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로 받은 성령 (행 2:37~42)
할렐루야!
신앙적으로 나태하기 쉬운 무더운 때가 다가오는데~
더 정신을 차리고 바르게 신앙생활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을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성령충만한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 2장에 "우리가 우리 사람(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행2:8) 한 것처럼
이 시간 고신일목사가 설교하지만
말씀 듣는 여러분에게 필요한 말씀으로 성령께서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옆의 분과 "은혜받는 주일 되시기 바랍니다"라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다음 주일에도 교회에서 만납시다"라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새신자가 교회에 나와 "하나님, 저는 기도할 줄 모릅니다.
한 가지 바라기는 다음 주일에도 이 자리에 앉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한답니다.
참으로 귀한 기도입니다. 여러분 모두 다음 주일에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음 문 열고 아멘하며 은혜 받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기도문]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입니다. 외우십니까?
외우지 못한다고 걱정할 것 없습니다. 교회에 나오다 보면 자연히 외워집니다.
[사도신경]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롯한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고백 - 이렇게 믿습니다]가 정리되어
우리에게 전해지는 것입니다.
사도신경을 외우십니까? 외우시기 바랍니다.
어떤 교회들은 처음 믿는 사람들이 스트레스 받을까봐
그 사람들에게 이질감을 주지 않겠다는 이유로
예배 시간에 [주기도문], [사도신경]을 빼기도 합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예배는 새신자한테 맞춰서 드려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것입니다.
새신자가 좀 불편해하고 어색해 해도 예배를 드리는 것에 대해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도신경은 '외우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외우는 것보다 사도신경 그대로 '믿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라고
사도신경을 고백합니다.
이 세상이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을 내가 믿는다라고 고백하는 것부터
시작되는 것이 사도신경입니다.
여러분 확신이 있으십니까?
그 중에 특별히 "성령을 믿사오며"에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강림절이란?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그래서 강단의 십자가에도 붉은 색으로,
강단 꽃꽂이도 성령의 불길처럼 꽃장식을 해 놓았습니다.
저도 넥타이 중에 검붉은 색을 골라서 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불같이 임했다는 뜻으로 붉은 색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오늘은 강단의 꽃장식만 봐도 은혜가 되실 줄로 믿습니다.
성령강림절이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50일째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 제자들에게
성령께서 오신 것을 기념하는 것이 성령강림절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잠시 활동하시다가 승천하시기 전에 하신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행1:4) 는 말씀에 순종한
120명의 사람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했습니다(행1:15).
7주간이 지난 오순절이 되었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세차게 부는 바람 같은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있던 온 집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불길과 불의 혀 같은 것이 나타나더니 각 사람 위에 내렸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모두 성령 충만하여 졌고
성령의 지시에 따라 각기 다른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각처에서 온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전하는데
한 언어로 전하는데 각기 자기들의 말로 알아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신기해 했습니다. 모두 놀랐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일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우리의 말로 들리는구나!…]
오늘 아침에 교회에 오는데 건널목 전선주에 어떤 예쁜 아가씨가 전선주를 끌어안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정신을 못차리고 휘청휘청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술에 취해 휘청하는 것이었습니다. 참 불쌍하고 한심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령충만함을 받은 사도들이 말씀을 증거하면서
죽을 지도 모르는 데 이상한 말(방언)을 하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저희가 새 술에 취하였다"(행2:13) '이상하다, 한심하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술취한 여인을 보고 불쌍히 여긴 것 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사람들에게
"때가 제 삼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행2:15)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행2:16)라고 선언했습니다.(요엘2:28~32)
그리고 베드로는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2:36) 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때 그들은
- 자신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를 적에 비웃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조롱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하는 말에 마음에 찔림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그렇게 조롱하고 비난했던 그분이 죽었다가 사흘만에 살아나셨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는가, 메시야가 되게 하셨는가,
우리를 구원하실 자로 오실 분이었는가?'
그때서야 깨달았고 마음에 찔림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만 좋습니까?'를 베드로에게 물었습니다.
"우리가 어찌할꼬"(행2:37)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행2:37)
"어떻게 해야만 우리의 죄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베드로는 설교를 계속하였습니다.
그의 설교의 중심 부분이 바로 오늘 본문 38~40절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 그 날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사람이
3000명이나 더하더라(3000이상)고 했습니다.(행2:41)
모든 사람은 이 일 후에 기도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니까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했고 믿는 사람들은 상부상조하며
① 모이기를 힘썼고
② 기쁨과 감사함으로 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③ 모든 사람들에게서 칭찬(칭송)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구원받는 사람이 날마다 많아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성령강림주일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여러분도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성령과 동행하는 신앙생활을 한 초대교회 성도들을 본받아
성령과 동행하는 삶, 변화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많은 교회의 지도자나 신자들은
성령의 역사를 단순한, 비정상적이고 흥분된 한 사건으로 이야기 합니다.
혹은 물리적이고 생리적인 변화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에 대해 설교하거나 대화하면
광신적인 사람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더욱이 일부 사람들 중에는 성령 받았다 하면 은사를 행해야만
특별히 '방언'을 말해야만 신령한 사람이 되는 것으로…,
구원의 조건인 것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방언이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꼭 해야만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사도행전 18장에 보면 "아볼로"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학자이고 박식하고 잘 가르치는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라"(행18:24)
그러나 사도행전 18장 25절에 보면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행18:25) 고 했습니다.
아볼로는 요한의 물세례만 알고 있었습니다.
성령이무엇인지 알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사도행전 19장 1~7절에 보면 바울이 어떤 제자들을 만나자마자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대답은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고 했습니다.
모를 수도 있습니다. 아볼로처럼… 성령을 모른다고 지옥 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왕이면 성령이 무엇인지 알고 감사하며
성령충만한 삶을 사는 것이 좋습니다.
성령은 신비에 해당됩니다.
신비는 'mistery'입니다. 인간의 언어로, 글로 표현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해한다고 하나 다 이해되지 않고, 설명한다고 해도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
분명히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데 그 하나님이 사람의 몸으로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분이 가시면서 또 보내시겠다고 하시면서 성령님을 보내셨습니다.
세 분이시면서 한 분이고, 한 분이시면서 세 분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우리는 정확히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수학을 잘 하는 분은 셋 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셋인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수학적인 용어로 "복합적 단일"이라고 말합니다.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시간도
"두 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과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신
주님의 말씀처럼 우리 가운데 함께 계심을 믿으시기 발바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속에 계셔서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요14:26).
우리의 범사를 주관하시고 인도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요한복음 6장 47절에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요6:47)
로마서 8장 9절에 보면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8:9) 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다 아시다시피 30년 전에 해병대에 갔습니다.
그런데 해병대 출신 아버지가 멋있어 보였는 지 제 아들도 해병대에 갔습니다.
아들이 휴가를 나오거나 면회 때 가보면 그 속에 해병대가 들어 있습니다.
해병대는 좀 별나서 그 속에 해병대 정신이 있습니다.
길거리에 가다가도 팔각모자를 쓴 군인을 보면 "음... 내 후배구나. 역시 잘생겼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제 마음에도 해병대 정신이 있습니다.
그런데 해병대정신을 누가 넣어 줬습니까? 아무도 넣어 준 사람이 없습니다.
한국이 싫어서 이민 간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살았을 때 보면 '한국'이라고 하면 입에 거품물고 싫다고 하는 사람들도
한국하고 다른 나라와 축구 시합이 있을 때는 어느 나라를 응원합니까?
한국을 응원합니다. 왜냐하면 그 속에 한국사람 정신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믿어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고, 하늘 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속에는 하나님의 영이 함께 계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제 설명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여러분께서 예수 믿는 사람 속에 성령께서 함께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부족한 제 설명도 감사합니다.
성령은 예수 믿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영생을 얻은 사람입니다.(요3:16, 요6:47)
예수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사람입니다.(롬8:9)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갈라디아서 5장 말씀대로
'성령의 지시대로…',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역사하시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성령은 비겁하고 나약한 사람을 변화시켜 입을 열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난 후 사람들은 무서워 벌벌 떨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죄인으로 처형 당했으니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추종자들도 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함부로 예수 얘기를 했다가 잡혀가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본 사람들 조차도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증거하지 않았습니다.
소근소근, 조용히, 몰래 모였습니다.
그런데 성령충만함을 받고 난 후 사람들은 달라졌습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모이기 시작했고,
죽기를 각오하고<죽었던 예수께서 살았고 / 부활한 예수께서 승천했다>는 것을
담대하게 전했습니다.
십자가를 증거 하는 산 증인이 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 발언은, 죽었던 예수가 살았다는 소리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안심하던 로마인들에게 대항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당시 사회를 향한 도전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서워 떨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할 수 있었던 용기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할 수 있었습니다.
성령 받은 후 사람들은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성령 받은 후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 후 숨어 쉬쉬하며 조심하며 살던 사람들이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기 시작했습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모이게 되었습니다.
'모인다'는 것은 한 마음이 된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가 모인 것도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리기 위해 모인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모이라는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 요엘 2:15~16 모으라고, 모이라고 선포했습니다.
15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고하고
16 백성을 모아 그 회를 거룩케 하고 장로를 모으며 소아와 젖먹는 자를 모으며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골방에서 나오게 하고 (요엘 2:15~16)
- 스바냐 2:1~2 스바냐도 "모일찌어다" 했습니다.
1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 모일찌어다 모일찌어다
2 명령이 시행되기 전, 광음이 겨 같이 날아 지나가기 전,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임하기 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그리할찌어다 (습 2:1~2)
- 사무엘상 7:5 사무엘도 미스바로 "모이라"했습니다.
5 사무엘이 가로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삼상7:5)
- 시편 50:5 시편 기자도 성도를 "모으라" 했습니다.
5 이르시되 나의 성도를 내 앞에 모으라
곧 제사로 나와 언약한 자니라 하시도다 (시 50:5)
모여야 됩니다. 모여야 하나됩니다. 한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모여야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모여야 기적이 일어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벳세다 광야에 모인 5000명 넘는 사람들이 모였을 때 5병 2어의 기적이 있었습니다.
베드로 앞에, 제자들 앞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였으면
그날 믿고 회개한 사람이 3000 명 이상이나 되었겠습니까.(행2:4)
기독교 역사는 모이는 역사였습니다.
왜 전국의, 전 세계의 교회가 건축을 합니까?
왜 우리 교회가 건축을 했습니까? 비전센타를 왜 지었습니까?
모이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모이는 것이 궁극적 목적은 아닙니다.
그러나 모일 때 하나 되고, 예배드리고, 말씀 배우고, 기도하며 역사가 나타납니다.
여러분 모이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말합니다.
{현대는 스피드(speed) 시대이고, 우주시대인데 이제 우리 따로 따로 믿읍시다.
목사님은 카메라 앞에서 설교하시고
우리는 집에서 혹은 산이나 들에서 TV나 컴퓨터
혹은 휴대전화 화상을 보면서 예배드리고
헌금은 온라인으로 인터넷 뱅킹으로 입금하면 안됩니까?]
아닙니다.
여러분, 모여야 합니다.
초대교회의 예수 믿는 사람들이 숨어서 몰래 몰래, 끼리끼리 모였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믿는 사람임을 드러내면 죽임을 당하므로 무서워서 숨었습니다.
그러나 성령 받고 난 후 그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모이기에 힘썼습니다.
어떤 사람이 "목사님, 꼭 모여야 합니까. 주일낮예배 한번 드리고
주일밤에도/수요일밤에도/금요일 심야/속회… 등등 왜 자꾸 모이라고 합니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부터 있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0장 25절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10:25) 고 했습니다.
모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온 세상의 교회들이 모이기를 폐하고 교회 문을 닫아도
기둥교회 성도들은 모이는데 앞장서는 성도들로 남으시기 바랍니다.
기독교는 명상의 종교가 아닙니다. 사색의 종교가 아닙니다.
역동적인 종교입니다. 살아 움직이는 종교입니다.
모여 예배 드리고 은혜 받고 나가 복음 전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성령 받은 후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돌렸습니다.
성령 충만함을 입은 무리들은 모일 뿐 아니라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으며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사랑받은 체험을 한 사람, 성령 받은 체험을 한 사람,
천국의 소망을 가진 사람은 자기의 것을, 자기의 귀한 것을 함께 나눕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자신의 보물을 내어놓았습니다.
마음을 드리고,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고, 목숨까지도 드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계신 것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목회자가 어려운 것은 성도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속에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예수님께서 이것에 대해
"네 보물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6:21)
마음이 있는 지, 없는 지 아는 방법은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은
그 사람이 보물을 드리느냐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시간의 보물, 물질의 보물을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 나라에, 교회에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라는 곳은 하나님을 위하여 예수님 이름으로 모이는 곳인데
별의별 사람이 다 있습니다.
교회에서 말하는 유유상종은 일반적인 개념의 유유상종이 아닙니다.
교회에서의 유유상종은 예수 믿음으로 서로 만나는 사이를 말합니다.
남자도, 여자도 / 노인도, 아이도 /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 높은 사람, 낮은 사람 /
많이 배운 사람, 못 배운 사람 … 함께 예수님 이름으로 한 맘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기둥교회의 번듯한 회사 사장님들…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이 회상에서 사장이라면, 교회에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 어려운 사람과
한 맘 될 수 있어야 합니다. 함께 기도하고 어울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낮아져야 합니다.
-우리 교회 일류 출신들, 잘 나가는 분들… 잘 들으십시오.
한글도 제대로 깨우치지 못하여 더듬거리며 성경 읽는 사람들과
한맘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사람들과도 어울려 하나될 수 있어야 합니다.
한 선교회, 한 속도원으로서 함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낮아져야 합니다.
수준을 낮추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수준 유지하시되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 위해 겸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낮아질 수 있어야, 희생할 수 있어야 참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천하보다 귀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하나 되기 위해 내가 길어도 짧은 것으로 줄이고
내가 넓어도 좁은 것처럼 만들 줄 알아야 합니다.
강단의 꽃장식을 보세요.
여기 있는 이 꽃은 꽃꽂이 위원들에게 많은 수난을 당합니다.
토요일에 꽃꽂이 위원들이 강단 꽃 장식을 하기 위해
예쁜 꽃들을 자르고, 잇고, 구부려 진 것은 폅니다.
아름답게 조화되기 위해 어떤 것은 잎이 잘려야 하고 어떤 것은 줄기가 잘립니다.
그럴 때 이렇게 아름답게 조화된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든 사람이 예수 이름으로 굽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굽은 사람도 예수 이름으로 펴 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때로는 우리가 하나 되기 위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잘려야 하고,
때로는 구부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과 동행하는 사람의 겸손한 자세입니다.
성령 받은 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칭송 받았습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은 사람은
예수 이름으로 모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쁨과 감사와 순전함으로 먹고 마시고
모든 백성에게 칭찬을 받고, 존경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 더 부지런해야 합니다. 더 깨끗해야 하고 단정해야 합니다.
- 성실해야 합니다.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거래가 명확해야 합니다.
빌려간 것 빨리 돌려 줘야 하고 빨리 돌려 줄 수 없으면 이유를 밝혀서
그 사람들이 초조해지지 않도록 설명해야 합니다.
- 겸손해져야 합니다. 예의 바른 사람이어야 합니다.
- 노력해야 합니다. 열심히 사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도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12:11)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일터에서나,
어느 곳에서든지 칭찬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면 성령께서는 그 속에 계십니다.
성령은 예수 믿는 사람에게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성령과 동행하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순간 순간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는 성령과 동행하면
때로 힘이 들고 어려워도, 내 마음대로 안되는 것 같아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지금 어렵고 고통스런 순간도 하나님께서 변화시켜 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찬송 427장 후렴)
"내가 비록 예수 이름으로 좁은 길을 가지만
내가 기쁨으로 갈 수 있는 내 안에 성령께서 함께 계심이라"고 간증하며 살고
증거하며 사시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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