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부모, 누구 자녀
마가복음 15:21-23
여러분들이 잘 알고 계시 는바와 같이 저는 요즘 안식 년을 지내고 있습니다. 1월부 터 4월까지는 주일 설교만 하 고 쉬고 있으며 5월과 6월 두 달은 외국에 나가서 안식년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교회 건 축중에 안식년을 보낸다는 것 은 저도 인간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웠으나 저는 그것이 하나 님의 식이라고 생각을 했고 이제 더 지나봐야 되겠으나 결과적으로 저는 안식년 결정 을 잘 했다라고 생각하고 있 습니다.
안식년을 보내면서 얻는 유익이 많이 있는데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중의 하나는 나의 목회와 인생에 대하여 다시한번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얻게 되 었다는 것입니다. 신학교를 졸업한지 올해로 꼭 20년이 되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을 나름대로 열심히 앞만 보 고 달려 왔습니다. 열심히 앞 만 보고 달려가는 것도 중요 하지만 더 늦기 전에 잠시 달 리는 것을 멈추고 자신의 삶 을 돌아보고 앞으로 달려 가 야 할 목표를 다시 점검해 보 는 일이 매우 중요한 일이라 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지난 몇 달 동안 나 름대로 아주 단순한 주제를 가지고 깊이 생각을 해 왔습 니다. 그것은 '이제 앞으로 남 은 시간들을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하는 문 제이었습니다. 그것은 '앞으로 어떠한 목회를 하다가 어떤 모양으로 목회를 끝을 맺어야 할 것인가?'하는 문제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그림 을 분명히 해놓는 일이 무엇 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 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어느 정도 그 그림이 나름대로 완 성되어 가고 있는 중입니다.
제가 '어떻게 살다가 어 떻게 죽을 것인가?'
"어떻게 목회를 하다가 어떻게 목회를 마쳐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 면서 나름대로 정리가 되어가 고 있는 생각중의 하나는 최 선을 다하여 스스로 목회와 교회 그리고 인생의 주인이 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철 저히 하나님의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의 삶을 살겠다는 것입 니다. 절대로 교회의 주인이 되지 아니하고 교회와 목회를 자신의 이익의 도구로 사용하 지 않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 여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리고 나뿐만 아니라 그 어느 누구도 교회의 주인 노릇을 하며 교회를 자신의 명예나 이익의 도구로 사용하게 하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하여 막겠 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만이 교회의 주인이시며 오직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시며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만 움직 여져 나가는 참된 의미의 하 나님의 교회를 세워 나가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야 하겠 다는 것입니다.
자신과도 싸울 것이며 교 회안에 옳지 않은 세력과 전 통이 있다고 할 때 그것과도 생명을 걸고 싸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패배하면 물론 교회를 떠나게 될 것입 니다. 그러나 그 싸움에서 승 리를 하여도 교회를 떠나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 습니다. 싸움에서 승리한 후 너무 오래 교회에 머물러 있 게 되면 제가 교회의 주인이 될 위험성이 높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일을 내가 과 연 해 낼 수 있을 것인지 아 니면 말만 하고 말게 될 것인 지는 아직 알 수 없으나 그리 고 그와 같은 일이 과연 옳은 일인지를 좀더 점검해 보아야 하겠으나 하여튼 요즘 저는 그와 같은 생각을 깊이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철저한 종으로 서의 삶을 생각하면서 한가지 더 욕심내어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허락 해 주신 세 아이의 자랑스런 아비로서의 삶을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적어도 제 사랑하는 세 아이에게는 존경받는 아비 가 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 아이들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저 아이들이 바로 김동호 목사의 아들이라 고 불리워 지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이제 시작이지만 제 아이들이 김동호 목사의 아들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 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이 나름대로 아이들에게 부담이 되는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저는 아이들이 그 부담을 져 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 다.
부담없이 자유롭게 그저 자신의 이름으로만 불리워지 는 삶을 아이들은 소원할는지 모르나 아무리 부담이 되도 저들이 누구의 아들로 불리워 지는 것은 축복입니다. 저는 그러므로 아이들의 부담을 알 면서도 늘 하나님께 '하나님 제 아이들이 김동호의 아들로 사람들에게 불리워 질 수 있 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가 정말 기도하 고 기대하는 것은 그것이 아 닙니다. 보다 더 간절한 저의 기도는 제 아이들이 누구의 아들로 불리워지는 것이 아니 라 제가 누구의 아비로 불리 워지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 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 아이들이 누구의 아들로 불리워지는 것 보다 제가 누구의 아비로 불 리워지기를 정말 소원하고 있 습니다. 저는 그것이 축복이 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인 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받 을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이라 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 서 저는 그것을 놓고 하나님 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도 그와 같 은 기도 제목을 가지고 기도 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권하 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여 러분들의 자랑스러운 부모가 되어 여러분들의 자녀가 누구 의 자녀라는 이름으로 불리워 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를 축복해 주셔 서 결국에는 여러분들이 누구 의 부모로 불리워지실 수 있 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많은 돈을 버는 것 보다 중요하고 높은 지위 를 얻는 것보다 중요한 것입 니다. 많은 돈과 높은 지위는 얻었으나 자식들의 사랑과 존 경을 받지 못하는 부모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 러한 사람은 절대로 성공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러한 사람은 절대로 행복한 사람이 아닙니다. 저들은 절 대로 누구의 아비라는 이름으 로 불리워지는 인생 최고의 행복을 누리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그와 같은 복된 삶을 살았던 한 사 람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것 은 구레네 사람 시몬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억지 로 지고 갔던 사람입니다. 그 런데 마가는 그의 이름을 소 개하면서 앞에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라는 표현을 썼 습니다. 아무런 설명없이 그 냥 알렉산더와 루포라고 쓴 것을 보아 저들은 당시에 모 든 사람이 설명없이 알 수 있 는 유명한 사람들이었다는 것 을 알 수 있습니다.
딴 이야기입니다만 저는 다른 교회에서 혹 집회를 할 때 제 약력을 밝히는 것을 좋 아하지 않습니다. 약력을 물 으면 저는 가능하면 그냥 동 안 목사라고만 대답합니다. 이렇다할만한 이력이 없기도 한 때문이지만 저는 그와 같 은 설명없이 그냥 동안 교회 목사라는 것만으로도 사람들 이 충분히 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알렉산더와 루포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마가 는 구레네 사람 시몬의 이름 을 쓸 때 구레네 사람 시몬이 누구인가를 설명하면서 그가 바로 그 유명한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가 되는 사람이라 고 기록하였던 것입니다. 저 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구레 네 사람 시몬이 얼마나 부러 운지 모릅니다. 제 소원이 바 로 제가 그렇게 불리워 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부열과 김지열 그리고 김정열의 아비인 김동호 목 사' 얼마나 근사한 일입니까? 지금은 김동호 목사의 아들 김부열 김지열 김정열로 불리 워지고 머지않은날 늙어서는 저들의 아비인 김동호 목사로 불리워진다면 저는 제 인생을 감히 성공한 삶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은 어떻 게 그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 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그것 은 많은 주석가들이 인정 하 는바와 같이 그가 억지로 이 기는 하지만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졌기 때문입니다. 그것 은 틀림없는 말씀입니다. 그 래서 그가 그런 복을 받은 것 입니다.
그가 만일 억지로 주님의 십자가를지지 아니하고 자원 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십자가 를 대신 졌었더라면 틀림없이 그의 아들 알렉산더와 루포는 당시의 사람들만이 설명없이 도 알 수 있는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 지금 우리들 까지도 사전과 주석을 찾아 보지 않 아도 그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는 그만큼 훌륭하고 유명한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주님 때문에 좁은 길을 걸으며 주님 때문에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주를 좇으려고 하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하나 님은 앞에서 우리가 함께 생 각한 그 엄청난 축복을 주십 니다. 이것이 오늘 설교의 핵 심입니다. 귀 있는 자는 들으 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엄청난 축복을 위하여 우리가 억지라도 져야할 십자 가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을 수 있을까요? 저는 오늘 우리들이 당면하고 있는 일 두가지를 놓고 여러분과 함께 그 문제를 생각해 보려고 합 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가 장애 인 주일로 지키는 주일입니 다.
장애인을 위하여 헌신하 는 것만이 주를 위한 것은 아 닙니다. 그러나 장애인을 위 하여 헌신하는 것은 분명 주 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며 주님 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는 일 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 님의 관심의 대상인 장애인들 을 섬기기 위하여 헌신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주일 3부 예배 시간에는 농아인들이 함께 와 서 예배를 드립니다. 그 농아 들을 위하여 수화 동시 통역 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예배에 참석하는 농아들은 포 천에 있는 운보원이라는 곳에 서 옵니다. 그 농아들을 데리 고 와 함께 예배 드리기 위하 여 포천까지 매주일 운전을 하는 교인이 있습니다. 그 아 이들이 우리 교회에 와서 예 배를 드리게 하기 위하여 매 주일 포천까지 두 번씩 왕복 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감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일날 교회에 나올 수 없는 중증 장애인에게 전도하 고 예배를 드리게 하기 위하 여 비디오를 사서 매주일 예 배와 설교를 녹화하는 교인도 있습니다. 주중에 장애인 시 설을 방문하여 목욕도 시켜주 고 말벗도 되어 주는 등 봉사 를 하는 여전도회원들과 청년 들도 있습니다. 그 밖에도 장 애인들을 위하여 수화를 배우 고 저들을 매주일 기쁜 마음 으로 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 다. 작년 청소년 수련회에 장 애를 가진 아이 하나가 참여 하였습니다. 그 아이 하나를 위하여 그 아이를 돌보는 교 사가 함께 그 수련회 참석하 였습니다. 그 아이를 돌보아 주고 살펴 주기 위하여서였습 니다.
저는 단언할 수 있습니 다. 그것이 바로 주님을 위하 여 십자가를 지는 삶이며 그 와 같은 정신을 가지고 살아 가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반드 시 구레네 사람 시몬이 받았 던 그 놀라운 축복을 주실 것 이라고 저는 믿어 의심치 않 습니다.
우리는 지금 성전을 건축 중에 있습니다. 거의 2년에 가까운 공사가 다 끝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사 말기 에 IMF와 같은 어려운 일을 만나 몇 년 전에 하였던 건축 헌금만으로는 공사를 끝낼 수 가 없어서 다음 주일에 한 번 더 건축을 위하여 헌금을 작 정하기로 하였습니다. 경제적 으로 가장 힘들고 여려운 때 건축 헌금을 또 다시 작정하 게 되어 교회를 담임하고 있 는 목사로서도 얼마나 마음에 부담이 되는지 모릅니다. 너 무 큰 부담을 가지고 시험에 들지 마시고 형편에 따라 감 당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난 주중에 저희 교회에 등록한지 몇 년 안되는 젊은 집사님 가정과 함께 식사를 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집사님은 식사중에 건축 헌금 작정에 대하여 말씀을 하였습 니다. 자신들의 가정은 얼마 를 작정해야 하는 가를 결정 할 때 생각하였던 것을 이야 기해 주었습니다.
자신은 우리 교회의 건축 총 비용을 120억원으로 생각 한다 하였습니다. 우리 교회 장년 출석을 줄 잡아 2천명이 라고 볼 때 그 비용은 장년 일인당 600만원을 헌금해야만 감당할 수 있다고 보았고 때 문에 자신의 가정은 장년이 둘 이니까 1,200만원 헌금을 하여야 한다고 계산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 는 청년들이 많으니까 그보다 는 조금 더 부담을 하여야 자 기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는 이야기를 저에 게 해 주었습니다.
그 계산은 사실은 좀 과 하게 한 것이었습니다. 꼭 그 렇게 하지 않으셔도 얼마든지 우리 교회는 완공될 수 있습 니다. 그러나 제가 감사하게 생각한 것은 헌금 액수가 아 니었습니다. 교회를 건축할 때 자기 몫을 나름대로 계산 하고 평균의 몫을 감당할 수 없는 청년들 까지 생각해서 그 몫까지 책임지려고 하는 마음이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그는 큰 사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직장에서 월급 을 받고 생활하는 지극히 평 범한 분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을 위하 여 자기 몫의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과 정 신을 가지고 살아 갈 때 하나 님은 틀림없이 오늘 우리가 생각한 축복을 주실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와 같은 마음과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 는 사람의 자녀는 누구의 자 녀라 불리우는 복을 받게 될 것이고 그와 같은 마음과 정 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결국 후에 누구의 아비 누구 의 어미라 불리우는 축복을 받게 될 줄로 저는 믿어 의심 치 않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 드린 누구의 부모 가 되며 누구의 자녀가 되는 복을 사모하실 수 있기를 바 랍니다. 에서와 같이 하나님 의 축복을 경홀히 여기는 어 리석은 사람이 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하여 나 름대로 여러분의 십자가를 감 당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감당할 수 없는 십 자가를 시기하는 마음으로 욕 심내실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는 십자가를 감당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정신으로 살 아가려고 힘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억지로라도 주님의 십자가를 지려고 하시기를 바 랍니다. 그러면 구레네 사람 시몬과 같은 복을 받게 될 것 입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십자가를 감당해 보시 기를 바랍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보다 더 큰 축복을 받게 되실 것입니다. 우리 동안 교 회 교우들중에 그와 같은 복 을 받는 사람들이 많아 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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