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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용기】예화 모음 24편

by 【고동엽】 2012. 6. 4.

1. 용기 있는 사람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 있는 생활이 아닌가 합니다. 지식에 용기가 곁들이지 않으면 위선자의 도구가 됩니다. 사랑도 용기가 없게 되면 실천할 힘을 잃어버립니다. 진리도 용기를 갖추지 못하면 꽃을 피울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부정과 불의를 몰라서 입다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그들은 용기가 없을 뿐입니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 박사는 문명쇠퇴의 원인을 그 문명을 지탱시켜 온 인류의 용기가 부족한 점에서 찾고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 희랍, 로마 등 어느 문명이나 한 문명이 쇠퇴한 원인은 국민들의 비겁한 마음과 지도자들의 비겁한 행동에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비겁한 지도자들은 백성들의 소리와 희망을 과감히 받아들일 용기가 결핍되어 있고 오히려 거짓과 도피적 환상과 백성들의 눈을 속이는 얄팍한 잔재주만을 부린다는 것입니다. 용기는 언제나 진실과 사랑을 동반해야 하는 것입니다. 용기가 진실과 사랑을 동반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만행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의 명문 대학 중의 하나인 예일대학을 설립한 엘리후 예일의 비문에는 이런 글이 적혀있습니다. "엘리후 예일은 1649년 미국에서 태어나.. 런던에서 죽었다. 좋은 일도 했었고 나쁜 일도 많이 했었으나 하나님의 자비로 그 영혼이 하늘에 있기를.." 이렇게 솔직 담백한 비문이 적힐 수 있는 것은 그였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가 이런 비문을 원했기 때문에 이렇게 솔직한 내용을 쓸 수 있었고 더 나아가 훌륭한 대학을 설립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용기는 언제나 진실과 사랑을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용기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는 곳에 선교가 있습니다

2. 그 용기 대단하군요

일반적으로 판단할 때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일에 도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대학에 도전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조지 포먼은 권투선수로는 환갑이라는 30을 훨씬 넘은 45세의 나이로 헤비급 챔피언에 오른 역사가 있습니다. '할아버지 복서'라는 별명 속에 묵직한 주먹을 오늘도 날리고 있습니다.
칠순을 넘긴 노부부가 높은 산을 오르는가 하면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강물에 뛰어드는 용감한 시민들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의 용기는 지친 우리의 삶에 용기가 됩니다. 신선한 삶의 청량제가 됩니다. 용기란 앞에서 말한 극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작지만 아름다운 용기도 많습니다. 학교앞 횡단보도에서 아이들을 건네주는 용기, 두 발이 없이 기어다니며 물건을 파는 불쌍한 이웃에게 작은 물질로나마 도와주는 용기, 길가에 버려진 휴지를 쓰레기통에 주어 넣는 작은 용기, 이런 용감한 분들에게 격려해 주세요.
"그 용기 대단하군요."

3. 큰 용기를 준 성경

오래 전 미국 중서부의 한 변호사가 심한 우울증에 빠졌다. 주변 사람들은 이 변호사가 혹시 자살을 한다든지 충동적인 사건을 일으킬지 모르니 칼이나 가위, 예리한 물건을 근처에서 치워야 한다고 말하며 걱정했다. 이 변호사는 당시 상황을 기록하기를 "나는 지금 아주 비참한 상태이다. 더 이상 나아질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라고 했다. 그런데 이 변호사는 성경을 읽다가 큰 용기를 얻고 우울증에서 벗어나 지금까지도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위대한 대통령이 되었다. 바로 에이브러햄 링컨의 이야기다.

4. 지혜와 용기의 여성

성경: 에스더4:14-17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여자에게는 남자보다 뛰어난 지혜가 있습니다. 여자에게 지혜가 모자라면 그 가정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또, 남자들보다 더 큰 용기가 있습니다.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 앞에 나가서 나아만을 가리키며 '저 자가 우리를 죽이려 한다'고 폭로할 때 나아만은 그대로 처형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이나 금을 얻는 것보다 귀하다고 했습니다. 여자는 슬기로워야 합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럴 때 나라를 구원하고 가정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광부 출신으로 위대한 개혁자가 되었는데 그 뒤에는 '카타리나 폰 보라'라는 수녀 출신의 아내가 있었습니다. 이 여자는 수녀원에서 마틴 루터의 종교 개혁 소식을 듣고는 루터의 신앙에 동조하여 수녀원을 뛰쳐나왔습니다. 그 당시는 수도원을 탈출하면 죽음까지 각오해야 하는 시대였습니다. 이 여인은 미모의 여성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오히려 남성미가 흐르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나중에 마틴 루터와 결혼해서 열 여섯 자녀를 낳았습니다. 독일에 흑사병이 유행할 때 그녀는 간호원으로 나가서 죽음을 무릅쓰고 사람들을 간호했습니다. 그녀는 비 이기적이고 비타산적인 지혜와 용기를 가진 아름다운 여인이었습니다. 마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하는데 절대적인 기여를 했던 위대한 여인이었던 것입니다.
* 기도: 우리 가정도 에스더와 같은 믿음의 여인, 한나와 같은 기도의 여인의 지혜와 용기를 배우게 하옵소서.

5. 힘과 용기를 주시는 분

성경: 막16:18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젊은 시절의 고민과 방황으로 삶을 아프게 느끼며 생활하던 한 고등학생이 있었습니다. 어느 가을, 그 날도 쓸쓸히 거리를 걷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그에게 전도지를 건네 주었습니다. 다음 주일, 그는 기찻길을 건너 산꼭대기에 있는 작은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예배 후 목사님께서 그에게 다가와 손을 꼭 잡아 주셨습니다. 그 손길은 너무나도 따뜻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의 손을 잡은 그 학생은 '나도 이분처럼 목사가 되어 따뜻한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예수를 전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삶의 희망을 잃고 쓸쓸하게 걸어가던 이 학생의 뒷모습에서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습니까? 함께 울어 주며 따뜻한 대화를 나눌 이웃은 사라지고 숨가쁘게 밀치고 달려가야 할 경쟁자들만이 득실거리는 세상, 그러나 우리에겐 우리의 가슴을 훈훈하게 해주며 힘과 용기와 능력을 주시는 분이 함께 계십니다. 그분은 바로 날 위해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 기도: 우리의 피난처와 힘이 되신 주님, 가뭄 속에 단비처럼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게 하소서.

6. 진정한 용기

본문: 행 24:16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마음이 비뚤어진 잡화상 주인이 없었더라면 페니는 일개 잡화상 주인이나 되었을 뿐 식료품 연쇄점 주인이자 국내 제일의 상인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페니는 십대의 소년이었을 때 미조리 주 해밀톤 시에 있는 한 잡화상에서 일을 하였다. 그는 그 일을 좋아했고, 그 방면에 경력을 쌓고자 했다. 어느 날 밤, 그는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에게 잡화상 주인의 여우같은 교활함에 대해 신나게 험담을 늘어놓았다. 이 상점주인은 고가의 품질 좋은 커피에 값싼 커피를 섞어 팔아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그는 저녁 식탁 앞에서 이 이야기를 하면서 마구 웃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이런 잡화상 주인의 교활한 짓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조금도 재미있어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에게 묻겠는데, 만일 누군가가 저급상품을 그에게 최상품의 가격으로 속여서 팔아 넘겼고 그 사실을 그 고객이 알게 된다면, 속여 판 이들을 단지 여우같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넘어가겠니?"

 


페니는 아버지가 자기에 대해 실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대답했다. "아니라고 생각해요." 페니의 아버지는 페니에게 이야기했다. "내일 아침 상점에 가서 네가 일한 만큼의 돈을 받은 후, 잡화상 주인에게 더 이상 그를 위해 일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해라"
당시 해밀톤 시에서는 일자리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러나 페니씨는 그의 아들이 차라리 실직이 될지언정 마음이 비뚤어진 사업가와 함께 일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강하고 담대하라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시 31:24)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고전16:13)
"내가 지혜로운 길로 네게 가르쳤으며 정직한 첩경으로 너를 인도하였은즉 다닐 때에 네 걸음이 곤란하지 아니하겠고 달려갈 때 네 걸음이 곤란하지 아니하겠고 달려갈 때에 실족하지 아니하리라"(잠 4:11-12)
* 기도: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불의한 일을 거절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성도되게 하옵소서.
/한태완 목사(가정 예배)

7. 거절할 수 있는 용기

얼마 전에 영국에서 신학 공부를 마치고 갓 돌아온 한 형제의 방문을 받은 일이 있었다. 평소에 나는 그 형제를 존경하고 사랑하고 있는 터라 동역자로 함께 일했으면 좋겠다는 요청을 그에게 했는데 여지없이 거절을 당하고 말았다. 이유인즉 자기는 꼭 강원도 쪽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강원도로 떠나면서 나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해 주었다.
“저는 영국에 공부하러 가기 전에 서울에서 모 신학교를 다녔습니다. 한번은 강원도 산골짜기에 10~20호 정도의 가구가 모여 마을을 이루고 사는 곳에 가서 여러 마을을 전도했는데, 교회도 없고 목회자도 없었습니다. 그때 ‘이들에게는 누가 목회자가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나는 평생 이런 사람들을 위해 헌신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저는 원하는 공부를 마쳤기에 하나님께 한 약속을 지키려고 지금 강원도로 떠납니다.”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잘 가라고 진심으로 격려하면서 그의 거절을 받아들였다. 약속하기는 쉬우나 실행하기는 어렵다. 부인과 자녀들을 데리고 강원도 산골짜기를 찾아가는 그의 용기와 믿음을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거절할 때 거절하는 것은 얼마나 큰 용기이며 믿음인가!
/ 하용조

8. 절망과 힘

가장 절망적일 때 가장 큰 희망이 온다" 라고 하는 제목의 책 한 권이 있습니다. 잭 캔필드와 마크 빅터 한센이 공저로 내놓은 책인데 주제는 소망에 대한 책입니다. 그 책 중에 많은 사람들의 어리석은 생각을 혹은 지혜를 이렇게 모아서 몇 마디로 정리해 놓은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가장 큰 핸디캡은 공포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핸디캡이라고 하면 물리적이거나 경제적이거나 혹은 육체적인 핸디캡을 생각합니다만은 정신적 핸디캡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가장 큰 핸디캡은 용기가 없다는 거예요. 두려워하고 있다. 용기가 없으면 아무 것도 되지 않으니까 말이에요.

9. 진정한 용기는 돈이 아니다

러시아의 문호 투르게네프(Turgenev, 1818-1883)가 아침 산책길에 구걸하는 거지를 보았다. 그 거지는 투르게네프에게서 무언가 얻으려는 간절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면서 가까이 왔다. 순간적으로 투르게네프는 윗저고리 안주머니 깊숙이 손을 넣었다. 거지는 눈을 더욱 빛내며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서서 머리 숙여 절을 했다. 그런데 돈지갑이 없는 것이 아닌가? 당황한 투르게네프는 모든 주머니를 다 뒤져보았으나 지갑은 없었다. 집을 나올 때 윗저고리를 바꾸어 입고 나왔던 것이다. 투르게네프는 아주 미안하고 사랑이 가득 담긴 눈망울로 그 거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형제여! 대단히 미안합니다. 내가 오늘 아침 윗저고리를 바꾸어 입고 나온 것을 깜빡 잊었습니다.”하고 머리를 숙여 사과했다. 그때 이 거지는 “선생님! 저는 오늘 그 어떤 사람이 준 금전보다 더 큰 이루 말할 수 없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라며 몇 번이고 인사를 하였다. 우리가 어떤 이에게 용기와 힘을 주는데 필요한 것은 은과 금이 아니다. 그 이상의 인격적인 감화와 사랑,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10. 분별과 용기

저는 언젠가 '크리스챠니티 투데이'라는 유명한 기독교 잡지에서 독일교회가 왜 히틀러와 그 정권이 독일을 통치하도록 허용해는지에 대해 분석한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글을 쓴 이는 독일 교회가 선악을 분별하는 감각을 잃어버린 데서 그 원인을 찾았습니다. 독일교회가 히틀러의 기만전술에 그렇게 쉽게 넘어가게 된 것은 선악을 분별하는 감각이 무디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히틀러는 권좌에 오르자마자 독실한 그리스도인인 것처럼 위장을 했습니다. 그는 독일 기독교의 전통적인 토대들을 존중한다고 말했으며, 자기정권은 기독교를 도덕성의 기초로 삼아 올바르게 정치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독일교회와 국민들에게 자신이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겸손한 자로 부각되게 하는 데 성공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독일교회가 그의 사탕발림 속에 숨어있는 악을 분별해낼 수만 있었더라면 절대 그 악한 정권이 독일에 뿌리내리지 못하게 했을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 예수 믿는 자들은 정치가들의 말을 바로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치나 사회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면서 잘되기만 바란다거나 비판하기에 급급한 무책임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선을 좇고 악을 대적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어떠한 대가라도 주저않고 감당하려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11. 용기를 주는 사랑

어떤 장로님 한 분이 사업에 실패하여 많은 빚을 안게 되었습니다. 아내와 자식들에게 면목이 없다는 괴로운 마음에 하루는 밤늦게까지 배회하다 통행금지 시간이 다 돼서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내는 집 안팎 불을 환하게 켜놓고 미소로 남편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기도 후 말을 건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당신을 보고 손가락질을 한다 해도 나는 당신의 진실을 믿습니다. 비록 부도가 나서 많은 빚을 졌지만 당신의 진실은 부도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당신이 다시 일어날 것을 확신합니다. 그 옛날 욥이 다시 하나님의 복을 받아 일어난 것처럼 당신도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나와 우리 애들은 변함없이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의 당신을 가장 뜨겁게 사랑합니다.”
장로님은 아내 앞에 목놓아 울고 말았습니다. 그날 이후 다시 용기를 얻어 마침내 사업을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질책이나 원망 대신 따뜻한 말과 사랑은 한없는 용기와 위로와 하나님의 평강을 전해줍니다.
/최병남 목사(대전중앙교회)

12. 수우미양가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서술평가제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등급평가제 재도입이 거론되면서 찬반 의견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간 ‘수우미양가’의 등급평가제가 성적 향상에 기여를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제도는 학생들의 자율적인 자기계발에 장애가 되었고 등급에 의한 억압이 어린 심성에 상처를 남긴다는 생각에서 폐기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소위 등급평가제의 낙인을 받은 이 ‘수우미양가’에서도 선인들의 슬기와 재치를 엿볼 수 있습니다. ‘수’(秀)는 빼어나게 잘했다는 뜻입니다. ‘우’(優)는 넉넉하다는 뜻입니다. ‘미’(美)는 아름답다,좋다는 뜻입니다. ‘양’(良)은 어질다,양호하다는 뜻입니다. 모두 잘했다,좋다,괜찮다는 뜻입니다. 심지어 맨 끝인 ‘가’(可) 역시 옳다, 가능하다는 뜻으로 용기와 희망을 주는 칭찬의 말입니다.
바울은 주께서 죄인의 괴수인 자기에 대해 오래 참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가능성을 보고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격려와 용기와 희망은 제자의 길을 가는 신앙인의 언어입니다.
/임종수 목사(큰나무교회)

 


13. 용기를 내어라

꿈과 용기가 있는 사람은 결코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습니다. 에드먼드 힐러리라는 한 영국 청년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 산을 등정하려고 했으나 그만 그 일이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용기를 내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에베레스트 산이여, 너는 자라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자랄 것이다. 나의 힘도 능력도 자랄 것이다. 또 내가 구비한 장비도 더 나아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돌아오겠다. 기다려라. 나는 다시 산에 오를 것이다.' 이 말을 한 에드먼드 힐러리는 10년 후인 1953년 5월 29일, 에베레스트 산 등정에 재도전하여 그 산을 마침내 정복했습니다. 도전 정신과 용기만 있다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이루어갈 수 있습니다. 마음속에서 용기가 자라나도록 해야 합니다. 도전하는 용기가 있는 사람들이 삶을 멋지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용혜원 목사

14. 용기 있는 믿음

프러시아의 프레데릭 대왕은 그리스도와 교회를 비웃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충성스러운 신하 본진랜드 장군은 성실한 크리스천이었다. 하루는 신하들과 같이 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대왕의 천한 야유가 시작되었다. 그리스도 예수를 비웃는 말이었다. 그래서 온 장내는 그런 분위기로 되어가고 있었다. 이 때에 엄숙한 표정을 한 본진랜드 장군이 자리에서 일어나 대왕을 똑바로 바라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왕폐하! 대왕께서는 내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다는 것을 잘 아십니다. 그래서 나는 전쟁터에서 대왕을 위하여 38번 싸워서 이긴 것입니다. 저는 이제 나이 많은 늙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나는 머지 않아 지금 대왕이 웃으시는 나의 구주 그리스도를 만나 뵈러 가게 됩니다. 나이 많아 영원을 바라보는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대왕보다 더욱 위대한 분인 것을 압니다. 폐하, 소신은 이제 물러가려 합니다." 이 엄청난 태도와 말에 온 장내는 두려움에 떨게 되었다. 장군을 즉시 처형하라는 추상같은 대왕의 명령이 떨어질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대왕의 떨리는 음성이 다음과 같이 들려왔다 .
"본질랜드 장군! 내가 잘못했소. 나를 용서하시오!" 우리는 조만 간에 꼭 주님을 만나 뵙는 날이 있음을 기억하고 항상 담대하고 용기 있게 믿음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15. 용기의 힘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대왕에게 키도 크고 털 색깔도 좋은 훌륭한 명마가 선물로 들어왔다. 그러나 그 말은 길들여지지 않은 것처럼 매우 거칠게 뒷발질을 했다. 여러 무관들이 애를 써봤으나 결국 말을 다루는 데 실패했다. 아무도 그 말에 오르려 하는 자가 없다는 것을 본 왕자 알렉산더는 “아버지 제가 한 번 타 보겠습니다”라며 말에게 다가갔다. 그는 말고삐를 잡아 서쪽을 향하던 말을 동쪽으로 돌려 그림자가 뒤로 가게 했다. 말은 어느 새 명마다운 자태를 갖췄다. 왕자의 지혜와 담대함에 모든 사람은 감탄했다. 용기있는 알렉산더는 약관 20세에 대왕에 즉위하여 대군을 거느리고 마케도니아 대제국을 이룩했다.
우리 주위에는 지혜롭고 착한 성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큰일을 해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정확한 사리판단을 행동으로 옮길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분명한 뜻을 품고 있다면 여호수아의 담대함을 가져야 한다.
/장학일 목사(예수마을교회)

16. 부족함을 고백하는 용기

어떤 회사에서 사원 모집광고를 내자 70명이 넘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시험장에는 한 사람씩만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그런데 그 안에는 그저 사방에 큰 거울이 하나씩 걸려있을 뿐이었다.지원자들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각 거울 위에 적힌 질문에 맞으면 ‘예’, 아니면 ‘아니오’라고 답안지에 적는 것이 시험이었다. 질문은 이러했다. 첫 번째는 “이 사람은 정직합니까?” 두 번째는 “이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입니까?” 셋째는 “이 사람은 과연 신뢰할 수 있는 사람입니까?” 네 번째는 “만일 당신이라면 이 사람을 채용하겠습니까?”였다. 이것이 그 시험문제의 전부였다. 시험을 치른 사람들은 모두 이상하게 여겼지만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신 있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얼마 후 드디어 합격자 발표가 있는 날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70명 가운데 한 사람만이 합격의 기쁨을 맛보았다. 그는 모든 질문에 “아니오”라고 대답한 사람이었다. 그 회사는 정직한 사람, 즉 자기의 부족함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고백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을 원했던 것이다.
/박상훈 목사

17. 용기있는 구혼자

와세다 대학의 '아베 이소오'고수는 도쿄에 있는 한국 학생들의 초청을 받아 강연회를 하던 중, '사랑은 모든 것을 가능케 한다.'는 말을 자신의 경험으로 표현했다. 자기가 전차로 통학하던 고등학교 2학년 때, 전차에 오리기만 하면 책을 펴들고 곁눈질 한 번 하는 일이 없이 책에만 정신을 쏟곤하는 얌전하게 생긴 여학생을 보고 마음이 끌리기 시작했다. 용모와 태도를 보아 양반집 딸임에는 틀림이 없고 장차 훌륭한 사람의 아내가 되기에 충분한 여인이라고 생각한 아베는, 어느 날 여학생이 내리는 정류장에서 따라 내렸다. 그리고 여자 몰래 뒤를 따라가 그의 집과 주소를 확인하고는 문패의 이름으로 편지를 했다. 내용은 "자기를 사위로 삼아 달라"는 구혼의 편지였다. 당돌한 남학생의 편지를 받은 여학생의 부친은 좌우간 한 번 찾아오라고 답장을 냈다. 회답을 받은 아베는 즉시 그 집을 찾아가 인사를 드리고는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학교의 성적을 묻는 말에, 서슴치않고 첫째하고 대답을 햇다. 후일, 다시 부르면 오라는 말에 아베는 그 집을 나왔는데, 여학생의 부친이 학교에 전화하여 그의 성적을 알아본 결과 첫째가 아니라 꼴지였다. 화가 난 여학생의 부친은 그를 다시 오라고 하고는 "성적이 꼴찌면서 첫째라고 거짓말하는 학생놈은 다시는 내 집에 올 생각을 하지 말라"고 호령하는 통에 대답 한 마디 못하고 물러났다. 마음이 상한 아베는 '그러나 사랑스런 저 학생은 반드시 내 아내로 만들어야 한다'고 결심하고는 열심히 공부한 결과 3학년 말에는 1등을 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찾아가 전일에 거짓말했던 것을 사과하고 첫째가 된 것을 보고했다. 1년이 되도록 한 번도 찾아오지 않던 학생이 다시 찾아와서는 정중하게 말하는 것을 듣고 여학생의 부친은 학교로 다시 확인하여 보았더니 1등이 분명했다. 기특하게 생각한 부친은 날짜를 잡아 약혼식을 올리고 얼마 후 결혼을 하도록 허락하였다고 말하고는, 단상 오른편에 앉아 있는 자기의 부인을 가리키며 "그렇게 예쁘고 얌전했던 처녀가 지금은 저렇게 늙었답니다."하여 청중의 박수 갈채를 받았다고 한다. 사랑하는 마음이 그를 분발케 하였고 성공할 수 있게 하였던 것이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요일4:18)

18. 처칠의 좌우명

위기에 직면하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피하여 삶에서 도망치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사노라면 몇 번인가 우리는 이런 위기와 대면하게 됩니다. 윈스턴 처칠은 "위기에 처했을 때 도망치지 말라"는 말을 좌우명으로 삼고 일생을 살았다고 합니다.
"위기가 닥쳐올 때 절대로 뒤로 도망쳐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위험은 두 배가 되는 법이다. 반대로 단호하게 거기에 맞서면 위기는 반감된다. 결코 도망쳐서는 안 된다. 절대로 도망치지 말라." 그는 늘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원치 않는 삶의 위기가 찾아와 도적처럼 내 삶을 훔치려 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굳건히 자신의 삶을 지키는 용기가 아닐까요?
< 오인숙 / 교단작가>

19. 이발사의 용기

어느 날 장군이 이발소에 들어와 이발을 하려고 하면서 하는 말이 "누구든지 내 머리를 깎다가, 혹은 면도할 때에 상처를 내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 장군의 머리를 깎기를 싫어했다. 그러나 청년 이발사는 "제가 장군님의 머리를 깎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상처 없이 잘 깎아 주었다. 그 장군은 기특하여 "내가 위협할 때에 너는 두렵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청년은 천연덕스럽게 대답하였다.
"무엇이 두려워요. 만약에 장군님의 얼굴에 상처를 입히게 되면 제가 먼저 장군님을 이 면도칼로 찔러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 참조: 잠28:1, 수1:9, 요16:33, 고후4:7-9

20. 신앙의 용기

일제 때 가장 고난당한 부류는 아마도 기독교인들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기독교인들은 신앙적 이유 때문에 대부분 고난을 받았다. 어느 노 신앙인도 신앙적 이유 때문에 상당한 아픔을 당했다. 매일 신사참배 강요를 감당해낼 수가 없었다. 그 노인은 신경통으로 무릎관절을 심하게 앓고 있었다.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하면 감옥에 가야 한다. 엄동에 감옥에 가면 신경통이 악화되어서 병신이 될지 모른다. 그리고 평생 걷지도 못 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고민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심각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그런 기도에 시원하게 응답이 주어질리 없다. 생각끝에 노인은 단호하게 신사참배를 거부했다. 그리고 감옥에 갔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용기있게 감옥행을 결심한 것이다. 그해 추운 겨울을 감옥에서지냈다. 우려했던 무릎은 아무 염려가 없었다. 그리고 곧 이어 기적이 일어났다. 좋다던 약을 써도 낫지 않던 신경통이 감옥에서 겨울을 나는 동안 말끔이 나아버린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죽으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고 했다.
/이정익 목사(신촌성결교회)

21. 낙스의 용기

존 낙스는 왕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악행을 저질렀다고 설교한 것 때문에 왕 앞에 끌려왔다. 왕이 그에게 말했다.
"자네는 자네가 지껄인 것들을 아직도 철회하지 않겠는가?"
그러자 낙스가 대답했다.
"마음이 그것을 생각했습니다. 입이 말했고 손이 그것을 썼습니다. 만일 그것으로도 모자란다면 하나님의 은총을 힘입어 피로 그것을 증거하겠습니다."
* 참조: 요16:33, 행4:12, 14:3, 히4:16

22. 목사와 공장감독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고 있었을 때다. 미국에서는 전쟁에 쓰이는 물건을 만드느라 공장에서는 밤낮 없이 바쁘게 일을 하였다. 주일에도 일을 멈추지 않았다. 항구에 들어온 군수품을 나르기 위하여 철도청에서는 많은 일손이 필요하게 되었다. 목사들에게까지도 자신의 교회가 속한 지역에서 군수품 나르는 일을 하도록 명령이 내려졌다. 오만하고 신앙이 없는 어떤 감독은 그런 일을 하고 있는 목사들에게 통쾌한 감정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목사들을 종종 괴롭히기까지 하였다.
하루는 그 오만한 감독이 한 목사에게 주일에도 나와서 작업을 하라고 강요하였다. 목사가 주일에 예배드리고 안식을 취하느라고 나라에 대한 애국심을 저버리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고 감독이 목사에게 말하였다. 그러자 목사는 주저함 없이 자신의 본분으로서 주일을 어길 수 없다고 감독에게 강력하게 항의하였다. 그러자 감독은 목사에게 자신의 말을 안 들으면 더 힘든 일을 시킬 거라고 협박했으며 그래도 목사가 완강히 거부하자 해고시키겠다고 위협하였다.

 


그때에 이 두 사람의 대화를 우연히 지나다가 듣게 된 장관이 두 사람에게 와서 목사로서의 신분과 책임을 용기 있고도 확실하게 주장하는 목사에게 매우 감탄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라를 지키는 것만큼, 우리를 위대하게 만든 기독교 전통을 지키는 것도 옳은 일이며 그 일을 지키기 위해 우리들 중에 누군가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장관은 말하였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런 용기와 양심을 저버리고 있지 않는가?
* 참조: 벧전3:16-21, 롬9:1,2, 고후2:14, 계2:10, 딛2:10

23. 지도자와 용기

두 고등학교의 농구팀이 서로 열전을 벌이고 있었다. 전반전 마지막 무렵 방어를 하고 있던 팀의 한 선수가 공을 슬쩍 빼앗아 안전한 레이업 슛을 하려고 공을 몰고 가고 있었다. 그 선수가 슛을 하려는 순간 상대팀의 한 선수가 그 선수를 잡아당겨 내동댕이쳤다. 심판은 이 심한 반칙행위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경기는 그냥 계속되었다. 그런데 그때 반칙한 선수팀의 감독이 그것을 보고 그 선수를 불러내어 “그런 반칙은 받아들여질 수 없다”라며 그 선수를 다른 선수와 교체했다.
우리 사회에는 이런 용기 있고 정의로운 지도자가 필요하다. 용기있는 사람만이 군중 앞에서 자기편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 잘못을 시정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공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라볼지니라”(호세아 12:6)
/이영무 목사(영신교회)/국민일보

24. 할아버지의 컵라면

얼마 전 학원 앞 공중전화 부스에서 전화를 걸다가 지저분한 파카를 입고 있는 할아버지 한 분을 보았다. 할아버지는 사발면 두 개가 든 비닐 봉지를 들고 있었다. 겁이 많은 나는 얼른 할아버지를 피해 학원으로 들어갔다. 한 이십 분쯤 지났을까. 친구와 커피를 마시려고 다시 밖으로 나갔더니 학원 앞 병원 계단에서 조금 전에 보았던 할아버지가 사발면을 드시고 계셨다. 그날은 몹시 추운 날이었는데 할아버지가 너무 안돼 보였다. 그때 한 젊은 아저씨가 씩씩거리며 할아버지에게로 다가갔다. 아마도 병원 건물을 관리하는 사람인 듯했다. 그런데 그 아저씨는 라면을 먹고 있는 할아버지를 발로 차며 "야,저리로 가. 저리로 가란 말야" 하고 야단을 치는 것이 아닌가. 아저씨의 발길질에 밀려 라면국물이 조금씩 바닥으로 흐르고 있었다. 생각 같아선 그 아저씨에게 왜 그러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비겁하게도 나에게는 그럴 용기가 없었다. 강의실에 들어와서도 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자꾸만 눈물이 나왔다. 잘못된 것을 보고도 대항하지 못한 내 자신이 싫었고 그런 마음가짐으로 대학을 가겠다고 영어 단어와 수학 공식을 외우고 있는 현실이 싫었다. 기어이 나는 수업을 마치기도 전에 가방을 챙겨 학원을 나왔다. 그런데 아까 그 할아버지가 앉아 계시던 계단에는 미처 다 먹지 못한 사발면 그릇이 엎어져 있었다. 난 과연 무엇을 위해 배우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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