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가지 양심, 깨끗한 양심 딤전1:19 스크랩
양심의 타락과정의 단계로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어떤식으로 타락하게 되는가요?
자신 속에서 깨끗한 양심을 잃어버리면
그 사람은 타락하기 시작합니다.
사람의 양심에 더러운 것들이 들어오기 시작해서
그가 가졌던 '깨끗한 양심'을 잃어버리고
양심의 오염된 부분이 깨끗한 부분과 공존하는
'선한 양심'의 단계로 내려가게 됩니다....
그 다음으로 타락하게 되면 양심의 상태가 선한 양심에서
'찔림받은 양심'의 단계로 내려가게 됩니다....
1. 깨끗한 양심(a Pure Conscience)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시24:3-4)
2. 선한 양심(a Good Conscience)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딤전1:19).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벧전3:16)
3. 찔림 받은 양심(a Stricken Conscience)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요8:9)
4. 더러워진 양심(a Defiled Conscience)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딛1:15)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후7:1)
5. 악한 양심(an Evil Conscience)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10:22)
6. 화인 맞은 양심(a Sealed Conscience)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딤전4:1-2)
◈깨끗한 양심 롬2:14~15
http://www.backtogod.net 'A CLEAN CONSCIENCE'
by David Feddes (02.03.24) 읽고 편집. 지금은 휘발되었음.
▶양심의 역기능(자포자기)
수잔은 임신 중이었는데, 남편이 바람피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분노가 치밀어서 손쉬운 이혼을 유보하고,
먼저 남편에게 고통을 갚아줄 길을 모색했다.
남편이 아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녀는 임신 중의 아기를 고의로 낙태해버렸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 후로부터 그녀는 남편의 외도에 대한 분노보다는,
자신의 낙태에 대한 죄책감이 훨씬 더 무거워서 양심에 가책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녀는 자책감에 깊이 빠져들었다.
이번에는 두 번째 임신한 아이를 또 낙태했는데,
그것은 그녀 자신이 스스로에게 내린 형벌이었다.
첫 번째는 남편이 미워서 낙태했고, 이번에는 자신이 미워서 또 낙태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한 양심의 가책은 회개에 이른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포자기에 이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양심의 역기능이다.
자기 잘못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 회개하면 되는데,
도리어 자포자기하는 죄를 더 범한다(가룟 유다처럼).
차라리 양심이 없었더라면, 자포자기하지는 않았을 터인데....
양심이 있는데 그것이 역기능으로 작용해서
마음이 괴로운 나머지 더 파국으로 치달아 버리고 말았다.
철학자 붓지슈스키(J. Budziszewski)는 『양심의 복수』Revenge of Conscience에서
이 점을 지적했다; ‘양심은 순기능이 있지만 잘못하면 역기능에 빠질 수도 있다’고.
사람들은 대부분 양심을 순기능적으로만 생각해왔다.
양심은 죄를 깨닫게 하고 가급적 악한 일을 멀리 배척하는 역할을 한다고 믿어왔다.
이것이 원래 양심의 순기능이다.
그런데, 양심이 역기능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자기가 죄를 지으면, 양심의 가책을 받고 위축되거나 겸손해져야 당연한데,
도리어 역작용으로 폭력적으로 나타난다. 인간의 양심이 부패하면 순기능이 아니라
도리어 역기능을 발휘할 수도 있는 것이다.
◑(부패한) 양심은 연쇄적인 죄를 짓게 함
하나님은 인간에게 양심을 주셔서,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셨다.
사람이 죄를 짓고 나서 양심의 소리를 억누르고 애써 무시하려해도
양심의 정죄에서 자유롭기는 어렵다.
성경에도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롬 2:14-15)고 했다.
사람이 범죄하면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그런데 이 가책을 무마하고 죄 값을 치러서 양심을 달래기 위해
→ 결과적으로 더 큰 죄를 짓게 된다. 빚을 갚기 위해 더 큰 빚을 얻는 방식과 같다.
또한 양심의 가책은 →자기 죄를 “합리화”하는 방향으로 역작용을 할 수 있다.
죄를 짓고 나서 들키면, 그것을 죄로 인정치 아니하고
도리어 우리 가정/공동체/나라를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고 둘러대는 것이다.
그래서 한 가지 죄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눈 덩이처럼 커지게 된다.
▶1. 변명, 합리화
일례로 ‘성 혁명’을 생각해 보자.
양심과 하나님의 법은 성관계를 부부관계 내에서만 허락하셨다.
그러나 자신의 욕망으로 타락해서 자유로운 성관계를 가진 사람들은
양심의 찔림과 가책을 받게 된다. 그런데 이것이 역기능으로 작용하면
그것을 변명, 합리화하게 된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식만 안 했을 따름이지 결혼한 것과 다름없어요.”
오늘날 사람들은 사랑하는 감정만 생기면, 결혼의 테두리를 무시하고, 서로 거리낌 없이
성관계를 가진다, 청소년, 장년 가릴 것 없이. 그리고 양심의 가책이 생기면 둘러 댄다;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 요즘은 성 혁명의 시대니까...”
남들 다 하는 것은 -성경과 관계없이- 괜찮다고 생각한다.
▶2. 일관적으로 변명함.
사람이 범죄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한 번 변명하게 되면,
그것을 일관적으로 계속 변명하게 된다.
예를 들면, 아이가 부모 지갑에서 돈을 꺼내 사탕 사먹고 나서는,
처음에 부모가 용돈을 주기로 해놓고 주지 않아서 그랬다고 변명한다.
그래서 야단맞으면 계속 일관적으로 밀어 붙이는데,
자기에게 관심 가져주지 않아서, 사탕 사주기로 약속해놓고 지키지 않아서,
친구가 사탕 사먹는 것이 너무 부러워서... 자기가 한 번 변명한 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계속 일관적으로 변명하게 된다.
거짓말 같은 죄도 마찬가지다. 한 번 거짓말하면, 자기 거짓말을 정당화하기 위해
일관적으로 연쇄적인 다른 거짓말을 하게 된다. 남을 정죄할 때도 마찬가지다.
한 번 남을 정죄하면,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계속 일관적으로 다른 정죄 거리를
찾는 것이 사람의 연약성이다.
동성연애를 예로 들면, 그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하게 되면, 연쇄적으로 계속 정당성을
주장하게 되는데 그 결과 혼인 신고에 의한 법적 부부로 인정,
(아이를 입양해서) 법적 자녀 인정, 나중에는 교회에서 결혼식 허용,
동성연애 목회자 안수 요구까지 계속 발전하게 된다.
동성연애가 정당한데, 나머지 다른 것도 하자가 없다는 일관적인 논리를 편다.
▶3. 죄를 공개적으로 자랑함
낙태를 죄로 인정하고 회개하면 되는데, 사람들은 낙태를 찬성하는 시위집회를 가진다.
포르노를 회개하기보다, 언론 자유와 심의 과정 철폐를 요구하는 집회를 가진다.
동성연애를 공개적으로 자랑하며, 안락사를 찬양하는 글을 신문에 기고한다.
실제로 병원에 입원한 병든 노인을 빨리 편하게 주사 한 방으로 보내드릴 수도 있다.
요즘은 병원에서 장례식까지 하므로 잘 하면 수익은 더 생긴다.
사람의 양심이 부패하면 못할 짓이 없다.
그리고 그것을 수발하는 남은 가족을 돕는 일로 여긴다.(외국의 경우임)
“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롬 1:32).
▶4. 공범자와 연합함
헤롯과 빌라도는 과거 서로 적이었으나, 예수를 죽일 때 서로 친구가 되었다(눅 23:12).
술주정뱅이는 항상 술친구를 찾고, 10대 반항아들은 항상 몰려다닌다.
동성연애자들은 자기끼리 모임을 만들며 마약중독자들은 끊임없이 친구를 끌어들인다.
불공정한 상거래를 할 때도 담합한다. 교회에서도 대적하는 사람은 서로 당을 짓는다.
그러나 깨끗한 양심을 가진 사람은 ‘먼저’ 이런 악한 연합 관계를 끊는다.
그 다음에 비로소 하나님과 연합하며,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모친 마리아를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처럼 섬기라고 부탁하셨다.
또한 마리아에겐 요한을 아들처럼 보살피라고 당부하셨다.
이와 같이 성도들은 서로 주안에서 한 가족처럼 선하게 연합한다.(히 10:24-25).
성도간의 관계는 ①청결한 마음 ②선한 양심 ③참 믿음에서 우러나는 사랑이다.
그렇게 되도록 권고하고, 다른 길로 빠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딤전 1:5)
◑진실을 직면하라
사람이 범죄하면 양심은 끊임없이 자기를 정죄하든지 아니면 변명하게 만든다.
또는 둘 다 동시에 일어나기도 하는데, 겉으로는 죄를 합리화하거나 자랑하면서도
속으로는 양심이 바짝 타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끊임없이 진실을 부인하려고 하면서도, 동시에 진실을 뿌리치지 못해서
속병이 드는 경우이다.
▶메리의 경우
메리는 낙태 찬성 모임에 다니다가 낙태 합법화 요구 집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모임에서 자기의 낙태 경험을 말하면서,
그것이 얼마나 자신을 위기에서 구했는지를 간증(?)했다.
그렇게 겉으로는 의기양양한 것처럼 보였지만,
속으로 양심의 가책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만약 낙태를 안 했더라면) 애기가 태어날 즈음에 그 고통은 극에 달해서
자살 충동을 느꼈다. 자기는 여느 살인범과 다름없다고 자책했다.
이때까지 그녀가 낙태 찬성 모임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한 것은,
자신의 양심의 고통에 의한 (반작용적인) 행동이었다.
인간은 자기의 죄를 직면하지 못하는 연약성이 있다.
그것을 애써 외면하거나 피해버린다. 의도적으로 잊으려고 애쓴다.
아니면 그것이 죄가 아니라고 떠들고 자랑한다. 그것이 직면하는 것 보다
덜 고통스럽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적어도 당장은 그렇다.
양심의 가책을 해결할 길이 있다면?
범죄 하기 이전의 자유로운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면?
죄의 (하나님의) 형벌로부터 면제받을 길이 있다면?
예수님은 “진실이(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고 말씀하셨다.
진실을 직면하고 밝힐 때 비로소 자유가 시작되어진다.
◑깨끗케 하는 피
성경은 양심이 깨끗케 되는 길을 가르쳐 주신다;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깨끗하게 하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히:14)
예수 피는 여러 가지 효험이 있지만, 그 중 하나가 ‘양심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예수 피의 공로를 믿음으로, 범죄한 양심은 비로소 변명(적극)하거나
자책(소극)하는 일을 멈춘다. 더 나아가 하나의 사랑과 평화 가운데 거하는데, 그것은
범죄 하기 이전보다 더욱 깊은 행복이다.
예수님의 죄가 씻지 못할 만큼 무섭고 큰 죄는 없다.
예수님 피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하이타이다. 찌든 때, 묶은 때도 쏙쏙 뺀다.
예수 피에 담궈서 빠지지 않는 얼룩은 없다.
“너희 죄가 주홍 같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찌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사 1:18)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시51:7)
천국에는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계 7:14)
예수 피가 아니고서는 우리 양심을 절대로 깨끗케 할 수 없으며
예수 피가 깨끗케 하지 못할 만큼 더러운 양심도 이 세상에는 없다. 할렐루야!
▶다 끝냈다!
(It is finished! 요 19:30, 개역성경엔 “다 이루었다”)
이것은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당하시던 모진 고통이 다 끝났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우리 죄인들을 위한 예수님 피로 이루신 대속 사역이 다 끝났다는 뜻이다.
원어적으로 이 말은 상거래에서 “다 갚았다. 값이 다 치러졌다 paid in full"는 뜻이다.
더 이상 갚을 것이 남아있지 않다. 우리들의 죄 값은 완전히 치러진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장애는 모두 제거되었다. 이제 죄인들은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가고 영접 받을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려진 것이다.
▶성전 휘장이 찢어지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영혼이 떠나가실 때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두 갈레로
쫙 찢어졌다(마 27:51). 성전 휘장은 사람의 힘으로 찢을 수 없을 만큼 튼튼한
직조물로 되어 있었다. 또한 그것은 높아서 사람이 위에서 아래로 단숨에
한 번 만에 찢을 수 없을 만큼 높았다. 그 성전 휘장이 두 개로 쫙 찢어졌다는 것은
하나님이 찢으셨다는 증거이다.
성전 휘장은 수 백 년 동안 찢어지지 않고 굳게 내려왔다.
그것은 하나님(지성소)과 사람을 분리하는 선이었다.
휘장 안의 지성소는 지상에 내려오신 하나님의 보좌요, 거하시는 곳이었다.
그곳은 아무 사람이 들어갈 수 없었으며, 오직 그 해의 대제사장만이
1년에 단 1차례, 대속죄일에만 들어갈 수 있었다.
대제사장은 휘장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자기와 백성의 죄를 속하는 제사를 드리고,
그 피를 가지고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나머지 백성들은 모두 바깥에서 기다렸다.
일반 사람들은 거기 들어가기는커녕 속을 들여다 볼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운명하실 때, 하나님은 친히 그 휘장을 찢으셨다.
하나님은 친히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쳐진 휘장을 찢어 없애 버리셨고,
이제 사람들과 더욱 가까이 친근하게 교제하기를 원하셨다.
이제 대제사장이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으며,
일 번에 단 한 번만이 아니라 언제든지 원할 때마다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의 공로를 믿음으로, 깨끗해진 양심을 가지고,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동물을 잡아 드리는 제사는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다.
더러워진 우리 양심을 깨끗케 하는데 짐승의 피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인간의 공로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오직 깨끗케 하시는 예수의 피를 믿는 믿음으로 된다.
아무리 양심이 더러워진 사람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분명히 열려 있다는 뜻이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 9:14)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 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 10:22)
▶성령님의 역사
①부패한 양심을 가진 사람은 이런 설교 내용을 들어야 하고, 알아야 한다.
그러나 지식적으로 예수의 대속의 피의 역사를 알고 인정한다고
그 양심이 깨끗해지거나 자유케 되는 것은 아니다.
간절한 기도와 철저한 회개 가운데 -성령의 역사로-
비로소 부패한 양심이 깨끗한 양심으로 변화되고 자유함을 받는다.
②또한 상담은 깨끗한 양심을 얻는데 훌륭한 도구가 된다.
상담 없이 해결하는 것보다는,
목회상담을 통하는 것이 방법론적으로 훨씬 더 좋고 시간을 단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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