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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자. (고후 4:6-10)

by 【고동엽】 2022.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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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자.  (고후 4:6-10)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역사를 보면 대부분의 역사가 모든일들이 잘 풀려갈 때도 있지만, 아픔과 상처로 얼룩진 시기가 있습니다. 이럴 때 그 아픔의 시기를 한순간에 뒤집어 반전시키는 사람을 우리는 영웅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영웅을 시대가 만든다는 말을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도 훌륭한 영웅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두명의 그레이트 킹, 즉 두 명의 대왕이 있습니다. 바로 광개토대왕과, 세종대왕입니다. 한분은 외침이 끊이질 않는 우리나라를 대국으로 세웠던 분이고, 한분은 조선이라는 새로운 왕조의 불안한 역사 속에서 커다란 문화 발전을 가져온 왕입니다.

그런가 하면 또 한명의 영웅이 있습니다. 바로 불멸의 이순신입니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우리 민족이 사라질 위기 속에서 나라를 구원한 명장이었습니다.
일본은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입니다. 그것은 수군이 아주 강함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숫자로도 게임이 되지 않지만, 이순신은 그 속에서도 왜구와 싸워서 당당히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거북선을 잃은 뒤에는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음식을 씹듯이 고깃배를 가지고 전투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승리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영웅들과 필적할 만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성경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성도’라고 말합니다. 성도는 우리의 영혼까지 파괴하고 우리를 파멸의 길로 몰아가는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영적인 군사인 것입니다. 성도는 영웅입니다. 마귀의 견고한 진을 파하는 자들입니다. 시대를 위협하고, 문화를 파괴시키는 마귀에의 전략을 파하는 자들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성도는 아무리 어둠의 권세가 우겨 싸도 싸이지 않습니다.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않습니다. 꺼꾸러 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마귀가 아무리 넘어뜨리려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 봅니다. 그러나 성도를 이길수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있습니다.

어찌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있습니까? 태양이 떠오르면, 밤하늘을 지배했던 어둠이 사라지듯 우리의 맘속에 가득했던 어둠이 다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우리에게 사명으로 주셨습니다. 영광의 빛을 비추는 자들입니다.
우리에게는 시대적인 사명이 있습니다. 온갖 부정이 판을 치고, 불법이 성행하는 이 사회에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빛을 더욱 밝히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법보다 강력한 것이 은혜입니다.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으로 세워가는 나라는 강력한 나라입니다. 그런 나라를 법치국가라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불법이 성행하는 곳에는 결코 강함이 나올 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법치국가를 뽑으라면 미국을 뽑을 수 있습니다. 미국은 강력한 법치국가입니다. 그래서 경찰들의 권위가 강합니다. 영화 보면 경찰이 총과 몽둥이를 들고 와서 범인을 완전히 땅바닥에 엎드리게 하든지, 아니면 자동차에 완전히 밀착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조금만 잘못을 해도 가차 없이 방아쇠를 당깁니다. 그것이 일상화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경찰들이 지나가면 사람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두려워 떠는 것입니다.
법을 어기면 아주 커다란 처벌을 받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내세우는 파워, 힘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율법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이 있어서 조상 때부터 망하지 않는 축복으로 무장되었다고 자랑을 합니다.
하박국서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국가의 위기 속에서 기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엄격한 율법의 적용입니다.
간음한 사람은 몇 명이든지 돌로 쳐서 죽이고, 도둑질 한 사람은 전부 손을 잘라 버리면 예루살렘은 다시 거룩한 도시가 되지 않겠느냐? 그러면 사회가 변화고 나라가 변화지 않겠느냐입니다. 강력한 법치만이 나라와 교회를 구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교회 다니면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까? 악을 행하는 사람을 볼 때 하나님이 즉각 징계하셔서 망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믿음이 성장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런 일이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악한 사람이 아무리 하나님을 우습게 알고 함부로 행해도 벌을 받지 않습니다. 그때 생각하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대체 무엇을 하고 계실까? 왜 저 사람에게 벌을 주지 않고 가만히 계실까? 라는 생각을 갖잖아요.

그런데 유대인들은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하나님이 처단하지 않으면 ‘내가 처단하지 뭐!’ 정의의 사도 행색을 하고 다니는 것입니다. 영적 암행어사 행세를 하는 것입니다. 이랬겠지요. 율법 책을 꺼내면서 “정의사도 출도요” 그리고 죄인에게 돌을 던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법으로 무장된 나라가 강력합니까?
그러나 우리를 강력하게 만드는 것은 율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법은 우리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수 없습니다. 법으로 범죄를 약간 저지하거나 그 속도를 지연시킬 뿐입니다. 나중에 멸망하는 것은 다 똑같습니다.

오히려 법을 엄중하게 적용하면 적용할수록 죄짓는 기술도 고도로 발달하게 됩니다.

그 속에 구원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셨습니다.
왜요? 법을 엄중하게 적용하면 적용할수록 죄 짓는 기술만 고도로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법으로 해결되면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시지도 않았습니다.
구원은 오직 한길밖에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 밖에 소망이 없습니다.
(행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다른 길은 없습니다. 거룩한 백성이 되는 길은 한길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아야 우리의 죄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의 은혜를 마음에 세기십시오. 그런 사람은 불의에 넘어지지 않습니다.
은혜를 붙들면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고통의 현장에서 기쁨으로 가득합니다.
멸망의 자리에서 구원으로 변화됩니다. 여러분 모두가 구원의 기쁨으로 채워가는 믿음을 가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성령으로 무장하는 사람은 강력합니다.
가끔씩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견고한 바위를 사용하시던지, 콘크리트를 부어서 만드시면, 좀 피부는 거칠어도 얼마나 강력한 존재가 될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디가서 넘어지고 부딛 쳐도 별로 그렇게 다치지 않을 텐데, 상처받고 깨어지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인간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호랑이의 발톱도 주시지 않고, 독수리의 날개도 주시지 않았습니다. 또 한 번에 수 십 명을 죽일 수 있는 코브라의 맹독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저 인간은 고운 흙으로 만들었습니다. 왜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저는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이런 마음이 들더라고요. 하나님은 우리가 딱딱한 사람이 되길 싫어하시는 것 같습니다. 좀 약해도 부드러운 사람이 되길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령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단단하고, 완고하면 우리는 성령의 은혜를 담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그것이 튕겨져 나가는 것입니다.
말씀이 은혜가 되지 않는 사람은 ‘아 나는 콘트리트구다’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귀한 것을 주셨습니다. 바로 다른 동물들에게 없는 지혜입니다. 강력한 사람이 되는 것은 지혜를 발휘해서 자기 자신을 무장하는 것입니다.
과거 전투에 나갔을때, 그냥 맨몸으로 싸우는 사람은 백전백패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무장을 하고 나가야 합니다. 창과 활과 방패와, 대포와 이길수 있는 무기들로 중무장을 해야 합니다.
얼마 전에 우리나라에 순수 국산기술로 xk2 탱크를 개발했습니다. 다른 탱크들은 다 물속에 2.1미터까지 잠수해서 포열이 물위로 나와야 하는데, 이 탱크는 잠수함입니다. 4미터가 넘게 물속에 들어가서 포열까지 다 잠겨도 지장이 없다고 합니다. 또 물 밖으로 나오는 순간 바로 전투방식으로 전환한다는 것입니다. 또 상하로 많이 움직이기 때문에 비행기도 잡을수 있습니다. 이런 무기로 무장하는 힘이 바로 지혜입니다.

성도의 강력함도 무장에서 나옵니다. 성령으로 무장을 해야 합니다. 성령이 속에서 역사하는 사람은 참으로 강력한 사람입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사용되는 능력은 뒤나미스, 즉 다이나 마이트와 같다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무장하는 사람은 그런 강력한 다이나마이트와 같은 사람입니다.

존 맥아더의 ‘하나님의 뜻’이라는 책에 보면 성령의 능력을 ‘피지’라는 조그만 알약으로 예화를 듭니다.
피지는 탄산음료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작은 알약입니다. 그것이 맹물에 들어가면 거품을 내고, 톡 쏘는 맛을 일으키고, 물의 맛을 완전히 바꾸어 좋습니다. 한 알의 피지지만 그것은 물의 성질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 것입니다. 얼마나 강력한지, 음료수를 마시고 트름을 해보신분들은 다 아실거예요.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나잖아요.
성령이 이와 같다고 말합니다. 성령으로 무장된 사람은 신령한 에너지가 날마다 퍼져나는 강력한 사람입니다.

사도바울은 성령으로 무장하는 모습을 전신갑주를 통한 무장으로 설명합니다.
(엡 6:11-17) 『[11]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다윗은 골리앗과 싸울 때, 갑옷으로 무장하지 않았습니다. 칼로 무장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무장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 험난한 사회속에서 승리하시길 원합니까? 그러면 성령으로 무장하시길 바랍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불법의 벽을 허물는 성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태풍루사- 몇 년 전에 이 영동지역에 루사로 인해 많은 피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영동지역을 찾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는데, 두 종류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부류는 수해를 당한 아픔을 함께 나누기 위해 자원봉사자로 이곳을 찾았습니다. 또 한 부류는 수해의 위력을 보고 싶어서 마음이 간질간질 해서 관광하러 이곳을 찾아왔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강 건너 불구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강건 너 불이 나서 집이 타든지, 사람이 타죽던지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오히려 불구경만 하니 신이난다는 것입니다. 놀부심보죠?
성경에 보면 이런 모습으로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예루살렘이 멸망할 시기에 하나님의 예언은 이런 자들에 대한 예언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보호막이기 때문에 절대로 멸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안에 있으면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주변에 망하는 것을 바라보며, 관광을 하는 것입니다. “어 저기 망하네, 저기보니 창녀가 30명 세리가 5명 강도가 10명이니 저 성도 망하겠군.”하고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징계의 메시지가 전해집니다.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보호막이 걷어버리겠다는 것입니다. “주위의 멸망을 똑똑히 보라, 머지않아, 예루살렘도 이렇게 말망 할 것”이다.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은 세상과 무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왜 세웠습니까? 세상의 기둥입니다. 교회에서 은혜가 흘러 나가면 세상은 자연히 변화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에스겔서의 환상입니다.
에스겔은 성전 문지방에서 생수가 흘러 나갔을 때 죽음의 바다 사해가 살아나는 환상입니다.

교회가 전락하면 사회가 병들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을 책임져야 합니다. 책임지라는 말은 경제적 책임이 아니라, 도덕적인 책임을 져야 합니다. 세상이 도덕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할 때 교회는 애통하고 비통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의 죄를 마치 자기의 죄인 양 짊어지고 나아가 회계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의 책임입니다. 예수님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입니다. 산속에서 도나 닦는 것이 기독교가 아닙니다.
세상이 어지럽고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우리는 자신의 일인 것처럼 염려하고 애통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의 맏형입니다. 세상이 죄에 빠지고 타락할 때 하나님은 교회부터 징계하고 어려움을 주십니다. 고통 속에서 세상을 끌어안고 기도하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라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신앙으로 세상에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는 믿음의 사람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개혁교단 홈 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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