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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주는 선물! (롬 5:1-4)

by 【고동엽】 2022. 1. 26.

믿음이 주는 선물! (롬 5:1-4)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함흥에서 선교를 하고 있던 어느 서양 선교사가 산골을 지나다가 호랑이를 만났습니다. 이 호랑이가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이 노려 보고 있습니다. 그때 이 선교사가 호랑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마지막 기도를 할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 그렇게 호랑이에게 부탁을 하고는 기도를 했습니다. 이 선교사가 한참 동안 기도하는데도 이 호랑이가 덤벼들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살며시 눈을 떠 보니까 호랑이도 그 옆에 앉아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가 호랑이에게 물었습니다. "너도 예수 믿니?" 그랬더니 호랑이가 그렇다고 합니다. 그래서 또 물었습니다. "지금 무슨 기도했니?" 그러자 호랑이가 대답하기를 "지금 식사기도 했다"라고 하더랍니다.
이 이야기는 이솝우화에 나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참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세상이 이렇게 우화적인 면이 있다면 이 세상을 살아가기가 훨씬 더 쉽고 재미있을 것입니다. 여유도 있을 것이고 살아가는 데 나름대로 멋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이렇게 개념적이고 우화적이고 사변적이 아니라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현재적이고 실제적인 세상입니다. 그래서 무엇이나 구체적이어야 하고 분명해야 합니다. 신앙도 이렇게 개념적이고 철학적일 수가 없습니다. 신앙도 보다 구체적이어야 하고 분명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의 대상을 막연하게 추상화 하거나, 신앙 내용을 개념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칸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들이 신앙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예수는 있어도 좋고 없어도 괜찮다. 다만 교훈을 통해서 마음의 위안을 받을 수 있으면 된다." 이 같은 신앙은 우리들의 실생활에 전혀 힘이 되질 않습니다. 신앙은 마음의 위안이나 받고 소일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합니다. "마음이 허전하니 예수나 믿어 보자." 신앙은 이런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신앙 때문에 목숨을 버리기도 합니다. 신앙 때문에 생사에 기로에서 죽음을 택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신앙은 이렇게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신앙은 내용 있고 구체적일수록 좋습니다.
제가 설교를 할 때 되도록 개념적인 설교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설교가 막연하고 개념적이고 추상적이면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되도록 구체적이고 성경적이고 신앙적인 내용을 하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제가 설교하면서 자꾸만 천국을 말하고, 회개를 말하고, 변화를 말하고, 십자가, 부활, 심판, 종말을 얘기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들이 신앙을 갖되 이렇게 분명하고 구체적인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이 같은 신앙이 우리에게 주는 몇 가지 선물이 있습니다.

 

첫째는 화평입니다.

 

본문을 보면 "화평을 누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화평은 신앙이 주는 가장 좋은 첫 번째 선물입니다. 우리들이 신앙 생활을 하게 되면 가장 먼저 주어지는 선물이 바로 이 화평입니다. 이 화평의 선물은 굉장히 좋은 선물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은 세상에서 이 화평을 최고의 복으로 여겼습니다. 화평이라는 말은 히브리 말로 "샬롬"이라는 말입니다. 히브리인들은 사람을 만나면 인사말로 "샬롬"이라고 합니다. 이 히브리인들은 살아오는 동안 숱한 전란과 환난을 많이 경험했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화평이라는 것을 체험한 민족입니다.
우리는 복의 개념을 말할 때 물질을 말하고 물량적인 것을 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 말은 "새해 돈 많이 버세요"와 같은 뜻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인들의 복의 개념은 물질이 아니고 "샬롬" 곧 "화평"입니다. 잠언을 보면 "마른떡 하나를 놓고도 서로 화평한 것이 육선이 가득한 집에서 싸우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본문을 보면 "화평을 누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화평이 소중한 것을 언제 알게 되는가 하면 화평이 깨진 후에야 알게 됩니다. 화평이 있을 때는 그 화평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모릅니다. 그러다가 화평이 깨지고 불화한 다음에 가서야 사람들은 이 화평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후회를 하는 것입니다. 후회는 모두 뭔가 깨진 후에 나오는 탄식입니다. 그래서 신앙이 주는 가장 좋은 선물은 이 화평, 샬롬입니다.

 

두 번째는 훈련입니다.

 

본문 4절을 보면 "연단"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화평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하면 "연단"을 통해서 나옵니다. 이 "연단"이라는 단어는 쇠붙이를 말할 때 사용됩니다. 쇠붙이를 불 속에 넣어서 달구었다가 꺼내서 쇠 속에 들어 있는 공기가 하나도 없어질 때까지 두드리면 나중에는 그 쇠가 강철이 됩니다. 그렇게 달구어서 때리는 과정을 가리켜서 "연단"이라고 말합니다.
훈련이나 연단이 왜 필요한가 하면 더 강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이나 물건이나 신앙도 강하면 좀처럼 흔들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자살을 해서 죽는데 통계를 보면 자살하는 사람 가운데 가난한 집 사람은 자살하는 비율이 아주 적다고 합니다. 자살은 원래 사치스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자살은 여유 있는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정말 가난한 사람은 살아가는 데 전념하느라고 죽을 생각도 못합니다. 돈 많고 한가하고 유복하게 자라난 사람들이 마음이 유약해서 자살해서 죽는 것입니다.
편안하고 유복하게 자라난 사람은 의식주가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모릅니다. 그런데 사람이 굶주리게 되면 밥 한덩어리가 금덩어리보다 더 귀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정말 배고픔으로 연단을 받고 환난을 당해 보고 고통을 당해 본 사람은 세상을 보는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이고,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이고, 꼭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잘 압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절약하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스스로 아낄 줄 압니다.
이 같은 가치관이 어디에서 나오는가 하면 연단을 받고 훈련을 받고 환난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철없이 자라고 응석을 받으며 편안하게 자라던 아이들이 군에 갔다 오면 단단해지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강한 훈련을 통해서 시야가 넓어지고, 생각이 바뀌고, 느낌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사기꾼 야곱이 성자 이스라엘로 바뀌기까지에는 거기에 연단의 삶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훈련 기간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기간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그 훈련 기간 동안에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을 체허하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는 정오의 빛같이 빛나는 존재로 우뚝 서게 되는 것입니다.
요셉이 그 강한 훈련을 받고 나서 비로소 애굽의 총리가 되어 30세의 나이에 나이 많은 문무백관들을 당당하게 거느립니다. 무슨 힘으로 그렇게 될 수 있었느냐 하면 형들에게 팔린 경험, 종살이 경험, 감옥살이 경험들을 겪는 그 훈련 기간을 통해서 얻은 지혜로 거느린 것입니다. 그 결과 요셉은 어느 날 정오으 태양과도 같이 세상에 나타나게 되지 않습니까? 이것이 훈련과 연단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사람들에게 화평도 주지만 때로는 이 같은 연단도 주는 것입니다. 이 같은 연단을 받고 나서 사람들은 아주 강한 사람으로 서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인내입니다.

 

인내의 힘은 순전히 믿음이 주는 선물입니다. 인내는 연단이 만들어 냅니다. 사람이 연단을 받고 훈련을 받음으로써 강인한 인내의 히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래서 겸손은 훈련받지 않은 사람은 해낼 수 없는 고상한 능력이고 힘입니다.
그러면 인내가 무엇입니까? 인내는 무턱대고 참는 것이 아닙니다.
주머니에 돈이 하나도 없는데 사람들이 무시를 합니다. 그때 입술을 깨물며 그 무시를 참는 것은 인내가 아닙니다. 그것은 할 수 없어서 참는 것입니다. 지금 20평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데 60평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무시를 합니다. 지금 돈이 없어서 남의 집에서 셋방살이를 하고 있는데 집 주인이 무시를 합니다. 그래도 죽은 척하고 참습니다. 그것은 인내가 아닙니다. 그것은 할 수 없어서 참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인내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지금 60평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데 20평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자꾸만 교만을 떨고 돈자랑을 하고 손가락을 내보이고 밍크 코트를 입고 교만을 떨고 있ㅅ브니다. 그 모습을 보고서도 아무 말없이 그냥 앉아 있는 것이 인내입니다. 그것이 성숙한 인내입니다. 그 인내의 힘은 인격에서 나온 인내입니다. 훈련에서 나온 인내입니다. 그것이 바로 고상한 인격입니다.
권세나 능력으로 말하자면 예수말고 누가 또 있습니까? 그런데도 그 앞에서 욕하고 침뱉으며 채찍질하며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순순히 죽어가면서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하고 아무 소리 하지 않고 죽어가는 그것이 인내고 겸손이고 성숙입니다. 할 수 없어서 참는 것이 아니고, 능력은 얼마든지 있지만 뜻을 위해서 참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인내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권사와 집사가 싸우면 절대로 권사가 이기지 못합니다. 그때는 100% 집사가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권사가 못이겨서가 아니고 져 주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성장이고 성숙이고 인내입니다. 만일 집사와 권사가 싸웠는데 권사가 이겼다 하면 그 권사는 별 볼일 없는 사람입니다. 그만한 깊이가 없는 권사입니다.
그렇게 말한다면 목사인 저는 누구와 싸워도 이길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꿈속에서도 누구와 싸워서 이기려고 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누가 싸움을 걸어오면 저는 싸워 보지도 않고 져 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싸워서 이겼다고 누가 상을 줄 것도 아니고, 칭찬받을 일도 아닐 바에야 뭐하러 싸워 이기려고 애를 쓰겠습니까?
때로 믿음은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상상도 못할 만큼 강한 힘을 우리에게 공급해 줍니다. 그래서 인내는 믿음이 주는 선물입니다.

 

네 번째는 소망입니다.

 

믿음이 주는 또 다른 선물은 소망입니다. 이를테면 천국 신앙입니다. 신앙인에게 있어서 이 소망은 궁극적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신앙 생활을 하면서 자꾸만 흔들리는 것은 이 신앙이 분명하지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러면 흔딜린 수밖에 없습니다.
엊그제 병원을 심방했습니다. 어느 권사님이 수술을 받기 직전이라서 새벽같이 가서 위로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걱정 없습니다. 이제 죽으면 하나님 나라에 갈텐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얼마나 소중한 믿음입니까? 그러니까 그 상황인데도 마음이 초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 상황에서 그런 소망이 없고 그런 믿음이 없다고 한다면 그 시간이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시간이겠습니까?
믿음은 우리에게 그런 선물을 줍니다. 천국의 소망과 신앙, 얼마나 소중한 힘입니까? 그래서 신앙인에게 있어서 이 천국의 신앙은 가장 궁극적인 것입니다. 신앙인은 언제나 그 세계가 확보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 세계가 있으니까 오늘 당당하게 순교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많은 순교자들은 한결같이 그런 소망 때문에 기쁨으로 순교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만 이생뿐이면"이라는 말을 자주 썼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라면"하고 가정법을 써서 천국을 소유하게 된 것에 대해서 그렇게 감사했습니다.
욥은 고난받으며 살아갈 때 너무나 괴롭고 어려우니까 "그날에 가서 주께 물어 보아야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지금 원망하고 불평하기보다 내가 지금 이렇게 고난받으며 살아야 하는 까닭을 이 다음에 천국에 가거든 하나님께 물어 보아야겠다고 하면서 참고 인내합니다. 얼마나 소중한 인내입니까?

사람이 세상에서 오래 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짧게 살아도 이런 신앙의 선물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그 세계가 없다고 하면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무의미하겠습니까? 저는 그런 면에서 모세보다는 여호수아가 훨씬 더 위대하고 복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출애굽을 위해서 똑같이 고생했으면서도 모세는 끝내 가나안에 들어가지를 못하고 광야에서 죽고 말았지만, 여호수아는 가나안에 들어가서 그 땅에서 죽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출애굽은 해서 뭘 합니까?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면 뭣하러 그 고생을 하면서 출애굽을 하느라고 그 애를 써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들이 천국에 가지 못할 것이면 오늘 무엇 하려고 이렇게 애를 쓰면서 신앙 생활하느라고 고생을 할 것입니까? 우리에게 천국이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의 의미도 없습니다. 그래서 천국은 우리 신앙인드의 목적이고 궁극입니다.
그래서 969세를 살다가 죽은 므두셀라보다 365세밖에 살지 못한 에녹이 훨씬 복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에녹은 므두셀라보다 반도 안 되는 인생을 살았지만 죽지 않고 하나님 나라로 들림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복된 인생입니까? 이것이 바로 믿음이 주는 선물입니다.

믿음은 이렇게 우리들에게 여러 가지 선물을 줍니다 선물로 화평을 줍니다. 인내를 줍니다. 때로 연단의 아픔을 주기도 하지만 그 연단으로 하여금 강한 힘을 갖게 해줍니다. 그리고 천국 신앙을 소유하게 해줍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믿음 안에서 산다는 것은 이렇게 복된 생활입니다.
그런 면에서 여러분들의 믿음은 할 수 있으면 구체적이고 분명하기를 바라고 지극히 성경적이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이 같은 선물을 받아서 세상을 누구보다도 확신 있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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