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원망과 불평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원망과 불평을 쏟아내는 사람을 종종 보게 된다. 원망은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고 자신을 약자 및 피해자로 인식시킴으로써 상대방에게 죄의식을 유발시킨다. 그래서 상대방이 이 죄의식을 보상하기 위해 노력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원망이 전혀 수그러들지 않는 경우가 있다. 문제 해결보다는 원망을 통해 병적인 의존관계를 유지하려는 것이 더 큰 무의식적 동기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병을 고치기 전에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늘 물으셨다. 진정 문제 해결을 원한다면 먼저 무력감과 의존성의 고리를 끊어버리지 못하게 하는 원망과 불평을 멈추어야 할 것이다. 스스로 서길 원하는 자에게만 치유가 임하는 것이다. /이성훈(길르앗치유문화원원장)
2. 작은 대통령
버스 정류장에 몇몇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며 서 있었습니다.
"올 가을에는 무슨 놈의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지 모르겠어"
"아, 그것도 몰라? 노무현이가 정치를 잘못하니 비가 많이 오는 것이지"
"아니, 버스는 왜 또 이렇게 제 시간에 안 와?"
"노무현이가 정치를 잘하면 버스가 왜 제때 안 오겠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기가 차서 헛웃음밖에 안나오네요. 대통령이 되기도 힘들지만, 그 자리 또한 만만한 자리가 아닙니다.
한 가정의 가장은 가정의 '작은 대통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 탓하기 전에 한번 가정을 대통령처럼 다스려 보세요. 마누라의 불평, 자식들의 불만이나 가정 경제문제나 여러 가지 대소사를 마치 대통령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처럼 한번 다스려 보세요. 그렇게 작은 대통령의 일을 제대로 한번 해보고 나서 큰 대통령을 들먹일 일입니다. /최용우
3.아무도 원망하지 말라
솔맨(Sallman)이라고 하는 화가가 있었습니다. 결혼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중병에 걸렸습니다. 의사가 말해줍니다.
“당신은 임파선 결핵을 앓고 있소. 앞으로 3개월밖에 살지 못할 것입니다.”
그의 부인은 유명한 가수로, 임신 중이었습니다. 아내에게도 미안하거니와 앞으로 태어날 아이를 생각할 때에도 죄스럽습니다. 몹시 괴로워하고 있을 때, 아내가 그를 위로합니다.
“3개월밖에 못산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3개월을 허락해 주셨다고 생각하며 감사해요. 아무도 원망하지 말아요. 3개월이 얼맙니까? 천금같은 그 기간을 가장 아름답게 만들어요. 그러면서 오로지 3개월이나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요.”
둘은 기뻐하며 감사하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병은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그가 그린 그림에 유명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입니다. 보통 사람은 예수님의 얼굴을 그릴 때에 대개 자비하신 분으로, 고난 당하시는 얼굴로 그리는데, 이분은 지도력이 있고 강인한 인간성을 지닌 인물로 표현했습니다. 이 그림이 유명해서 수백만 장이나 인쇄되었고 오늘도 많은 가정에 걸려 있습니다. 우리도 삶의 여정을 통해서 예수를 그려가고 있습니다. 나의 발자국에서 예수님의 향기가 솔솔 풍기게 하십시오.
* 기도: 주님, 저의 모습에서 예수님이 나타나게 하소서.
* 묵상: 우리의 언어에서부터 주님의 모습이 드러나도록 노력하십시오. /김장환 목사
4.요나의 불평
성경에 인물 중 자기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다고 불평한 사람의 대표자는 요나입니다.
요나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였던 사람입니다.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라고 하였으나,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도망치다가 하나님께서 풍랑을 일으켜 바다에서 죽을 뻔 하였으나, 하나님의 섭리 중에 다시 물고기 배속에서 회개하고 니느웨 앞 바다에 토해 냄으로 마지못해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했지만,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의 경고를 듣고 모두 회개함으로 하나님이 그 뜻을 돌이켜 멸망 시키지 않게 되자, 요나는 하나님을 향하여 불평 하였습니다
요나는 자기의 생각대로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불평했습니다.
아마 이것이 어쩌면 우리들의 생각인지도 모릅니다.
구원 받은 성도들이라고 하면서도, 한 두번씩 철저하게 혼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특히 병중에 눈물 흘리며 살려달라고 기도하고, 병상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서도 다시 낳아지니, 요즘 하나님이 자기 생각대로 들어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경우들이 있지 않는지? 살펴야 하겠습니다.여러분! 내 기도대로 응답되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말고 매일매일 여리고성을 한바퀴씩 돌았던 것처럼 순종하며 감사생활 하시기 바랍니다. /김이봉 목사(상도교회)
5.감사하는 마음
어느 여름날의 한 낮이었다. 두 사람의 행인이 나무 한 그루 없어 잠시 쉬어갈 그늘이 없는 길을 걷고 있었다. 두 사람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금방이라도 더위에 쓰러질 것 같은 걸음걸이로 걷고 있는데 마침 가지가 무성한 커다란 나무한 그루를 발견했다. 그 나무아래는 과연 시원한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두 사람은 구세주를 만난 기분으로 그 나무 그늘로 달려 들어 갔다. 숨이 막힐 것 같던 가슴이 열리고 이마의 땀방울이 식어가자 두 사람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보게 나무란 원래 대부분 어디엔가 쓸모가 있는 법인데 여기 이 오리나무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네 정말이지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진 게 이 나무라더군"
그러자 한 사람이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렇군, 정말 쓸모 없는 나무야 "
이 두 행인은 그 오리나무 때문에 금새 쓰러질 듯한 무더위를 시원하게 피했건만 그 은혜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6.모든 것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
여름날의 한 낮의 태양이 너무 뜨거워 그 태양을 향해 원망을 하고 있던 풀잎이 스산한 바람과 함께 밀려온 빗줄기를 바라보며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러자 황혼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내가 멋대로 내려온 게 아냐 세찬 바람 때문에 밀려 내려 왔으니까 인사를 하려거든 바람한테나 하게나"
풀잎은 다시 바람에게 인사를 하자 바람도 손을 내저었다.
"내가 마음대로 불어 젖힌 게 아닐세 구름이 수분을 실어다 주었길래 그 덕분에 비가 온거지, 그러니 치사를 하려거든 구름한테나 하게나"
할 수 없이 이번에는 구름한테 인사를 했다. 그러자 구름도
"내가 어디 제멋대로 수분을 운반했는가 턔양이 계속해서 내리쬐는 덕분에 수분을 흡수할 수 있었지, 그래서 우리가 비를 만든 거야 정말 인사하고 싶거든 태양에게 감사하게."
풀잎은 그 원망스러웠던 태양에게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태양은
"내 마음대로 했던게 아닐세 하나님의 힘으로 세상 만사가 다 그렇게 돌아가는 법이니 감사를 올리려거든 하나님께 올리게나"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것이었다.
7.보는 차원
수탉이 물을 먹는 모습을 보고 자칭 인도주의자가 말했다.
"저렇게 고개를 올렸다 숙였다 하니 얼마나 힘이 들까? 측은한 일이로다"
그러자 현실주의자가 이를 받아서
"다 먹고살자고 하는 것 아니겠소 목을 쳐들지 않으면 그나마 한 방울 물이라도 목구멍으로 넘어가겠습니까?" 하였다.
이때 가만히 듣고 있던 크리스챤이 "두분의 말씀이 맞기는 하지만 저 수탉은 한 모금 물을 마실 때마다 하늘 쳐다보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8.감사 결핍증
지난 연말, 세종로 복판 교보문고 외서(敎保文庫 外書) 책가게 앞에서 친구 하나 만나기로 약속하고 서 있었던 적이 있다. 20대로 보이는 젊은 어머니가 네댓 살 먹어 보이는 사내 아이와 계집 아이 손을 잡고 지나 가다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서 있는 장식용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 아이들을 세워 놓고 사진을 찍고 싶었던 것 같다. 핸드백에서 카메라를 꺼내더니 날더러 찍어 달라는 것이었다.
거리를 조절하며 초점을 잡고 있는데 이 어머니 부탁이, 웃겨서 찍어 달라고 한다. 스마일, 치이즈...해도 알아듣질 못하고 히히, 해해 광대짓을 해도 웃질 않는다. 고양이 소리 쥐 소리를 내어 겨우 웃겨놓은 것이 웃는 상이 아니라 찡그린 상이었고, 마냥 그러하고만 있을 수 없어 셔터를 눌러 버렸다. 못마땅했던지 그 젊은 어머니는 `웃지 않았는데...' 하며 카메라를 빼앗듯 돌려 받더니 아이들 뒤쫓아 가버린다. 나의 노역(勞役)은 조금도 감사 받지 못하고 증발해 버리고 말았다.
애들 아비가 곰처럼 무뚝뚝하겠거니 생각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새끼 사슴처럼 발랄한 여학생 하나가 뛰어 오더니 메었던 가방을 내앞에 벗어 던지면서 `아저씨 화장실 좀 갔다 올게요'한다. 가방 좀 지켜 달라는 것같다. 귀밑머리 희끗희끗한 것을 보고 안심했던 것 같다. 색깔 바랜 인생을 한숨 쉬고 있는데, 돌아온 그 아가씨는 벗어진 신발이라도 줍듯 제가방 주워 메고는 뒤돌아 보지도 않고 총총 뛰어가 버린다. 이 역시 나의 가방지기 노역은 조금도 감사 받지 못하고 만 것이다.
한 장소에 연속적으로 일어난 이 감사 증발이 우연의 일치이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나, 요즈음 젊은 사람들 대체로 감사할 줄 모르는 것 같다. 거스름을 받지 않고 택시 요금을 주었을 때 감사하다고 말하는 운전 기사를 별반 본 일이 없다.
택시 스톱에서 바삐 구는 아가씨에게 차례를 양보했을 때 감사 받기도 힘든 일이다. 단골집에 물건 사러 갔을때, 또 오십시오...하는 이기적(利己的) 인사는 들어도 감사하다는 말듣기는 어렵다. 아이들에게 과자 나부랭이를 사 주었을 때 신난다고는 외치지만 감사하다고 답례하는 아이가 몇 이나 되겠는가.
말끝마다 감사가 뒤따르는 기독교 문화권과 비겨 감사 결핍증(感謝缺乏症)은 너무 혹심하다. 유태교의 성전(聖典)에도 `혓바닥(舌)에게 감사합니다는 말을 버릇들이기 전에 아무 말도 하지말라'는 가르침이 있다. 감사 한다는 것은 신(神)에게 감사하건, 사람에게 감사하건 물건에 감사하건 그것을 소중히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보호의 `응석'속에 유아독존(唯我獨尊)이요 자기 중심(自己 中心)적으로 살아온 탓인지 요구만 할 줄 알고 감사할 줄 모르는 이 한국인의 감사 결핍증은 국제화 시대에 소외 받을 한국병(韓國病)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다.
9.틈과 구멍
언젠가 한 조각의 목재가 잘리워 구멍과 틈 투성이로 되었다하여 지독히 불평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목재를 쥐고 가차없이 칼로 베어내고 있던 사람은 그 괴로운 불평을 묵살해버렸습니다. 그는 자기가 쥐고 있는 목재로 피리를 만들고 있었으며 매우 슬기로왔으므로 그렇게 해달라고 간청을 받았을 때 단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오. 어리석은 나무 조각아. 이 틈과 구멍이 없으면 너는 영원히 단순한 막대기에 불과하다. 음악을 켤 수도 없고 달리 쓰일 능력도 없는 딱딱하고 새까만 흑단 조각이란 말이야. 내가 만들고 있는 이 틈이 너를 망치는 것 같지만 너를 피리로 만들어 주면 네 아름다운 음악은 사람들의 혼을 매혹시킬 것이다. 내가 너를 자르는 일은 너를 만드는 일이고 그러므로 너는 세상에서 귀하고 가치있고 축복이 될 것이야.”
다윗이 괴로운 시련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절대 그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들을 못 불렀을 것입니다. 그의 시련은 그의 생명을 하나님께서 당신 사랑의 음악의 숨결을 불어 넣으시는 악기로 만들어 사람들의 마음을 매혹시키고 위로하게 되었습니다. 생명이 부서지기까지는 그것이 주님의 사용을 위한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10.탓하기 전에 네가 필요한 사람이 되라
B.C.6세기경 그리이스의 노예라고 전해지는 이솝은 매우 지혜로운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하루는 그의 주인이 “목욕탕에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알아보고 오너라.”하며 보냈습니다. 얼마후 이솝은 돌아와서
“한 사람 밖에 없습니다.”라고 보고 했습니다.
목욕할 준비를 하여 목욕탕으로 갔으나 사람으로 가득한 목욕탕에서 고생을 많이 하고 돌아온 주인은 이솝에게 속은 것이 분해서 화를 내면서 책망했습니다. 그러나 이솝은 태연하게 “주인님. 제가 확실히 보았습니다. 목욕탕에는 한 사람만 들어 갔습니다.”
이솝의 자세한 설명을 들은 주인은 오히려 이솝을 칭찬하게 되었습니다. 이솝이 목욕탕에 가 보았더니 길 가운데 돌이 하나 있었습니다. 목욕탕에 가는 사람들이 이 돌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그래도 누구 한 사람 돌을 치우는 사람이 없고. 불평과 원망만 하고 지나갔습니다. 얼마 후 한 손님이 돌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손님은 팔을 걷어 부치고 땀을 흘리며 돌을 치워버리고 목욕탕에 들어갔습니다. 사람다운 사람은 단 한 사람만 목욕탕에 들어간 것입니다.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잠25:13)
내 자신이 팔을 걷어 부치고 길 가운데 돌을 치워야 합니다. 사람을 찾으려 하지 말고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1원망과 불평이 많은 가정
어떤 사람이 자기 가정이 복잡하여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아내와 말다툼하고, 형제는 서로 싸우고, 친자는 서로 욕하는 상태였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집 안엔 불평만이 가득찼습니다. 이웃집은 친자 2대의 대가족이므로 옥신각신하기 쉬울 텐데도 풍파도 없이 언제나 온화했습니다. 아주 감동이 되어 물어봤습니다.
“댁은 어떻게 그리 평화스럽습니까?”
대답은 이상했습니다.
“댁은 선한 사람만 한 데 모였지만 우리 집은 악한 사람뿐이니까요.”
놀라와 하는 얼굴을 보고 그 이웃 사람은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댁에서 가령 실수하여 항아리를 깼다고 합시다. 즉시 '누구야. 이런 곳에 분재를 놓아둔 놈은?', '당신은 눈뜬 소경이요'라고 하게 되지요. 모두 저마다 잘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집에서는 '아, 내가 그런 곳에 놓아둔 것이 잘못이었어요', '아뇨, 제가 부주의한 탓이지요' 하며 모두 자기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집안이 평화롭고 안정이 되지요.”
이것이 평화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휴지통이 많이 놓여 있기 때문에 깨끗하게 정리가 된 역 홀을 보고,“나는 우리 집의 휴지통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가시돋친 말, 비꼬는 대답, 냉정한 말대꾸, 이러한 가정의 쓰레기같은 것을 모두 자기 마음 속에 받아넣어 집안을 깨끗하게 정리하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욕을 먹어도 미소로 답하고, 빈정거려도 따뜻하게 웃어주는 인간이 되려고 결심한 것입니다.
12 만성불평자
많은 사람들은 고난의 짐을 예수님에게 맡겨버리지 않고, 계속 끊임없는 불평을 함으로써 더욱더 우울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불평을 듣는 사람들을 짜증나게 하고 실망에 빠뜨립니다.
매리 배철러라는 여인은 바로 그러한 만성 불평자였습니다. 그 여자는 목사님의 딸이었고 가정주부이며 또한 목회자인 그의 오빠의 시중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오빠에게 그의 고민을 날마다 불평하곤 했습니다.
그들이 서로 대화를 하고 있던 어느 저녁에 그녀는 오빠에게 자기가 한 불평이 어떤 것이었는가를 발견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양심에 가책이 되어 창밖을 내다보니, 높이 솟아 있는 포플라 나무들이 저물어가는 저녁 해를 안고 저 건너 잔디밭으로 길쭉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서 있었습니다.
그녀는 '나는 저 나무들처럼 오빠에게 그림자를 지우고 있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왜 나는 예수님께 내 짐을 맡김으로써 슬픔을 매장하지 못할까?' 그녀는 자기 방으로 가서 눈물을 흘리며 위로를 얻었습니다. 후에 그녀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너의 슬픔을 서슴지 말고 묻어버려라.이 세상 사람은 누구나 걱정이 있으니 깊숙히 묻어버려라.조심스레 숨겨서 침착하게 생각하라.어두움의 장막이 내릴 때, 어서 주님께 말하라.그러면 만사가 의로우리라.”
그후 그녀가 더욱 행복한 크리스챤이 되었을 때 그 글을 오빠에게 보여주고, 오빠는 그 글을 읽고 지방 신문에 실었으며, 저명한 작곡가인 필립 브리스 씨가 그 글을 읽고 작곡하였습니다. 매리 배철러는 한때 만성불평자였으나 주님께 그의 모든 짐을 던져 맡겨드림으로써 우울증으로부터 완치가 되었습니다. 당신도 그렇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13.불평촌과 감사촌
두 마을이 있었다. 한 마을은 감사촌이고 다른 한 마을은 불평촌 이었다. 불평촌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불만이고, 무엇이든지 근심하고, 무슨 일이 생기면 매사에 분노하고, 또 좋은 일이 일어나도 혹시 잘못되어 다시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예상을 하면서 걱정을 했다.
담배 연기가 코에서 나오는 것처럼 그들에게선 잠재적으로 불평과 불만, 근심의 연기가 항상 입에서 나왔다. 불평촌 사람들은 주소가 그 동네이고 또 모두가 불평 속에서 살기 때문에 이 비극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감사촌에 사는 사람들은 어떠한 가운데서도 감사를 했다. 고생을 해도 감사하고 또 시련을 받을수록 감사의 농도는 더욱 깊어졌다. 봄에는 꽃이 피는 것에 감사했고 여름에는 잎이 무성한 것에 감사했으며, 가을에는 추수하는 것에 감사하고 겨울에는 나뭇가지는 앙상하지만 그 뿌리가 있는 것에 감사를 했다.
하루는 불평촌에 사는 사람이 감사촌에 놀러왔다가 감사하는 소리에 놀랬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감사를 배웠다. 그러나 하루종일 범사에 감사하다가 저녁이 되어 불평촌에 돌아온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에이. 감사촌에 갔다가 얻어먹은 것도 없이 감사만 하고 왔네.”
감사는 감사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감사촌으로 이사를 와야만 되는 것이다. 감사촌에 이사오기 위해서는 불평촌에서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그곳에 놓고 나와야 된다.
그리고 감사촌에서는 무에서 시작해야 한다. 무에서 출발한다면 모든 것이 감사하다. 옷 한벌, 밥 한끼가 감사하게 된다. 불평촌은 내가 가지고 있는 나의 위치를 생각하는 나의 마음이고, 감사촌은 바로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는 나의 마음이다.
14 감사의 태도가 아쉽다
멕시코의 일부 지역에서는 온천과 냉천이 나란히 발견되기도 한다. 이러한 자연현상 때문에 그 지역의 아낙네들은 빨래를 냇가로 가지고 와서 온천에다 옷을 삶은 다음 냉천에다 헹구곤 한다. 이 광경을 자세히 지켜보던 어느 관광객이 멕시코인 친구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위대한 어머니인 자연은 매우 관대해서 냉천과 온천을 자유롭게 사용할 정도로 많은 물을 공급해주고 있군요.”
멕시코 친구가 대답했다.
“그렇지도 않다네. 비누가 없다고 사람들의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거든.”
15. 불평
어느 왕의 이야기이다. 왕은 크나큰 돌을 길 한가운데 굴려다 놓고서 누가 이것을 옮기나 보려고 숨어 있었다.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지나갔지만 모두 불평만 할 뿐 그냥 지나쳤다. 얼마 후 한 농부가 수레에 채소를 싣고 시장에 팔러 가다가 돌을 보고서 말없이 치워놓았다. 그런데 돌을 치운 자리에 돈주머니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돈주머니에는 많은 황금과 함께 '이 돈은 누구든지 이 돌을 치우는 자의 것'이라는 왕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우리가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함께 일하는 어떤 일이 생길 때 긍정적인 자세로 그러한 일을 해결하려는 사람들보다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 일을 도와 해결하려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러나 늘 어떤 일로 불평하는 사람들의 영혼은 메말라가지만 긍정적인 입장에서 문제해결을 돕는 자들은 영적 성숙과 함께 영혼이 풍요로워지는 것을 볼수 있다. 우리 모두 위에서 말하는 농부와 같은 자세를 갖는 것이 좋을 것 같다
16.장미의 불평
화단 구석에 장미가 한 송이 피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불평이 많았는지 눈만 뜨면 불평을 털어놓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장미는 밤이면 춥고 어두워서 못 있겠으니 거실로 옮겨 달라고 주인을 졸랐습니다. 주인은 장미를 화분에 옮겨서 거실에 두었습니다. 얼마 후 장미는 또다시 주인에게 불평을 했습니다. 여기는 나비가 찾아오지 않으니 창가에 옮겨 달
라고 했습니다. 주인은 장미를 창가에 옮겨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장미는 창가에는 고양이가 지나다녀서 싫다며 화병에 넣어 방안으로 옮겨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은 다시 장미를 화병으로 옮겨 방안에 두었습니다. 며칠 뒤 장미는 또 다시 주인에게 바깥 화단으로 옮겨 달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뿌리가 잘린 장미는 시들어버렸고 주인은 장미를 뽑아 쓰레기통에 버리고 말았습니다.
17.일 못하는 사람이 불평은 많다
한 불평이 많은 청년이 왕을 찾아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사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졸랐다. 왕은 잔에 포도주를 가득 부어 청년에게 주면서 말했다.
“포도주 잔을 들고 시내를 한 바퀴 돌아오면 성공비결을 가르쳐 주겠다. 단, 포도주를 엎지르면 네 목을 베리라”
청년은 땀을 뻘뻘 흘리며 시내를 한 바퀴 돌아왔다. 그러자 왕이 물었다.
“시내를 돌며 무엇을 보았느냐? 거리의 거지와 장사꾼들을 보았느냐? 혹시 술집에서 새어나오는 노래 소리를 들었느냐?”
청년이 대답했다.
“포도주 잔에 신경을 쓰느라 아무것도 보고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왕이 말했다.
“바로 그것이 성공의 비결이다. 인생의 목표를 확고하게 세우고 일에 집중하면 주위의 유혹과 비난이 들리지 않을 것이다”
일 못하는 사람은 불평이 많다. 분명한 인생관을 갖고 일에 몰입하는 사람은 불평할 틈이 없다.
18. 원망으로부터의 자유
주님의 구원은 죄로부터의 자유입니다.
낙심되어지는 마음, 지쳐 있는 마음, 모든 잘못을 남에게 돌리는 마음, 지나치게 남에게 신경쓰며 자유하지 못하는 마음, 모두 죄의 영향력으로부터 파생되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영적인 사람도 인생의 문제로 고민합니다. 믿음의 성도가 된다할지라도 병에 걸리고, 사업에 실패하고, 지치고 힘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 새로운 피조물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그 고난을 걸어갑니다.
환경이 변화하지 않아도 환경을 대하는 내가 변해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자유로운 삶의 자리. 여러분의 자리이기를 원합니다. /박종근 목사
19. 불평 속에 담긴 불신앙
투덜댐은 어려운 상황이나 곤란한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갖는 비판적 불평이다. 그것은 자신 앞에서 느리게 진행하는 운전자에 대한 불평으로부터 하나님께서 우리 삶 속에 허락하신 일들에 대한 불평에 이르기까지 계속적으로 이어지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불평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직접적인 위반이기도 하다. 내가 만났던 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업이나 하나님이 쓰시는 지도자, 또는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한 불평이 하나님의 가치기준과 계획, 그리고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들에 대한 직접적인 반영이라는 것을 현명하게 알고 있었다. 한번 생각해 보라! 어떤 아이가 그들 부모의 끊임없는 불평의 대상인 조직체와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헌신하고 싶겠는가? 현명한 부모는 자녀들에게 사랑의 원리와 우리 주위의 불완전한 일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가르친다. 불평은 항상 믿음 없는 가운데 행해지는 일로서 하나님 안에 있는 우리의 잠재적 능력을 잊어버리게 만든다. 불평은 하나님께서 어떠한 환경이라도 다스리실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으려는 태도이다. 그러한 태도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 속에서 언제나 최상의 일을 하신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부정적 환경도 사용하실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이다.
* 기도: 사랑의 주님, 내게 보내신 사람들과 공동체 때문에 내 맘이 상하고 어려운 형편에 처하는 때도 있지만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사랑할 수 있게 하소서. 내게 허락하신 구원을 기억하며 그 사랑을 감사함으로 살게 하소서.
20.감사와 불평
영국 크랜취 감독의 시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평탄한 길에 조그마한 구덩이만 있어도 벌써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을 원망한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험하고 캄캄한 길에 조그마한 빛만 비추어도 하나님이 주시는 자비로우신 빛이라 하여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화려한 궁전에 살면서도 생이란 왜 이리 괴로우며 기쁜 일은 하나도 없느냐고 얼굴을 찡그려 불평하는 사람이 있으며, 게딱지만 한 오막집에 살면서도 우리를 지키시는 하늘 아버지의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진심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
21.감사와 겸손
2004년 5월 29일,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들을 기리는 기념비 개막식이 있었다. 개막식에는 전쟁에서 살아남은 참전 용사들이 초대되었다. 많은 이가 인터뷰에 응했으며, 훈장을 받은 사람들도 더러 눈에 띄었다. 그리고 명예로운 훈장을 받은 참전 용사들은 한결같이 겸손했다. 교만한 태도나 자랑하는 마음, 특별 대우를 원하는 눈치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전몰 장병들의 이름이 호명될 때 눈물을 터뜨리는 사람은 많았지만, 원망하는 마음을 내비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개막식 축하 행사가 진행되는 4일 내내, 그들은 감사와 겸손만을 드러냈다. 감사와 겸손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에게서 떠날 수 없는 것이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1945년 독일이 연합군에 항복한 직후 “동료들의 피와 친구들의 희생 덕분에 찬사를 받는 사람은 항상 겸손한 미덕을 잃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참전 용사들은 자신들의 곁에서 죽어간 전우들을 회상하며 “저는 영웅이 아닙니다”라고 말하곤 했다. 이처럼 겸손이란 감사가 충만한 마음에서 비롯된다. 이제 우리의 눈을 하나님과 그리스도께로 돌려 보자. 그리스도가 나를 대신해 고난 당하신 것을 생각하면 잠시도 불평이나 교만한 마음을 가질 수 없다. 오늘 나의 생명은 그리스도가 감당하신 십자가 고통의 공로로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렇다면 어찌 이기심을 충족시키는 일에 삶을 낭비할 수 있겠는가? 신자는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신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할 때에만 감사와 겸손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
22. 천국가면 불평이 사라질까요?
두 사람이 죽어서 하늘나라에 갔다. 한 사람은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이었고 또 한 사람은 게으를 뿐만 아니라 늘 불만불평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세상살이가 어떠했느냐고 물으셨다. 그러자 부지런한 사람은 힘들지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면서 감사를 드렸다. 그런데 불평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세상은 너무 불공평해서 자신은 단 한 번도 행복한 순간이 없었다고 하였다. 그 사람은 자기가 살던 집도 좁고 돈도 마음껏 써 보지 못하였고 또 자식들도 다 속을 썩이고 남편도 마음에 안 들고 하는 일마다 되는 일이 없었다며 계속 불평을 늘어놓았다. 이번에 하나님께서 그 두 사람이 거처할 곳을 안내해 주셨다. 두 사람은 자신 앞에 펼쳐진 광경에 놀라운 입을 다물지 못했다. 두 사람에게 주어진 땅은 세상에서 보지 못한 아름다운 새로운 세상이였다. 부지런한 사람은 역시 하늘나라는 아름다운 곳이라며 감탄해 마지않았다. 그리고 그는 벌써부터 소매를 걷고 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이내 아름다운 집과 정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자기가 원하는 것들을 이루어내고 있었다. 그런데 불만 많은 사람은 똑같은 환경인데도 불구하고 집도 없고 차도 없고 무슨 하늘나라가 이러냐며 계속해서 불평을 늘어놓았다. 계속 투덜댔지만 소용이 없자 하는 수 없이 먹을 것을 구하고 잠잘 집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만든 집은 이내 오물과 쓰레기로 가득 차고 벌레들이 기어다녔으며 지붕에서는 비가 새고 벽은 금이 갔다. 그 사람의 불평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차라리 세상이 더 좋았다며 한탄만 거듭했다. 얼마 후에 하나님이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을 심판하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난 너희 두 사람에게 똑같은 조건을 줘 보았다. 하지만 한 사람은 그 조건으로 천국을 건설했고 또 한 사람은 그 조건을 갖고서도 지옥을 만들었구나.” 그러자 불만 가득한 사람이 하나님께 따져 들었다. 천국은 무위도식하는 곳이지 이렇게 힘들게 일하는 곳이 아니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끝을 맺으셨다.
“천국을 오해하지 말아라.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다. 그리고 심는대로 거둔다는 진리는 땅의 논리가 아니고 애초 천국의 논리였다. 천국의 논리로 살면 그 사람은 지옥에서도 천국을 건설하며 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천국을 거저 주어도 지옥으로 만들 것이다. 너는 그와 같은 자이기에 결코 천국의 땅 한평이라도 내줄 수 없다. 네가 만든 지옥에서 영원토록 살아라.”
23.불평만 하는 사람
감옥에서 오랫동안 수감 생활을 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이 사람은 불평과 남을 탓하는 것이 체질화 돼, 한 순간도 진정한 행복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 사람이 오랜 수형 생활을 마치고 출옥하게 되었을 때, 수도원으로 찾아가 수도원장에게 '나를 받아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수도원장은 이 사람에게 "좋습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습니다. 침묵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단, 5년 후에 한마디만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5년이 흘렀습니다. 이 사람의 첫마디는 "잠자리가 나쁘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5년이 흘렀습니다. 두 번째 말은 "음식이 나빠 못 먹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5년이 흘렀는데, 그 때는 "더 못살겠다"고 했습니다. 수도원장은 이 사람을 쫓아내며 말했습니다.
"그대가 여기 있는 동안 불평뿐이었으니, 나가 주기 바랍니다."
하루 동안 무슨 말을 많이 하며 살고 있나요? 거기에 감사가 빠져 있다면, 몹시 불행한 인생일 것입니다.
24.소 잃고 외양간 고치랴
가난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낡고 좁은 자신의 집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청년은 마을에서 가장 존경받는 식자인 노인에게 찾아가 자신의 고충과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이 말을 들은 노인은 청년에게 수탉 한 마리를 사서 집안에 풀어놓으라고 충고했습니다. 노인의 방법을 듣고 청년은 시키는 대로했지만 사방에 날리는 닭 깃털과 흩어져 있는 닭모이와 똥 때문에 집안은 전보다 더 좁고 더러워지고 냄새까지 났습니다. 다시 청년이 노인을 찾아가자 이번엔 염소 한 마리를 수탉과 함께 집안에서 키우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자 이젠 염소가 닭을 쫓아다니며 집은 더 엉망이 돼버렸습니다. 노인은 이제 암소까지 키우라고 해서 그렇게 했지만 청년의 집은 온통 아수라장이 돼버렸고 그 집안에서는 자기조차 어려운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잠조차 자지 못한 청년이 다시 노인에게 오자 노인은 집안의 동물들을 이제는 다 밖으로 끄집어내라고 시켰습니다. 노인이 시킨 대로하자 청년의 집안은 깨끗해졌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그렇게 좁게만 느껴졌던 그 집이 한없이 넓게 느껴지는 것이 아닙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까지 하나님은 수많은 기적을 통해 이스라엘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그들을 인도하심을 확증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처럼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셨고 낮에는 구름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으며 반석을 쪼개어 물을 내셨고 그들의 죄악을 부단히 용서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범죄하였고 하나님을 배반하였습니다(시 78:17).‘원망’이란 단어가 모세오경에만 무려 21번이나 기록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원망과 불평은 사실 절대적 빈곤이나 궁핍에서라기보다는 상대적 비교에 의한 박탈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나로 하여금 주어진 것에 감사하도록 더 나쁜 조건을 주시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것의 고마움을 경험케 하기 위함입니다. 건강을 잃어버린 사람이 더욱 건강의 소중함을 알게 되듯이 말입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 적극적인 만족과 목표에 대한 대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내 삶에 원망이 움트지 않기를 기도합시다. 미리 감사합시다.
* 기도: 오늘 하루도 내 앞에 펼쳐질 삶의 그림을 바라봅니다. 주님께서 날마다 준비하시는 새로운 그림들을 목도하게 하시고 감사로 시작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학중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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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여우의 불평
여우 한 마리가 길을 가다가 탐스러운 포도가 주렁주렁 열려있는 포도원을 보고는 군침을 흘렸다. 울타리의 틈을 찾다가 작은 구멍을 발견하고 들어가기를 시도했지만 불가능했다. 궁리 끝에 여우는 사흘동안 굶어서 몸을 여위게 한 다음에 간신히 울타리 구멍을 통과할 수 있었다. 포도원에 들어가는 데 성공한 여우는 배불리 포도를 따먹었다. 포만감을 느낀 여우는 이제 그만 나가야겠다고 울타리 구멍으로 머리를 들이밀었지만 배가 너무 불러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또 다시 여우는 굶어서 배를 홀쭉하게 만들고서야 가까스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때 여우는 이렇게 불평하였다.
“결국 배고프기는 들어갈 때나 나올 때나 마찬가지구나”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딤전 6:7) /이영무 목사(영신교회)
26.집 지은이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글 중에 <집 지은 사람의 잘못일까?>라는 것이 있다. 톨스토이가 어렸을 때, 그의 집에는 매우 좋은 도자기들이 많았다. 아버지는 그 도자기들을 아끼며 소중히 여겼다. 톨스토이의 여동생은 그 도자기들 중에서도 가장 예쁜 것을 달라고 오랫동안 아버지에게 졸랐다. 그러나 아버지가 그것을 선뜻 딸에게 내어 줄 리가 없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어느 날이었다. 톨스토이의 여동생은 또다시 아버지에게 그 도자기를 달라고 강력히 졸라대기 시작했다. 눈물까지 주루주룩 흘리는 것이었다. 이쯤 되자 아버지는 딸을 향해, "그래,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것이니 그것을 가지렴." 이라고 하였다. 여동생은 그 도자기를 손에 꼭 움켜쥐었다. 오빠에게 보여주고 자랑도 하며 또 약을 올려주려고 오빠 방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빠 방을 향해서 뛰던 여동생은 그만 문턱에 걸려서 넘어지고 말았다. 순간, 손에 들고있던 그 도자기는 바닥에 떨어지면서 산산조각으로 박살이 났다! 여동생은 깨져 조각난도자기를 바라보면서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우리집을 지은 사람이 누구예요? 누가 우리 집을 이렇게 지어서 저를 넘어지게 했단 말이예요?" 제 잘못, 제 실수는 탓하지 않고, 그렇게 좋은 집을 지은 건축자를 탓하고 원망하는 이 여동생을 기억하며 후일 톨스토이는<건축자의 잘못일까?> 라는 글을 썼다.
27. 똑같은 돌부리에
어떤 사람이 집 앞 골목길에서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다음날 또 그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그 다음 날 조심한다고 했는데 또 걸려 넘어졌습니다.
그 다음 날 신경을 곤두세웠는데도 또 걸려 넘어졌습니다.
그 다음 날 돌부리를 비켜간다고 했는데도 또 넘어졌습니다. 그 다음 날 또 넘어져 길 한가운데 주저앉아 돌부리를 방치한 행정당국을 욕했습니다.
그 다음 날 또 넘어져 이번에는 길 가운데 돌부리를 보고도 지나치는 무심한 국민의식을 한바탕 실랄하게 욕했습니다.
그 다음날 또 넘어져 노무현이는 뭐하냐고 한바탕 대통령을 씹었습니다.(대통령이 할 일이 없어서 너희 동네 골목길의 돌부리를 뽑냐?)
그 다음날 또 넘어져 '말세야 말세...'라며 하늘을 한 번 쳐다보았습니다.
그 사람은 오늘도 또 넘어질 것입니다.
넘어져서 온갖 핑계와 변명거리를 다 찾아내고 앉아 있을 것입니다.
아, 그냥 자기가 뽑아 버리면 다시는 안 넘어질 것을 /최용
28.미련한 사람
다마스라는 사람은 사업을 하다가 빚더미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빚을 갚기 위해 잠도 자지 않고 일을 했습니다. 그래도 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계속 망하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때 그는 자기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사업의 주인은 자신이 아닌 하나님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일의 계획에서부터 결재를 받는 것까지 모두 주님께 의뢰했습니다. 그리고 사업은 주님께 맡기고 전도를 하러 다녔습니다. 그러자 미쳤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망하고 있는 사업을 돌보지 않으니 더 망할 것이라고 야단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일어나기 시작했고, 날로 번창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미련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제멋대로 빗나간 행동을 하고서 나중에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하여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이러한 행위는 이중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미련한 사람은 자기의 뜻대로 행함으로써 자기 길을 굽게 하여 죄를 짓고, 그 책임을 하나님께 전가하고 원망함으로써 죄를 더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대로 나가면 하나님께서 책임을 져 주시므로 잘못된 일도, 원망할 일도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잠19:3)
* 묵상: 당신은 삶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있습니까?
29. 불평과 원망
구약성경 가운데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이 민수기이다. 민수기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생활을 기록한 것인데 여기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 불평과 원망으로 얼룩져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목이 마르다고, 길이 나쁘다고, 고기가 먹고 싶다고 불평하고 원망했다. 민수기 11장에 보면 다베라에서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줘서 먹게 할꼬?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4∼5절)이라 하며 불평과 원망을 감추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불평과 원망의 속성은 점점 심해진다는 점이다. 즉 불평은 또 다른 불평을 낳고 원망은 또 다른 원망을 낳는다. 마침내 불평은 습관이 되고 만다. 그러나 불평의 내용을 살펴보면 문제가 커서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좁기 때문에 불평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의 불평은 비교에서 비롯된다. 비신자들의 형통은 비교하는 데서 오기도 하고 별로 믿음이 없는 다른 신자들이 잘사는 것을 보면서 불평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우리가 모든 것을 판단하는 재판장이 되려고 하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적으로 이 불만 바이러스가 독감보다 더 강하게 역사하고 있다. 역사를 보면 불만 바이러스는 쉬지 않고 역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모든 것을 자기의 입장에서 보기 때문이다. 반대로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그 불평과 원망이 감사로 변한다. 필자도 지금까지 내가 원한 것을 거의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불평하고 원망했으나 지난 뒤 생각해보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이뤘고 더 많이 받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 따라서 불평과 원망은 근시안적인 시각에서 보고 하나님의 주권을 믿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불평과 원망의 병을 치유하려면 먼저 하나님의 주권을 전적으로 믿어야 한다. 다음은 내가 원하는 것을 감사의 조건을 삼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내게 가장 좋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팔복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이 베푸시는 축복의 기준은 우리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신성종 목사<대전 월평동산교회>
30. 네탓이오
감옥에 있는 사람들과 인터뷰를 해 보면 한결같이 '재수가 없어서 걸렸다. 작은 도둑은 감옥에 있고 큰 도둑은 다 밖에 있다. 누구누구 때문에 감옥에 왔으니 나가면 가만 안 둔다' 하며 남에 대한 원망(怨望)으로 가득하다고 합니다.
요한복음 5장에 나오는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 된 병자도 누군가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다면서 자기의 불행이 남(他人)때문이라고 불평하였습니다. 그러나 '너 때문에'를 청산하지 않는 한, 남에 대한 원망과 기대를 버리지 않는 한 예수님의 도움을 받을 길은 없습니다. 군자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남을 탓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세상이 바뀌어야 내가 바뀌는 게 아니고, 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 빛이요 생명이신 하나님, 그분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내 속에 계십니다. 내 속에 계신 분을 발견하는 순간이 바로 '네탓이오'가 사라지는 순이 될 것입니다. ⓒ최용우
31. 망과 불평은 마귀로부터 온다
감사와 찬송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원망과 불평은 사탄 마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탄은 성도들로 하여금 그 입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주의 종에게 불평하게 만듭니다. 사탄은 온갖 방법을 다 써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게 만들려고 했습니다.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를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하면서 소 떼, 양 떼 모두 다 도적맞고 불타 죽고, 자녀 10남매가 대풍에 집이 무너지면서 다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그 입으로 원망의 말이나 불평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욥기 1장 21절에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기1장 22절)고 했습니다. 마귀는 욥의 입에서 원망과 불평의 말이 나오게 하려고 온갖 고통과 불행을 갖다 주었지만 실패하고 도망갔습니다. 온몸에 악창이 나고 구더기가 버글버글해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결코 그 입술로 범죄 치 않았습니다. 결국 전보다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불평이 자꾸 나올 때는 내가 기도가 부족하고 은혜가 떨어져서 마귀가 나를 시험하는구나 하고 빨리 회개하고 정상을 되찾아야 합니다. /한태완
32.어리석은 자의 원망
옛말에 "안되면 조상 탓, 잘되면 내 탓"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일이 뭔가 안되어 갈 성싶으면 곧바로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탓합니다. 이러한 원망은 아담 때부터 있었습니다.(창3:12) 원망은 습관이며, 명백한 책임회피입니다. 그리고 원망의 말은 바로 바로 자신을 향해 쏘는 화살입니다.
옛날에 작전을 아주 잘 세우는 한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장군이 세우는 작전은 늘 화창한 날에만 승리할 수 있는 작전이었습니다. 그 날도 화창한 날이었습니다. 병사들은 싸우기 전부터 승리를 확신하면서 즐거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비가 오는 바람에 그만 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장군은 하늘을 욕하면서 일제히 하늘을 향해 활을 쏘라고 병사들에게 명령했습니다. 결국, 그 화살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이렇듯 다른 사람을 원망하는 것은 자신을 욕하는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잠19:3)/한태완 목사
33.욕심 때문에 원망
미국 어떤 마을의 제빵업자가 가까운 농장에서 버터를 사오곤 했는데 버터의 크기가 점점 줄어들어 가는 것이었습니다. 하루는 그 사온 버터를 저울에 올려놓고 달아보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농장의 버터 무게가 많이 줄어 있었습니다. 화가 치민 제빵업자는 고발하였습니다. 그 버터 공장 주인이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판사가 "집에서 어떤 저울을 사용하고 있소?"라고 하자 "우리는 저울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버터의 무게를 안다는 거요?" "네 그것은 간단하지요. 1파운드짜리 빵의 무게와 같게 만듭니다." "그럼 그 1파운드 짜리 빵은 어디에서 사오는 거요?"라고 묻자 그 낙농공장 주인은 고소인을 가리키며 "우리는 늘 저 제빵업자 한테서 사다 먹습니다." 결국 버터의 양이 줄어든 이유는 제빵업자의 빵이 줄었기 때문임이 밝혀졌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원망하기 전에 나라가 잘못됨이 나 때문임이 아닌지? 회사에 말썽이 생기는 것이 나 때문이 아닌지? 교회의 어떤 부서가 잘 안 되는 이유가 나 때문이 아닌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잘못은 내가 저질러 놓고 남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교인은 없는지? 가정에 화평이 없는 것이 나 때문이 아닌지 한 번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자기 욕심 때문에 남을 원망하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빌2:14)/한태완 목사
34.원망, 불평은 축복을 가로막는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차라리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겠다. 애굽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할 때, 그들은 광야에서 고생만 하다가 죽었습니다. “애굽으로 돌아가면 좋겠다”하는 말은 요사이 말로 “예수 안믿을 때가 더 좋았다. 천당이구 뭣이구 다 귀찮다. “에이, 교회 그만두자”하는 말과 같습니다. 마귀의 종노릇하고 죄의 종노릇하는 때가 더 좋았다고 하는 말과 같습니다. 얼마나 하나님이 진노하실 말입니까. 기도만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평상시의 말, 불평의 말을 다 들으시는 분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전도하다가 점치는 귀신을 쫓아낸 것 때문에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서 매를 맞고 쇠고랑을 찼는데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기쁨으로 찬송하고 기도했더니 쇠고랑이 풀려져 나가고 옥문이 열렸습니다. 그것 때문에 옥사장과 그 가정을 구원할 수가 있었습니다. 불평할 수밖에 없을 때 오히려 찬송하고 감사하면 더 큰 기적이 일어나고 더 큰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 옥에 갇혀 있는 바울이 밖에 있는 자유인들에게 권면하기를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씀했습니다. 더구나 저주받고 지옥에나 가야 마땅한 사람이 구원받고 엄청난 축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입으로 감사는 하지 않고 불평이나 하고 원망하는 말이나 하고 있으면 하나님이 얼마나 섭섭해하시고 괘씸히 여기시겠습니까? 불평, 원망은 축복을 도망가게 하고, 마귀를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한태완 목사
35.원망과 불평은 모든 행복과 건강을 빼앗아 간다
불평마귀에 잡힌 사람은 아무리 돈이 많고,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의복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살아도 결코 행복하지 않습니다. 마귀를 끌어들이는데 행복합니까? N.V.Peale 박사의 글에 보면 어떤 여자가 좋은 옷을 입고 비싼 반지를 끼고 기차를 탓는데, 식당에서 비싼 음식을 시켜놓고는 음식 맛이 없다느니 종업원이 불친절하다느니 기차는 왜 이렇게 더럽냐느니 등등 계속불평만 늘어놓더랍니다. N.Peale 박사는 그 여자를 “불평 만드는 공장”이라고 한 것을 읽었습니다. 그런 사람은 절대로 행복하지 않습니다.
불평 원망하는 사람은 가정을 불행하게 만들고 교회를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자신도 결국 불치의 병에 걸려 고통을 당하거나 죽고 마는 것을 보았습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신경쇠약이나 노이로제나 위장병, 불면증 등에 걸려 건강한 생활을 못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장 28절)했고,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린도전서10장 13절)했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립보서4장 6절)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원망, 불평 대신에 기도에 힘씁시다.
어떤 분이 말하기를 “네가 불평거리를 광고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 상품을 살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했습니다. 어떤 이는 “나는 발이 없는 사람을 만날 때까지, 나는 구두가 없는 것을 불평했다.”고 했습니다. 원망, 불평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싫어하시고, 사람들도 결코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민 14:27)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니라"(약5:9)
원망 불평하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우리 모두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한태완 목사
36. 원망이냐 기도냐
홍해는 애굽과 이스라엘의 전쟁터이었습니다
이는 곧 마귀와 하나님 백성과의 싸움이었습니다
모새의 노래에는 출애굽기 15장 3절에 여호와는 용사시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용사가 되어 애굽인들을 치시므로 물 수장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우리편이 되어 주셔서 승리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마땅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을 받으실 분이십니다 그런데 홍해를 건넌 후 삼 일 길을 갈 때에 수르 광야에서 물이 없다고 모세를 향해 원망을 합니다 수르 광야 같은 이 세상에 우리가 살면서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어려운 일 당할 때에 이스라엘처럼 원망하기 보다 모세처럼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중에 반드시 두 종류의 사람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홍해에서 견져 주신 하나님이 가나안 땅에 반드시 가게 하실 것으로 믿고 순종하며 가는 여호수아아와 갈렙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수르광야 같은 물이 없는 고통이 따를 지라도 참고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면 반드시 여명의 밝은 서광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이성광
37. 행복한 원망
살다보면, 가끔..."너 때문이다"라는 말을 합니다. 너 때문이다!
어떤 원망이 묻어있는 말로 들리기도 합니다.
조심조심 생의 징검다리를 건너는데, 어느 한 순간, "너"가 보입니다.
"첨벙!" 캄캄한 하늘에 빠집니다.
앞을 헤아릴 수 없는 안개 같은 늪 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마음의 헛디딤, 그건 너 때문이 아닌, 나 때문인데..
아니, "너"가 있음으로 인한, 나의 아름다운 헛디딤,
"너"..라는 존재가...... 사람이 되었든, 일이 되었든, 물질이 되었든, 그 무엇이 되었든...
"너" 때문에..내 삶이 아프고 외롭고 힘들지만,
"너" 때문에..내 삶이 기쁨과 소망이 되기도 하고,
"너" 때문에..내 삶이 온유와 인내와 절제를 얻는데,
"너 때문에...내 삶이 유익하고, 보람을 찾기도 하는데..
"너 때문이다" 라고...쉴새없이 누군가를 향하여..마음 아픈 원망 하실래요?
그러나, 오늘은 이런, "행복한 원망"해 보시지 않으실래요?
"네 덕분이야!" /박선희
38. 걱정과 원망의 무게는?
근심하고 걱정하고 팔자타령하고.. 바람직한 일이 절대 아니다.
원망하고 한숨 짓고, 남의 탓하는 것 또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 근심하는 사람에게 걱정하는 사람에게 원망하는 사람에게 남탓하는 사람에게 큰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그 답을 찾아보자
"If only my anguish could be weighed and all my misery be placed on the scale!
나의 번민을 저울로 달아볼 수 있다면.. 나의 비참을 저울에 올려놀 수 있다면.. 과연 번민과 걱정 그리고 원망 따위의 무게가 얼마나 될까.
It would surely outweighed the sand of the sea.
그것은 바다의 모래보다 더 무거움에 틀림 없다.
결론 - No wonder my words have been impetuous.
어쨋든 내가 한 말 (원망, 짜증, 불평)이 경솔했구나. (욥Job 6:2-3)
원망, 짜증, 불평이라는 언어를 기쁨, 칭찬, 생산이라는 언어로 바꾸는 결단이 필요하다.
새 - 걱정 없이 지저귄다.
꽃 - 염려 없이 활찍핀다.
39. 원망과 불순종
어느 교회 장로님 한 분이 늘 원망과 불평에 차 있었습니다.
다름 아니라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것에 대한 불만이었습니다. 일상사 좀 어려울 때마다, 좀 힘들 때마다 그 할아버지 할머니, 선악과는 왜 따먹어 가지고 오늘의 우리까지 이렇게 고생을 시킨담. 에덴동산에 고이 살았으면 힘든 농사도 하지 않고 길이 평안하게 잘살 수 있었을 것을... 뭣 때문에 이렇게 사서 쫓겨 나가지고 두고두고 그 고생 이 고생이란 말인가! 아담 할아버지, 하와 할머니가 몹시 원망스럽다. 이거.'
늘 이렇게 원망 불평을 하는데 그 도가 좀 지나쳤어요. 목사님이 이렇게 저렇게 여러 모로 설명을 해 주었지마는 영 들어먹지를 않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 댁에서 저녁식사에 이 장로님을 초청했습니다. 음식을 잘 차려 놓고 식사 기도를 하고 막 수저를 드는데 밖에서 손님이 찾는 바람에 목사님이 밖으로 나가면서 하는 말씀이 "자, 감사 기도도 드렸으니 다들 식사를 먼저 하세요. 그러나 여기 있는 것 가운데 요 그릇, 뚜껑 닫아 놓은 이것은 건드리지 말고 그대로 두세요. 제가 밖에 나갔다가 들어와서 이것을 열어 보이겠습니다. 그러니 그동안은 참으시고 다른 것만 드시도록 하세요. 다른 것은 다 잡수셔도 좋습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놓고 목사님은 나갔습니다.
식사가 시작되었는데, 이 장로님, 영 궁금해 못견디겠거든요. 도대체 건드리지 말라는 요 그릇에 든 것이 무엇이관대... 그는 기어이 그것을 살짝 열어 보았습니다.
그 그릇 속에는 뜻밖에도 새 한 마리가 들어 있었습니다. 뚜껑을 여는 순간 그 새는 그만 푸르릉하고 날아올랐습니다. 헌데 이걸 도로 잡을 재간이 없습니다.
목사님 들어오기 전에 잡아서 다시 집어넣어야 쓰겠는데요. 허겁지겁 뛰쳐 일어나 요리조리 허위적거리고 쫓아다녔지마는 방안에 먼지만 자욱해집니다.
이윽고 목사님이 들어왔습니다.
"아니, 여기 다른 음식도 허구하게 많은데 왜 하필이면 그것을 열어 보았습니까?"
짐짓 한마디 던지고 나서 목사님은 빙그레 웃고 말했습니다.
"장로님은 분명 아담 할아버지의 후예십니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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