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생활의 5단계! (요 15:4-8)
오늘은 우리들이 좀더 성숙하고 성장한 모습으로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신앙 생활의 5단계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우리들의 신앙을 한번 점검해 보려고 합니다.
유교의 고전인 "禮記"에 보면 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성숙해지는 데 있어서 거쳐야 하는 과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한 사람이 인격적으로 균형 있게 성장하고 성숙해지려면 다음과 같은 과정을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먼저 "아이가 자라서 밥을 먹게 되거든 바른 손으로 먹도록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기본입니다. 모든 것의 출발은 오른손으로 밥을 먹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말입니다. 오른손이 아닌 왼손으로 밥을 먹는 것은 예가 아닙니다. 시작이 잘못된 것입니다.
다음은 "아이가 여섯 살이 되거든 숫자를 가르치고 동서남북을 가르치되 그 이치를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이를테면 자연의 이치를 가르치라는 말입니다. 또 사람이 "일곱 살이 되거든 남녀가 자리를 함께하지 않고, 같은 자리에 앉아서 먹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삶에 있어서 이웃을 인정하고 이웃에 대한 관계의 중요성과 상대에 대한 예를 가르치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남녀칠세 부동석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스무 살이 되거든 관례를 행하여 예법을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와 자유와 책임을 가르치라는 말입니다. 또 사람이 성장해서 "서른 살이 되거든 장가를 보낼 것이고, 나이 마흔 살이 되거든 비로소 벼슬을 하게 하되 나라의 정치가 道와 맞으면 복종하게 하고, 옳지 않거든 벼슬을 과감히 버릴 줄 알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조선시대에 한 사람을 공인으로 만들기 위해서 가르치던 법이었고 절도였습니다.
한 사람의 인격 있는 공인을 만들어 내는 데도 이와 같은 법과 과정과 순서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의 인격을 갖춘 공인이 육성되어서 가장 사람다운 기준에 가까운 훌륭한 자질을 갖춘 사람을 만들어 세상에 내 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신앙인들이 어떻게 해야 예수께 더 가까이 나아가고 더 깊고 더 성숙된 사람으로 성장해서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여러분들은 이 같은 고민을 해 보지 않으셨습니까?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사람으로, 더 깊이 있는 신앙인으로 양육될 수 있을 것인가? 한 사람의 신앙인이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5단계 과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주님을 따르는 단계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이 지점은 신앙인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중요한 지점입니다. 모든 신앙은 이 지점에서부터 출발됩니다. 이 같은 주님의 부름에 순종해서 따라 나서는 삶이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가 되는 생활입니다. 이 출발이 잘되면 신앙 생활이 잘 출발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해서 고향을 떠남으로써 시작됩니다. 모세의 신앙도 하나님의 소명에 응답해서 지팡이 하나를 들고 애굽으로 출발하면서부터 시작됩니다. 사도 바울의 신앙도 다메섹에서 주님의 부름에 순종하여 따라 나섬으로써 시작됩니다. 사도들의 신앙도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해서 그물을 버려 두고 주님을 따라 나선 것이 사도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그래서 이 지점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따라 나서려고 하면 무엇보다도 거기에는 용단이 있어야 합니다. 또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내가 주님과 함께 살아 갈 것이다"라는 비장한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이런 각오가 없으면 대부분 도중에서 흔들리게 됩니다. 그래서 이것이 신앙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첫 번째 과정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신앙이 지금 이 단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이 단계는 아마 금년에 새로 등록한 분들이 여기에 속할 것입니다. 이 단계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다음 단계로 올라가야 합니다.
두 번째는 동행하는 단계입니다.
주님을 따라 나섰으면 언제까지나 그냥 수동적으로 쫓아가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주님과 동행을 하여야 합니다. 이 단계가 한 단계 성장한 단계입니다.
그런데 동행하는 데도 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주님과 같은 방향으로 동행해야 한다는 법입니다. 주님과 방향이 같아야 합니다. 주님은 앞으로 가시는데 우리가 옆으로 가면 안 됩니다. 그래서 신앙 생활을 하는 데는 방향이 중요합니다. 또 목적도 같아야 합니다. 신앙 생활의 목적은 십자가입니다. 이것이 분명해야 신앙 생활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동행에는 보조가 같아야 합니다. 우리들이 누구와 함께 동행하려고 하면 먼저 서로 보조가 맞아야 합니다.한 사람은 먼저 앞서가고 또 한 사람은 뒤에 떨어져서 따라가면 그것은 동행이 아닙니다. 동행의 의미는 함께한다는 데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주일날 교회에 오실 대 가만히 보면 이것이 잘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것이 잘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부부는 보기에도 좋을 만큼 정답게 함께 옵니다. 그리고 함께 들어와서는 같은 자리에 함께 앉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이를테면 그것이 동행입니다.
그런데 올 때부터 따로 따로 오는 부부도 있습니다. 한 사람은 앞서 오고 또 한 사람은 아예 몇 발자국 뒤에 따라옵니다. 그리고 들어와서도 각자 따로 따로 앉습니다. 이것은 동행이 아닙니다. 참 멋없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비단 살아가는 데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신앙 생활하는 데도 보면 어떤 분은 너무 빨리 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열심히 너무 지나칩니다. 너무 앞서 갑니다. 신비적인 면으로 너무 치우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보조가 맞지 않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또 너무 느립니다. 신앙 생활을 하는 데 성의가 없습니다. 열심도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론은 너무 많이 알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대부분 지체되고 쳐지기 쉽습니다. 이렇게 되면 보조가 서로 맞지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갈등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신앙 생활을 하는 데는 무엇보다도 이 보조가 잘 맞아야 합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받았으면 내실을 바로 하고 다져 가면서 중심 있게 나아가야 합니다. 그 생활이 동행하는 생활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아마 이 단계에 지금 머물러 계신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다음 단계로 올라가야 합니다.
세 번째는 꼭 붙잡는 단계입니다.
우리들이 인간이다보니까 신앙 생활을 하는 데도 마음이 한결같지가 않습니다. 때로는 피곤하기도 하고, 쉬고 싶기도 하고, 싫증도 나고 그럽니다. 그러다 보면 어떤 때는 신앙 생활하는 것이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놀지도 못하고, 여행도 못 가고, 즐기지도 못하고 그래서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신앙 생활 하는 동안 이때가 가장 위험할 때입니다.
젊은이들이 결혼을 해서 신혼여행이 끝나고 2,3년을 함께 살다 보면 피차 싫증을 느낄 때가 옵니다. 그때를 가리켜서 권태기라고 합니다. 그때가 되면 의견이 자꾸만 충돌되고, 집에 늦게도 들어오고, 다투기도 잘하고 그럽니다. 그렇게 서로 좋아서 결혼을 했는데 얼마를 살고 보니까 그냥 그렇고 그렇습니다. 사람이 이때 방심을 하면 안 됩니다. 이때가 위험한 때입니다.
신앙 생활도 하다가 보면 이런 때가 옵니다. 이때는 한번 이탈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한번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 단계가 "꼭 붙잡는 단계"입니다. 꼭 붙잡아야 합니다. 이때 한번 이탈하면 다시 돌아오기가 힘듭니다. 이때 한번 줄을 놓치면 다시 붙잡기가 어렵습니다. 이때 한번 신앙의 줄을 놓치고 나서 아직까지도 다시 붙잡지를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어디 한두 사람입니까? 그래서 세 번째 단계가 꼭 붙잡는 단계입니다.
신앙 생활을 하는 데는 여기까지가 어려운 단계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는 지금 이 단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 한창 꾀가 나고 마음속으로 "손해가 많다" 하고 느끼는 사람들은 모두 이 단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단계를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다음 단계에 접어들면 신앙 생활은 아주 쉬워집니다.
네 번째는 붙잡히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까지 오르게 되면 신앙도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른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단계에 오르게 되면 신앙 생활은 아주 쉬워집니다. 자동차가 탄력이 붙으면 저절로 굴러 가는 것처럼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손을 잡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아이가 힘이 진하면 잡고 있던 어머니의 손을 놓치게 됩니다 그러면 그 아이는 미아가 됩니다. 넘어지기 쉽습니다. 그렇지만 이 아이가 안전하려면 어머니으 큰손에 잡히는 일입니다. 그러면 내 힘이아무리 진해도 놓칠 염려가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 생활은 꼭 붙잡히는 생활입니다. 이쯤 되면 나는 내가 아닙니다. 나는 주님의 것이 됩니다. 그때는 주님이 나를 당신의 마음대로 주관을 하게 됩니다. 내가 주님과 동행하던 길에서 이탈을 하고 싶어도 그분이 용납을 하지 않습니다. 내가 주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 자유롭고 싶어도 내 마음대로 되지를 않습니다. 이것이 붙잡히는 신앙 생활입니다.
이렇게 되면 신앙 생활은 힘이 있어집니다. 여러분의 신앙은 이 단계까지 올라와야 합니다. 그때 이것을 가리켜서 "믿음"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 경지에 오르게 되면 신앙 생활은 재미있어집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상태에 와 있습니까? 그렇다고 이 단계에서 만족해 하면 안 됩니다. 마지막 단계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 단계는 신앙의 완성 단계입니다.
다섯 번째는 주 안에 상주하는 단계입니다.
이것이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신앙의 단계입니다. "너희는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어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는 말씀은 성경에서 가장 바람직한 신앙 형태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석자들은 이 상태를 "유무 상통의 생활"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이것은 우리드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잘 조화된 신앙의 환경입니다. 그러니까 이 상태의 앙이가장 잘 무르익은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신앙 자질이 이쯤 되면 무엇보다도 우리들의 인생관이 주님의 뜻을 위해서 살아가는 삶으로 중심이 변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의 영광이 내 영광보다 언제나 먼저 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성숙한 신앙은 먼저 나의 인생관이 내 중심에서 주님 중심으로 바뀌어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신앙이 이 같은 단계들을 거쳐서 이렇게 성숙해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래야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서 세상을 누구보다도 힘있게 확신 있게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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