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새로운 방식' 이라 불리는 피니의 주장은 두 가지 개념, 즉 외적인 행동과 진정한 거듭남을
혼동했기 때문에 반대에 부딪힌 것입니다.
당연히 우리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을 수도 있고, 손을 높이 들거나 앞으로 걸어 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그런 행동들이 한 사람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거나 또는
그리스도인으로 만드시는 주의 사역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새로운 어떤 방식을 말하거나, 심지어 거듭나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회심에 이를 수 있는
적절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처럼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신약 성경에서 말하는 회심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혼동했기 때문에 반대에 부딪힌 것입니다.
당연히 우리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을 수도 있고, 손을 높이 들거나 앞으로 걸어 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그런 행동들이 한 사람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거나 또는
그리스도인으로 만드시는 주의 사역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새로운 어떤 방식을 말하거나, 심지어 거듭나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회심에 이를 수 있는
적절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처럼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신약 성경에서 말하는 회심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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