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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할 일꾼을 찾습니다 /마태복음 9:35-38

by 【고동엽】 2022.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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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할 일꾼을 찾습니다

마태복음 9:35-38

 

예수님의 일생은 사람을 살리는 일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생각 전부가 ‘내가 어떻게 하면 사람을 살릴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땅에서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가장 좋은 일은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유대 땅을 다니시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또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병들고 약한 자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그 모든 일은 살리는 일이었습니다. 인간의 영혼을 살리고, 정신을 살리고, 병든 몸을 살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살리는 일을 일관되게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을 볼 때 불쌍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저들이 목자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방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없구나!’ 하고 마음 아파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추수할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을 보내주소서 하라’

이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그의 세계관과 인생관이 결정됩니다. 어떤 사람은 이 세상을 놀이터로 알고 놀려고만 합니다. 어떤 사람은 꽃밭으로 알고 관광하는 것을 최고의 삶의 가치관으로 삼고 구경하는 맛으로 살아갑니다. 이 세상을 전쟁터로 알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과 싸워 이기는 것, 정복하는 것, 착취하고 자기의 탐욕을 채우고 그래서 끊임없이 사람을 짓누르고 남의 것을 빼앗는 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소명감에서 이 세상을 보는 사람은 일터로 봅니다. 세상 사람들의 일터는 먹고 살기 위한 일터요, 남과 싸워 이기기 위한 전쟁터지만 믿는 사람들의 일터는 세상을 살리고 이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기 할 일을 찾는 일터가 됩니다.

농부는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둡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마음을 밭으로 봤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밭에 씨를 뿌려서 백배, 육십배, 삼십배의 열매를 거둘 것을 기대하십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두려고 하는 열매는 육신의 정욕이나, 안목의 정욕이나, 이생의 것에 대한 열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열매를 생명으로 봅니다. 한 생명 한 생명을 열매로 거두어 그를 살리는 것이 주님의 일이었습니다.

추수는 생명을 거두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돈을 번다든지, 명예를 얻는다든지, 유익을 얻는 것을 추수라고 생각합니다. 농사 짓는 사람들은 곡식을 거두는 것이 추수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는 추수는 생명을 거두는 것입니다.

 

첫째, ‘추수할 것이 많다.’ 하였습니다.

가을이 오면 봄에 뿌린 씨앗이 맺은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가을은 추수하는 계절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우리 영혼을 추수해서 천국 곶간에 들이시기를 원하십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하나 하나가 생명의 열매입니다. 구원받은 열매입니다. 이 열매를 주님께서 추수해서 천국에 들이기를 원하십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7-8)

하나님은 심은 종류대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좋은 씨앗을 심으면 좋은 열매를 거두고 나쁜 씨앗을 심으면 나쁜 열매를 거둡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열매를 심습니다. 그 열매가 생명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끊임없이 우리 심령속에 악한 것을 심어서 가라지로 만들어 불구덩이에 넣으려고 합니다.

마태복음 13:25절 말씀에 보면 어떤 농부가 씨를 뿌리고 가을이 되어 열매를 거두려고 할 때 가라지가 있는 것이 보입니다. 그래서 종들이 주인에게 묻습니다.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그때 주인이 마귀가 밤에 모르게 뿌린 것이라고 말합니다.

밭에 알곡도 가라지도 동시에 있습니다. 알곡은 모아서 곶간에 들이고 가라지는 불구덩이에 불사릅니다. 사단은 끊임없이 사람들의 심령속에 불구덩이에 들어갈 악한 씨를 심어서 그 영혼이 빈 영혼, 생명이 없는 것으로 만들어 멸망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심어서 생명의 열매를 거두게 하십니다.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한 알의 밀이 죽어서 많은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 우리 주님께서 생명의 씨앗을 심는 비밀이었습니다. 농부는 밭에 씨를 뿌립니다. 그런데 씨에서 싹이 나고 뿌리가 내리기 위해서는 열매 하나가 썩어야 합니다. 이와같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피흘려 죽고 그 생명을 심어 우리에게서 거두게 하십니다.

주님은 친히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많은 영혼이 맺힐 것을 아셨습니다. 그것을 아시고 주님은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장 21절에 보면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했습니다.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라는 이름을 가졌고 예수라는 이름 속에 많은 자기 열매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그 열매입니다. 지금 보이지 않는 세상의 열매가 많이 있습니다. 그 열매를 우리 주님께서 친히 보시면서 “추수할 것이 많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눈을 들어 추수할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떠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수가성에 가셨을 때 한 여인이 물을 길러 오는 것을 보시고 전도를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전도할 때 그 상황에 맞게 말씀을 전합니다. 물 길러 온 여인에게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3-14) 라고 하시면서 물을 가지고 전도를 합니다. 그 여인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아, 이 분은 우리 민족이 기다리는 메시아구나, 나의 과거를 알고 내 인생의 미래까지 아는 것을 보니 이는 분명히 선지자구나!’ 하고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가서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아를 봤다 가자’하고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예수를 향해서 옵니다.

그때 마침 마을에 먹을 것을 구하러 갔던 제자들이 와서는 “랍비여 잡수소서” 할 때 예수님께서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습니까?” 할 때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추수할 밭을 몰랐습니다. 제자들이 볼 때는 지금 곡식이 파릇파릇하기 때문에 곡식이 익으려면 아직도 넉 달이 남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하신 것은 수가성의 여인을 따라 많은 사람들이 나아오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영적으로 추수할 것이 너무 많아 넘치고 있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그 눈으로 사람을 보고 있습니다. 사람이 중요합니다. 주님은 사람을 살리러 왔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사람을 추수할 영혼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열매는 영혼의 열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영혼이 구원받은 열매로 천국에 추수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요 4:36)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요 4:38)

주님께서 장차 거둘 우리들의 열매를 보면서 즐겁게 십자가에 죽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열매를 거두면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노력하지 않고 거두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노력’은 십자가에 죽는 피흘림입니다. 수고와 헌신은 주님이 하시고 우리는 가서 거두는 기쁨만 누리면 됩니다.

인간의 모든 사업이라는 것은 다 자기가 심고 자기가 거두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도는 심는 자도 따로 있고 거두는 자도 따로 있습니다. 이 가을에 많은 영혼의 추수가 있기 바랍니다.

 

둘째, 일꾼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추수할 일꾼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그 일꾼이 적기 때문에 탄식하십니다. 농부는 밭을 보면 할 일을 압니다. 탐스럽게 익은 열매를 보면 추수하고 싶은 의욕이 생깁니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은 적으니’ 일꾼은 많이 필요한데 일꾼이 적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일꾼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 일 할 수 잇도록 부르십니다. 세상 일꾼은 많습니다. 언제나 차고 넘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꾼은 모자랍니다.

일꾼은 추수하는 사람, 전도하는 사람입니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는 일꾼이 아닙니다. 직분입니다. 명예에 불과한 것입니다. 참 일꾼은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라디오를 통하여 한 의사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이 분은 개인병원을 하는 분인데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항상 하는 일이 그 날 진료받은 사람의 카드를 매일 밤마다 확인을 하고 그 날의 수입을 계산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일과를 계속하던 어느날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카드를 가지고 와서 숫자를 계산하고 돈을 계산하는데 성령께서 그 마음을 감동했습니다. “너는 매일 환자의 카드나 보면서 돈이나 계산하고 네 일생을 끝낼 것이냐? 왜 환자의 영혼은 한 번도 생각하지 않느냐 네가 교회 집사냐?” 그는 순간 충격을 받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주님, 용서하소서. 나는 매일같이 육신의 병을 치료하는 의사요, 돈 버는 장사꾼이었습니다.”

그는 그 다음날부터 찾아오는 환자의 영혼을 돌보는 의사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정성껏 환자의 병을 치료하면서 환자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일과가 끝나면 구원의 영혼 카드 수부터 점검하였습니다. 그는 그때부터 사는 것이 즐겁고 행복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랑과 친절한 의사로 그 병원은 엄청나게 축복을 받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전도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뿌린다는 의미가 있고 하나는 거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뿌린다는 것은 전도의 의미가 약합니다. 우리 주님이 생명을 뿌렸으니까요. 또한 순교자들이 선교사로서 이 땅에 복음을 뿌렸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창세 전에 우리 주님께서 씨앗을 뿌려서 지금 익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선교사들이 와서 그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선교사들이 뿌린 것 아닙니다. 주님께서 창세전에 구원받을 사람을 예정하시고 그 씨를 창세 전에 뿌려서 자라게 하시고 때가 되매 익어서 거두었을 뿐입니다.

우리는 전도를 씨 뿌리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거두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므로 익었는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믿겠습니다.’ 하면 ‘익었구나’ 하고 따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구니 들고 가서 따 담는 것이 전도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서 밤중에 두려운 생각으로 기도하는데 주께서 환상 중에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행 18:9-10)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부지런히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어느 영혼이 익어서 추수하게 될지 모릅니다. 우리는 전혀 생각지 않았던 사람이 믿는 것을 보고 놀라는 때가 많이 있습니다. 전혀 생각지 않은 사람이 예수 믿고 목사 되고 장로 된 사람 많습니다.

전에 있던 교회에 제가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면 저를 비난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말을 안듣던지 어떤 때는 “예수 안믿으려면 지옥이나 가라”고 할 정도로 얄미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20년만에 서울에서 우연히 그 분을 만났는데 “목사님, 안녕하십니까 제가 옛날의 아무개입니다. 목사님, 그때 제가 목사님 말씀을 안들었지만 머리 속에는 들어갔습니다. 제가 교회 집사가 되었습니다.” 그래요. 제가 너무 너무 기뻐서 “집사님,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말썽꾼, 구경꾼, 일꾼이 있습니다. 말썽꾼은 파괴자입니다. 사단의 무리에 속한 자들입니다. 구경꾼은 ‘잘하나 못하나 보자’ 구경하는 사람입니다. 일꾼은 생산하는 사람입니다. 일꾼은 보람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일꾼은 주인의 삯을 받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천국의 일꾼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자기 자신을 천국의 일꾼으로 생각하십시오.

 

셋째, 우리는 일꾼을 찾아내야 합니다.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추수할 주인에게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추수할 주인만이 일꾼을 보낼 수 있습니다. 자기 밭에 익은 곡식을 추수할 자를 아무나 보내지 않습니다. 도적을 추수꾼으로 보내면 큰일납니다. 도적은 추수해서 주인의 집에서 도망을 칠 것입니다. 주인이 보내는 추수꾼, 주인이 알고 주인의 밭에서 주인의 열매를 거두어 주인의 창고에 들이도록 파송하는 파수꾼을 우리는 찾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영혼의 추수꾼으로 삼으십니다. 우리는 세상에 나가서 하는 일 전체가 다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 따로 있고 세상 일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이 다 하나님께서 창조한 세계요, 우리는 그 곳에서 일하는 일꾼입니다. 장사를 하든, 농사를 짓든, 학교에서 가르치든, 연구하든 다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보다 더 원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혼을 살리는 일입니다.

“추수할 일꾼을 보내주소서 하라”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추수할 주인이 누구입니까? 추수할 주인은 주님이십니다. 주님에게 일꾼을 청하라는 것입니다. 농사를 지을 때 씨 뿌리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습니다. 비료 주고 농약 주는 것 아무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추수는 아무나 못합니다.

회사에서 물건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닙니다. 돈을 가지고 은행을 출입하는 사람이 중요한 사람입니다. 돈 가지고 도망치면 헛 것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피 흘려 구원한 열매를 만약에 사탄에게 맡긴다면 주님이 헛 것 하는 것 아닙니까 가장 신뢰할 사람이 전도할 사람입니다. 그래서 전도하는 사람은 우리 주님께서 가장 신뢰할 일꾼으로 파송해서 영혼을 추수해오는 것입니다.

저는 며칠 전에 연세대 대학교에 강의하러 가서 연세대의 땅을 밟으면서 언더우드 선교사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점심시간에 대학 교수님이 그래요. “이 연세대 캠퍼스가 20만평인데 연대 가족이 수만 명입니다.” 그래요.

한국 장로교회의 아버지요, 최초의 선교사인 언더우드는 인도 선교사를 자원하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신학교를 졸업할 때 어느 선교사 보고 시간에 한국에 선교사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보고를 받습니다. 그때 그는 기도하기를 “하나님 아버지여, 한국에 선교사가 필요합니다. 일꾼을 보내주소서.” 그때 성령께서 “언더우드야 왜 네가 갈 생각은 않고 다른 사람을 보내려고 하느냐” 그때 그는 이런 고백을 합니다.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드디어 그는 한국으로 왔습니다. 그가 한국에 복음을 전하므로 오늘날 천만이 넘는 복음대국이 된 것입니다. 언제나 주님이 필요로 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주의 부르심에 내놓은 사람입니다.

이사야 선지가 성전에서 듣던 음성이 필요합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 6:8)

이사야는 추수할 밭을 향해 일꾼으로 나갈 것을 고백했습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의 고백이며 사도들의 사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필요로 하십니다. 내 입을 통하여 복음이 증거되기를 원하시며, 내 손을 통하여 복음이 전달되기를 원하시며, 내 발걸음을 통하여 복음 소식이 전해지기를 원하십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 10:13-15)

전파해야 듣습니다. 들어야 믿음이 생깁니다. 믿음이 있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전도는 예수님께서 가장 신뢰하는 일꾼을 파송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전도하러 갈 때는 ‘아, 주님이 그 고귀한 영혼을 나에게 맡겨서 추수하라고 하셨구나!’ 이 생각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추수꾼이 되어 알곡을 모아 천국 곶간에 들이는 주인의 추수꾼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주님의 신임받는 최고의 일꾼이요, 주인의 지극한 칭찬을 받는 일꾼이 될 것입니다.

주인이 눈물 뿌려(피흘려) 심어놓은 열매를 우리 손에서 거두라는 명령은 최대의 영광이요, 기쁨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 : 주님의 시선
글쓴이 : 카페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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