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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로마서 16장1-16 / 그리스도 안에서 수고하는 일꾼들

by 【고동엽】 2022. 11. 15.
■2022년2월28일(월)■
 
(로마서 16장)
 
1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2 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 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
3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4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5 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 내가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그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니라
6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
7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8 또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
9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
10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에게 문안하라
11 내 친척 헤로디온에게 문안하라 나깃수의 가족 중 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
12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
13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14 아순그리도와 블레곤과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와 및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하라
15 빌롤로고와 율리아와 또 네레오와 그의 자매와 올름바와 그들과 함께 있는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
16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묵상/롬 16:1-16)


◆ 자매 뵈뵈


(1) 내가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겐그레아는 오늘날 그리스에 속한 항구도시로서 고린도 지방 부근에 있다. 로마로부터는 꽤 먼 거리다.
그녀가 어떤 연유로 로마까지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문맥을 살필 때 그가 바울의 로마서를 로마교회에 전달한 장본인인 듯하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여기에 동의한다.


로마서는 복음이 어떤 것인지를 깨우치고, 교회와 이스라엘과의 관계, 그리고 교회의 각종 은사들이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깨우치는 너무나 귀한 서신서다. 로마서를 주제로 한 박사 논문만도 수천, 수만 개다. 그런데 뵈뵈가 이 서신서를 전달할 당시에는 로마서는 세상에 오직 단 하나뿐이었다. 절대로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서신서였다. 이 귀한 사역을 뵈뵈는 끝내 완수했다.


뵈뵈는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이라고 했는데, 일꾼에 해당하는 '디아코노스'는 섬기는 자, 시중 드는 자라는 뜻으로, '집사'(딤전 3:8)와 동일한 단어다. 오늘날 '사역자'라고 번역할 수 있는 단어다.
성경에서 이 단어는 다양하게 번역되었다. 사환(마 20:26), 섬기는 자(막 9:35),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치에서 '하인'들도 디아코노스였다. 디아코노스는 오늘날 '사역자'로 번역할 수 있다.


뵈뵈는 겐그레아 교회의 여자 집사, 곧 사역자다.
집사란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하듯이 일정 기간 출석하면 교회에서 내리는 감투가 아니다. 교회의 여러 잡다한 일을 처리하며, 마음을 다해 교회를 섬기는 사역자를 의미한다.


◆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3)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아굴라는 남편, 브리스가는 아내다.
그런데 이 부부가 얼마나 헌신적이었는지, 바울 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가 그들에게 감사한다고 기록되어있다(4절).


'저의 집에 있는 교회'(5)라는 말은 오늘날 교회 건물을 교회로 인식하는 사람들에게 무척 어려운 말일 것이다. 집 안에 교회당이 있다니? 그럴 리가! 교회는 절대로 건물이 아니다. 어떤 장소도 될 수 없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시고, 성도들이 그 지체가 된다. 교회당 건물을 '하나님의 집'이니 '성전'이니 하는 자들은 무지하거나 사이비거나 둘 중의 하나다. 그렇게 가르치는 교회라면 당장 떠나야 한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이 부부는 자기 집을 교회의 모임 장소로 제공했다.  한마디로 가정교회다.


자기 집을 교회 장소로 제공하는 것은 쉬어 보이지만, 사실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당시에는 거의 날마다 모이는 상황에서 이들 부부의 노고가 얼마나 컸을지를 짐작해본다.  나는 이런 가정교회를 하는 분들의 고충과 노고를 여러 번 들었다. 결코 헌신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이 부부를 언급할 때는 이상하게도 아내 브리스가를 먼저 쓴다. 당시로써는 어울리지 않는 순서다. 이 순서는 많은 짐작을 낳게 했다. 어떤 사람은 브리스가는 이방인 명문가 출신의 여자고, 아굴라는 유대인 평민 출신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런 짐작에서 당시에 절대로 맺어질 수 없는 결혼이 신앙 안에서 이루어지는 멋진 로맨스를 상상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브리스가가 아굴라보다 더 말씀이나 능력이 탁월했으며, 더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아마도 이것이 맞을 것이다.


이들 부부의 헌신은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다.
오늘날도 부부가 함께 헌신하여 교회에서 봉사하는 모습은 감동이다. 참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런 사람들을 교회에서 많이 보았으면 좋겠다.


◆ 여성들의 헌신


(6)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


뵈뵈나 브리스가는 교회에서 여성들의 사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주는 좋은 예다.  성경은 여성이 교회 지도자가 되는 것을 금하지만(딤전 2:12), 이것의 예외를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바울조차도 인정할 정도라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이러 부분에 융통성을 가져야 한다.
특히  중국 교회의 경우 여성들의 사역을 제한할 경우 교회는 무척 어려움을 겪고, 대폭 축소될 것이다.


오늘 본문에도 언급된 사람이 대략 26명인데, 그 중에 여자가 9명이나 언급되었다.
그리고 하나같이 헌신적이고, 감동적인 형용사가 붙은 사람들이다.


보호자가 된 뵈뵈
모든 교회가 감사하는 브리스가
많이 수고한 마리아,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형용사가 과거형으로 쓰인 것으로 미루어 노령의 여인으로 추정)
바울의 어머니와 같았던 루포의 어머니(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지었던 구레네 시몬의 부인, 막 5:21)


그리고 여러 성도를 언급하는 중에도 율리아(15절), 네레오의 자매 등 여성들이 포함되어있다.


당시에 여성들이 모든 일에서 소외되는 사회 풍조 속에서도 주님을 사랑하고 헌신하는 여성들의 활동은 결코 무시될 수도, 무시해서도 안 되었다.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섬기는 그들이야말로 천국에서 큰 상을 받게 될 것이다.


여자 목사를 인정할 것인가 말 것인가로 논쟁을 하곤 하지만, 사실 초대교회에서는 그런 타이틀이 불필요했다. 그런 타이틀 없이도 모두가 얼마든지 주님을 섬길 수 있었다. 꼭 지도자가 아니어도 섬길 영역은 많았다. 하늘의 상이 목표지, 지도자가 되는 것이 우리의 목표는 아니지 않은가?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나라에 문준경 전도사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신학교 입학도 정식으로 못하고 그냥 수업만 했으며, 아무런 타이틀도 받지 못하고 그냥 전도사란 이름으로 자기 고향이었던 전라남도 신안군 섬들을 돌면서 전도했다. 고무신이 닳아서 한 달에 한 번꼴로 갈아치울 정도로 돌아다니면서 무려 100개 교회를 개척했다. 오늘날에는 거기에 그리스도인들의 순례 길을 만들었고,  순례 길 중간마다 12사도의 이름을 딴 작은 예배당 있다. 한국 성도들이 한번 가볼 것을 추천한다.


거기에 가면 무려 주민들의 90%가 그리스도인인 섬이 있다.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이것이 모두 문준경이라는 작은 체구의 여성이 주님께 헌신함으로써 얻은 열매다.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주님을 섬긴 그녀의 사역을 들으면 눈물이 날 정도의 깊은 감동이다. 타이틀이 무슨 대수인가? 주님께 드려지는 사역에는 한계가 없다.


사람들은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구호를 무수히 듣는다. 그런데 초대교회는 바로 이렇게 헌신 된 자들에 의해 개척되고, 이런 자들의 희생으로 지속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종교적으로 세뇌되어서, 목사가 없으면 교회가 불가능한 것처럼 생각하고, 신학교 졸업장이 없으면 교회를 인도할 수 없다고 믿는다. 이제 이런 무지는 깨져야 한다.


초대교회에는 오늘날과 같이 예배당도 없었고, 신학교 졸업장이 필요한 목사나 각종 월급 받는 사역자들도 없었다. 그렇지만 모두 기쁨으로 헌신했고, 복음을 정확히 알고 있었으며,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로마서 16장에는 '문안하라'는 말씀이 무려 16번이나 나온다.
이렇게 서로 안부를 묻고 관심을 가지고, 서로 돌아보는 것이 교회에 속한 자들의 의무다.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한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교회 공동체에 속한 모든 사람이 함께 힘써야 한다.


주님,
저를 교회로 불러주심을 감사합니다.
형제들과 함께 웃고, 함께 울며, 주님을 기쁨으로 섬기고, 그리스도 안의 형제로서 서로 돕는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는데 드려지기를 원합니다.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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