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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믿음(3) (삼하18:28-33)

by 【고동엽】 2021.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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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믿음(3) (삼하18:28-33)

최근 한국사회에 가장 큰 사회적인 이슈가 된 사건은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사건일 것입니다. 김 회장은 남대문 경찰서에 전격 수감되었습니다. 한국역사상 그룹 총수로서는 경찰서에 수감되기는 처음 있는 일입니다. 앞으로 법정에서 어떤 판결이 내려질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번 사건을 보면서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2가지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는 ‘동정론’입니다. 이것은 이 땅의 모든 부모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자녀들이 한 밤중에 깡패들에게 뭇매를 맞고 피투성이가 되어 들어왔다면 가만히 앉아 있을 부모가 어디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재벌 회장이니까 이렇게 커진 것이지 우리 사회의 구석에서는 얼마든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부모의 심정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보는 다른 하나는 ‘물질 만능론’입니다. 지금 세상에 돈 가지고 안되는 게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아무리 아버지가 아들의 폭행에 대해 격분한다고 해도 그가 만약 재벌총수가 아니라면, 돈이 없는 가난뱅이 서민이라면 가능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가 돈이 있기에 100명이 넘는 사람들을 동원했고, 돈의 힘으로 보란 듯이 보복을 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돈 때문에 그는 죄 값에 대한 대가를 치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유전무죄, 무전 유죄’ 즉, 돈이 있으면 죄도 없고, 돈이 없으면 죄도 생기는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사건을 통해 유전무죄의 전례를 남기지 않도록 법원이 분명한 판결을 통해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2가지의 반응이 엇갈린 가운데 어제 김 회장은 본인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는 “상대방을 탓하고 분노하기 이전에, 자식에게 먼저 회초리를 들어 꾸짖지 못했던 제 자신이 너무도 후회스럽기만 하다, 누구보다도 사회에 모범을 보여야 할 신분으로서, 처음 사건 발단 시 적법한 절차 에 따라 신중하게 처신하지 못한 제 자신이 너무도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이것이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지금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사건입니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심정과 바른 교육, 바른 행동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알게 해줍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부모가 자녀에 대하여 어떤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가를 알려줍니다. 부모의 믿음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에서 바른 행동, 교육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대하는 부모의 믿음에 있어서도 다윗만큼 뛰어난 사람이 없습니다. 다윗은 부모로서 자녀에 대하여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첫째, 사랑하는 믿음입니다. 본문은 다윗의 기록가운데 가장 고통스러웠던 시기에 일어난 참담한 광경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다윗과 같은 성군의 시대에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그것도 반란의 주역이 다른 사람이 아닌 사랑하는 아들이고, 죽마고우로 지낸 친구였습니다. 아마 다윗은 이 시기에 견디기 힘든 인생의 험한 골짜기를 지나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런 때에도 믿음으로 극복한 사람입니다. 그의 믿음은 어려운 때에 더욱 그 진가를 발휘한 것입니다. 특히 그가 반란의 주역인 그의 아들 압살롬을 대하는 모습에서 얼마나 자녀를 향한 깊은 믿음이 있었는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우선적으로 돋보이는 것이 바로 자녀를 향한 사랑입니다.

   보통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를 가장 현실적으로 잘 보여주는 것이 2개 있는데 하나가 이해요, 다른 하나가 희생입니다. 사랑은 이해요 희생이라는 것입니다. 이해는 그 사람의 입장에 서보는 것이고, 생각하는 것이고, 받아주고, 상대방의 행동에 대해 자기를 돌아보는 것을 말합니다. 희생은 사랑을 위해 자기의 것을 포기하고 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이 자녀를 향한 사랑에도 잘 나타나는데, 다윗이 이렇게 이해하고 희생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압살롬이 처음 성경에 등장할 때부터 읽을 수 있는 다윗의 행동입니다.

   아버지의 이해하는 사랑은 아들 압살롬이 이복형이었던 암논을 죽일 때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압살롬은 다윗의 아들가운데 총명하고 용감하고 정의감에 투철한 아들이었습니다. 그의 이복형이었던 암논이 압살롬의 누이동생인 다말을 범했을 때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압살롬은 암논을 살해했던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압살롬은 궁지에 몰렸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살인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았습니다. 결국 그는 눈총을 견디다 못해 외가로 피난했던 것입니다. 이런 아들을 잘 이해하고 사랑한 사람이 바로 아버지 다윗입니다. 13장 39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다윗 왕의 마음이 압살롬에게 향하여 간절하니 암논은 이미 죽었으므로 왕이 위로를 받았음이더라”

   아들을 위해 희생하는 아버지의 믿음과 사랑은 다윗이 예루살렘을 떠나는 것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반역이 일어났을 때 다윗은 반란군과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떠나는 편을 택합니다. 다윗의 충신들은 다윗을 설득하여 싸우려고 했지만 다윗은 결코 대결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당시 다윗이 힘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다윗만큼 강력한 힘을 가진 사람이 없었습니다. 또한 지지세력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다윗의 주변에는 아직도 충성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민심이 떠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여전히 존경하는 지도자였습니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반란군을 진압하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떠납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떠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버리겠다는 의지입니다. 아들을 위해 다 주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사랑이요, 믿음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 주변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부모만큼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모는 자녀를 가장 잘 이해하고, 부모는 자녀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희생의 자세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해와 희생으로 지금까지 자녀를 키웠고, 죽을 때까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 우리의 부모입니다. 이런 부모의 심정, 사랑, 믿음을 잘 헤아리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울타리가 되어주는 믿음입니다. 자녀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은 이해와 희생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다윗은 압살롬의 울타리가 되어 줍니다. 비록 아들은 아버지를 향해 칼을 겨누었지만, 아버지는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반역자라는 이름으로 평생 살다가 비참하게 죽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는 아들의 가장 큰 울타리가 되어준 사람이 바로 아버지 다윗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서 압살롬의 울타리가 되어주는 아버지의 행동이 곳곳에 나와 있습니다만 특히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마지막 싸움터로 나갈 때 다윗의 말에서 찾습니다. 그는 요압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왕이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하여 가로되 나를 위하여 소년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접하라 하니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모든 군장에게 명령할 때에 백성들이 다 들으니라”(18:5) 다윗은 요압에게 만약 전쟁에서 승리하여 반란군을 진압하게 되면 압살롬은 살려주라고 명령합니다. 이것을 모든 백성이 다 듣는데서 선포합니다. 당시 왕의 명령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요압은 압살롬을 잔인하게 살해합니다. 압살롬은 요압의 손에 죽었지만,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과 믿음은 아들의 큰 울타리가 되어준 것입니다. 다윗은 압살롬의 든든한 후원자요, 강력한 서포터였습니다.

   다윗의 여러 아들 가운데 압살롬 만큼 아버지의 후원과 후광을 얻은 아들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다윗은 차기 왕권의 자리를 압살롬을 염두 해두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대표적인 증거가 압살롬의 이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압살롬이라는 이름의 뜻은 아버지의 평화입니다. 그토록 아버지는 아들에게 평화를 원했던 것입니다. 결국 솔로몬이란 이름의 뜻도 평화라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이런 기대 속에 솔로몬은 다음 왕권을 이어갑니다. 그런 것을 감안하면 어쩌면 다윗의 마음에는 늘 압살롬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는 것입니다. 비록 반역으로 기대를 저버렸지만 아버지는 아들의 강력한 후원자, 든든한 서포터, 확실한 울타리가 되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지난 월드컵 때 그라운드 뒤에서 그들을 기도로 도왔던 후원자가 있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 선수들의 부모들이 열심히 기도하며 그들을 후원했습니다. 이런 기도의 후원으로 힘을 얻어 선수들이 실력 이상을 발휘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던 어떤 선수가 고백을 했습니다. “우리가 뛸 때, 기도로 도와준 모든 분들, 특히 부모님이 우리의 든든한 후원자였습니다.”

   우리에게 든든한 후원자만큼 용기를 주는 것은 없습니다. 부모가 그렇습니다. 광야와 같은 인생길 눈물로 걸어가도 부모의 넓은 가슴에 안긴 자녀는 결코 외롭지 않습니다. 깊은 슬픔에 잠겨 마음이 괴롭고 답답해도 나를 사랑하는 아버지, 나를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이것이 부모의 사랑이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부모만큼 든든한 후원자는 없습니다. 나를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이해하고, 희생하는 든든한 후원자인 부모, 울타리가 되어주는 부모가 있음을 잊지 마시고 지치고 어려울 때마다, 힘과 용기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눈물과 통곡의 믿음입니다. 자녀를 향한 아버지 다윗의 믿음과 사랑은 오늘 본문에서 절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본문은 아들 압살롬이 죽은 소식을 접한 다윗의 심정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요압은 아들 압살롬을 죽이지 말라는 왕의 명령을 어기고 반란의 주역인 압살롬의 심장에 칼을 꽂았습니다. 비참하게 죽은 아들의 비보를 접한 다윗이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보십시오. 33절입니다.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루로 올라가서 우니라 저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다윗은 죽은 아들의 소식을 접하고 웁니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합니다. 그는 땅바닥에 엎드려 가슴을 치고 통곡하며 아들을 생각하며 울부짖습니다. 무슨 말을 하지 않아도, 어떤 행동이 더 이어지지 않아도 우리는 다윗의 통곡하는 이 눈물이 어떤 것인지 잘 압니다. 자녀를 향한 부모의 심정, 사랑, 마음, 믿음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고귀한 눈물입니다.

   성경에서 다윗만큼 눈물을 많이 흘린 인물이 없을 것입니다. 그는 그의 인생을 통해 너무도 많은 눈물을 흘리며 산 사람입니다. 아파서 울고, 힘들어서 울고, 답답하고 괴로워서 울고, 회개하며 통곡하고, 자기 때문에 울고, 백성들 때문에 울고, 자녀 때문에 웁니다. 찬송 부르며 울고, 기도하면서, 예배를 드리며 웁니다. 하나님의 은혜 앞에 감격하여 울고, 자기를 돌아보며 통회하며 웁니다. 침상을 눈물로 적시며 밤을 지새운 적이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다윗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어쩌면 다윗이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 존경받게 된 것은 많은 눈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향한 다윗의 눈물, 역시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모든 자녀를 위하여 많은 눈물을 흘렸고, 특히 자기를 배신했지만 비참하게 죽은 압살롬을 향하여 통곡하며 울부짖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눈물과 통곡의 믿음을 보시고 다윗은 물론 그의 가정과 나라와 공동체에 큰 축복을 베푸셨습니다. 한 사람 다윗의 눈물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눈물이 큰 바다를 이루어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였던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실 때 뒤에서 울면서 따라오던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주님은 고통이 절정에 달하여 의식을 잃어갈 때 그들의 눈물을 귀하게 보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이제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부모의 눈물이 자녀에게 힘을 줍니다. 부모의 통곡이 자녀를 바르게 세웁니다. 부모의 울부짖는 기도가 자녀의 장래에 큰 전환점이 됩니다. 자녀는 바로 그런 부모의 눈물의 믿음과 기도와 간구를 통해 아름답게 세워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부모들은 눈물로 살아온 것입니다. 지금까지 부모의 눈에 흐르는 눈물을 많이 보았고, 특히 마음으로 흘리는 통곡과 눈물로 지내온 세월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결국 자녀는 부모의 눈물로 사는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눈물을 잘 알지 못합니다. 결국 자녀는 또 부모가 되어야 알게 되는 법입니다. 부모의 눈물에 참으로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작년 미국에서 한국계 미국인 하인즈 워드가 한국인, 유색인종의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모든 선수들이 평생 한번 꿈꾸어도 되지 않을 슈퍼볼의 영웅이 될 수 있었던 동기가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오직 어머니였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사랑과 울타리 속에서 자랐습니다. 그의 가장 강력한 팬, 든든한 후원자는 바로 어머니였습니다. 그가 이렇게 큰 선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눈물 때문입니다. 초등학생 시절이었던 어느 날 어머니 무릎에서 잠이 들었을 때 그의 뺨에 떨어지는 눈물을 그는 평생 잊을 수가 없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어머니의 눈물이 하인즈 워드를 만든 것입니다. 어머니의 눈물 한 방울이 이렇게 큰 힘을 준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살면서 얼마나 많이 울어보셨습니까? 남자는 울지 말아야 한다는 문화 속에서 우리가 살아왔지만, 성경적인 문화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눈물이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특히 자녀에게 큰 힘을 주는 것입니다.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라고 고백하면서 살았던 다윗의 눈물의 믿음을 우리가 본받아야 합니다. 눈물을 흘리는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 갑니다. 눈물과 통곡이 많은 기도가 하나님께 다다르는 것입니다. 자녀를 향한 부모의 눈물이 자녀에게 힘을 주고 바르고 참된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나는 어떤 사람, 부모입니까?

   자녀를 향한 부모 다윗의 믿음을 기억하십시오. 사랑으로 이해하고 희생하는 믿음, 스폰서와 울타리가 되어주는 믿음, 그리고 눈물과 통곡의 믿음입니다. 어버이 주일에 주신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더 부모님께 효도하고, 부모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서해원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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