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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 감사하라(삿 4:12-16 ) / 지용수 목사

by 【고동엽】 2021. 11. 26.
주님께 감사하라
사사기 4:12-16


6.25사변 때 있었던 일입니다.


한 어린아이가 아버지와 함께 끌려가서 나무에 묶였습니다. 인민군들이 끌고 온 사람들을 나무에 묶어 놓고 한 사람 한 사람 차례로 죽였습니다. 이제 어린아이가 총살당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때 한 인민군이 그 아이를 죽이려는 인민군의 손에 돈을 쥐어주면서 말했습니다.


“저 아이는 내가 더 조사한 후 죽이겠으니 저 아이를 내게 맡기시오.”


그러자 아이를 죽이려던 인민군이 돈을 받고 아이를 넘겨주었습니다.


돈을 건네 준 인민군이 아이의 손을 잡고 산등성이를 넘더니 말했습니다.


“얘야, 빨리 도망가라.”


“아저씨는 누구세요? 왜 저를 살려 주시는 거예요?”


“나는 이러 이러한 사람인데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너를 살려 주는 것이 아니다. 어린 네가 총살당하는 것이 불쌍해서 살려 주는 것이니 어서 도망가거라.”


아이는 그 자리에서 도망쳐 남한으로 왔습니다. 그 어린아이가 지금 우리 나라 굴지 기업의 회장입니다. 그 기업의 이름을 말하면 여러분도 다 아실 것입니다.


그분이 지금도 인터넷은 물론 각 방면으로 자기를 살려 준 생명의 은인을 찾고 있습니다. 생명의 은인을 찾기만 하면 정성을 다해 은혜를 갚으려고 하는데 아직까지 찾지 못해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그 인민군 아저씨가 아니었으면 벌써 이 세상에서 없어졌을 텐데 그분 때문에 살았으니 그 회장님은 그분이 얼마나 고맙겠습니까?


그 회장님뿐이 아닙니다. 여러분과 저도 인생의 발자취를 돌이켜보면 고마운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에게 고맙게 해 주신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복이 없는 사람은 자신에게 은혜를 끼친 사람은 다 잊어버리고 자신을 해치고 배신한 사람, 자신에게 손해를 끼친 사람만 기억하고 이를 갈면서 복수합니다. 그러나 복 있는 사람은 내게 섭섭하게 하고 잘못한 사람은 잊어버리고 고맙게 해 준 사람을 기억하여 은혜를 갚으며 살아갑니다.


스피로스 제임스 하데스는 말했습니다.


“모든 상황에 감사하는 것은 상황을 밝게 하고 이기는 비결이다.”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 있어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그 상황이 밝아지고 그 상황을 이기게 될 줄로 믿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제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오늘의 모습을 생각하면 하나님이 너무 고맙습니다. 또 제 과거를 돌아보면 고마우신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우선은 가장 고마우신 분이 부모님일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핏덩이로 태어났는데,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으로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한이 없습니다. 제가 이번에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도 가장 기뻐하신 분은 여러분이 아니라 제 어머니이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제가 좋아하는 빵과 떡을 해 놓고 기다리셨습니다. 연세가 80이 되셨어도 자식을 위해 바치는 사랑을 어떻게 측량할 길이 없습니다.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우리가 아버지 어머니의 은혜를 아무리 갚으려 해도 갚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 아내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제가 행복하고 기쁘게 목회를 하지만, 목회 생활이 쉽지만은 않아 때로는 울 때도 있습니다. 이번에 미국에 가서 두 달 동안 많이 울었습니다. 한번은 설교 전에 찬송하다가 자꾸 울음이 나오는 바람에 설교를 하지 못할 뻔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울지 않을 수 없는 일들이 있는 것입니다.


열한 명의 교인을 섬기면서 목회를 하시는 한 목사님이 너무 힘들고 어렵게 목회를 하셨나 봅니다. 그 열한 명의 교인 중에도 목사님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었나 봅니다. 하루는 “뻐꾹 뻐꾹”하고 처량하게 우는 뻐꾸기의 소리를 들은 목사님이 “뻐꾸기야, 뻐꾸기야, 너는 목회도 안 하는데 왜 그렇게 우니?”라고 했답니다. 또 시커멓게 썩은 고목을 보고는 “고목 나무야, 고목 나무야. 너는 목회도 안 하는데 왜 그리 속이 썩었니?”라고 했답니다.


목회를 하다 보면 힘든 일도 있는데, 제 아내가 도망도 안 하고 가출도 안 하고 이렇게 살아 주는 것이 고맙습니다.


제가 미국에 있는 동안 좋은 집에서 살았을 것이라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지만, 교회에 임시로 방 한 칸을 넣어놓고 거기에서 살았습니다. 화장실 바로 앞에 두 평도 안 되는 방을 임시로 마련해 놓고 사니 냄새도 나고, 또 제 아내가 교회 살림을 사느라 고생을 참 많이 했습니다. 제가 남편으로 아내에게 퍽 미안해서 “여보, 미안하오.”라고 했더니, 아내가 “하나님 일이라면 머슴살이를 해도 감사할 뿐이지요.”라는 예쁜 말을 했습니다.


어쨌든 아내도 참 고맙습니다.


또 귀한 우리 장로님들도 고맙습니다. 세계 어느 교회를 가 보아도 우리 장로님들처럼 귀한 분들은 없었습니다.


여러분도 모두 귀하고 고맙습니다.


또 저는 황보 선생님을 잊지 못합니다. 저희 집이 가난해서 제가 상급 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있었을 때 선생님이 저희 아버지를 여섯 번 일곱 번 찾아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용수 아버지, 용수는 공부를 해야 될 아이입니다. 용수는 상급 학교에 진학해야 됩니다.”


“선생님, 압니다. 하지만 먹고사는 것이 바쁜데 어떻게 상급 학교에 보냅니까?”


“그래도 보내야 합니다. 용수는 보통 아이가 아닙니다.”


선생님께서 여섯 번 일곱 번 저희 아버지를 찾아오셔서 우시며 사정하시니, 결국 아버지께서 설득을 당하시어 저를 진학시키셨습니다. 그때 진학하지 않았으면 지금 저는 머슴살이를 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황보 선생님의 은혜를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또 저는 태재 형도 잊지 못합니다. 저보다 열 살이 많은 고향 마을의 형인 태재 형이 저를 얼마나 사랑해 주었는지 모릅니다. 저는 책상 앞에는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즐거운데, 그 외의 일은 잘하지 못합니다. 특별히 소 풀을 베는 일은 왜 그렇게 힘드는지, 풀은 잘 베이지 않고 자꾸 제 손만 베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태재 형이 “야, 너는 소 풀을 하지 말고 나만 따라 다녀.”라고 하더니, 자기 소 풀을 한 다음에 풀을 척척 베어서 제 다래끼에 넣어 주었습니다. 형이 세 줌만 베어 주면 제 다래끼에 풀이 가득 찼습니다. 제게 그렇게 고맙게 해 주신 형이 지금 농사를 짓고 계시는데, 이번 태풍에 피해를 보았을 것 같습니다. 정말 고마운 형이라 제가 미국에서도 전화를 했습니다.


또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니지 못했을 때 제 짝인 권오연이가 하얀 쌀밥 도시락을 두 개씩 싸 갖고 와서 한 개는 자기가 먹고 한 개는 저를 주었습니다. 그때 저희 집은 보리밥도 제대로 먹지 못할 때인데 하얀 쌀밥을 싸 가지고 와서 저를 주었습니다. 저는 부끄럽기도 하고 자존심도 상했지만 고맙게 그것을 받아 먹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친구를 잊고 살았습니다.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혹 오연이가 이 설교를 들을지 모르겠습니다.


“오연아, 이 설교를 듣는다면 연락해라.”


오연이와 연락이 된다면 제가 대접을 잘 할 것입니다. 권오연, 참 고마운 친구입니다.


이렇게 주마등같이 스쳐가는 고마운 분들이 참 많습니다.


여러분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감사할 대상은 역시 하나님이십니다.


허물과 죄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외동아들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시고, 그 아들을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게 하시어 우리 죄를 사하시고, 마구간 같은 우리 가슴에 성령을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만 입이 있어도 다 감사하지 못합니다. 또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고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목사가 된 다음에도 해서 안 될 일을 하고, 품어서 안 될 생각을 품고 잘못을 많이 했는데도 다 용서하시고, 계속 새롭게 하시고 써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어찌 다 갚을 수 있습니까?


성경을 읽을 때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커서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큽니다. 성경 한 절 한 절마다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합니다.


그 은혜를 우리가 다 갚을 수 없고 다 찬송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을 제가 두 주 동안 계속해서 읽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니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가나안 왕 야빈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정복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일본 사람들의 압제 아래 36년간 고생했듯이, 이스라엘 백성도 가나안 왕 야빈의 압제 아래 20년간 한숨을 쉬면서 고생의 떡과 물을 먹고 마시며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유가 없었습니다. 애써 농사를 지어도 다 빼앗겼습니다. 가축을 길러 놓아도 좋은 가축은 다 빼앗겼습니다. 무기가 없어서 군사 훈련도 시키지 못했습니다. 나라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드보라를 비롯한 뜻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회개하며 하나님을 향해 소리쳐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바락을 세우시어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에서 군사 일만 명을 뽑게 하시고, 그 일만 명의 군사를 통하여 야빈 왕의 엄청난 군대를 쓸어버리셨습니다.


야빈 왕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 나라의 가장 큰 무기인 철병거(탱크) 900대와 온 군사를 기손강으로 유인하여 다 쓸어버리셨습니다. 사사기 5장 4절에 보면 하늘의 구름이 비가 되어 내려오고, 사사기 5장 5절에 보면 지진이 일어나서 그들을 흔들어버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사사기 5장 21절에 보면 강물이 갑자기 불어나서 그들을 휩쓸어 버렸습니다. 철병거에는 구멍이 뚫려 있어 사람이 그 안에 숨어서 화살을 쏘아 적을 쓰러뜨리는데, 강물이 불어나 철병거에 물이 가득하니 그 안에 있는 사람이 그냥 죽었습니다. 또 그 병거에서 뛰쳐나와 보았자 물결에 휩쓸려서 죽었습니다. 그러니 모든 군사와 말이 휩쓸려 청소를 당했습니다. 수영을 잘 해서 강 위로 올라온 사람은 일만 명의 이스라엘 군사가 다 쳐죽였습니다.


그래서 야빈 왕의 그 많은 군사는 삽시간에 전멸을 당하고 이스라엘은 회복되었습니다.


본문을 보아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사랑이 한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망했는데도 하나님께서는 떠나지 않으시고 고생하는 그들을 보고 계셨습니다.


자녀가 혹 실수해서 감옥에 가도 부모의 마음은 그 감옥에 가 있습니다. 아들이 군에 가 있으면 그 부모의 마음도 군에 가 있습니다. 아들이 이탈리아에 가 있으면 부모의 마음도 이탈리아에 가 있고, 아들이 감옥에 가 있으면 부모의 마음도 감옥에 가 있는 것입니다.


자식이 이렇게 살든 저렇게 살든 부모는 그 자식을 잊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순종하며 복되게 살 때만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방탕하게 살고 막 살아도, 하나님의 진노의 자리 하나님께 채찍 맞을 자리에 있어도 우리를 떠나지 못하시고 거기에 함께 계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못하십니다. 한 번 택하신 사람은 버리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도 한 번 택한 사람은 잘 버리지 않습니다.


저도 직원을 한 번 택하면 더 좋은 길이 있어서 나가기 전까지는 끝까지 함께 일합니다. 잘못하면 고치고 바로 잡아 주지, 그만 두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셔서 한 번 택하신 사람은 버리지 않으십니다.


우리 인생 길에 하나님께서 늘 함께 계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주 전, 한 가게에 갔다가 은혜로운 그림이 눈에 띄어서 사 가지고 왔습니다. 바로 이 그림입니다. 이 그림의 내용은 세계인에게 알려진 감동 깊은 이야기로 한 분이 꿈속에서 체험한 신비로운 사건의 간증입니다.


하늘에서 빛이 내려와 자신의 일생을 비추어 주는데, 그 일생이 해변을 걷고 있는 장면으로 나타났습니다. 인생의 여러 장면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모든 장면마다 자기 혼자 걷는데 발자국은 언제나 두 사람의 것이었습니다.


‘이상하다. 나 혼자 걸어왔는데 왜 두 사람의 발자국이 있지?’


그때 주님께서 가까이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아이야(어른이지만 주님께서는 아이라고 부르셨습니다.), 한 발자국은 내 것이다. 내가 항상 너랑 함께 걸어왔다. 나는 너를 떠나지 않는다.”


그는 너무 기뻐서 “아! 하나님께서 항상 나와 함께 하셨구나. 주님께서 나와 함께 걸어오셨구나.”하며 흥분합니다.


또 다른 장면이 나타납니다. 신비로운 빛이 해변을 걷는 자신의 모습을 계속해서 비추어 주는데, 그의 인생에서 가장 힘이 없고 가장 슬프고 가장 고통스러울 때의 장면이 보입니다. 얼마나 슬프고 얼마나 고통스러운 모습인지…. 그런데 뒤에 나타난 발자국이 한 사람 것뿐입니다. 이제까지는 언제나 두 사람의 발자국이 나타났는데, 한 사람의 발자국밖에 없는 것을 보고 그가 주님께 따집니다.


“저는 당신을 이해 못 해요(I don't understand you). 저는 당신을 이해 못 해요. 절 버리지 않고 항상 저와 함께 걸어가신다고 약속하시고선 제가 가장 힘들고 슬프고 어려울 때는 왜 저를 떠나셨어요? 왜 약속을 깨셨어요? 저는 이해 못 해요. 제가 당신을 가장 필요로 할 때 당신은 저를 버리셨군요.”


그때 주님께서 또 말씀하십니다.


영어 그대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둘도 없는, 하나뿐인 나의 아이야, 나는 변함없이 너를 사랑한단다(My precious child, I love you). 나는 너를 떠나지 않아. 네가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도 나는 너를 떠나지 않았어. 다시 보렴. 그 발자국이 누구의 발자국인지. 네가 너무 힘들어할 때는 내가 너를 내 가슴에 안고 옮겼기(carry) 때문에 발자국이 하나뿐이란다. 그 발자국은 네 발자국이 아니라 내 발자국이야."


그는 그 발자국을 다시 봅니다. 자기 발자국이 아니라 주님의 발자국입니다. 보통 때는 주님께서 그와 함께 걸으셨는데 그가 너무 힘들어 할 때, 지쳐 있을 때는 주님께서 그를 안고 걸으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이 그림을 보고, 모래 위의 발자국, 주님의 발자국을 보고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의롭게 살고 거룩하게 살 때도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방탕할 때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때도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지켜보십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는 끝까지 그냥 지켜만 보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에게 다시 기회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왕 야빈의 말발굽 아래에서, 철병거의 세력 앞에서 20년간 고통 당하는 자기 백성을 끝까지 그냥 보고 계시지만 않고 다시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늘의 별들을 움직이시고 지진을 일으키시고 홍수를 일으키시고, 바락 장군에게 용기를 주시고 일만 명의 군사에게 힘을 주셔서 가나안 군사를 치게 하심으로 다시 자유를 주셨습니다.


따라 합시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기회를 주신다.”


여러분과 제가 힘들고 어려울 때도 우리 하나님께서는 함께 하시지만, 어려운 대로 끝까지 두지 않으시고 다시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에 짓눌려 살 때도 함께 하시지만, 항상 짓눌려 살지 않게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시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희 가정에도 기회를 주지 않으셨으면 오늘의 저희 가정은 없었습니다.


제가 결혼하고 11년 동안 아내랑 많이 다투었습니다. 그러다 결혼한 지 11년째 되던 해에는 이혼을 하기로 아내와 합의를 보았습니다. 위자료는 줄 것도 없어서 아이들 문제만 해결하면 되었습니다. 큰애와 둘째는 제가 데리고 살고, 막내는 아내가 데리고 살기로 결정했습니다. 모든 것을 끝내고 이혼 도장만 찍으면 되는 상황이었는데 하나님께서 다시 기회를 주셔서 오늘의 저희 가정이 있는 것입니다.


고등학교 때 공부를 꽤 잘 한 우리 교회의 한 학생은 서울대학교 하위권 학과에 지원했는데 불합격했습니다. 자기 딴에는 공부를 잘 한다고 생각했는데 상위권 학과도 아닌 하위권 학과에 떨어졌을 때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는지 모든 것을 끝내고 싶더랍니다. 그래서 가출하려고 했답니다. 그러나 고요히 기도하다가 깨달았답니다.


‘아! 내가 주일에도 공부했구나. 공부도 일인데 주일에 공부했구나.’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결심했답니다.


‘하나님, 또 대학 입학 시험에 떨어져도 이제 주일에는 공부하지 않겠습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겠습니다.“


그 후로 주일에는 예배드리고 성경을 읽고 푹 쉬고, 월, 화, 수, 목, 금, 토요일에는 열심히 공부했답니다. 그 다음 해에 하나님께서 그 아이를 서울대학교 상위권 학과에 수석으로 합격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학생은 학교에서 장학금을 주어도 받지 않고 자기다 형편이 더 어려운 학생에게 양보한답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런 착한 마음을 갖고 공부하는 그 학생이 지난 학기에 전 과목 다 A+를 받았답니다. 서울대학교 교수님들은 A학점은 주어도 A+학점은 잘 주지 않는다고 하는데, 전 과목 다 A+를 받았으니 아마 서울대학교에서 전체 수석을 했을 것입니다.


하위권 학과 입학 시험에 떨어진 학생을 수석하도록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우리 자녀들에게도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베드로가 밤새도록 물고기를 잡았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해 낙심해 있을 때,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네 그물을 던져라.”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니 물고기가 그물에 가득 찼습니다. 할렐루야!


오늘 여러분 중에 의욕을 잃은 분, 희망을 잃은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가정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떤 일에 짓눌려 있는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그래도 우리 주님께서는 여러분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다시 일어나는 이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바락의 앞에서 싸우십니다. 바락과 일만 명의 군사가 싸우기 전에 앞에서 지진으로, 물로, 홍수로 적들을 쓰러뜨려 버리십니다.


하나님의 칼이 홍수고, 하나님의 칼이 지진이고, 하나님의 칼이 천재지변입니다. 하나님의 칼이 적들을 엎어버리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 앞에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여러분과 저의 적을 앞에서 막아 주십니다. 제거해 주십니다. 얼마나 고맙습니까?


지뢰 탐지반이 군인들이 오기 전에 지뢰를 제거하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 앞에서 우리를 해치려는 지뢰와 함정을 발견하시고 제거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한 걸음 한 걸음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면 우리는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만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따라 합시다.


“하나님을 거스르지 말자.”


하나님을 거스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마가복음 5장에 보면, 거라사인 지방에 귀신들린 한 사람이 있습니다. 쇠사슬도 물어뜯는 그를 아무도 제어하지 못하는데, 그는 소리소리 지르고 날카로운 돌로 자기 몸을 찍어 피를 흘리며 무덤에서 삽니다.


얼마나 무섭습니까? 자기 몸을 어떻게 돌로 찍습니까? 그러니 미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이 자기 몸을 찍습니다.


술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망하게 하는지 모릅니다. 술을 마시면 머리가 나빠지고 몸이 상하는데도 많은 사람이 밤마다 술의 돌로 자기를 찍습니다. 낮에도 술을 마시며 자기를 찍습니다. 또 담배는 건강에 얼마나 해롭습니까?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보다 폐암에 걸리는 확률이 18배 더 높은데도 사람들이 담배로 자기 몸을 찍습니다. 자기 폐를 자기가 찍고 있는 것입니다. 또 마약을 하면 자기 몸을 다 찍어 없애는 것인데 마약의 돌로 자기를 찍습니다. 간음하고 음란을 행하고 죄를 짓는 것은 자기 가정을 찍는 것인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간음의 날카로운 돌로 자기 아내, 자기 자녀, 자기 가정을 찍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다 귀신의 짓이고 미친 짓입니다.


왜 그런 돌로 자기 몸을 찍고 자기 가정을 찍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말씀하십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


술이나 담배나 마약이나 죄나 다 우리를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풍성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 거역해서는 안 됩니다.


남편에게 거역하는 아내가 똑똑한 여자가 아닙니다. 남편에게 복종하는 아내가 복 있는 여자입니다. 부모님께 거역하는 자식이 잘난 인간이 아닙니다. 부모님께 순종하는 자녀가 복 있는 자녀입니다. 선생님께 바락바락 대들고 대꾸하는 학생이 좋은 학생이 아닙니다. 선생님을 존경하고 선생님께 순종하는 학생이 좋은 제자입니다.


거스르면 좋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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