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왜 무디를 쓰셨는가? (2) 시62:11 출처보기
◑5. 그는 돈에 욕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무디 선생은 거부가 될 만한 기회가 많이 있었으나, 돈에 대하여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는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돈을 수집하는데 애를 썼으나
자신을 위하여 축재하는 것은 거절하였다.
▶<시카고 세계 박람회> 때 그는 나에게 말하기를
만일 그가 자신을 위해서 당시에 출판한 찬송가책의 인지세를 받았다면
아마도 그 때 돈으로 백만 달러를 벌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무디는 돈 만지기를 거절했다. 그는 그 돈을 차지할 정당한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 찬송가의 출판을 위하여 투자된 돈은 그의 차지할 권리였다.
생키(찬양사역자)가 무디 선생과 함께 영국에 갔을 때, 그 찬송가를 발행하고자 하였다.
그가 출판사에 가서 출판을 의뢰하였으나
최근 찬송가 출판에 실패한 필립 출판사의 전례 때문에 거절당하고 말았다.
할 수 없이 무디는 자기의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자비 출판의 초라한 책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책이 나오자 엄청나게 팔려 새로이 장정을 갖추어 재출판하게 되었고
큰 이익이 들어오게 되었다.
이 막대한 이익금이 무디에게 들어왔으나, 그는 그것에 손대기를 거절하였다.
"그러나 이 돈은 당신의 것입니다!"하고 받기를 재촉했으나, 그는 그것에 손대기를 거절하였다.
플레밍 레벨은 그 당시 시카고 애버뉴 교회의 회계였는데
그 교회는 ‘무디 장막’이라는 말로 알려진 교회였다.
이 새 교회당 건물이 기초만 완성하고는 돈이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레벨씨는 이 찬송가에 대한 소식을 듣고, 런던에 있는 친구들에게 편지로써
이 교회당 완성을 위하여 그 돈을 보내줄 것을 요청하여 얻게 됨으로써
이 건물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후에도 거액의 금액이 무디의 손에 들어왔으나
그 돈도 기독교 각종 사업을 위하여 쓰게 하였다.
▶무디 선생 만년에, 나는 그와 함께 어떤 도시에 가서 집회를 인도한 적이 있었는데
그 집회에서 무디 선생은 헌금을 거두지 않는다고 광고되었다.
사실 무디 선생은 각종 집회에서 얼마간의 사례를 받았어야 했지만
이렇게 광고하였으므로, 무디는 아무 말도 않고 여관비까지 자비 부담하고
힘든 집회를 마치고 그 도시를 떠나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도시의 어떤 목사가 가지고 온 신문 기사를 읽어보니
내가 개인적으로 알기에 전혀 사실무근한 이야기가 실려 있었는데
무디 선생이 그들에게 거액의 헌금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수백만 달러의 돈이 무디 선생의 손을 거쳐 갔다.
그러나 그 돈은 그를 거쳐 갔을 뿐이고, 그의 손에 붙어 있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많은 부흥사들이 실패하고 종말을 고하는 이유이다.
▶어떤 다른 이유보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곧 이 시대의 많은 부흥사로
그들의 사역을 불명예스럽게 하여 그들로 암초에 부딪치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최근 나는 여행 중 동부지방 도시 연합부흥회의 한 신실한 목사로부터 들은 말이 있다.
내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이 부흥사가
53개 교회의 지지를 얻어 연합집회를 인도하기 위하여 이 도시에 도착했다.
(나에게 이 사실을 말해준 목사는 이 연합집회의 재정위원장이었다.)
그런데 이 부흥사가, 전에 합의한 사례 약속을 깨뜨리고
많은 금액의 보수를 요구하므로, 그 목사는 자기의 재정위원장직을 사임하고자 했으나
추문을 피하기 위하여 그냥 있었다고 한다.
그 목사는 "3주일간의 집회 결과는 겨우 24명의 결신자밖에 얻지 못했고..
집회가 끝난 후 목사들이 모여서, 한 사람의 이의를 제외하고는 모두 합의하기를
먼저 그 부흥사에게 서신을 보내어
그들의 부흥사에 대한 의견과, 부흥 집회의 방법 등에 대하여 의견을 말하기로 하였고,
또한 다른 도시 교회에도 편지하여, 이 부흥사의 집회 방법과 집회 결과를 알려서
집회를 청하지 말도록 통지하기로 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우리는 이 같은 교훈을 마음에 두어 크게 경계해야 할 것으로 안다.
◑6. 그는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는데 불붙는 정열의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 무디를 쓰신 여섯째 이유는
그의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고자 하는 불붙는 열심에 있었다.
그는 구원 얻고 즉시 결심하기를, 하루 24시간을 지나는 동안
적어도 한 사람 이상의 영혼에 대하여 복음을 증거 하지 않고는 자지 않기로 작정했다.
그는 일이 너무도 바빠서 어떤 때는 그의 결심을 잘 때까지 잊는 때도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다시 입고 밖으로 나가 사람을 붙들고 말하기를
인간 영혼의 요구가 무엇이며, 또한 이를 만족케 하시는 구주에 대하여 확실히 말해주지 않고는
하루도 그냥 지낼 수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말을 하는 것이었다.
▶전도 일화1.
어느 날 저녁 무디 선생은 자기 사무실로부터 집으로 가고 있었다.
매우 늦은 시간이었으나, 그는 갑자기
그 날 한 사람도 그리스도를 받아드리도록 전도하지 못한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에게 말하기를 "하루를 잃어버리는구나.
오늘은 한 사람도 전도하지 못했으니 이 늦은 시간에 누굴 만나서 복음을 전할까?"
그래서 거리로 나가서, 그 늦은 시간에, 길에 지나가는 행인 A를 붙잡고 전도했다.
그러자 그 행인 A의 반응이
"내가 크리스천이건 아니건.. 당신이 무슨 상관이오.
만일 당신이 전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당신의 그 무례한 짓을 그냥 두지 않고
저 시궁창에 차 넣었을 것이오."하였다.
그러나 무디 선생은 몇 마디 간절한 말씀을 더 하고 지나갔다.
그 다음 날 그 행인A는, 무디 선생의 가까운 친구인 기업인 B의 사무실로 찾아왔다.
보니까, 거기에 무디도 (우연의 일치로) 찾아와서 앉아 있는 것이다.
행인 A는, 기업인 B에게 소근거리며 말하기를
"당신의 친구 저 무디는, 정말 선한 사람이라기보다 해를 끼치는 사람이오.
그는 무지한 열심장이오. 어제 늦은 밤에 글쎄 일면식도 없는 나에게 가까이 와서
모욕을 하지 않겠소. 그가 나더러 말하기를 ‘당신이 신자냐?’고 묻기에
‘내가 신자건 아니건 웬 참견이오. 만일 당신이 전도자가 아니라면
벌써 그 무례한 말로 인하여 저 시궁창에 들어갔을 것이요’라고 말했지요.
저 사람은 선하기보다는, 해로운 일을 하는 사람이오. 그는 무지한 열심장이란 말이오."하는 것이었다.
무디의 친구, 유명한 기업인 B는, 그 A를 돌려보낸 다음 말하기를
"무디 선생, 당신은 좋은 일보다 해로운 일을 하고 있고
경우 없이 열심을 내고 있는 것 같소.
어젯밤 길거리에서 당신은 내 친구 한사람에게 모욕을 주었소.
당신은 일면식도 없는 그에게 가까이 가서 묻기를 신자냐고 하였고
그는 나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전도자가 아니었다면 무례한 말 때문에
시궁창에 차 넣었으리라고 합디다.
당신은 좋은 일보다 해로운 일을 하고 있고, 너무 경우 없이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이오."하였다.
무디 선생은 그 기업인 B의 사무실에서 힘없이 나왔다.
그는 생각하기를 ‘정말 내가 유익하기보다는, 해로운 일을 하고 있고
나는 정말 지혜 없이 열심만 내고 있는가?’ 의심하였다.
(지혜 없이 열심을 내는 것이, 열심 없이 지혜로운 편보다는 낫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많은 지식으로 가득 차 있어서 성경 진리에 능하여
설교자들을 비평하거나 교훈할 수는 있으나, 그러나 그들은 일 년에 한 사람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열심이 없다는 것은 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가.)
그 일이 있은지, 수 주일이 지났다. 어느 날 밤 무디 선생이 잠자리에 누웠을 때
현관문을 세차게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무디는 즉시 일어나 문으로 가 보았다.
그는 생각하기를 필시 집에 불이 나서, 문을 부수고 있는 것으로 짐작했다.
그가 문을 열자, 거기에는 그날 밤 그 행인 A가 문밖에 서있었다.
그는 "무디 선생, 나는 그날 밤 가로등 아래서 당신에게 복음을 들은 이후로
도저히 밤잠을 잘 수가 없었소. 그래서 이 깊은 밤에 당신을 찾아온 것이오.
내가 무엇을 하여야 구원을 얻을 수 있는지 말해주시오." 하는 것이었다.
무디 선생은 그를 안으로 불러들여 구원 얻으려면 어떻게 할 것을 말해주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리스도를 영접했고 그 후 남북전쟁이 벌어지자,
그는 일선에 나가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게 되었던 것이다.
(만약 무디의 전도를 받지 않았으면, 구원 받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라는 뜻)
▶전도 일화2.
또 다른 날 밤 무디 선생이 집에 돌아와 자리에 눕고자 할 때
그 날도 한 사람의 영혼을 위해 전도하지 못한 일이 생각났다.
"그래. 지금 일어나 거리에 나가봤자, 이 깊은 밤에 사람을 만나지는 못할 것이다."
하면서도 일어나 옷을 다시 주워 입고 현관으로 나갔다.
밖에는 소낙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오! 이 같이 비가 쏟아지는 데 누가 길을 가겠나."하고 있을 때
그는 우산을 받고 내려오는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듣게 되었다.
무디는 급히 뛰쳐나가 그 사람에게 달려가 말했다.
"당신 우산을 좀 함께 쓰고 갈 수 있겠습니까?" "네, 그리하십시오."
우산을 함께 쓰고 가면서 무디 선생은
"폭풍이 일어날 때 피할 수 있는 피난처를 당신은 가지고 계십니까?"로 시작하여
예수를 그에게 증거했다.
여러분! 우리가 만일 이 같은 영혼 구원에 대한 열심이 있다면
얼마 안가서 이 나라는 하나님이 보내시는 부흥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흔들어 버리실 것이다.
▶전도 일화3.
어느 날 시카고에서 (그 날은 해리슨 시장이 저격을 당한 이튿날로
그의 시신이 시청 안에 안치되어 있었다) 무디 선생과 나는 전차를 타고
랜돌프 시가를 향하여 시청 왼쪽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마침 해리슨 시장의 시체를 보기 위해 모인 군중 때문에 전차가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전차가 빠져나가려고 애쓰는 것을 보고 무디 선생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토레이, 웬일이오?"
"웬일이라니‥‥ 해리슨 시장의 시체가 시청 안에 있어
그것을 보려는 군중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니오."
"이 많은 사람들로 복음을 듣지 못하고 여기를 떠나게 할 수는 없소.
자 우리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합시다. 사거 훌레이 극장 (시청 바로 맞은편에 있었음)
을 하루 동안만 빌리시오."
나는 무디의 말대로 그렇게 했다.
집회는 아침 9시부터 시작되어 하나의 집회로 저녁 6시까지 청중에게 설교하였다.
무디 선생은 하나님을 위한 불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만 힘써 일하는 사람일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자기처럼 일하게 하였다.
그는 한 번 나에게 노스필드로 내려와서
한 달 동안 학교 순회 집회를 하라는 청탁을 한 일이 있었는데
이 학교에서 설교하고는, 강 건너 또 다른 학교에서도 설교해야 했었다.
나는 자주 나룻배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는 아직 현재의 다리가 놓여지기 전이었다.)
어느 날 그는 나에게 말하기를
"토레이, 자네를 나룻배로 날라 주는 저 뱃사공이 아직 거듭나지 못한 사람인 것을 알고 있나?"
그는 나에게 말씀을 전하라고 하지 않았으나, 나는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었다.
며칠 후 그 뱃사공이 구원 얻게 됨을 알리니, 그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전도 일화4.
한 번은 무디 선생이 시카고의 어느 거리를 걸어가다가
일면식도 없는 어떤 사람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말했다.
"댁은 크리스천인지요?"
"당신 일이나 보시오."하는 대답이 왔다.
무디는 말하기를 "이것이 바로 내 일이오."하니
"그럼 당신이 (아마) 무디일 것이오."했다고 한다.
시카고에서는 한때 ‘광인 무디’란 말이 돌았는데
이는 그가 낮이나 밤이나 누구에게든지 만나기만 하면
그 사람의 구원 여부를 묻는 말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전도 일화5.
한 번은 그가 밀워키로 가고 있을 때
그가 잡아 놓은 좌석을 다른 사람이 차지한 때가 있었다.
무디 선생은 그의 옆에 걸터앉아서 곧 그와 더불어 말하기를 시작했다.
"어디로 가십니까?"하니 가는 도시 이름을 알게 되었다.
"아 그러면 곧 그 역에 도착할 것이니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 곧 일을 해야겠소.
당신은 구원을 얻었습니까?"하였다.
그는 구원 얻지 못하였다고 하자 무디는 그의 성경을 펴서
열차가 가는 도중 구원의 도리를 찾아 읽어 주었다.
그리고는 말하기를 "그리스도를 영접하십시오."하였다.
그 사람은 그리하였음으로 열차 속에서 구원을 얻게 되었다.
▶전도 일화6.
대개 여러분이 들었을 줄 아나, 대통령 윌슨이 무디에 대하여 말한 이야기가 있다.
윌슨 대통령은 그가 한번은 이발소에 갔었는데,
바로 그 때 그의 의자 옆에 무디가 앉아 있었다고 하며
이를 그는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한다.
얼마 안 되어 윌슨 대통령은
"옆 의자에 앉은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닌 사람으로 알게 되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는데
무디가 이발사에게 생명의 도리를 말하고 있었으며
"내가 근래에 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무디가 떠난 후 윌슨이 이발사에게 그가 누구냐고 물으니, 이발사는 무디라고 하였고
윌슨 대통령은 "나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겨 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전도 일화7.
어느 날 시카고에서 무디 선생이, 어린 소녀 하나가 그 손에 양동이를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 소녀에게 걸어가서, 주일 학교에 나오라고 권하면서 얼마나 즐거운 곳인지 말해주었다.
그녀는 다음 주일 출석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오지 않았다.
무디 선생은 수 주일을 그녀를 찾다가, 어느 날 거리에서 그 소녀를 만나게 되었다.
무디가 그 소녀에게 가까이 가자, 그 아이는 도망치기 시작했다.
무디 선생은 그의 집까지 쫓아가서,
자기 침대 아래에 숨은 그 아이를 불러내어,
그녀를 그리스도께 인도하였다.
그는 그녀의 모친이 과부인 것과, 전에는 퍽 잘 살았으나
지금은 가난해져서 술집을 경영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과부는 많은 자녀가 있었는데
무디 선생은 그 과부와, 그 자녀들도 그리스도에게 인도했다.
그 여러 자녀들은 이사 가기까지 무디 교회의 유력한 일꾼들이었고
그 후 여러 곳의 교회에서 크게 봉사했다.
이 침대 밑에서 이끌어 내어 구원 얻게 한 특별한 소녀는
내(R. A. 토레이)가 무디 교회 목회자로 일할 때
내 교회 직원 중 가장 유력한 직원의 부인이었다.
2~3년 전 내가 테네시주 멤피스시 정거장에서 기차표를 사가지고 나오니
어떤 잘생긴 청년 하나가 나를 따라오더니 이렇게 물었다.
"토레이 박사가 아니십니까?" "그렇소."
그는 나에게 ‘저는 이렇고 이런 사람입니다’하였는데
그 청년이 바로 그 부인(그 소녀)의 아들이었다.
그는 그 때 여행가였는데 그가 사는 고장 교회의 간부였다.
무디 선생이 침대 밑에서 끌어내어 구원 얻게 한 그 소녀 전도는
결국 온 가문을 하나님의 나라로 이끌어 들인 셈이 되는 것이며
그 후대 자손들을 통하여, 무디는 계속 오고 오는 많은 사람을
하나님의 나라로 이끌어 들인 셈이 되는 것이다.
▶D. L. 무디의 영혼들을 위한 불타는 정열은
그의 일을 여기저기서 도울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영혼을 사랑하는 사랑은, 신분차별적 제한을 몰랐다.
그는 사람의 존경을 바라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장관이건 양반이건 혹은 그가 거리의 무식한 흑인 소년이건
그에게는 꼭 같은 사람이었으니 구원 얻어야 할 영혼들이었고
그는 그들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그의 정력을 다했던 것이다.
한 번은 나의 친구 한 사람이, 무디 선생의 이야기를 말해준 일이 있다.
무디 선생이 어떤 무허가 판자집에 앉아 흑인 소년을 무릎 위에 앉히고
한 손에는 촛대를, 그리고 또 한 손에는 성경책을 가지고
성경 구절들을 또박 또박 읽어주며, 그 무식한 흑인 소년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는 아직 흑백 차별이 만연했을 때)
여러분, 만일 당신과 제가 영혼들에 대하여 이 같은 불이 붙었더라면
우리가 부흥을 왜 오래 기다릴 것인가? 생각해 보라!
오늘밤 하나님의 불이 떨어져 우리의 영혼을 채워 주신다면 타오르는 불길은
우리로 전국에 퍼지게 하고 태평양을 건너 중국, 일본, 한국, 인도,
그리고 아프리카의 잃어버린 영혼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게 할 것이다.
◑7. 그는 명확히 위로부터 능력의 충만을 받았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왜 D. L. 무디를 쓰셨는가 하는 일곱째 비밀은
그가 매우 명확하게 위로부터 능력의 부음을 받은 일,
곧 가장 명료하고 분명하게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다.
▶무디 선생은 그가 성령으로 세례 받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이를 의심치 않았다.
그는 초기에도 대단한 정력가였다. 그는 무엇인가 하고자 굉장한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참 권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는 그의 육체적 정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주의 일에 힘썼다.
그런데 그가 인도하는 YMCA 집회에 계속 나오는 겸비한 두 감리교 부인이 있었는데
아운티쿡과 스노우 부인이었다.
이 두 부인이 무디 선생의 집회가 끝나자 그에게 말하기를
"우리는 당신 위해서 기도합니다."하였다.
무디 선생은 이 말에 찔려 드디어 어느 날 밤 두 부인에게 말하기를
"왜 당신들이 나를 위해 기도합니까? 왜 구원 얻지 못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지 않고..."하였다.
그들은 대답하기를 "우리는 당신이 성령의 권능을 받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하였다.
무디는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 부인들에게 가서 "당신들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명확히 가르쳐 달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에게 명확한 성령의 세례에 대하여 알려 주었다.
그러자 그는 자기와 함께 이 일 위해 힘써 기도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아운티쿡 여사는 그 후 나에게,
무디가 이 일을 위하여 얼마나 강렬히 열정적으로 기도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그녀는 내가 결코 잊을 수 없는 말로써 내게 말하였으나
나는 그녀의 말을 도저히 다시 표현할 수가 없다.
그는 그 부인들과만 기도하지 않았다. 그는 혼자서도 기도했다.
▶얼마 안 되어서 영국으로 가려던 어느 날 그가 뉴욕시의 월가를 거닐고 있을 때
복잡한 거리 한복판에서 그의 기도는 응답을 받았다.
하나님의 권능은 그가 거리를 거닐고 있을 때 그의 위에 임하셨다.
그러므로 그는 즉시 한 친구의 집을 찾아가 혼자 있을 방을 청하여
그 방에서 여러 시간을 지냈다.
성령께서는 그에게 오셔서 그의 영혼을 놀라운 기쁨으로 채워 주셨으니
그 즐거움으로 말미암아 그는 죽을 것 같아서
하나님께 ‘이제 그만 주시도록’ 간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성령의 권능에 충만하여 그곳에서 나와 런던에 이르자
하나님의 권능은 그를 통하여 북쪽 런던 지방을 능력 있게 역사하였고
수백 명씩 교회가 부흥하게 되었는데
이는 그가 청함을 받아 인도한 집회 중 가장 놀라운 집회였다.
무디 선생은 여러 번 나에게
"토레이 박사, 나는 당신이 성령의 세례에 대하여 설교해 주기를 바라오."하였다.
나는 그가 얼마나 자주 이 제목으로 설교해 달라고 했는지 셀 수 없다.
▶한 번은 내가 뉴욕 제5장로교회에서 설교하기로 청함을 받고
(무디의 추천으로 청빙 받음; 무디의 계속 권고가 아니었더라면
그 교회는 나를 청하지 않았을 것이다) 뉴욕으로 떠나려고 하는데
무디 선생이 자동차로 와서 나에게 말하기를
"토레이 박사, 당신에게 설교를 원하는 뉴욕 제5장로교회는 큰 교회요.
수백만 달러를 들여서 세운 굉장한 교회요."하면서 계속 말하기를
"토레이, 나는 꼭 당신에게 한 가지 요청이 있소.
나는 당신이 거기 가서 설교할 일에 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당신은 꼭 당신의 설교 『내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열 가지 이유』와
『성령의 세례에 대하여』를 말씀하십시오."하는 것이었다.
자주 그는 내가 어떤 교회 집회를 맡았다고 들으면 찾아와서
"자 토레이 박사, 꼭 성령의 세례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오."하곤 하였다.
나는 그가 이런 말을 얼마나 자주 하였는지 다 셀 수 없다.
한 번은 내가 그에게 “무디 선생, 당신은 내가 두 가지 설교,
즉 『내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열 가지 이유』와
『성령의 세례에 대하여』밖에는 할 줄 모른다고 생각합니까?” 한 즉
"좌우간 괜찮소." 하면서 "어떻든지 그 두 가지 설교만 하시오."하는 것이었다.
▶한 때 무디는 노스필드에 좋은 교수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러나 그들은 개개인에게 주시는 성령의 세례는 불신하였다.
그들은 믿기를 모든 하나님의 자녀는 성령으로 세례 받았고
그 밖의 다른 개개인을 위한 성령의 특별한 세례는 믿지 않았다.
무디 선생이 나에게 말하기를 "토레이 박사, 오늘 밤 집회 후 내 집으로 오십시오.
내가 저 교수들을 모아 놓을 터이니 그들에게 성령의 세례에 대하여 말해 주시오."하였다.
물론 나는 큰 관심을 가지고 가서 무디 선생과 함께 긴 시간을 말했으나
그들은 모두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
그들이 떠나갈 때 나더러 좀 남으라는 눈짓이 있어서 남았더니
무디는 그가 늘 깊은 생각에 잠겼을 때 취하는 태도 같이 의자에 앉아
턱을 가슴에 부치고 있다가 나를 쳐다보며 하는 말이
"오! 왜 저들이 쓸 데 없이 고집할까? 왜 저들 자신들이 요구하는 바가 바로 이것인줄 알지 못할까?
저들은 좋은 교수들이오. 놀라운 선생들이고 내가 기뻐하는 사람들인데
왜 저들이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하나의 체험이 곧 이 성령의 세례라는 것을 알지 못할까?"하였다.
나는 죽기까지 ‘1894년 7월 8일’을 결코 잊지 못한다.
그 날은 바로 동부 대학들로부터 모여든 노스필드 학생 수양회 마지막 날이었다.
무디 선생은 나에게 토요일 밤과 주일 아침시간에, 성령의 세례에 대하여 설교해 달라고 하였다.
토요일 밤 나는 ‘성령의 세례, 그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되며
그 필요성과 그 가능성’에 대하여 설교했다.
주일 아침 나는 ‘어떻게 성령의 세례를 받을 수 있나?’에 대하여 설교하였다.
바로 12시 정각 나는 시계를 꺼내어 말하기를
"무디 선생은 우리 전원이 오후 3시까지 성령의 권능을 받기 위해 기도하기 위하여
산 위로 올라오라고 합니다. 3시까지는 3시간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3시까지 기다리지 못하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기다릴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의 방으로 가거나 숲 속으로 들어가거나 천막으로 가거나,
어디든지 여러분이 하나님과 더불어 단 둘이 지낼 수 있는 곳으로 가서
이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과 의논하십시오."하였다.
3시에 우리는 모두 무디 선생의 모친 집 바로 앞에 모였다.
그리고 소로를 지나 내려가서 대문을 통과하여 산허리에 다달았다.
우리는 그때 모두 456명이었는데, 이 수는 바로 무디가 우리가 문을 통과할 때 세어보았기 때문이다.
잠시 후 무디 선생은 "이 이상 더 멀리 갈 필요는 없는 줄 압니다. 여기 모두 앉읍시다." 하였다.
우리는 나무 그루터기 혹은 벌목 위에 앉았다. 무디 선생은 말하기를
"여러분 중에 무슨 할 말이 있습니까?"하니 그들 중 5명쯤의 학생들이 하나 둘 일어서더니
"무디 선생님, 나는 3시까지 기다릴 수 없습니다.
나는 아침 예배 때부터 줄곧 하나님과 단 둘이 있었습니다.
나는 믿기를 나는 바로 성령의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하였다.
이 같은 간증이 끝나자 무디 선생은 말하기를
"젊은이 여러분! 나는 하나님께서 오순절 날 사도들 위에 명확히 부어주셨던 것과
꼭 같은 성령을 바로 지금 여기 부어달라고 하나님께 무릎 꿇어 기도 못할 이유가
절대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 함께 기도합시다."
그리하여 우리는 산허리에서 기도하였다.
우리가 산에 올라갈 때부터 검은 구름은 뭉게뭉게 모이고 있었는데
우리가 바로 기도를 시작하자 이 구름들은 깨어져 빗방울이 되어
무성한 솔잎 사이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노스필드에는 10일간 또 다른 구름이 뭉게뭉게 모이고 있었으니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의 큰 구름이었고 우리가 기도를 시작하자
우리의 기도는 그 구름을 산산조각을 만들어, 성령의 단비로 우리 위에 쏟아졌던 것이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우리가 모두 필요로 하고 있는 성령의 세례인 것이다.
....................
옮긴이(이인한 목사님)의 글 : 내가 하나님께 쓰임을 받지 못하는 이유!
그것은 이 책이 너무도 명확하게 대답해 줄 것이다.
옹졸한 생활! 따분한 우리의 판에 박힌 표준 이하의 무능한 생활은
이 책에서 스태미나를 얻어 마땅히 청산되어야 할 것이다.
성도가 고깃덩어리의 노예가 되어 성령의 소욕을 계속 거스르며
패배의 쓴 잔을 마시고 있다니... 이게 될 말인가?
허울 좋은 간판만의 성도의 칭호를 떼어버리고 나아가 엎드리자!
금식하며 울고 통회해야 한다!
무장 해제 당한 패잔병 같은 꼴을 우리는 언제까지 위선으로 가장하고
사람들 앞에 나서서 연극을 계속할 것인가?
이 책을 읽고도 우리가 각성하지 못하고, 이 책을 읽고도 우리가 슬퍼하지 못하고,
이 책을 읽고도 우리가 권능 받기를 주저하거나 거절한다면,
우리는 사람 아니다! 주의 종은 물론 아닐 것이다! <1967년 봄, 산정현에서 이인한>
저자 R. A. 토레이(Reuben Archer Torrey. AD 1856-1928)는
1856년 뉴저지에서 출생했으며, 예일대학과 예일대학원 신학부를 졸업했다.
무디의 권유로 무디 성경학교(Moody Bible Institute)의 전신인
시카고 복음화협회(Chicago Ebangelization Society)의 초대 원장을 역임한 그는
초기에는 명백한 고등비평가였으나 공부를 마치기 전에 보수적 교리로 돌아왔으며
그의 생애동안 자유주의의 가장 혹독한 비판가가 되었다.
또한 세계 각지를 순회하며 부흥의 불을 지핀 탁월한 신학자인 그는
4대에 걸쳐 한국교회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신앙 명문가의 선조이다.
그의 아들 토레이 2세는 중국 선교사로 사역하다가
한국전쟁 때 한국으로 들어와 장애인과 고아들을 위해 사역했으며
그의 손자인 토레이 3세(대천덕)는 성공회 신부로서 강원도 태백에 예수원을 세웠고,
이는 현재 4세인 벤 토레이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교육자, 목사, 세계적 복음주의자, 저술가로 모두 성공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으며
성령, 기도, 구원, 영혼구령 등의 실질적 주제를 포함하는 약 40권의 책을 저술했다.
'◑ 자료 18,185편 ◑ > 자료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적 전쟁의 공격과 수비 /고후10:3~5, 엡6:13 (0) | 2023.01.17 |
---|---|
(딘 셔먼) 영적 전쟁 약4:7 (0) | 2023.01.17 |
하나님께서는 왜 무디를 쓰셨는가? (1) /시62:11 (0) | 2023.01.17 |
(디엘 무디)조각글 모음 (0) | 2023.01.17 |
침묵과 자발적 고독/막6:32 (0) | 2023.01.1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