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16:26
만일 우리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내가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하신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달라고 하시겠습니까? 지금 우리들의 생애 최고의 소망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간혹 우리에게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인가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이 문제에 대해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그 영혼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주님께서 말씀하신 영혼의 소중함이 과연 우리들의 가장 소중한 것인지를 확인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가끔 우리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과는 너무나 다른 현상들을 우리들에게나 다른 사람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며 그 빈도 수가 너무 잦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영혼의 소중함 보다 다른 어떤 것들에게 매료되어 영혼을 파는 일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사탄에 의하여 온 천하를 주겠다는 제안을 받으신 일이 있으셨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높은 산꼭대기로 이끌어 가서는 세계 만국의 영광을 보여주고 만일 예수께서 자기에게 절하면 이 모든 것을 주겠다고 제안했었던 것입니다.
천하 만국을 다 주겠다면서 사단은 왜 예수님에게 절을 하라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복종과 굴복을 말하며 숭배와 경외를 말하는 것입니다. 물른 예수님은 사탄에게 절하기를 거절하셨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진리를 시사하는 것입니다. 온 천하를 얻기 위해 죄와 타협하거나 죄에 굴복하거나 복종하거나 경배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사탄에게 절하면서 온 천하를 얻는다 한들 그게 무슨 영광이 되겠으며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천하를 얻기 위해 갖은 모략과 중상을 일삼는 자들을 봅니다. 온 천하가 아니더라도 작은 이익과 이권을 위해 죄에 굴종하며 사는 사람들을 봅니다. 심지어 보잘 것 없는 쾌락을 위해 온갖 불의한 짓에 매료되어 사는 사람들도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단기간의 유익을 얻기 위하여 사탄에게 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구약에 나오는 위대한 하나님의 종인 모세의 경우를 봅시다. 히브리 서에서 모세를 가르쳐 말하기를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서 알려질 수 있었고 그에 따라 애굽의 보물들을 자기의 원하는 데로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백성의 신분을 갖기를 선택했던 것이다. 왜 그랬습니까? 그 이유에 대해 “그는 (궁극적인)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상 주심을 바라 봅으로써 세상의 모든 부귀 영화를 보린 사람이 바로 모세입니다.
하나님의 상 주심은 영생을 얻는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영광 가운데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죄악 된 삶의 궁극적인 보응은 하나님께로부터 영원한 분리된 지옥에서의 영원한 삶입니다.
모세는 120년을 살았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백성들과 운명을 함께한 것은 40세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세상 것을 포기한 것은 80년이 됩니다. 그는 80년 동안의 애굽의 부귀 영화를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엄청난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는 지금 2,300년을 하늘나라의 영원한 부와 영광 가운데서 하나님과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그런 영광된 모습이 변화 산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런 영광된 삶은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오늘날 모세에게 그가 올바른 선택을 했는지 잘못된 선택을 했는지를 묻는다면 그의 대답이 어떠한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여러분은 모세의 선택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람이 내일 일이 두렵지 않는다면 오늘을 되는 데로 사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일을 생각하고 그 다음의 내일을 생각하며 이어지는 영생을 생각하여 함부로 살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 가운데 많은 이들이 권세와 영광과 명성을 위하여 그들의 영혼을 죄악에 내어 주고 사단의 권세에 굴복시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만일 당신이 히틀러가 그렇고 나폴레옹이 그렇습니다. 스타린도 그렇고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일정한 시간 극히 짦은 시간의 권세와 영광을 얻는 것으로 인해 영원히 사단의 종이 되어 지옥 형벌을 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지금 그들이 선택한 일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할 것입니까?
이런 불행하고 어리석은 일에 대한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6:20-27에서 세상을
“(눅16:27)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우리는 모세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능욕 받는 것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도 더 큰 재물로 여겼다는 말씀을 들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제안하셔야 했던 가장 나쁜 것은 그리스도의 능욕이었으며, 세상에 그에게 제안했었던 최선의 것은 애굽의 보화들이었다.
그는 하나님이 제시하신 안 좋은 것과 세상이 제시했던 최선의 것을 비교한 후 주님이 제시하신 것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 선택의 최종적인 유익을 결국 죽음 이후에 평가되어져야 한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그 영혼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는가?
욥은 그의 친구들에게 물었다. [사곡한 자가 이익을 얻었으나 하나님이 그 영혼을 취하실 때에는 무슨 소망이 있으랴 (욥 27:8)]
우리는 장기적인 결과에 의하여 사물을 판단할 필요가 있다.
마약은 아마도 당신을 일시적으로 크게 고조시킬 수 있을 것이다. 여러 형태의 성적 탈선들은 당신에게 강력하고 색다른 센세이션(Sensation:감각, 감동)을 가져다 줄 것이다.
당신은 은행 구좌에 백만 달러를 갖는다는 것은 아마도 당신에게 놀라울 정도로 큰 힘을 가진 느낌을 가져다줄 것이다. 이런 것들을 얻은 가운데 당신이 영혼을 잃는다면 이와 같은 것들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인가?
예수님은 헤아릴 수 없는 부를 소유했던 한 부자에 관한 이야기를 말씀하셨다. 그는 그의 창고가 비좁아서 그의 수확물을 다 수용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었다. 그는 어찌할까를 자문한 결과 그의 창고들을 헐고 그의 수확물을 다 쌓을 수 있도록 보다 큰 새 창고를 짓는 계획을 확정했던 것이다. 그는 [내가 여러 해 쓸 물건을 충분히 가졌으니 이제는 평안히 먹고 마시고 즐기리라]고 말했다. 그것은 그의 상황에 대한 자신의 소견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 내가 너의 영혼을 취하리니 너의 쌓은 것들이 뉘 것이 되겠느냐?]
그 부자는 자신이 크나큰 소득을 얻었다고 생각했으나 하나님은 그가 어리석다고 생각하셨던 것이다.
아마도 당신은 당신의 상황에 대한 하나님의 소견을 가지고 있을 것이지만 하나님은 다른 견해를 가지고 계시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의 상황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는가에 더 관심을 두겠다.
II. 인간의 영혼에 대한 하나님의 견해
하나님에게 있어서 당신의 영혼은 당신이 소유한 어떤 물건들보다도 최고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영혼)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가진 모든 물질적인 것들은 일시적이다. 당신의 육체도 마찬가지이다. 당신의 육체도 아마 80이나 혹은 그 정도면 족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영원과 비교될 수 있겠는가?
더욱 심각하고 놀라운 것은 80이나 혹은 그 몇 년 동안에 당신은 당신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고 있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모든 일들을 함께 하는데는 충분한 시간이 남아 있고 너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헌신하기 직전에 살고 있다는 사탄의 현혹에 속고 있다.
①. 당신은 예수님의 이야기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와 같이 자신이 얼마만큼의 시간을 가지고 있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하실 것이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이 지상에서의 너의 마지막 날이다]라고.
②.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께로 당신의 생을 돌이키기까지는, 참으로 삶을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늦게 영접하게 되어 기쁘다거나 혹은 기독 신자의 신앙생활이 너무 지겨운데 먼저 세상 재미를 실컷 보고 예수를 영접하게 되어 기쁘다고 하는 간증을 결코 들어본 적이 없다.
나는 자신들의 삶의 초기에 예수님을 영접했더라면 하는 갈망과 자신들의 삶이 이토록 기쁨과 평화와 만족으로 충만한 삶이었는지 몰랐었다고 하는 것들을 증거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간증을 들어왔다. 그들 자신의 일들을 행하며 즐거운 시간들을 추구하던 때의 그들의 삶이 저지른 더러운 일들에 대하여 한탄하는 그들을 나는 보아 왔던 것이다.
③. 물질적인 일들이 모두 지나간 아주 오랜 세월 후에도 계속해서 당신의 영혼의 생활은 계속될 것이다.
베드로는 이 모든 육신적인 세상이 풀어져 버릴 것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벧후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벧후3: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따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벧후3:10)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에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 보도다”
“(벧후3: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베드로는 우리가 그 물질적인 우주의 일시적인 빛 가운데서 경건 가운데 거룩한 행실로서의 삶의 살아야 할 것을 말하고 있다. 또한 우리가 주안에서 평강 가운데 힘없고 점없이 발견되도록 행하는 일에 부지런해야 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④. 물질적인 우주가 끝난 후에도 아직 존재의 끝은 아님을 주목하라.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것이다.
바울은 우리의 육체가 분해되는 날 혹은 우리의 영이 육체를 빠져나가는 날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그날이 끝은 아니다. 우리는 손으로 짓지 아니한 영원한 하늘나라의 하나님의 집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죽음이 존재의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잘못된 것이다. 성경은 [사람에게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요, 그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목회의 부단한 강조 점은 영적인 것이 육신적인 것들보다도 우위에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또한 신약 성경의 강조 점인 것이다. [육체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에 생각은 생명과 평안과 기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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