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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하는 습관을 기르자--행 5:42

by 【고동엽】 2021. 9. 26.

전도하는 습관을 기르자
행 5:42

최근 일부 환경을 생각하는 기업들이 착한 습관을 갖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름하여 ‘브링 유어 컵’ 캠페인입니다. 자기 컵을 가지고 다니는 습관을 갖자는 것입니다.
근자에 커피 판매가 늘어날 뿐 아니라 ‘테이크 아웃’ 문화가 확산되면서 일회용 컵 사용양이 급증하고 있답니다. 2012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 사용된 일회용 컵이 무려 230억 개나 된답니다. 그 결과 이런 일회용 컵을 만들기 위해 천문학적인 숫자의 나무가 베어져 환경을 파괴하게 되고, 또 그 많은 일회용 컵을 폐기하기 위해 엄청난 경비는 물론이고 환경파괴 또한 심각하답니다.
이런 일회용 컵 사용으로 인한 환경파괴를 막는 길은 한 가지입니다. 자기가 사용할 컵을 가지고 다니는 습관을 갖는 길입니다. 바로 ‘브링 유어 컵’ 습관입니다. 이런 습관은 바로 착한 습관입니다. 나는 불편하지만 공동체를 살리고 지구를 살리는 습관인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꼭 가져야 할 착한 습관이 있습니다. 바로 ‘전도하는 습관’입니다. 나는 힘들고 어렵지만 이웃을 살리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습관인 것입니다. 특별히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습관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이야기입니다. 한 마디로 저들은 모두가 전도하는 착한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늘 어디서나 전도하려고 애썼다는 것입니다.
저들의 이런 전도하는 습관 때문에 초대교회가 크게 부흥했습니다. 믿는 무리가 날마다 더했습니다. 복음이 예루살렘을 넘어서 온 유대로 사마리아로 그리고 땅 끝까지 확산되었습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의 이 착한 습관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가 지속적으로 확산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우리도 그 혜택을 입게 된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오늘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전도하는 습관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 논문의 연구조사를 보면, 오늘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마음속에 전도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20%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도를 습관적으로 실천하며 꾸준히 전도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 2% 정도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설문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한국 갤럽이 1984년부터 2014년까지 30년간 한국인들의 종교와 종교의식변화를 비교한 ‘한국인의 종교 실태’ 조사 결과를 지난 1월 28일에 발표했습니다.
우선 2014년 현재 종교 분포를 보면, 불교 22%, 기독교 21%, 천주교 7% 순이었습니다. 2004년과 비교해 볼 때 불교는 24%에서 22%로 근소하게 감소했고, 기독교는 21%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 천주교도 7%대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결과만 보면 우리가 염려했던 것과 달리 기독교 교세가 크게 줄지 않았고, 천주교 교세도 그렇게 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려스러운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5년 미만의 단기와20년 이상의 장기로 나눈 ‘종교별 신앙 기간’에 대한 조사입니다. 단기 신앙자가 1984년 25%에서 1997년 13%, 2004년 11%, 2014년 6%로 급격한 감소세를 보였다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 장기 신앙자가 1984년 44%에서 1997년 48%, 2004년 51%, 2015년 64%로 증가세를 각각 나타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단기 신앙자의 감소는 새 신자 수의 감소 다시 말하면 ‘전도의 정체’를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갈수록 전도의 열매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물론 전도의 환경이 과거와 달리 열악해 진 것도 사실입니다. 반기독교 정서가 심해지고 있고 전도에 대한 거부감이 커진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와 못지않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과거처럼 전도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도하는 습관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다시금 전도하는 습관을 키워가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나 혼자만 예수 믿는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나 홀로 신앙”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불신자들을 저대로 내버려 두지 말고 주님께로 인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주변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가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전도하는 습관을 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님의 부탁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현대 복음주의 신학의 대 신학자요 저술가인 제임스 패커 목사님은 현대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중심성”이라고 지적한 바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중심에 자기 자신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 자기가 듣고 싶고 보고 싶은 부분만을 읽는다는 것입니다. 묵상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에게 은혜 되는 구절만 붙잡고 묵상한다는 것입니다. 설교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마음에 드는 부분만 아멘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들을 귀를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가득하게 담겨있는 주님의 부탁을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나 자신을 내려놓고 성경을 읽으면 그 안에 가득한 주님의 부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들을 귀를 열고 성경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 나에게 부탁하시는 주님의 간절한 부탁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특히 성경에서 주님이 가장 간절하게 우리에게 부탁하신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바로 부활 승천하시면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말씀 속에서 그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마 28:19-20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또 막 16:15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그리고 행 1:8-9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사도 바울은 이런 주님의 부탁을 소중하게 들었습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그 부탁을 이루어드리고자 했습니다. 게다가 제자인 디모데에게 주님의 부탁을 잘 지킬 것을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하나님 앞과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 4:1-2)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전도의 부탁을 잊으신 것은 아니십니까? 전도의 사명을 포기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이제 다시 주님의 부탁에 귀를 기울여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간 내게 주시는 천둥 같은 명령으로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전도의 습관은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전도의 부담감을 떨쳐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전도의 습관을 잃어버리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전도를 부담스럽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전도의 부담감이 전도의 습관을 지속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전도에 대해 부담감을 갖는 이유가 이런 것들입니다.

첫째, 전도는 복음으로 설득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전도는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복음을 잘 설명해서 상대방을 납득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도 전도의 중요한 방법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 안드레는 아직 복음이 무엇인지 몰랐고 예수님이 누구신지도 제대로 모를 때 베드로를 예수님께로 인도했습니다. 그저 함께 가보자라고 해서 인도해 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전도는 성경에 대해 잘 몰라도 할 수 있습니다. 복음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어도 할 수 있습니다. 교회 가보자고 예수 믿어 보자고만 해도 되는 것입니다.
둘째, 전도는 결신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전도는 내가 교회로 데리고 와서 등록을 시켜야만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전도의 가장 전형적인 방법이긴 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때로는 씨를 뿌리는 사람이 있고, 또 때로는 추수하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저도 처음 예수 믿을 때 저를 전도하기 위해 3년 간 무던히 애쓰던 친구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제가 교회에 나가게 된 것은 다른 친구의 인도를 받아서 교회에 나갔습니다. 제가 목사가 됐지만 처음에 저를 전도했던 친구는 지금도 제가 교회에 다니는지도 모릅니다. 아마 저를 전도했었던 기억도 하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전도는 우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가 듣던지 듣지 않던지 그것은 그의 몫입니다. 우리는 전하면 되는 것입니다.
전도는 이런 부담감을 떨쳐버릴 때 습관이 될 수 있습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전도에 임하게 될 때 습관이 될 수 있습니다.

전도를 위한 좋은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선진국 문턱에 와있는 성숙한 사회입니다. 그래서 전도 방법도 과거와는 달라져야 합니다. 길거리에서 확성기로 “예수 천당!”을 외치면 혐오감을 줍니다. 마주잡이로 길가는 사람들에게 전도지를 나누어주면 무례한 인상을 줍니다. 아무 집이나 무작정 방문하여 전도하면 저항을 받습니다.
그래서 오늘과 같은 성숙한 사회 속에서 전도는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상대방과 자연스러운 접촉과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통해서 전도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것을 관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해서 ‘관계전도’라고 하고 또 생활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해서 ‘생활전도’라고도 합니다.
이렇게 관계전도 또는 생활전도는 좋은 습관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이런 습관들이 전도를 위한 좋은 습관입니다.
첫째, 평상시 늘 착한 일을 하는 습관입니다.
마 5:16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평소에 착한 일을 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어 전도의 문을 열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교회학교 4학년 아이가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어떤 할아버지가 침울하게 벤치에 앉아 담배만 피우고 있습니다. 다가가서 곁에 앉았습니다. 이 할아버지는 손주가 보고 싶던 차에 이 아이를 다정하게 대해 주면서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다음 날 이 할아버지는 또 그 벤치에 앉아 담배만 피우고 있습니다. 이 아이가 또 다가가 앉습니다. 오늘은 할아버지 드린다고 따뜻한 물을 준비해 왔습니다. “할아버지 담배만 피우시니 목마르시죠 이 물 드세요!” 할아버지는 고마운 마음에 아이의 그네를 밀어주었습니다.
며칠 뒤 이 할아버지는 화가 잔뜩 나서 그 벤치에 앉아 담배만 피워대고 있었습니다. 이 아이가 또 다가갔습니다. 할아버지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세요. 이 할아버지가 뜻밖의 푸념을 늘어놓습니다. “우리 며느리하고 다투고 나왔지 참 속이 많이 상한다.”
이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할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속상하시면 교회를 한 번 가보시죠. 우리 교회 목사님이 참 좋으셔요.” “난 평생 교회라는 곳에 한 번도 가본 일이 없는데 나 같은 사람도 가도 되니” “그럼요. 제가 모시고 갈께요 이번 주일 아침에 저하고 같이 가요”

그렇습니다. 평소에 좋은 관계를 맺어놓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러려면 주변 사람들에게 늘 착한 일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둘째, 전도를 위해 기도하는 습관입니다.
평상시 착한 일을 하며 좋은 관계를 맺은 사람들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들을 축복하는 중보기도를 하되 무엇보다도 저들이 예수 믿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이 기도가 전도의 문을 열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기도가 그 사람들의 마음 문을 열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청년이 은혜 받고 전도에 헌신하기로 했습니다. 가까운 친구들에게 착한 일을 하며 좋은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기회가 생기는 대로 전도했습니다. 고개를 끄떡이면서 받아들이는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 열매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낙심이 되어 선배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았습니다. 그 때 선배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전도 대상자들을 위해 얼마나 기도했지?” 착한 일은 많이 했고 전도하려고 애썼는데 기도는 별로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후에 이 청년이 매일 대상자를 수첩에 적어놓고 기도를 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수첩에 적어놓은 사람의 숫자가 70명입니다. 하나씩 둘씩 전도의 열매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가 하는 행동에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그가 하는 말에도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열매가 거둬지는 것입니다. 드디어 1년 만에 70명 중에 유학을 떠난 사람, 군에 입대한 사람 서너 명을 빼고는 다 예수를 믿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전도는 기도와 함께 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고는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전도는 성령의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할 때 성령께서 그 심령을 움직이십니다. 마음 문을 열게 하시고 결심하게 하시고 따라나서게 하십니다. 그래서 기도가 중요합니다.
셋째, 전도의 기회를 찾는 습관입니다.
전도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전도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기회가 주어집니다. 시도 때도 없이 전도하려고 하는 태도는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주고 착한 일을 해도 진정성을 의심받게 됩니다. 그래서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전도할 마음조차 잃어버리면 이것은 더 큰 문제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전도할 기회가 영영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학시절 병원 성가를 했습니다. 한양대학병원 22층에서부터 6층까지 매주 수요일에 대원들과 함께 찬양을 하게 됐습니다. 의외로 많은 환자들이 복도에서 부르는 그 찬양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또 어떤 환자와 보호자들은 저희들이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찬양만 하지 말고 전도를 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한 형제가 찬양대에서 밖으로 나왔습니다. 찬양대가 찬양하는 사이에 병실을 돌기 시작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매주 찬양하는 동안 1명 이상 기도 요청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분들에게 전도하고 열매를 맺게 됐습니다.
사실 병원 성가를 한 표면적인 이유는 환자들을 위로하고 기도해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자리를 잡게 되었고 병원이 반겨주게 되자 전도의 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저희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전도하려는 사람에게 전도의 문은 열립니다. 그래서 평소에 전도의 기회를 엿보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전도하는 습관을 잃어버리지 마십시오. 주님의 간절한 부탁입니다. 늘 착한 일을 하고, 전도를 위해 기도하고, 전도의 기회를 찾는 습관을 기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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