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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는 질문이 없다! (창 12;1-12)

by 【고동엽】 2022.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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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는 질문이 없다! (창 12;1-12)


믿음에는 질문이 없습니다.
얼마 전이었습니다. 몇 분과 함께 둘러 서서 교회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여자 집사님 한 분이 내 옷을 보면서 물었습니다.
<목사님! 어깨에 루즈가 묻어 있네요.> 다른 여자가 물었습니다.
<누구 루즈예요?>
또 다른 여자가 물었습니다.
<어제 무엇 하였어요?>
그러나 아내가 말했습니다.
<부흥회 안수하다가 묻었을 거예요.>
믿으면 질문이 없습니다. 저희 아내는 나를 믿기에 옷에 루즈가 묻어도 묻지 않습니다.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교회에서 지낼 때가 많습니다. 밤 10시에 집으로 전화하였는 데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나는 핸드폰으로 찾거나 받을 때까지 전화하지 않습니다. 쓰레기 버리러 나갔거나 자기 전에 걷기 운동하나보다 생각합니다.
믿으면 질문하지 않습니다. 믿지 못 하면 시시콜콜 캐묻게 됩니다.

오늘 본문으로 들어 갑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 12;1)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질문이 없었습니다.
<어디로 떠날 가요?>
<떠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요?>
<언제 떠날 가요?>
<왜 떠나야 하나요?>
<이사짐은 얼마나 가지고 가야 하나요?>
<언제 돌아 오게 될가요?>
아브라함은 무조건 떠났습니다. 믿음에는 질문이 없습니다.

어느 날 또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너는 네 사랑하는 아들 독자 이삭을 잡아 내게 번제로 드려라.>
아브라함은 이렇게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아들을 죽이나요?>
<하나님! 바꾸어 놓고 생각하여 보십이요. 100살에 난 아들에게 어떻게 칼을 대나요?>
<어디서 죽이나요?>
<누구와 죽이나요?>
<아내에게는 무엇이라고 말하나요?>
<이삭에게는 무엇이라고 말하고 데리고 가나요?>
<죽이고 나서 어떻게 하나요?>
아브라함에게는 질문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죽이려고 모리아산으로 데리고 올라 갔습니다. 그리고 칼로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창 22;13-18)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질문이 없었습니다. 왜 믿음에는 질문이 없는 것일가요?

1. 하나님은 절대자이기 때문입니다.
절대자이기에 질문없이 그대로 받는 것이 믿음입니다.
옛날의 왕은 절대자였습니다. 어느 왕이 죽으면서 가장 신임하는 신하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내게 가장 충성된 신하다. 나는 오늘 죽는다. 죽음의 세계에 네게 먼저 가서 내 길을 닦아 놓거라.> 신하는 절대자 왕의 명령을 듣고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왜 내가 죽어야 합니까?>
<죽고 나서 무엇을 할가요?>
신하는 즉각 자살하였습니다. 왕은 신하에게 절대자였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절대자입니다. 그렇기에 아브라함은 질문없이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중에 절대자이십니다.
하나님을 우습게 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입니다. 하나님이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면 절대로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이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면 십일조는 절대적으로 드려야 합니다.
<왜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까?>
<안식을 왜 지켜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에는 질문이 없어야 참된 믿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질문없이 믿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굳게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 16;17-18)

나는 지금 이 말씀을 질문없이 믿습니다. 지금 주님이 지금 우리 교회에서 치유의 역사를 일으키고 계심을 믿습니다. 지금 아픈 분들을 치유시켜 주시고 계십니다. 간증거리가 생기게 될 것입니다.
허리를, 장을, 피부를, 암을 치유시키고 계시다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에는 질문이 없습니다.
절대자는 못 할 것이 없으신 분이시기에 나는 그 분의 말씀이라면 조건없이 질문없이 아브라함처럼 받을 것입니다.
얼마 전에 하나님은 분명히 또 말씀하셨습니다. 생생한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밖에 만 명을 이루었으니 안에 만 명을 주리라.> 우리는 파나이 섬에 230 교회 10,000 성도를 이루었습니다. 보통 교회는 내부적으로 성장하고 밖으로 나가는 데 우리 교회는 밖을 성장시키고 안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언제 만 명이 될가요?>
<어떻게 만 명이 될가요?>
<정말 될가요?>
<만 명 되면 어떻게 수용할가요?>
질문이 없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동네 유지 모임에서 생긴 이야기입니다.
동네 유지들이 다 모였습니다. 그리고 동네 일을 의논하는 자리였습니다. 면장, 이장 그리고 목사님 그리고 스님도 참석하였습니다. 식사 전에 스님이 먼저 기도하고 목사님이 기도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스님은 불교식으로 기도하고 이렇게 마쳤습니다.
<부처님과 예수님의 이름을 합쳐서 기도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말했습니다.
<나미아불타불 아멘.>
다음 목사님의 차례였습니다. 목사님은 고민이 생겼습니다. 스님이 그렇게 기도하였기에 자기도 그렇게 기도하여 주어야 예의입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단호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리고 말했습니다.
<하나님만이 절대자이십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속이 다 시원하였습니다.
믿음에는 질문이 없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 분은 절대자이기 때문입니다.

<대지>의 작가로 유명한 펄 벅 여사 이야기입니다.
그의 어머니 캐롤라인은 네덜란드 청교도 신앙생활의 정신을 이어받은 미국 부인이었습니다. 펄 벅 어머니는 아버지 선교사 사이든스트리커(sydenstricker)를 따라 중국으로 들어 왔습니다. 코가 크고 흰 얼굴, 노랑 머리 서양인이 중국에 없을 때였습니다.
그들은 청강포에 살면서 선교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해 심한 가뭄이 들었습니다. 그 때 남편은 다른 지방으로 전도여행을 떠났습니다. 집에는 어머니와 세 자녀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펄 벅이었습니다. 그리고 왕이라는 중국인 가정부만 남아있었습니다.
가뭄이 계속되자 온 동네 사람들은 굶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캐롤라인이 창가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밖에서 중국인 남자 들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비가 오지 않고 가뭄이 계속되는 원인이 있다. 서양인들이 우리 땅에 들어 와서 땅이 부정을 타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밤 선교사 가족을 죽이자 그리고 신에게 바치자. 그러면 가뭄이 끝날 것이다.>
중국말을 들을 줄 아는 가정부는 울면서 말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아요. 오늘 죽이러 온 데요. 도울 힘이 없어요.>
캐롤라인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도망갈 수도 없습니다. 도망가면 끝까지 따라 올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아이들까지 무참히 죽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는 골방으로 들어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습니다.
<죽이러 오는 이들을 대접하여라.>
이런 강한 소원이 올라 왔습니다.
저녁이 되었습니다. 캐롤라인은 평소보다 일찍 아이들을 재웠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창가에 앉아 바느질을 하면서 귀를 기울였습니다. 자정쯤 되었습니다. 발자국 소리가 들렸습니다. 캐롤라인은 가정부에게 차와 케이크를 준비하도록 하였습니다. 귀한 손님을 맞이하듯 문을 활짝 열어놓았습니다.
열린 문으로 그들이 당당하게 들어 왔습니다. 그는 자고 있던 아이들을 깨워 옷을 입혔습니다. 데리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노래하고 이야기하며 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어서 들어와서 함께 차와 다과를 나눕시다. 맛있게 드세요. 준비하여 놓았어요.>
중국인 한 명이 물었습니다.
<우리가 무섭지 않소?>
그가 대답하였습니다.
<이웃에 사는 여러분을 무서워할 이유가 있을까요?>
캐롤라인은 오르간 앞에 앉아 중국말로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
찬송이 끝날 때까지 방안은 조용해졌습니다. 그 곳에 모인 중국인들은 얼굴을 마주보고 멋쩍어하였습니다. 조금 후 하나 둘 밖으로 나갔습니다.
캐롤라인은 의자에 주저앉아 안도의 숨을 내쉬며 긴장을 풀었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그 날 새벽 기적처럼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입니다. 못 할 것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기도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면 됩니다.

2. 하니님의 말씀은 믿을 만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믿을 만한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그 분이 말씀하시는 것은 질문없이 무조건 들을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만 하면 결과가 좋습니다. 그렇기에 질문이 필요없습니다.

구약의 제일인자 모세와 신약의 제일인자 베드로를 보려고 합니다.

우선 구약의 모세를 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 지낼 때였습니다. 가도 가도 끝없는 사막이라 물이 없었습니다. 목말라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반석을 쳐서 물을 내라.>
모세는 절대자 하나님을 믿기에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바위를 치다가 지팡이가 부러지면 어떻게 하나요?>
<반석을 친다고 물이 나오겠습니까?>
<차라리 땅을 파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모세는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지팡이로 반석을 쳤습니다. 물이 나왔습니다. 얼마나 많이 나왔는 지 200만명이 다 마실 양이었습니다. 강물처럼 흘렀습니다. 상상을 초월하였습니다.
믿음은 질문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순종하면 결과가 좋습니다. 그렇기에 믿음에는 질문이 없는 것입니다.

신약의 일인자 베드로를 보려고 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 만나는 순간 이야기입니다. 베드로는 어부였습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그 날 밤 따라 컨디션이 나빴는 지 단 한 마리도 잡지 않았습니다.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중얼거렸을 것입니다.
<오늘만 날이냐? 푹 자자. 그리고 오늘 저녁 다시 나오리라. 내게는 항상 꿈이 있고 건강이 있다.>
그리고 그물을 씻고 있을 때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베드로는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말하지 마세요. 밤새도록 못 잡았어요. 새벽은 고기 못 잡을 시간이지 않아요?>
<당신은 목수이니 집을 짓는 데나 가서 참견하시오.>
<당신 고기 잡아 보았소?>
<당신은 갈릴리 고기 성격을 모르나요?>
베드로는 묻지 않았습니다. 믿음에는 질문이 없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선생이여!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만은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
그리고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두 배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절대자 말에 질문이 없었더니 결과가 좋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에 질문을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분명합니다.
절대자이기 때문입니다.
결과가 좋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간 모 일간지에서 대통령 유모가 나왔습니다. 솥을 주제로 하였습니다.
이 승만 대통령이 미국 원조를 받아 가마솥 큰 것을 원조 받았습니다. 박 정희 대통령이 밥을 배부를 정도로 가득 지었습니다. 그리고 먹지 못 하고 죽었습니다. 최 규하 대통령이 그 밥을 먹으려다가 손을 데고 물러 났습니다. 전 두환 대통령이 모두 긁어 먹었습니다. 노 태우 대통령이 남은 것이 없나 보다가 누릉지까지 다 긁어 먹었습니다. 김 영삼 대통령이 보니 솥에 구멍이 나서 팔아 버렸습니다. 김 대중 대통령이 금모으기를 하여서 110 볼트짜리 밥속을 겨우 하나 사왔습니다. 노 무현 대통령은 220 볼트에 연결시키며 중얼거렸습니다.
<코드가 안 맞아.>
이 명박 대통령이 전기 밥솥을 박 정희 대통령식으로 불을 때서 밥을 하려다가 안 맞아서 쩔쩔 매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론은 소망적이었습니다.

<아직 밥할 시간은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좋은 결과를 기다리고 믿어야 합니다. 그래도 이 명박 대통령은 장로라 다른 면이 보이고 있습니다. 모임에서 술로 축배를 들지 않고 녹차를 따라 들고 축배하는 모습을 보고 좋았습니다. 역대 대통령들 중에 차로 축배를 드는 것을 처음 보았습니다.
우리 잘 하시도록 기도하여 드리고 밀어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누가 되어도 일단 되면 기도하여야 합니다.

기도중에 주시는 하나님의 소원을 붙잡으면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너희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소원을 두고 행하시나니>(빌 2;13)

그 분의 음성으로 서원을 통하여 들으며 질문없이 행하면 좋은 결과를 맺게 됩니다.

사과장수 아주머니가 있었습니다. 교인들이 수없이 전도를 했지만 아주머니는 난공불락의 성이었습니다. 도무지 예수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아주머니가 어느 날부터 옷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교회에 출석하였습니다. 교인들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몇 년 동안 그렇게 전도하여도 안 나오더니 어떻게 교회에 나오게 되었어요?> 그 분이 대답하였습니다.
<일주일에 세 번씩 우리 가게에 들르는 한 신사분이 있었어요. 그 분은 항상 못생기고 덜 싱싱한 사과를 사갔어요. 때로는 썩어가는 사과를 사가기도 하였어요. 왜 그러느냐고 물으면 지금 당장 먹을 것이기 때문에 좀 썩은 것도 괜찮다는 대답이었습니다. 싱싱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 팔라고 늘 말해주었지요. 너무 미안해서 사과를 몇 개 주었더니 손을 흔들면서 거절했어요.>
여기까지 말하면서 눈물을 닦았습니다. 그리고 말을 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부터 그 분에 대해 조금씩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남다른 분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 분이 조그만 소리로 말했습니다.
‘예수를 믿으세요.’
나는 그 분이 믿는 예수님이라면 믿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옆에 있던 전도한 남자분이 말했습니다.
<기도중에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지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결과가 좋습니다. 그렇기에 믿음에는 질문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에는 질문이 없어야 합니다. 그 분의 말씀에는 절대자이기 때문입니다. 그 분의 말에 순종하면 결과가 좋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야기 하나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윌리암 맥도날드가 쓴 <그리스도인의 기도생활>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부부가 정이 좋게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사업에 부도를 내고 고통을 당하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무서에서 수억원 세금 고지서가 날라 왔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세금을 다 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 데 이상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세무서에 가서 호소하였습니다. 수억을 낼 만한 돈이 없는 거지같은 상황이었습니다. 세무서에서는 막무가내였습니다.
<영수증이 없으면 어떤 해결책이 없습니다.>
아내는 집으로 돌아와서 집안을 샅샅히 뒤졌습니다. 심지어 책 한 권 한 권 한 장 한 장까지 다 넘겨 보았습니다. 집안 구석구석 찾아 보았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었습니다. 포기하였습니다. 어떻게 하여야 할 지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방에 앉아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깊이 기도하는 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하나님께서 도와 주시겠다는 응답이 있었는 데도 불구하고 역사는 거꾸로 흐르는 것같았습니다. 세무서에서 세금을 내지 않으면 고발하겠다는 통보가 왔습니다. 고발하겠다는 말은 구속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더 간절히 기도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었습니다. 기도하는 데 호랑나비 한 마리가 집안으로 들어 왔습니다. 집안에서 날라 다녔습니다. 어린 아들이 호랑나비를 잡으려고 따라다녔습니다. 온 집안이 난리가 났습니다.
호랑나비는 응접실 소파 밑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들은 나비를 잡으려고 소파밑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들이 소파 밑까지 들어 갔다 나올 때 종이 쪽지 하나가 묻어 나왔습니다. 보니까 영수증이었습니다.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질문없이 믿기만 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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