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사해 주신 예수님 (눅5:17-26)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눅5:20)
오늘은 중풍 병자의 죄를 사해 주심으로서 예수께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음을 증거 하
여 줍니다.
본문 말씀을 통하여 사죄의 은혜를 충만히 덧입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먼저 본문 전체 내용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어느 날 예수께서 말씀을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의 각 촌(村)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교법사들이 앉아 있는데 병을 고치는 하나님의 능력이 예수님과 함께 했습니다.
그 때 사람들이 중풍 병자를 메고 와서 예수님 앞에 들여놓고자 하되 많은 무리 때문에 들
어가지를 못하고 지붕으로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 체 무리 가운데로 예수님 앞
에 내려놓았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선언하셨
습니다. 이 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군데 하나님을 모독하는가?
하나님 한 분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는가? 저들이 수근 수근 했습니다. 예수님은 저
희의 수군거림을 아시고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며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며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특권이 내게 있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 하시며 중풍 병자에게 네 침상
을 가지고 일어나 집으로 가라 하시매 그 사람이 깨끗이 나아서 자기가 누웠던 침상을 가지
고 하나님께 영광을 도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이 일로 모든 사람들은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심히 두려워하며 오늘날 우리가 기
이한 일을 보았다고 말한 것이 오늘 본문의 대략입니다.
Ⅱ.바리새인과 교법사들입니다.(17)
어느 날 예수님이 말씀을 가르치고 계시는데 갈릴리의 여러 촌(村)에서와 유대 그리고 예
루살렘에서 나온 바리새인과 교법사 이는 마태나 마가가 밝힌 대로는 서기관들이겠습니다.
이들은 나와서 예수님께서 이루시는 복음 역사를 시기하고 방해하기 위해서 유대교 당국
으로부터 파견된 자들이겠습니다. 이들은 이렇게 나와 앉아서 예수님이 가르침과 행하시는
일을 헐뜯기 위해서 눈에 불을 켜고 예수님의 일거수 일투족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 병을 고치는 하나님의 능력이 예수님과 함께 하였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예수님이 문둥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그런고로 많은 사람들이 이 소문을
듣고(15) 말씀도 듣고 자기들의 병도 고침을 받고자 나왔습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이 계신
이곳에는 사람들이 너무 너무 많아서 마가복음(2:2)에는 용신할 수 없었다 했습니다. 비집
고 들어갈 틈도 없이 사람들이 꽉 찼습니다.
Ⅲ.중풍 병자를 메고 온 사람들(18-19)
이 때 사람들이 한 중풍 병자를 침대에 누인 채로 메고 나와서 예수님 앞에 들여놓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너무 너무 많아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하고 19절을 보십시오.
이들은 지붕으로 올라가 기와를 벗기도 병자를 침상 채 무리 가운데로 공중에서 예수님
앞에 달아 내린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병든 친구를 구하기 위해 침상 체 메고 나온 분들의 신앙을 몇 가지로 배
울 수 있습니다.
1)불구의 투지(fighting spirit)입니다.
이들은 환자를 메고 가는데 포기하거나 주저앉거나 돌아서거나 다음 기회로 미루지 않았
습니다. 그들은 어찌하든지 환자를 고쳐 보고자 하는 일념에서 병자를 침상 체 메고 지붕
위로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공중에서 달아 내렸습니다.
이들은 무리들이 많다거나 도저히 길이 없다고 돌아서질 않았습니다. 이들은 길이 없으
니 지붕으로 올라가고 지붕에서 기와를 벗기고, 지붕을 뚫어서 아마 4사람이 달아 내리겠는
데 내 귀에 맞추어서 나란히 내리는 것입니다. 잘못 내리면 예수님의 머리 위에 내립니다.
예수님의 뒤에 내려도 안되고, 예수님의 옆에 내려도 안되고, 너무 멀리 떨어져도 안되
고, 예수님 바로 앞에 내려놓으려니 여간 힘이 들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해 냈습니
다. 우리는 여기서 한 영혼을 온전한 그리스도인 되게 하는데는 불굴의 투지가 있어야 한
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는 4사람이 들어서 한 영혼을 구해 냅니다.
들 것을 들고 2층으로 올라가고 네 귀에 밧줄을 메서 예수님께 정조정해서 내리기란 힘든
일입니다. 이들은 이렇게 해서 죽어 가는 한 영혼을 구해 냈습니다.
저 창세기에 아브라함은 죽어 가는 롯을 구해 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들의 성(城)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
각 하사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창19:29) 하고 있습니다.
유명한 칼라인(carlyle)은 "하나님을 믿고 바른 일을 하라"하는 어머님의 음성이 늘 들려
오곤 했다고 합니다.
탕아 어거스틴이 부도덕한 일을 하고 있을 때 신앙심이 깊은 그의 어머니는 어떤 감독을
찾아가서 도움을 청했을 때 "기도와 눈물을 뿌려 기른 자녀는 멸망 할 리가 없습니다"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과연 기도와 눈물을 뿌려 기른 어거스틴은 후에 기독교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성자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서로 돕고 중보의 기도에는 하나님이 축복하십니
다.
오늘 본문에는 이 친구 네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는
음성과 중풍 병에서 놓이게 되었습니다.
2)창조적인 지혜(creative wisdom)입니다.
이들은 대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렸습니다. 그리고 지붕으로 올라가서
기와를 벗기고 구멍을 내어 공중으로 달아 내렸습니다. 또, 이들은 중풍 병자를 예수님께
데려가기만 하면 나음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과 친구를 낫게 하여야겠다는 진심에서 이런
창조적인 지혜가 생긴 것 같습니다.
야고보 1:5-6절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
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했습니다.
이들은 불굴의 투지와 창조적인 지혜로 중풍 병자를 달아 내렸을 때 예수님은 어떻게 하
셨습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했
습니다. 예수님은 저희 믿음을 보셨습니다.
만약 그 집회가 바리새인들이 주도하는 모임이었다면,
① 주거 침입죄에 ② 기물 파괴 죄 ③ 공중 집회 방해죄로 당장에 체포되었을 것입니다.
또 성질 급한 베드로 같은 이가 있었다면 당장 지붕에 올라가서 멱살을 잡고 죽일 놈 살
릴 놈하며 아래 위를 훑어보며 별별 일이 다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저희 믿음을 보셨습니다.
저들의 행동을 본다면 당장에 제자들을 시켜서 저지를 시켰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은 그러한 행동을 하게 된 근본 마음의 동기를 보신 것입니다. 그 마음의 동기는 병든 친
구에 대한 사랑과 예수님에 대한 적극적인 믿음입니다. 또 중풍 병자의 믿음을 보신 것이
겠습니다. 중풍 병자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주님께 나올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님
의 소문을 듣고 친구들의 도움을 청한 것이겠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그를 예수님에게 데려나 온 것이겠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길은 단 한길밖에 없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
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했습니다.(행4:12)
또 요한 복음 14:6절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하셨습니다.
하나님께로 가는 길은 예수님입니다. 이 길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길이요 예수님
만이 진리요 예수님만이 생명이십니다.
또 히브리서 9:22절 "피 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느니라"했습니다.
내 죄 대신에 피 흘림이 있어야 하는데 구약에는 내 죄 대신에 염소나 황소의 피가 들여
져서 속죄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히 9:13-14절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
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를 깨끗케 못하겠는가고 했습니다.
이런 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 그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 하시
고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의논하
여 예수님을 참람하다고 했습니다. 참람하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것입니다. 하나
님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하며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
은 참람하다는 말을 들으면 돌로 처 죽일 수 있습니다.
<참람>이란 신성(神性)에 대한 것으로서 ① 하나님께 부당한 속성을 돌릴 때나 ② 하나님
께 돌릴 속성을 돌리지 아니할 때 ③ 하나님께 바쳐야 할 속성을 하나님 이외에 것에 돌릴
때 참람 죄가 된다(Bengel)고 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고
하신 말씀 그대로를 받아 드리지 않았습니다. 사기꾼이나 하나님을 흉내내는 참람한 죄인
으로 몰아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중심을 아시고 한가지 질문을 하셨습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는 것이 쉽겠느냐?"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의 편에서 볼 때 중풍 병자에게 지금 일어나 걸어가라고 하는 말이 훨씬 더 어
렵습니다. 왜냐하면 거짓말인 것이 당장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모든 유대인들은 통례로
생각하기를 질병에 걸리면 그것은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전적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요한 복음 9장에 날 때부터 소경 된 자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기를
저 사람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이오니까 자기 죄이오니까 그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하고
물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 이 사람이 중풍 병이든 것은 죄 때문에 병이 든 것으로 알고 있습
니다. 그런고로 만일 그가 치유되었다면 결국 그것은 그의 죄가 사함을 받았다는 것을 입
증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이렇게 물으심은 예수님이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었습
니다.
24절을 다 같이 읽으십시다.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도 알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중풍 병자를 고치심으로 결국 죄를 사하시는 권세자로 알리셨습니다. 그래
서 중풍 병자에게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그 사
람이 저희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보는 앞에서 참람하다고 정죄하는 이들 앞에서 곧 일어나
그 누웠던 침상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렇게 하심으로 예수님은 죄를 사죄하시는 사죄자이시다는 것을 알리셨습니다. 이렇게
알리심은 당시 참람하다는 이들에게만 죄를 사하시는 주님이심을 알리실 뿐만 아니라 우리
에게도 사죄자 예수님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 복음 8장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와서 가운데 세우
고 예수께 묻기를 선생님 이 여자가 간음하는 현장에서 잡았습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이런
여자에게 돌로 치라 했는데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했을 때, 예수님은 어떻게 대답
을 하셨습니까?
돌로 치라고 하면 ① 지금까지 사랑을 선포한 사랑의 말씀에 위배됩니다.
② 또 유대인은 로마의 속국으로 있기 때문에 로마의 명 없이는 못 죽이
게 되어 있어서 만약 돌로 치라고 하면 로마의 반역이 됩니다.
③ 또 살인 주도자가 됩니다.
그러나 도로 치지 말라 하면 ① 모세의 율법을 어기는 자가 되고
②간음을 장려하는 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러 지도 저러 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랬을 때 예수님은 땅에
글을 쓰시며 한참 생각하시다가 일어나셔서 이 말씀 한마디를 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돌로 치지 말라고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돌로 치되 죄 없는 자가 먼저 치라 하시니 저희
가 이 말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도 없이 다 가 버
렸습니다. 결국은 간음한 여자와 예수님만 남았습니다.
이것을 보면 죄는 다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죄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죄인은 죄인을 정죄할 수 없습니다. 도롤 칠 자격도 없습니다. 죄 있는 인간은 인간을 정
죄하거나 돌로 칠 수도 없고 칠 자격도 없습니다. 다 죄가 있으므로 죄 사함을 받을 필요
가 있습니다. 거보세요 "죄 없는 자가 도로 먼저 처라" 하시니 어른으로부터 젊은이까지
갔다는 말로 미루어 어른들이 죄가 더 많습니다.
정죄는 죄 없으신 예수님만이 정죄 할 수 있는데 예수님은 이 간음한 여자에게 <나도 너
를 정죄치 않는다> 하셨습니다. 정죄할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이 <나도 정죄하지 않는다> 하
시니 이 말씀을 영접하고 돌아갑시다.
여기 이 말씀을 보면 인간은 어는 누구도 다 죄가 있습니다.
죄 없는 사람은 없으므로 다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이 죄 사하는 이도 오직 예수님밖에 할 수 없습니다. 이 예수님이 여러분을 향하여<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죄 사하러 보냄을 받은
자이십니다. 이것을 믿는 믿음을 가지십시다. 이 믿음이 의로 여김을 받습니다.
그의 피로 죄를 없이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분이 <나도 너를 정죄치 않는다> 하신 이 말
씀을 영접할 때 하나님은 이것을 의로 여기시고 구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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