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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시작합시다 (히11:1∼3)

by 【고동엽】 2022.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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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시작합시다  (히11:1∼3)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으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남한과 북한 사이에서 고위급 회담이 처음 열렸을 때입니다. 먼저 우리나라 대표단이 북한의 평양을 방문했습니다. 그 답례로 북측의 대표단이 우리나라 서울을 오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탄 자동차가 서울 시내에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북측의 대표단 가운데 한사람이 창 밖을 내다보면서 계속해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정말 수고가 많았겠어. 진짜로 수고했겠네."
우리측 대표가 그 소리를 듣고서 궁금해서 그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수고했다고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그러자 북측의 대표는 창 밖을 달리고 있는 수많은 자동차들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전국에 있는 자동차들을 서울로 다 올라오게 했으니 얼마나 수고가 많았겠소?"
우리측 대표는 그 말을 듣고 기가 막혔습니다. 그래서 웃으면서 이렇게 받아넘기고 말았습니다.
"말도 마세요. 그 정도는 약과올시다. 저 높은 빌딩들을 보십시오. 전국에 있는 빌딩들을 서울 시내로 옮겨오느라고 모두가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말해주어도 믿으려들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말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영적인 견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없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고 얼마나 답답해하시겠습니까?
히11:6의 말씀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직 한가지, 믿음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지식, 우리의 기술, 우리의 인물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직 한 가지 우리의 믿음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어떤 권사님의 이야기입니다. 믿음이 좋으신 권사님이셨습니다. 그에게는 딸이 둘 있었습니다. 그런데 큰 딸은 일찌감치 세상을 떠나서 하늘 나라로 갔습니다. 둘째 딸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그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어느날 권사님은 둘째 딸을 만나보러 잠시 미국을 들르게 되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미국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권사님은 성경도 읽으시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고난 뒤에 비행기 안에서의 무료한 시간을 메꾸기 위해서 준비해 간 뜨개질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한참 가다가 비행기가 갑자기 심하게 요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좋지 않은 기류를 만난 탓이었습니다. 비행기가 장시간 동안 흔들리니까 기내에 있는 승객들은 공포에 떨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비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권사님만큼은 그 와중에서도 침착했습니다. 단지 비행기가 너무 심하게 흔들리니까 뜨개질을 계속 할 수가 없어서 뜨개질감을 옆으로 밀어 놓았습니다. 그 대신 성경을 펴서 무릎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조용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한참 뒤에 비행기가 다시금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그때 옆에 있는 승객이 권사님에게 놀라운듯이 물었습니다.
"아주머니, 어떻게 그토록 위태로운 상황속에서 그처럼 침착하고 태연한 모습을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
그때 권사님은 웃으시면서 이렇게 대답을 하셨습니다.
"예, 제게는 딸이 둘 있습니다. 큰 딸은 지금 천국에서 살고 있고, 둘째 딸은 미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만약 이 비행기가 잘못되어서 추락한다면, 저는 천국에서 살고 있는 큰 딸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만약 이 비행기가 무사히 미국에 도착하게 되면, 저는 미국에서 둘째 딸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저를 어떻게 인도하시든지 간에 저는 상관이 없습니다. 저는 언제나 준비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귀한 믿음입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 첫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믿음으로 시작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금년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함으로써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모습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히브리서 11장을 우리는 믿음장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가운데서 서론격인 1절∼3절의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세 대지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첫째로, 믿음의 능력입니다. 1절 말씀입니다.
둘째로, 믿음의 증거입니다. 2절 말씀입니다.
셋째로, 믿음의 실례입니다. 3절 말씀입니다.
오늘도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크신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보배로운 믿음, 반석과 같이 귀한 믿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선물로 허락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믿음의 능력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1절 말씀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니."

믿음에 대한 정의라기보다는 믿음이 얼마나 큰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막9:23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우리의 믿음은 결코 시시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은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오늘 본문 1절에서 두 가지로 믿음의 능력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시간적으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아울러 공간적으로는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두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만, 사실은 똑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설명하는 히브리식 대구법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으면, 우리가 바라는 것들은 실제로 이루어진 상황으로 바뀌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으면, 보지 못하는 것들이 눈에 보이는 증거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오실 메시야를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기다렸습니다. 때가 되었을때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보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들의 바라는 것이 실상이 되었습니다. 보지 못하는 것이 보이는 증거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을 실상으로, 보지 못하는 것을 보이는 증거로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참된 믿음의 묘미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믿음은 우리의 바랄 수 없는 것들을 바랄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들을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예로 들어서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너의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땅의 티끌처럼 창대하리라."
육신적인 생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미 아브라함은 나이가 100세입니다. 그의 몸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아내도 경수가 이미 끊어졌습니다. 이미 태가 닫혔습니다. 따라서 인간적인 견지에서 생각한다면 아들을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랄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들 이삭을 얻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대로 육적으로도, 영적으로도 그의 후손은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땅의 티끌처럼 창대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은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랄 수 있게,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를 예로 들어서 생각해 보십시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야!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던져라. 그리하면 고기를 잡으리라."
베드로는 대답했습니다.
"주여! 내가 밤새도록 그물을 내렸지만 한 마리도 잡지를 못하였나이다."
갈릴리 바다에서 잔뼈가 굵었던 베드로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인간적인 견지에서 생각해보면 쓸데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시간에 고기가 잡히겠습니까? 그물이 얼마나 크다고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겠습니까? 그러나 베드로는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주여! 말씀하시오니 내가 그물을 던지리이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졌습니다. 엄청난 고기가 잡혔습니다. 그물이 찢어질 정도가 되었습니다. 다른 배를 불렀습니다. 잡은 고기가 두 배에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을 실상으로, 보지 못하는 것들을 증거로 만들어 줍니다. 또한 우리의 말씀은 바랄 수 없는 것들을 바랄 수 있도록 만들어 주고, 아울러서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인간의 이성으로 판단해서 성급하게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왜 거기에 인간의 지식이 들어가고, 인간의 경험이 들어갑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면서 순종할 뿐입니다. 그리하면 우리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을 실상으로, 보지 못하는 것들을 증거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요단강을 건너가라."
그러면 믿음으로 건너가면 됩니다. 아무리 요단강이 불어났다 할지라도, 우리 눈 앞에서 요단강물이 갈라지는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너희는 여리고성을 무너뜨려라."
우리는 믿음으로 돌고 돌면 되는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아무리 견고한 여리고 성이라 할지라도, 와르르 우리 눈앞에 무너지는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너희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차지하라."
아무리 현실이 어둡고 불투명하더라도, 믿음으로 전진하면 우리 눈앞에 축복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풍성한 땅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과거의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가운데 역사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믿음으로 전진하십니다. 그리함으로써 우리가 바라는 것의 실상으로, 보지 못하는 것이 증거로 나타나는 축복이 금년 한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믿음의 증거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2절 말씀입니다.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으니라."

"이로써"하는 말씀은 "믿음으로써"라는 뜻입니다. 1절 끝 부분에도 "증거"라는 말이 나오고 2절에도 "증거"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다 같이 "증거"라는 말로 번역을 해 놓았지만, 헬라어 원문에는 다른 단어입니다. 1절의 증거는 evidence, 곧 확실하다는 뜻입니다. 2절의 증거는 approval, 곧 인정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믿음으로써 누구에게서 인정을 받았다는 뜻입니까? 하나님께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예컨대 4절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아벨은 하나님께로부터 의로운 자라 하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에게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5절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에녹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라 하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에게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은 우리를 인정해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믿음이 없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생각해 보십시다. 여기에 아주 화려하게 지은 집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속에는 도둑놈이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집은 누구의 집입니까? 도둑놈의 집입니다. 반면 여기에 초라한 집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훌륭한 선생님이 있으면 그러면 그 집은 누구의 집이 됩니까? 선생님의 집이 됩니다. 한 마디로 겉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속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영적인 견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큰 재력가이고, 권력가이고, 지식인이라 할지라도 우리 속에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겉모습이 아무리 초라하다 할지라도 우리 속에 보배로운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은 우리를 인정해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칭찬을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를 칭찬하셨습니까? 좋은 집에 사는 사람을 칭찬하셨습니까? 많이 배운 사람을 칭찬하셨습니까? 예수님이 칭찬하신 사람은 믿음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예컨대 마태복음 8장에 나오는 가버나움의 백부장이 그러했습니다.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이르렀을 때입니다. 그곳에 사는 백부장이 예수님께 나와서 중풍병으로 고생하는 자기의 하인을 고쳐 달라고 간구 했습니다.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

예수님의 말씀에 백부장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말을 듣고서 그의 믿음을 높이 평가 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예수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믿음이 좋은 사람을 칭찬하셨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약한 사람은 예수님의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컨대 마태복음 14장에 나오는 베드로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베드로는 한동안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물위를 잘 걸어갔습니다. 그러다가 베드로는 갑자기 부는 바람으로 인해서 무서워하면서 빠져버렸습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베드로의 다급한 목소리를 들으시고 예수님은 즉시 손을 내밀어서 그를 붙잡아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베드로를 무엇이라고 책망하셨습니까?

"믿음이 적은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믿음이 적은 자는 예수님의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예수님이 우리의 모습을 보실 때 칭찬하시겠습니까? 그렇지 아니하면 책망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좋은 믿음, 굳건한 믿음이 되어서 늘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11장에서 계속 우리의 선진들이 믿음으로 증거를 얻은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컨대 4절에서 "믿음으로 아벨은," 5절에서 "믿음으로 에녹은," 7절에서 "믿음으로 노아는," 8절에서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등등입니다.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마지막 40절까지 나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우리 선진들의 이야기로 끝이 나야겠습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이야기로 지금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아무개는 …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이것이 바로 우리의 이야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그 가운데 들어가는 내용은 각자마다 다릅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근본은 한가지입니다. "믿음으로"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복된 모습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믿음의 실례에 대해 살펴봅니다.
3절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을 설명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그는 본절에서 두 가지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말씀으로 모든 세계을 지으셨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무에서 유로 창조 하셨습니다. 이 두 가지 사실을 우리가 무엇으로 알 수 있겠습니까? 3절 말씀의 첫 단어는 "믿음으로"입니다. 믿음으로 아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생각해 보십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는 눈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우리가 무엇으로 연결하겠습니까? 믿음으로 연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세계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아는 것입니다.
아울러 하나님께서 무에서 유로 창조 하셨다는 것을 우리가 무엇으로 알겠습니까? 이도 역시 믿음으로 아는 것입니다. 고대 헬라의 철학자들은 만물의 근원을 이런 저런 요소로 설명을 했습니다. 탈레스는 물이 만물의 근원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이는 불이, 어떤 이는 공기가, 어떤 이는 흙이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그들의 주장은 유에서 유가 나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음을 압니다. 우리가 무엇으로 확신합니까? 믿음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우리에게 오직 한 가지 믿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창1:1의 말씀을 우리가 잘 압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우리가 무엇으로 압니까? 믿음으로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는 엄청납니다. 그러나 인간의 머리는 너무나 작습니다. 인간의 작은 머리로 하나님의 엄청난 역사를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마치 작은 조개 껍질로 태평양의 물을 다 재보겠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지 않으십니다.
"네가 이해하느냐?"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직 한 가지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네가 믿느냐."
어느 미션 스쿨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학생이 도무지 예배에 참석을 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교목이 그를 불러서 물었습니다.
"자네는 왜 예배 시간에 나타나지 않는가?"
그러자 학생은 나름대로 논리를 세워가지고 항변을 했습니다.
"저는 성경말씀을 읽어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믿을 수가 없으니까 저는 예배에 참석하지 않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그 학생의 말을 듣고서 그 학생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방금 자네가 말한 것을 한 마디도 빼놓지 말고 거꾸로 한번 말해 보게나."
학생은 가만히 생각하다가 머뭇거리면서 대답했습니다.
"제가 예배에 참석하지 않기 때문에 성경말씀을 믿지를 못하는 것이고, 제가 성경말씀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성경말씀을 이해 할 수 없다는 뜻입니까?"
목사님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렇게 타일렀습니다.
"바로 그걸세. 자네가 예배에 참석하지 않으니까 자네에게 믿음이 생길 리가 없지 않은가? 믿음이 없으니깐 말씀을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걸세. 이제부터는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게. 그러면 자네에게도 믿음의 싹이 틀 걸세. 믿음이 생기면 절로 성경말씀이 이해가 되고 알아지는 걸세."
그렇습니다. 믿음으로 아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처음부터 믿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이런 광고를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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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내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믿음으로 계약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믿음의 도장을 계약서에 찍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한 가지 믿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금년을 시작하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교회를 약속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열두 정탐꾼처럼 불신앙의 눈으로 바라보지 마십시다.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기를 바랍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으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믿음으로 전진 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우리는 얼마든지 극복 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승리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삶, 풍성한 삶을 실상으로, 보이는 증거로 받아 누릴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박상훈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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