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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4:25-31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 김동호 목사

by 【고동엽】 2021.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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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요한복음 14:25-31

 

 

 

수학문제를 풀 때 정확한 답을 내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은 식을 바로 찾는 것입니다. 바른 식을 찾지 못한다면 바른 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식을 적용하여 바른 답을 얻을 수는 없습 니다.

 

여행을 할 때 목적지에 정확하게 도달하기 위하여서는 바른 길을 찾 아야만 합니다. 길을 바로 찾지 못 하고 목적지에 정확하게 도착할 수 는 없기 때문입니다. 수학 문제를 풀 때에 중요한 것은 정확한 식을 찾는 것이고 여행할 때 중요한 것은 바른 길을 찾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생의 중요한 문제를 정확하게 풀어 나가고 목적한 바들을 정확하게 성 취해 나가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 은 삶의 바른 식과 옳은 길을 찾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양의 선조들은 철학을 하였습니 다. 철학의 궁극적인 관심은 진리이 었습니다. 진리란 삶의 바른 이치를 의미하는 것으로 철학은 바로 그 삶 의 이치와 식을 찾는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양의 선조들이 철학을 할 때 동양의 선조들은 도를 닦았습니다. 사람이 마땅히 가야할 길이 있다고 저들은 생각하였고 그 길을 찾아야만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요즘 우리는 IMF의 실패를 겪고 있습니다. 그것은 분명한 실패입니 다. 우리가 이와 같은 실패를 겪게 된 것은 그동안 세워왔던 식이 틀렸 기 때문이고 그동안 우리가 걸어왔 던 길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러므로 IMF의 문제를 극복하려고 하면 그 잘못된 식과 길을 바꾸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잘 모릅니다. 거기까지 깊이 생각들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IMF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정부가 내어놓은 방안은 '구조조정' 이라는 것입니다. 잘못된 구조 때문 에 이와 같은 실패가 왔다고 보기 때문에 그 잘못된 구조를 조정해야 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다고 생각 한 것입니다.

 

옳은 이야기입니다. 구조를 조정 해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구조를 조정하는 방 법에 관한 것입니다. 정부는 구조조 정을 물리적인 방법으로 감행하려고 만 생각하고 있는 듯 싶습니다. 물 론 그와 같은 방법에 의한 구조조종 도 당분간은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근본적인 문제의 해 결이 될 수 없습니다. 구조를 조정 하려면 구조가 그렇게 잘못되게 된 근본을 찾아서 거기서부터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만 합니다.

 

IMF와 같은 실패가 오게 된 까 닭은 구조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 다. 그런데 그와 같은 구조가 잘못 되게 된 것은 우리들의 생각하고 사 는 식이 틀렸기 때문입니다. 사고방 식과 사는 식이 틀렸기 때문에 구조 가 잘못되게 된 것이고 그 구조가 잘못 되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잘 못된 답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 런데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식을 바 꾸려고 하지 아니하고 구조만 물리 적인 방법으로 조정하려 하고 있습 니다. 그것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방법이 아닙니다. 구조를 조정하기 이전에 먼저 생각하고 사는 식을 바 꾸어야만 합니다. 우리들의 문제는 사는 식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속담에 모로가도 서울 만 가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리고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중에 꿩 잡는게 매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리 고 또 같은 맥락의 말씀으로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는 말이 있습 니다. 모두가 다 식과 과정은 좀 잘 못 되어도 답과 결과만 좋으면 좋은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위험한 발상 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로가도 서 울만 가면 된다라고 이야기하지만 모로가면 절대로 서울을 갈 수 없습 니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면 된다고 하지만 개처럼 번 사람이 정 승처럼 쓰는 예를 저는 본적이 없고 혹 있다고 하여도 그 때문에 개처럼 번 것이 합리화 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혹 식이 틀려도 답만 맞으면 된다고들 이야기 하지만 식 이 틀리면 답도 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혹 어쩌다 실수로 식이 틀렸는데도 답이 맞는 수가 있기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 다고 거기다가 인생을 걸 수는 없습 니다. 그것은 만에 하나 맞는 것이 지 늘 맞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 다. 틀린 답을 고치려면 식을 고쳐 야만 합니다. 그것이 가장 빠른 길 이요 법입니다. 그리고 가장 정확한 방법입니다.

 

고속도로를 운전할 때 내가 가는 방향은 꽉 막혀서 요지부동인데 반 대편 방향은 길이 뻥 뚫려서 시속 100Km로 쌩쌩 달리는 것을 볼 때 가 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길을 바꾸지 않습니다. 빨리 달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목적을 향하여 바르게 달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 입니다.

 

그런데 인생에 있어서는 종종 우 리는 엉뚱한 실수를 합니다. 사탄에 게 아주 우습게 속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사망 으로 인도하는 문은 넓다고 하셨습 니다. 다시 말해서 생명으로 인도하 는 길은 시속 10km도 안되는데 반 대편 사망으로 인도하는 길은 100km의 속도로 달리고 있다는 뜻 입니다. 사탄은 우리들에게 그 길이 어디로 가는 길인가는 이야기하지 아니하고 그 길이 넓은가 좁은가만 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답답하게 그 길로 가지 말고 이 넓은 길로 가 라고 우리들을 유혹합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것은 세상 의 많은 사람들이 그 당치도 않는 시험과 유혹에 너무 잘 넘어가고 있 다는 사실입니다. 뻥 뚫린 길만을 바라보며 자신의 삶의 목적은 잊어 버린채 길을 바꾼다는 것입니다. 식 을 바꾼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주 신나게 달린다는 것입니다.

 

100km의 속도로 달릴 수 있습니 다. 막히는 것도 없습니다. 답답한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길을 틀 린 길이기 때문에 아무리 빨리 달려 도 우리의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습 니다.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 입니다. 길이 잘못되었으면 빨리 달 려도 아무 소용없습니다. 빨리 달리 면 달릴수록 잘못되는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 우리 보기에는 답답하게 보여도 느리게 보여도 바른 길로 가 야만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당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입니다. 예수님의 말 씀이 우리의 삶의 식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 길로 가지 않습니 다. 그 식대로 살지 않습니다. 하나 님을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이 그라 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정말로 안타까운 것은 예수를 믿는다고 교 회에 다니는 우리들까지도 그 식대 로 살지 아니하고 그 길대로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동안 우리는 제법 잘 달려 왔 습니다. 넓은 길로 그리고 빠른 길 로 달려 왔습니다. 그러나 결국 우 리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길을 잘 못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식을 잘못 세웠기 때문입니다. 모로가도 서울 만 가면 된다고 하였는데 결국 모로 가다가 엉뚱한데로 가게 되고 말았 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식을 바꾸어야만 합니다. 길을 바꾸 어야만 합니다.

 

그 일을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 이 앞장서서 해야만 합니다. 잘못된 식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식을 내세 워야만 합니다. 잘못된 길을 거부하 고 하나님의 길을 제시하여야만 합 니다. 악인의 꾀를 좇아 사는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사는 삶을 고집하여야만 합니다.

 

 

 

93년도에 코스타 집회를 인도하 기 위하여 미국 시카고에 있는 위튼 칼리지 (Wheaton college)에 갔었습 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캠퍼스를 산책하다가 Science hall이라고 이 름 붙여진 건물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건물 벽에 골로새서 1:17 절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By Him all things consist"

 

저는 그 말씀을 읽는 순간 얼마나 큰 감 동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과학의 기 초를 신앙위에 놓겠다는 세상에 대 한 선전포고와 같은 강력한 말씀이 었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읽으면서 아 이 대학이 참으로 하나님의 대학 이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 다. 순간 저는 하나님께 간절한 마 음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이런 대학이 우리 한국에도 하나 있 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대학을 우리 한국에도 하나 허락해 주시옵 소서 ...'

 

95년도에 포항에서도 외딴곳에 떨어져 있는 흥해읍이라고 하는 곳 에 한동대학교가 세워졌습니다. 학 교를 개교하기도 전에 학교를 세우 던 재단이 부도가 나서 학교는 재단 이 없는 학교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 니다. 그런데도 참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개교도 하기전에 부 도가 난 지방대학에 누가 오겠는가 라고 생각하겠지만 95년도에 신입생 을 뽑았을 때 경쟁률은 12대 1에 달 했으며 저들의 입학 성적은 서울의 명문대 수준과 차이가 없었습니다. 놀라운 일은 서울대에 합격을 하고 서도 서울대를 포기하고 한동대에 입학을 하는 학생들도 있었다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주 좋은 교수들도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에 이 미 좋은 대학의 교수로 자리를 잡은 분들도 그 좋은 자리를 포기하고 부 도난 지방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것 입니다. 그렇게 좋은 교수들과 학생 들을 끌어 드린 한동대의 매력이 무 엇인지 여러분 아십니까? 그것은 한 동대가 개교부터 내세운 학교의 모 토이었습니다. 그 모토는 '하나님의 식과 방법으로 하나님의 인재를 양 성하는 하나님의 대학'이라는 것이 었습니다. '하나님의 식으로 하나님 의 사람들을 양성하는 하나님의 대 학'이라는 말이 그렇게 사람들을 끌 었던 것입니다.

 

95년도에 허허 벌판에 세워진 한 동대학은 96년부터 교육개혁 우수대 학으로 뽑히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리고 97년도에 이어 98년 올해까지 3년을 연속해서 교육개혁 우수대학 으로 선정되었고 올해는 최우수 대 학으로까지 선정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근사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 니다. 자연 학교는 학교를 홍보할 때 그와같은 사실을 집중적으로 홍 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번 한동대학교에서 발행하는 한동신 문에는 학교 홍보에 대하여 의의를 제기하는 글이 실렸습니다. 그것은 한동대 학생이 쓴 글이었는데 한동 대학교가 교육개혁 우수대학으로 연 속해서 선정되는 것은 감사한 일이 요 자랑스러운 일임에 틀림이 없으 나 학교를 홍보할 때 그것을 가장 강조해서 홍보하는 일은 옳지 않다 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한동대에 지원을 하게 된 동기는 한동대가 교육개혁 우수 대학이기 때문이 아니었다는 것입니 다. 자신들이 한동대에 지원을 하게 된 동기는 한동대가 '하나님의 식과 방식으로 하나님의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이라는데 있었음으로 학교를 홍보할 때에도 교육개혁 우수대학을 제 1번으로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의 식과 방법으로 하나님의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이라는 점을 계속 1 번으로 홍보를 하는 것이 옳다는 것 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래야만 계속 해서 좋은 인재들을 뽑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기사를 읽으면서 얼마나 마음이 뜨거웠는지 모릅니다. 이땅 에 그와같은 젊은이들이 있다는 사 실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올 가을 학기부터 월요일마다 한동 대 강의를 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크리스천 베이직이라는 과목으로 강 의를 하는데 300명이 좀 넘은 학생 들이 강의를 듣고 있으며 더 감사한 것은 10명이 넘는 교수님들이 강의 에 들어와 함께 강의를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기본적인 진리들을 공부 하면서 하나님의 식의 기초와 원칙 을 세우고 그 기초와 원칙을 기본으 로 하여 교수님들이 자신의 전공과 신앙을 접목하여 보다 구체적인 하 나님의 식을 세우게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식을 학생들에게 가르치 고 학생들로 하여금 그와같은 삶을 세상에 나가 살게 한다면 지금 보다 좋은 세상을 허락해 주시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예수님의 식을 믿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 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 로 살기는 세상 식으로 산다면 그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 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 다. 예수님은 입으로 주여 주여 하 는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 니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지금 세상은 하나님의 식을 버리고 자기 소견에 좋은대로 움직여져가고 있습 니다. 답답하고 느린 길을 외면하고 넓고 빠른 길을 달리기 때문에 편안 하기는 하지만 목적했던 목적을 이 룰 수는 없음으로 참 마음의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하여 당 신이 아버지께로 가신 후 보혜사 성 령이 우리에게 오실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보혜사 성령이 오시면 그 가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실 것 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보 혜사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식과 법을 배우게 될 때 우리에게 평안이 주어질 것인데 그것은 세상 이 주는 것과 같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세상의 식으로는 평안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식으로만 평안 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어떤 식으로 삶의 문제를 풀어 가고 계십니까? 여러분들은 지금 어 느 길로 달려가고 계십니까? 예수님 이 길이십니다. 예수님이 식이십니 다. 예수님이 법이십니다. 예수님이 수이십니다. 길이 틀리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식과 법이 틀 리면 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수가 틀리면 이길 수 없습니다.

 

구조를 조정하는 것만으로는 오 늘 우리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 니다. 식을 바꾸어야만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IMF의 문 제도 마찬가지요 여러분 자신의 문 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식 과 방법이 우리 보기에는 답답해 보 여도 어리석어 보여도 그 식과 방법 이 옳은 식과 방법입니다.

 

참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 이 주시는 평안의 복을 누리시기를 원하신다면 식을 바꾸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고 방식을 바꾸시고 사 는 식을 바꾸실 수 있기를 바랍니 다. 그리할 때 정말 하나님이 주시 는 참 평강의 복을 받게 될 줄 믿습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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