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선을 베풀라(잠 3:27~35) 태신자초청주일 2

by 【고동엽】 2022. 3. 23.
 
 
목록가기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는 이웃에 대한 관심입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관심을 전혀 갖지 않으셨다면,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이웃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관심은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들에게 이웃에 대하여 '선을 베풀라'고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명령이 어떤 것인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선을 행하라.
(잠 3:27,28)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
본문에 나타난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에서 손은 행동을 의미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중에 선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칫 무관심에 빠지기 쉬운 것이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이웃에 대한 관심 즉 '구제'는 지혜로운 자의 행동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소유의 개념'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개념이 성경의 가르침에 있어서 중요한 한 부분이 되기 때문입니다.
만물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의 물질을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만물의 소유주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 그 사람은 물질을 올바르고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게 됩니다.
(욥 1: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동방의 의인 욥은 스스로 말하기를 그는 적신(赤身)으로 태어났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아무 것도 없이 벌거벗은 몸으로 태어났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가 갑작스럽게 닥쳐온 재난으로 인하여 모든 것을 잃었을 때에도 같은 생각을 하면서 고난과 어려움을 신앙으로 잘 극복하였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물질 관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모든 물질은 하나님의 것입니다(욥 1:21). 둘째로, 자기를 위하여 이 땅에 물질을 쌓지 말아야 합니다(눅 12:20). 셋째로, 주를 기쁘시게 하는 일에 물질을 써야 합니다(고전 10:31).
무엇보다도 우리 성도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특히 선한 일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할 것인지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엡 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누가복음 10장 25-3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것은 한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 가다가 강도를 만나게 됩니다. 그 때 천하게 취급받는 사마리아 사람이 길을 가다가 그 강도 만난 사람을 구해주지만, 같은 길을 걷던 레위인과 제사장은 모른 채하고 지나가게 됩니다. 여기서 진정한 이웃은 실제적인 도움을 준 사마리아 사람임을 예수님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이웃에게 다가가야 하겠습니까?
첫째로, 아낌없이 구제해야 합니다.
(신 15:10) 너는 반드시 그에게 구제할 것이요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 바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둘째로, 부르짖을 때에 귀를 막지 말아야 합니다.
(잠 21:13) 귀를 막아 가난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의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
셋째로, 작은 자들을 정성으로 돌보아야 합니다.
(마 25:42,43)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성경은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구제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마 10:8)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잠 11:24)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행 20:35)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이처럼 이웃과 사회를 위하여 수고와 희생을 하라는 것은 성경의 명령입니다. 이러한 명령은 사랑이 없고 메마른 사회에 큰 활력소가 될 것입니다.

2. 네 이웃을 모해하지 말라.
오늘의 시대를 일컬어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즉, 약자가 강자에게 먹히고 손해보고 피해보는 시대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이웃에 대한 관심을 갖는 일에 대하여 조소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올바른 교훈을 따라서 살아가라고 지침을 주고 있습니다.
(잠 3:29,30) 네 이웃이 네 곁에서 안연히 살거든 그를 모해하지 말며, 사람이 네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거든 까닭 없이 더불어 다투지 말며
'모해(謀害)'는 '긁다', '쟁기질하다'의 의미로 꾀로서 남을 해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농부가 파종을 준비하기 위하여 밭을 가는 것처럼 의도적으로 악을 계획하고 조장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모두가 평화로운 삶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남의 행복을 무시해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약에 이웃집에 불이 나면, 우리 집에도 불이 옮겨 붙게 됩니다. 자신의 집에 불이 난 것이라고 해서 남의 집에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도 자기의 몸이라고 함부로 해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도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자신의 몸이라고 함부로 문신을 하지 말라고 되어 있습니다. 또한 자기의 자식이나 아내를 폭행하는 것도 큰 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즉,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기에 앞서서 국가의 것이고,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는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검은 묵을 가까이하면 은연중에 자신도 검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웃의 불행은 결국 머지 않아서 나의 불행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입니다. 평화롭고 온화한 자를 자신의 이웃으로 두고 있는 사람은 그와 더욱 친밀해 짐으로써 그의 평안을 함께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한 사람의 됨됨이는 그의 친구를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만약에 한 사람의 모습을 바로 알려면, 그 주위에 어떤 사람들을 친구로 삼고 있는가를 보면 쉽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웃과 화평하게 지내는 사람, 이웃에게 평화를 심고, 그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의 주위에 모든 사람을 그런 사람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반대로 한사람의 악한 행동은 여러 사람들을 악의 구렁텅이로 끌어넣을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이웃을 시기하는 자는 자기도 시험을 받게 되고, 자기의 친구를 배신한 자는 자신도 배신의 쓰라림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갈 6: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한편 우리는 우리 주위에 까닭 없이 다툼을 일으키는 사람들과 연루되어 악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일이 없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다툼과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은 마땅히 징계를 받을 것이며, 자신의 마음에도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될 것입니다. 또한 다툼을 일으키며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힌 그 사람도 역시 상처를 받게 될 것입니다.
(롬 2: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첫째로,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 둘째로, 악을 좇지 말아야 합니다.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좇지 말라(잠 1:10)." 셋째로, 모든 불의를 떠나야 합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딤후 2:19)."

3. 악인을 부러워 말라.
오늘 날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면서 불의가 득세하며 판을 치는 것을 보면 견딜 수 없는 정의감으로 인해 오히려 서글퍼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잠 3:31) 포학한 자를 부러워하지 말며 그 아무 행위든지 좇지 말라
'포학(暴虐)한 자'는 '폭력을 일삼는 자, 압제자'란 뜻입니다. 이런 사람은 가난한 자를 학대하며, 그의 행위가 탐욕스럽고, 난폭하고, 바르지 못한 자입니다. 본문에서 지혜자는 포학한 자를 부러워하지 말고, 그의 어떠한 행위도 본받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잠 24:1) 너는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기도 원하지 말지어다
(잠 24:19) 너는 행악자의 득의함을 인하여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
여기서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범행자들이 획득하는 성공과 재물을 부러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행위를 본받지 말라'는 것은 부와 명성과 권력을 얻을 목적으로 악한자가 행하는 생활 방식을 본받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회는 악할 대로 악해져서 부와 명성과 권력을 얻는 과정과 방법은 어찌하든지 자신이 원하는 것만 얻으면 된다는 풍조가 팽배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 경고에 귀를 기울여서 마땅히 악을 버리고, 그리고 사회의 악에 대해 지혜자로서 경고의 소리를 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자에 대하여 침묵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잠 3:32) 대저 패역한 자는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거니와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이 있으며
여기서 '미워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악인에 대하여 가증스럽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악인의 행위에 대하여서 하나님은 전혀 그를 돕거나 협조하는 일이 없으나,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그와 '교통하심'이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 '교통'은 '상의하기 위하여 앉다'는 의미로 하나님은 정직한 자에게 가족처럼 친밀하게 대해주시며 교제와 대화를 통하여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다는 뜻입니다.
(잠 3:33-35)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거니와 미련한 자의 현달함은 욕이 되느니라
특히 본문 32-35절에서는 대조법(對照法)이 사용하고 있는데, 즉 '패역한 자'와 '정직한 자', '악인의 집'과 '의인의 집', '거만한 자'와 '겸손한 자',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를 대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명백한 대조를 통하여 '악인'과 '선인'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여 정직히 행하는 자는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답답하지 않고 외롭지 않는 것입니다(고후 4:8-10).
(잠 11:25)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시 1:6)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한 심리학자는 인간을 세 단계로 보아 첫째는 받는 단계요, 두 번째는 소유하는 단계요, 세 번째는 주는 단계가 있다고 했습니다. 신앙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는 단계, 은혜 받는 단계, 은혜 받은 다음에는 주는 단계로 발전해야 합니다. 교회도 개척하는 과정이 있고, 개척교회가 성장하는 과정이 있고, 성장한 다음에는 나누어주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참 일리가 있는 말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결 론
영국의 빅토리아(Victoria) 여왕이 선행을 베푼 나이팅게일(F. Nightingale)에게 준 훈장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긍휼을 행하는 길은 하나 뿐이 아니다. 말로도 할 수 있고, 돈으로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돈도 없고 말로 할 수도 없거든, 눈물로 할 수 있다."
파블로 카잘스는 "보살피는 것은 인생을 가장 의미 있게 사는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2000년 한해동안 전 세계적으로 집 없는 사람들에게 2만 채의 집을 지어 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이름은 해비타트(Habitat)입니다. 해비타트란 '보금자리'라는 뜻입니다. 해비타트 운동의 총재는 밀라드 풀러(Millard Fuller)입니다. 그는 1960년대 미국의 100만 장자로 소문난 사업가였습니다. 어느 날 밤늦게 돌아와 보니 아내와 아이들이 없었고 거실 책상 위에 편지가 있었습니다. "오늘밤도 돈을 세시오. 오늘밤도 돈 벌 궁리나 하시오. 필요 없는 우리는 당신 곁을 떠납니다."라고 써있었습니다. 그는 충격을 받고 곧바로 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찾아가 잘못을 인정하고 화해를 신청했습니다. 그는 즉시 재산가 회사를 다 팔아 사회와 교회에 헌납했습니다. 그때가 1965년도입니다.
그는 아프리카 자이레 빈민촌에 들어가 3년 동안 선교활동을 하다가 미국으로 돌아와 23년 동안 미국과 전 세계의 빈민들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현재 제 세계 76개국에 지부가 설립되어 있고, 2000년 말까지 전 세계에서 10만 채의 집을 지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미국의 전 대통령 지미 카터도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2장에는 예수님께 찾아온 한 바리새인이 예수를 시험하기 위해서 질문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것은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큰 가하는 질문을 예수님께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마 22:37-40)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의 지혜로운 백성이 되어서 선을 행하며, 이웃을 해치지 않으며,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출처 : 전도카페
글쓴이 : 전도자:박목사 원글보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