다.
⑴불평하는 말 대신에 남을 칭찬하는 말을 하라! ⑵남을 저주하는 말 대신에 축복하는 말만 하라! ⑶이간질하는 말 대신에 화해의 다리를 놓는 말을 사용하라!
⑷실망을 안겨 주는 말 대신에 용기를 주는 말만 하라! ⑸속된 말을 지나치게 하지말고 신앙적인 말을 많이 해서 덕을 세워라! ⑹교회 자랑! 목사자랑! 성도자랑으로 가득 채워라! /할/아멘!/
논어에 보면 '유덕(有德)한 인품을 가진 사람은 남에게 세 가지 영향을 끼친다.'고 합니다. 즉 '멀리서 바라보면 엄숙하고 위엄 있게 보이고, 가까이서 바라보면 부드럽고 따스하게 느껴지며, 그가 말하는 소리를 들으면 늠름하고 준엄하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의 태도는 그 사람의 인품을 나타냅니다. 특별히 신앙 인격을 가진 권사님들은 남에게 영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도록 몸가짐이 바라야 합니다.
▶항상 진실해야 하고, ▶태도는 언제나 겸손해야 하고, ▶권사의 태도는 품위가 있어야 하고, ▶권사의 태도는 신앙적이어야 하고, ▶권사의 태도는 남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말씀을 듣고 '아이고 못해먹겠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낙심하지 마십시오! 능력의 주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기도하고 훈련해야 합니다. /아멘!/

 

3. 이상적인 권사 형, 루디아의 신앙을 본받자! (행 16:11-15)

 

루디아는 사도 바울을 도와 빌립보 교회를 세운 분입니다. 루디아란 이름의 뜻은 '생산'이라는 뜻입니다. 많은 초신 자들을 생산해 냈습니다.
▶바쁜 생활 속에서도 하나님을 잘 공경한 '루디아'입니다. 행16:14절 "두아디라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곧 옷감 장사를 하는 여인이기 때문에 얼마나 생활이 바빴는가는 한눈에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도 루디아는 '하나님을 잘 공경하는 신앙의 여인'이라고 성경은 그녀를 칭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공경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⑴예배를 잘 드리는 여인이라는 말입니다.

루디아는 장사를 통해 많은 이익을 남기는 것보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여인이었습니다.
인생에 있어 예배만큼 중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 참 행복한 교회 성도들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기쁨을 지상 최고의 기쁨으로 여기며 예배 때마다 가슴 벅찬 영적 환희와 기쁨과 은혜를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도들의 신앙수준을 확인할 때의 척도는 예배입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열정이 곧 예배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신앙의 열정이 있으면 하나님을 예배하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주일 성수 하는 일은 성도로서 당연한 일이요 주일오후, 수요일 밤, 구역예배는 물론이고 새벽 예배도 지키기 힘든 자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루디아는 열심을 다해 주님을 섬겼으니 얼마나 참된 신앙의 소유자입니까? 권사님들은 이제 아무리 바빠도 주님을 예배하는 일에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⑵섬기며 봉사하는 여인이었습니다.

루디아는 사업하는 여자였지만 하나님을 섬기며 봉사하는 일을 등한히 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전 대통령이셨던 지미 카터도 대통령 재임시절임에도 불구하고 바쁘다고 유년 주일학교 교사 일을 뒤로 미루지 않았습니다. 권사님들이 하는 일이 바로 섬기는 일이요, 봉사하는 일입니다.
⑶루디아는 심령을 열어 말씀을 청종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 지라' 루디아는 예배만 습관적인 열심을 가지고 참석하는 정도의 신앙인이 아니고 행17:11절에 나오는 베뢰아 사람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런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다고 했습니다.
⑷루디아는 온 가족이 구원시킨 여인입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가족복음화가 제일 급선무입니다. /믿/
⑸그녀는 주의 종을 강권하여 자기 집에 모시고 가서 정성을 다해 대접했습니다.

 

4. 교회의 기둥 같은 일꾼이 되자! (왕상 7:13-21)

 

성경은 일꾼들을 말 할 때 기둥이라고 표현합니다. 갈2:9절에서 바울은 '야고보와 베드로와 요한'을 기둥 같은 일꾼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또 계3:12절에 보면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기둥은 성전 건물 기둥을 말하는 것이 아니요, 성도의 모범인 교회의 인물들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성전 건물은 기둥이 바로 서 있어야 산 집이 되어 문을 열고 드나들 수 있듯이 교회도 기둥 같은 청지기가 있어야 합니다.
왕상7:21절 "이 두 기둥을 전의 낭실 앞에 세우되 우편의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야긴이라 하고 좌편의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보아스라 하였으며"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은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우리들의 믿음의 조상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시려고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너무나 귀하고 소중한 아들이었지만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온 아브라함은 아들보다 그 위에 계신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사흘 길을 걸어 모리아 산에 가서 아들 이삭을 제물로 삼아 번제로 드리려 했습니다.
'번제'란 제물을 죽여 피를 흘려 불살라 드리는 제사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죽여 번제를 드리려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아들 대신 수양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 수양으로 하나님께 번제의 제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졌던 그 믿음을 그의 아들 이삭도 가졌고 손자 야곱도 가졌습니다. 그의 후손 요셉도 가졌습니다. 모세, 여호수아, 다윗도 가졌습니다. 그러나 다윗 시대까지 그들의 제단은 정착된 곳이 없었습니다. 일종의 유목생활이라 그들이 가는 곳이 제단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애굽에서 430년 간 종살이한 후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 다윗은 완전한 성전을 짓기를 꿈꾸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는 성전 짓는 일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그 아들 솔로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성전은 이스라엘에 있어서 하나님이 주시는 큰복의 절정입니다. 성전을 지을 준비는 다윗이 했지만 착공과 준공, 낙성식은 솔로몬이 했습니다.
성전을 짓기 위해서는 많은 물품이 필요했습니다. 좋은 나무도 필요했습니다. 금, 은, 동, 철도 필요했습니다. 기술자도 필요했습니다. 이스라엘 국내에 없는 기술자는 외국에서 불러다가 일을 맡겼습니다.
왕상7장은 성전을 다 짓고 나서 솔로몬이 성전 입구에 두 개의 놋 기둥을 세울 때의 말씀입니다. 그 기둥은 높이가 약 25자(약 8m)나 되는 높은 기둥입니다. 기둥의 재료는 놋입니다. 성경에는 구리와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몇가지로 생각해 보자!


①그 재료를 다룬 사람은 북쪽 두로지방 출신의 희람이었습니다.
두로 왕 이름이 히람인데 그 백성 중 한사람인 히람이 또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납달리 지파인 유대여인이었고 아버지는 두로 사람인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히람이 혼혈인입니다. 이 히람이 현재 두로에 살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놋으로 기구를 만드는 청동기술자입니다. 두로 왕 히람이 놋을 잘 다루는 기술자인 이 히람을 솔로몬 왕에게 추천했습니다. 솔로몬이 이 사람에게 부대시설을 맡겼습니다. 그는 노련하고 지혜 있는 기술자였습니다.
교회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찬양할 수 있는 사람은 성가대에서 봉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안내도 봉사입니다. 식당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내게 주어진 재능이 무엇입니까? 사용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와 그 나라를 위하여 봉사해야 합니다. 찬양 할 수 있는 분이 성가대 석에 있지 못하고 예배당 뒷자리에 앉아서 오늘은 '잘했니, 못 했니' 하면 안 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찾으시기 바랍니다.
희람은 놋점장으로 그 귀한 기술을 성전에 사용하여 봉사하므로 그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님 오실 때까지 히람의 이름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보람을 찾은 것입니다.


②히람이 만든 것은 놋 기둥 둘입니다.
왕상7:15절(상) "저가 놋 기둥 둘을 만들었으니" 이 두 기둥을 세우는 장소는 낭실 앞이라고 했습니다. 낭실은 현관을 말합니다. 놋은 가나안 땅의 명산물입니다. 이 놋은 성막 건축 때도 사용했었고 다윗의 성전건축 때도 사용한 중요한 물품가운데 하나입니다. 성전 내부 시설에 이 놋이 가장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놋의 특성은 불변입니다. 튼튼함에 있습니다. 그래서 성전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는 영적으로 우리의 신앙생활의 견고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불변해야 합니다. 튼튼해야 합니다.
히3:14절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구원의 십자가를 든든히 붙잡아야 승리합니다.
출애굽 후에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불평 원망하다가 불 뱀에 물렸을 때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놋 뱀을 장대에 만들어 매달도록 했습니다. 뱀에 물린 자가 그것을 쳐다보면 살았습니다. 장대에 매달린 놋 뱀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죄 씻음 받아 새 생명을 얻습니다.


③두 기둥의 이름은 '야긴'과 '보아스'입니다.

우편의 기둥은 야긴입니다. 야긴의 뜻은 '저가 세우리라'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견고하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둥을 흔들리지 않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장소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려 했던 모리아산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그곳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우기는 솔로몬이 세운 것 같아도 하나님이 솔로몬을 통하여 세우신 것입니다.
또한 이 기둥은 현관문 앞에 서 있는 기둥입니다. 그것은 힘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집의 형체와 모양을 더 빛내는 역할도 합니다. 야긴 기둥이 서 있으니 성전이 더 빛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긴 기둥은 대표성이 있습니다.
담임목사만 교회의 대표라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 교회에 출석하는 모든 성도 여러분들은 모두 다 우리 참 행복한 교회의 야긴 기둥입니다.
다음 좌편의 기둥은 보아스입니다. 보아스란 '여호와의 능력으로 영원히 지켜 주시리라'는 뜻입니다. 보아스는 기둥에게 주시는 능력과 힘입니다. 다윗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의 승리의 비결은 여기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 고백 위에서 그는 항상 승리했습니다.
인간에게 힘이 되는 것이 많습니다. 지식, 재물, 권력, 경험, 직장, 건강, 자녀가 출세하는 것도 힘이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일시적입니다. 오래가지 못합니다. 변합니다. 유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능력이 되십니다. 힘의 근원입니다. 창조의 힘입니다. 통치의 힘입니다. 구속의 힘입니다. 심판의 힘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은 성령입니다. 행1: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증인이 되리라" /할/

 

5. 교회 기둥의 기준 몇 가지만 생각해 보자!

 

⑴기둥 같은 일꾼은 믿음을 기둥으로 삼고 살아가야 합니다. 믿음은 능력이고 힘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믿음입니다.
⑵기둥 같은 일꾼은 영혼 구원을 기둥으로 삼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천하보다 귀하게 보시는 영혼을 살린다는 것은 큰 일 중에 큰일입니다.
⑶기둥은 곧아야 합니다. 집을 짓는데 꾸부러지고 비뚤어진 나무는 쓸데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기둥도 정직하고 신실해야 합니다.
시84:11절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⑷교회 기둥은 자신을 죽여야 합니다. 기둥은 죽은 나무여야 합니다. 베임을 당해야 합니다. 나무가 아무리 튼튼하고 좋은 나무라 할지라도 서 있는 나무로는 기둥을 세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세상 정욕의 뿌리에서 베임을 당해야 하고, 세상일을 끊어버려야 합니다. 결국 자신을 죽여야 합니다. 교만도, 이성도, 고집도, 아집도, 자랑들도 죽여야 합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죽은 자가 영원히 삽니다. 주님도 십자가에 죽었기에 3일만에 부활하실 수 있었습니다. /할/
⑸기둥은 주춧돌에서 움직이지 말아야 합니다. 성전의 기둥은 머릿돌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기둥이 흔들리면 집이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기둥은 마음이 견고하고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마음에 안 든다고 나가는 사람, 어디 가서나 마찬가집니다.
오늘 여기 모이신 모든 성도들은 우리 교회의 기둥이 될 재목들입니다. 우리 참 행복한 교회 주춧돌 위에서 움직이지 마시고 하나님 나라에 가는 그 날까지 충성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아멘/

 

6.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충성은 무엇인가?

 

죽도록 충성을 요구하십니다. 계2:10절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여기 충성이란 말과 믿음이란 말은 어원이 같습니다.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충성하게끔 되어 있고 진실한 믿음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충성되지 못합니다.
▶옛날 초나라의 예왕 때 '변화'라는 사람이 높은 산에 올라갔다가 옥돌을 발견하고 그 옥돌을 왕에게 바쳤습니다. 왕은 전문가를 불러 감정을 시키더니 그것은 옥이 아니고 돌이라고 했습니다. 왕은 노하여 국법에 따라 왕을 속인 죄로 변화의 왼쪽 다리를 잘라 버렸답니다. 그러나 변화는 억울하지만 그 참 옥을 알아 줄 날이 오겠지 하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예왕이 죽고 무왕이 왕이 되었습니다. 변화는 이번에는 알아주겠지 하고 새 왕에게 옥돌을 바쳤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번에는 오른쪽 다리마저 잘려졌습니다. 또 무왕이 죽고 문왕이 왕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변화는 새 왕에게 옥돌을 바치려고 3일 3야를 옥돌을 붙잡고 통곡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그를 비웃으며 '저 사람 그 돌 때문에 두 다리가 잘리고 병신이 되었으면 그만이지 무슨 욕심으로 상을 타려고 저러나' 하고 비아냥거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소식을 들은 문왕이 사람을 보내어 변화를 불러 그 옥을 감정한 결과 곁을 보니 영락없이 돌 이였는데 겉을 깎아 내어 속을 보았더니 수정같이 투명하고 맑은 옥이 나타나는데 밤에는 빛이 환하게 밝히고 찬란한 빛을 발하는 것이었습니다.
왕은 크게 감탄하여 변화에게 큰 벼슬을 주고 평생 동안 먹고 살 수 있도록 부상을 주었답니다.
여러분! 이렇게 두 다리를 잃을 때까지 그 옥들을 지켰던 변화가 때가 되어 큰복을 받은 것처럼, 우리의 보화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잘 간직해서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할/

 

▶충성하는 성도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까?
⑴희생을 감수해야 합니다. 자가 희생이 없이 충성할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죽임을 당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충성하라'는 말씀입니다.
▶런던에 있는 박물관에 '충성'이라는 제목의 그림이 있는데, 이것은 AD 79년에 폼페이라는 사치와 허영과 음란의 도시에 베스비우스라는 화산이 폭발하여 용암이 도시로 흘러 내려오고 불 비가 내리듯 화산재가 쏟아져 내릴 때 다른 사람들은 다 살려고 도망치는데 성문을 지키는 한 병사는 그 와중에도 도망가지 않고 자기가 지켜야 할 그 자리에 꿋꿋이 서서 충성을 다하다가 그 뜨거운 화산재에 싸여 죽는 장면입니다. 이것이 바로 충성입니다. 희생이 없이 충성할 수가 없습니다.
▶왜 이런 충성을 요구하십니까? 벧전4:12-13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희생한 만큼 영광을 누리고 즐겁고 기뻐하는 보상을 받기 때문입니다. 계2:10절에서는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⑵변절하지 않아야 충성합니다.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씀은 '죽는 순간까지'란 뜻도 있지만 '죽음이 앞에 닥치더라도' 변절하지 말고, 믿음을 배반하지 말고 충성하라는 뜻입니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평안할 때나 환난을 당할 때나 꾸준히 믿음을 지켜 나가는 것입니다. 기분 좋을 때는 반짝 열심을 내다가도 욕을 먹거나 억울하게 오해를 받을 때는 싹 돌아서 버리고 변절하면 그것은 충성이 아닙니다.
가령 공산당들이 들어와 총부리를 대고 '예수 믿을래, 안 믿을래?' 하며 믿음을 배반하면 육신의 생명을 살려 준다고 할 때 변절하지 않아야 충성된 성도입니다.
⑶충성은 겉과 속이 같아야 합니다. 한자로 '충'자는 가운데 中과 밑에 마음 心자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 한가운데 중심을 바치는 것이 충성입니다. 또 '성'자는 말씀 言변에 이룰 成자입니다. 말과 행동이 같다는 뜻입니다. 말과 행동이 같아야 충성할 수 있습니다.
이해관계에 따라 '말과 행동이 다르고 형편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손바닥 뒤집듯 하는 사람은 충성과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눈가림 하고 남 보는 데서 뭘 하는 척하고 남이 안 보는 데서는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은 충성된 사람이 아닙니다.
엡6:6-7절에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⑷충성도 부지런해야 할 수 있습니다. 게으르면 못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사실 게을러서 이윤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두, 다섯 달란트 받은 종들은 부지런히 바로 즉시 가서 이윤을 남겼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마25:21/23절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종은 30절에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충성은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시켜서 하는 일, 시키는 것만 하는 사람으로는 충성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한다는 것은 책임지고 주인이 되는 태도입니다. 억지로 일하는 노예 같은 마음으로는 결코 충성할 수 없습니다. 충성은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열정이란 일에 대한 욕심, 의욕, 에너지를 말합니다. 열심 있는 성도들은 교회에서 직분을 맡겨주면 기뻐하며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충성을 다 합니다. 이런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⑸작은 일에도 충성할 수 있는 사람은 큰일에도 충성할 수 있습니다.
⑹은밀하게 충성해야 합니다.
충성을 자랑하는 것은 자기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밀하게 행하는 자를 더욱 소중히 여깁니다.
⑺겸손하게 충성해야 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 됩니다. 겸손은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겸손할 때 사용하시고, 겸손하게 만든 뒤에 사용하십니다.
▶미국 스탠다드 석유회사의 직원 아치볼드는 어느 호텔에 가서 숙박 계를 쓸 때 자기 이름을 쓰지 않고 '한 통 4달러 스탠다드 석유'라고 자기 회사의 석유 가격과 이름을 적곤 하였습니다. 말할 기회만 있으면 그는 '한 통 4달러 스탠더드 석유'라고 먼저 앞세우곤 하여 별명이 '한 통 4달러'가 되었습니다.
석유 왕인 사장 록펠러가 이 말을 듣고 평사원인 그를 불러 식사를 하면서 대화한 결과 회사에 대한 열심과 충성이 대단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후에 록펠러의 뒤를 이어 사장이 된 사람이 다름 아닌 아치볼드였습니다. 그는 가장 유능한 사장으로 회사에 크게 공헌을 했습니다. /할/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나폴레옹이 한번은 싸움터에서 적들에게 포위되어 목숨에 위협을 받을 때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추운 겨울 뒤에는 강이요 앞에는 적들이 포위를 하고 들어왔는데 부하들은 나폴레옹을 피난시키기 위해 추운 강물에 인간다리를 만들어 그 위로 나폴레옹이 지나가게 해서 무사히 도피를 시켰습니다.
그 후 추운 강물에서 인간 다리를 만든 병사들에게 이제는 강에서 올라오라고 말했는데 움직이지 않아 보니 강물에서 얼어죽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기들의 왕을 구하기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충성하는 그들의 충성에 나폴레옹도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⑻계산하면서 하는 충성은 가짜 충성입니다.
▶이태원에 가게를 차린 40대 남자가 장사가 되지 않자 간절히 기도 드렸습니다. '월 수익이 천만 원이 되면 200만원을 헌금하겠습니다.' 다음 달부터 갑자기 장사가 잘 되어 그는 800만원을 벌었습니다. 그러자 사나이는 하나님께 다시 기도를 드렸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하나님. 먼저 당신의 몫을 떼어놓고 주시다니.' 이 사람은 가짜입니다.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의사도 없이 병들어 죽어 가는 아프리카인 들을 보고, 의학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사상가요, 신학자요, 음악가로서 당대 존경받는 훌륭한 인물이었지만, 아프리카의 미개한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 아프리카로 가서 병원을 개설했습니다. 그러한 헌신적 노력 때문에 그는 53세에 괴테 상을 수상했고, 76세에는 프랑스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회원이 되었으며, 77세에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노벨상 수상 금을 가지고 나환자촌을 세워서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래서 90세에 세상을 떠날 때는 전 세계인의 존경을 받으며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슈바이처 박사의 친한 동료 교수가 한번은 그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자네는 가만히 있어도 생활이 보장되고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는데, 왜 아프리카로 가서 고생을 사서 하는가?'
그러자 슈바이처 박사가 갑자기 손을 번쩍 들면서 묻기를 '이게 뭐지' '뭐 긴 뭐야. 자네 손이지' 그러자 그는 '이 손은 내 손이 아니네. 이 손은 하나님의 손이야. 그러니까 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하나님의 손 노릇을 하는 거야. 자네, 지금 나를 동정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자네가 걱정되네, 나는 보람이 있고 기쁘다네. 나는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이 진짜입니다.
⑼중요한 것은 그래도 우리가 예수를 잘 믿어야 합니다.
▶평생 동안 교회와 사회에 큰 기여를 한 사람이 죽어서 천국 문 앞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막 천국문 안으로 들어가려는 그를 한 천사가 멈추게 했습니다.
"아! 잠깐만 기다리시오. 당신이 이곳에 들어가려면 일생 동안 살아온 것을 점수로 환산하여 100점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곳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자, 그럼 당신이 세상에서 행한 일 중에서 점수에 보탬이 될 만한 일이 있으면 얘기해 보세요." "저는 40년 동안 한 교회에서 봉사하며 교회를 위해 많은 일들을 했습니다." "아! 그래요? 정말 대단하군요. 1점입니다." "네? 1점이라고요? 그것밖에 안됩니까?" "또 말해보세요" "저는 충실한 가장이었습니다. 한 여자와 결혼하여 무려 50년을 같이 살았고 아이들도 훌륭하게 키웠죠. 내 아이들은 지금 모두 목사, 교수 등등 교계와 사회에서 존경받는 위치에 있습니다. 우리 가정은 늘 행복했답니다." "정말이오? 당신은 매우 훌륭하오. 요즘에는 당신 같은 사람이 매우 드문데, 2점 가산입니다." "네? 겨우 2점이라고요? 정말 미치겠군요"
그는 벌써 땀을 뻘뻘 흘리며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어서 100점을 만들어야 하는데 좀처럼 점수가 올라가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조바심이 난 그는 계속 말을 이어갔습니다.
"저는 지난 60년 동안 한 번도 교회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매일 새벽 기도회에 참석했고 주일에는 청년부 성경공부를 인도했어요." "당신은 정말 모든 면에서 훌륭한 사람이오. 또 1점 가산입니다."
천사의 말에 그는 정신을 잃을 것 같았습니다. "이제 겨우 4점이군요. 그런데 난 어떡하죠? 더 이상은 점수에 보탬이 될 만한 얘기가 없는데, 예수님 난 어떡하나요? 난 천국에 들어가야 하는데 제발 이 죄인을 용서해 주세요!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주님, 나를 도와주소서." 그는 진심으로 자신의 모습이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하면서 울부짖었습니다. 그런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천사가 "자 이제야 당신은 100점을 얻었습니다. 이젠 들어가도 좋소." 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둥 같은 일꾼도 예수 잘 믿어야 새 하늘과 새 땅의 주인공이 됩니다. /할/ (2008년 8월 10일 오후 권사취임예배 설교)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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