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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녹의 믿음 일자 (창5:21-24)
지난주간 여러 가지 일로 분주하게 보내고 있을 때 유하영 어린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습니다. 하영이는 한 가정에 딸이요, 손녀였지만 교회의 딸이었습니다. 하영이가 유치부, 선교원을 거쳐갈 때 어른들에게 얼마나 많은 기쁨을 주었는지 모릅니다. 예배도 참 예쁘게 드렸고, 찬양과 율동의 모습을 통해 기쁨을 주던 아이였습니다. 아이가 얼마나 교회를 좋아했는지 교회이야기만 나오면 자다가가 벌떡 일어날 정도였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아이가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뜻밖의 소식을 접한 성도들이 안타까움에 울기만 했는데, 부모와 가족의 마음은 오죽했겠습니까?
여느 죽음과 같지 않은 하영이를 하늘나라로 보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것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인생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누구라도 갑니다. 늙었다고 빨리 가는 것이 아니고, 아이라고 늦게 가는 것도 아닙니다. 노인만이 아니라 아이도 죽습니다. 병든 사람만이 아니라 건강한 사람도 갑니다. 없는 사람만이 아니라 있는 사람도 갑니다. 믿지 않는 사람만이 아니라 믿는 사람도 갑니다. 누구라도 우리는 어느 날 저녁에 날아오는 비수를 맞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을 알고, 준비도 해야 합니다.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그것은 바로 믿음의 사람이 되어, 남은 생애를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인생에 소중한 준비가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은 것이 감사하고, 지금 여기에 와 있는 감사한 일입니다. 그리고 더 큰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다짐하도록 이끄시는 것이 감사할 일입니다. 인생은 점점 천국으로 가까이 가는 길입니다. 더 깊은 믿음, 더 좋은 신앙으로 하나님께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믿음으로 살던 사람들의 믿음을 보면서 나의 믿음을 점검하고, 믿음을 키워야 합니다. 지난주에 아벨에 이어 오늘은 ‘에녹’입니다. 과연 에녹은 어떤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할까요?
첫째,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입니다. 본문은 에녹의 믿음에 대한 기록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에녹은 아브라함이나 야곱처럼 그의 전 생애를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에 비하면 너무도 짧은 기록을 남긴 사람입니다. 그러나 짧지만 아주 깊은 믿음을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그의 믿음을 한마디로 ‘하나님과 동행’이라고 강조합니다. 24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에녹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어떤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까? 그는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다가, 결국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사람입니다.
여기 ‘동행’이란 말은 함께 간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본래의 마음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시고 늘 함께 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하기를 거부하고 죄를 범한 것입니다. 그렇게 인간은 하나님의 곁을 떠났지만, 하나님은 끝없이 인간에게 손을 내미셨습니다. 그래서 다시 인간과 함께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성경에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바로 함께, 동행에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임마누엘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임마누엘이 무슨 뜻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고,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믿음’이어야 합니다. 믿음은 한마디로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소중한 믿음이 없습니다. 에녹은 바로 이런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언제나 나와 함께 가고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인식하고, 느끼고, 확신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고난을 당하고 아파할 때에도 함께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평온할 때에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어 큰 은혜와 축복을 주는 것 같은데, 삶에 폭풍이 몰아치면 나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은 과연 무엇을 하시는가 하며 탄식과 원망을 할 때가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내가 평온할 때만이 아니라 내가 힘들 때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내가 아파할 때 멀리서 뒷짐지고 방관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내가 아파하면 더 아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때에는 더 나와 가까이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을 믿어야 하고, 하나님으로 용기와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모래 위에 두발자국’이란 시를 아시지요? “어느 날 밤 나는 꿈을 꾸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해변을 걷고 있는 꿈이었습니다/ 하늘 저편에 내 인생의 장면들이 번쩍이며 비쳤습니다/ 한 장면씩 지나갈 때마다 나는 모래 위에 난 두 쌍의 발자국을 보았습니다/ 하나는 나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의 것이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장면이 비쳤을 때/ 나는 모래 위의 발자국을 돌아보았습니다/ 나는 내가 걸어 온 길에 발자국이 한 쌍밖에 없는 때가 많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때가 바로 나의 인생에서는 가장 어렵고 슬픈 시기였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몹시 마음에 걸려 나는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제가 당신을 따르기로 하면 항상 저와 함께 동행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제 삶의 가장 어려운 시기에는 한 쌍의 발자국밖에 없습니다. 제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했던 시기에 주님께서 왜 저를 멀리하셨습니까?"/ 주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나의 소중한 사람아/ 나는 너를 결코 떠나지 않았다/ 네 시련과 고난의 시절에 한 쌍의 발자국만 보이는 것은 그때에는 내가 너를 업고 걸었기 때문이란다...”
믿음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는 분이십니다. 평온할 때는 물론이고 힘들 때에도 동행하십니다. 내가 물 가운데로 걸어갈 때에도,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도 함께 하십니다. 그런 고통의 순간에는 나를 업고 가십니다. 나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으로 큰 위로와 힘을 얻으시고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가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장 5절에 보면 에녹에 대하여 이렇게 그의 믿음을 강조합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이것이 에녹의 믿음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만 가진 자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날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을 슬프게 하면 동행에 무슨 유익이나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에녹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이것이 그의 놀라운 믿음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신앙이요, 믿음인데 그와 동행하면서 그분을 좀 기쁘시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하나님의 기쁨입니까, 아니면 슬픔입니까? 나는 하나님의 자랑입니까, 아니면 문제입니까?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늘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요? 성경은 여러 사람의 여러 경우를 통해 그것을 알려줍니다. 그것을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먼저, 나의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은 우리의 믿음에 있습니다. 내가 믿음의 사람이 되어, 믿음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믿음으로 말하고 행동하면서 믿음으로 살면, 이것이 하나님의 기쁨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는 기준은 바로 믿음 외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 것을 굳건히 믿고, 상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또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요? 그것은 바로 경건 생활입니다. 경건 생활이 무엇입니까? 말씀과 기도, 예배와 찬송, 감사와 순종이 바로 우리의 경건입니다. 이런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다윗과 솔로몬의 신앙 고백에서, 시편의 여러 말씀 속에서 이것을 강조합니다. (왕상3:10, 시51:19, 시69:30-31) 신앙생활은 경건이 본질이고, 핵심입니다. 이것이 빠지면 다른 것 아무리 다 잘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그분과 깊은 교제와 대화와 사귐을 갖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본심입니다. 이것을 추구하지 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경건을 우선 순위로 삼고 이것을 내 신앙과 삶에 중심에 두면서 추구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또 무엇일까요? 바르고 참된 삶입니다. 성경 여러 곳에서 말합니다만 특히 잠언에서 많이 강조합니다.(잠11:1, 20) 특히 잠언 21장 3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의와 공평을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 하나님은 의와 공평을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자는 이것을 행해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합니다.
여러분, 믿음과 경건과 공의가 하나님을 기쁘게 합니다. 새해에 지속적으로 이것을 추구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의 뜻을 아는 믿음입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행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의 출발은 그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그것을 잘 가르쳐 줍니다. 본문에서 성경은 에녹이 왜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은 22절에 '므두셀라를 낳은 후‘라고 강조합니다. 에녹은 평범하게 살다가 어느 날 큰 깨달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그때가 므두셀라를 낳은 때, 아들을 낳을 즈음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가 아들을 낳을 시기에 깨달았던 진리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심판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가 아들의 이름을 ’므두셀라‘로 지은 것에서 찾습니다. 이 이름의 뜻은 여러 가지로 말하지만 특히 ’그가 죽을 때 심판이 온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이 예언이 그대로 적중된 것을 알려줍니다. 에녹의 아들은, 므두셀라이고, 그의 아들은 라멕, 그리고 라멕의 아들이 노아입니다. 결국 노아의 시대에 홍수로 심판이 임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의 나이를 계산해 보면, 신기하게도 므두셀라가 죽은 바로 그 해 홍수가 임하는 것을 봅니다.
가인이후에 사람들의 죄가 깊어갈 때 하나님은 에녹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앞으로 얼마 있으면 물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예고해 주셨습니다. 에녹은 이런 하나님의 뜻을 받아드리면서 아들의 이름을 ‘므두셀라’로 지었습니다. 아들을 낳은 후 그의 삶은 달라졌습니다. 자기와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과 동행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의 길을 걷게 되었던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날마다 나를 향하신, 그리고 공동체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성경은 모두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어떤 인물이나, 사건을 보면서 그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성경말씀을 통해 임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찾는 지혜로운 사람, 믿음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믿는 자의 길입니다.
로마서 2장 18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율법의 교훈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나를 향하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뜻을 따라 에녹처럼 살아가는 것이 믿음의 사람이 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가장 선명하고, 확실하고, 강한 능력입니다. 이 세상에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자가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뜻으로 세워지고 무너지고, 없어지고,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가장 확고한 힘입니다.
예수님도 자기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스런 순간이 다가올 때 겟세마네동산에서 주님은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그 뜻을 알고 행하는 것이 믿음의 삶입니다. 에녹처럼, 많은 믿음의 사람처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나타난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삶에는 도저히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걱정과 염려로 엄습해 올 때, 때론 아픔과 고통으로 다가올 때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드려야 합니다. 주어진 현실을 수용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길 수 있고,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가질 자세입니다.
에녹은 자기와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았을 때 그는 하나님의 기쁘시게 할 수 있었고, 하나님과 평생 동행할 수 있었습니다. 에녹의 이런 믿음을 본받아, 남은 생애동안 에녹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다짐하며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서해원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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