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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께서 오시면 (욜 2:28~32)

by 【고동엽】 2022. 3. 14.

성령께서 오시면   (욜 2:28~32)

욜 2:28~32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30)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31)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변하려니와 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요 16:7~11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행 2:1~4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기독교의 3대 명절이 있습니다. 성탄절, 부활절, 성령강림절. 성탄절은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 부활절은 예수님께서 우리 위해 죽으시고 삼일만에 다시 사신 날, 성령강림절은 예수님이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의 영이시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강림하신 날. 그러므로 기독교의 3대 명절은 우리가 늘 기억하며, 늘 감사하면서 우리가 맞이해야 될 것입니다.

또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들에게 크게 세 가지를 주기 원하십니다. 첫째는 구원, 둘째는 성령, 셋째는 복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으로부터 우리가 사랑을 받아서 예수를 믿고 구원받고,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가 기도해서 성령을 받고, 성령 받은 성도가 하나님 말씀 실천하므로 말미암아 복받는 성도가 다 되어야 될 것입니다. 그런 은혜, 그런 사랑, 그런 복을 다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전 세계 교회의 생일인 오순절 성령강림 주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강림 주일은 성령이 강림하시므로 말미암아 최초의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강림절임과 함께 교회 생일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제 세워진 교회를 통해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구세주 되심을 경험하게 되고,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되는 비전과, 사역을 부여받게 됩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주님의 떠나심과 동시에 남기워진 제자에게 선물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지 40일째 되던 날에 주님은 승천하시고, 50일째 되던 날에 그 약속은 실현되었습니다.

120명의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약속을 기다리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밖에 나가지도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서슬퍼런 로마 병정들의 눈을 피해야만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도를 따르는 자를 처결하기 위하여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바리새파 사람들을 피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이 두렵습니다. 그들 때문에 도무지 살 소망을 갖지 못합니다.

그나마 부활하신 주님이 저들을 만나 주실 때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주님이 승천하시자 의지할 대상이 없습니다. 눈으로 보고, 직접 대면하여 말씀을 주시던 주님이 승천하시자 이제는 위안 받을 수 없습니다. 비젼을 가질 수 없습니다. 꿈을 꿀 수도 없습니다. 이상을 갖지도 못합니다. 내일은 전혀 없는 듯 보여집니다.

그래서 저들은 그 아픔을 앞에 두고 어쩌면 좋으냐고 다락방에 숨어서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행 2:1~3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그들에게 이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습니다.

그 성령을 체험하면서 저들은 색다른 경험을 합니다.

행 2: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성령을 받으면서 이 땅에 비로소 방언이라는 은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무엇 때문에 성령이 이 땅에 왔으며, 성령의 은사를 통하여 어떤 일을 이루시려는 것일까요?

주님은 분명히 이 땅에 남기어진 제자들에게 내가 가고 성령이 오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요 16: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1. 성령은 우리로 회개케 합니다.

회개는 과거에서 떠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회개는 곧 회복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1장에는 예수님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에는 당시의 풍습을 따라 여자의 이름이 원칙적으로 빠져 있습니다. 누구는 누구를 낳고 할 때 앞의 누구는 아버지이고 뒤의 누구는 아들입니다. 여자는 원칙적으로 그 이름이 족보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1장에는 그 원칙을 깨고 몇 여자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라합과 룻 그리고 다말과 밧세바입니다. 이 여자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다 정상적인 여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라합은 기생이었습니다. 룻은 당시 사람들이 개처럼 취급하던 이방여자였습니다. 다말은 시아버지와 관계를 하여 자식을 낳은 사람이요, 밧세바는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본시 다윗의 아내가 아니라 우리아라고 하는 사람의 아내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족보에는 물론이고 우리와 같은 사람의 족보에도 들어갈 수 없는 부끄러운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이름이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들이 다 예수님의 할머니가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놀라운 복음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회복입니다. 하나님에게는 기생 라합과 이방인 룻 그리고 망측한 다말과 음란한 밧세바를 축복 중에 최고의 축복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수님의 족보에 오를 수 있는 깨끗하고 흠 없는 사람으로 회복시키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십니다.

성령을 통하여 그들은 주님을 떠나고, 두려워하던 모습을 말끔히 씻어냅니다. 이제는 자신들의 과오에 짓눌려 살지 않습니다. 새로운 삶을 바라 보도록 성령을 통하여 회복 시키시기 때문입니다.

이 바로 회복하시는 하나님에게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의 생명이 끊어지지 않는 한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절망적인 자리에 있다고 하여도 하나님에게는 그것을 원상으로 회복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십니다. 사랑이 있으십니다. 그리고 그 능력과 그 사랑은 여러분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회복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로 다음의 일을 하게 하십니다. 그것은~~


2. 성령은 우리로 꿈을 꾸게 합니다.

참으로 어려운 시절에 우리의 부모님들께서 살아 오셨습니다. 일제의 혹독한 수탈, 한국 전쟁의 참화로 수많은 생명의 상실, 고향 산천을 떠나 도시로 향한 발걸음에 개발 독재의 쓰라림까지 온 몸으로 겪어온 그분의 수고는 우리 자녀들의 모든 공경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들입니다.

왜 우리네 부모님들이 그 아픔을 견디며, 현실을 저주하지 않고 묵묵히 이겨낼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자녀 세대들은 우리의 아픔을 물려주지 않아야 하겠기에, 견디고 눈물을 삼키며 휜 허리를 마땅치 않다 여기며 살아온 것 아니겠습니까?

그 고통을 견디신 부모님 때문에 지금 이 민족은 과거의 땟국물 흐르던 옷을 벗어 던지고, 좋은 환경을 누리고 있는 것 아닙니까?

꿈을 갖고, 더 나은 기대와 비젼이 저들로 고난을 이기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 꿈을 잃은 세대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을 잃고 실의에 빠진 제자들, 그들은 주님 만나기 전의 삶으로 돌아갑니다.

엠마오 마을로 제자들은 떠납니다. 바닷가에 버려둔 그물을 다시 손에 잡고 살아갈 방편을 만듭니다. 주님께서 공생애동안 저들에게 헌신하며, 그리스도의 일을 감당케 하려 함께 밤을 지새운 것을 잊습니다.

그들은 두려움에, 과거에로의 회귀를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입니다.

소망을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잡히시자, 그리고 아무런 힘도 써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자, 그들은 완전히 절망합니다.

다 떠날지라도 나는 떠나지 않겠다 호언장담하던 베드로는, 어느 누구보다 약한 모습으로 도망치고 맙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다시 주님을 만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저들은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없습니다. 주님 부활의 현장에 저들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공포 속에 밖에 나가지도 못합니다.

바로 그 순간에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게 됩니다.

힘을 얻습니다. 꿈을 갖습니다. 소망을, 비젼을 갖습니다.

마땅하다고 여겼지만 복음 증거를 위해 할 수 없었던 저들이 이제 나서기 시작합니다.

숨어 있던 저들이 이제는 밖으로 나옵니다.

도망치던 저들이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3. 성령은 우리로 복음 증거의 사역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시면서 저들에게 한 증거가 나타납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그런데 이 장면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구약의 한 시대로 돌아가야 합니다.

창 11:1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에서 사람들은 한 가지 언어로 말하고 살아 왔습니다. 그들은 노아 홍수로 모든 죄악을 쓸어 버리시고, 새롭게 정화시켜 놓은 땅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그들이 시날 평지에 삶의 터전을 자리 잡고 살아갈 때 였습니다.

그곳은 노아 홍수 이후 그들의 삶의 본거지가 점점 바벨론 땅으로 옮겨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벽돌을 발명합니다. 자연석으로 간단한 건축을 하던 그들은 인류 최초로 벽돌을 발명하여 한 건축물을 짓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바벨탑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그들이 발명한 그 발명품으로 그들은 이런 생각을 합니다.

창 11:4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하나님의 인류의 죄악 때문에 그들을 홍수로 심판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의 지혜로 그 멸망을 깨쳐 일어나려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의 계획의 악함을 용납지 않으시고 흩어지지 않으려는 저들을 흩으시며, 저들의 언어를 다양하게 만들어 놓습니다.

창 11:6~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온 인류의 언어가 다양해진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류의 죄에 대한 결과였습니다. 그 때로부터 인류의 계획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약화되어집니다.

그런데 오늘 성령이 임하신 그 현장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행 2: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성령을 받으면서 저들은 각 지역의 다양한 언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대적의 결과로 흩어진 언어들, 그런데 성령께서 오시면서 그 흩어진 언어를 말할 수 있게 하십니다.

무엇 때문에 이 일을 하십니까?

그것은 다양한 언어의 모든 족속에게 이런 일을 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행 2:7~11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방언을 통해, 지금까지 배우지도 못하고, 알아 듣지도 못하던 이방의 언어를 말합니다.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께서 오셔서 저들에게 각 나라의 말로 말하게 하신 이유입니다.

오늘 성령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임하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성령께서 우리를 강권하사 복음 증거의 일군이 되게 하십니다.

방언의 은사를 자랑할 것이 아닙니다.

치유의 은사를 자랑할 것이 아닙니다.

예언의 은사를 자랑할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은사는 하나님의 큰 일을 증거케 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자랑 속에 여러분의 삶을 으쓱거리지 마시고 하나님을 증거해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음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제자들은 성령을 받고, 패배자로, 도망자로, 과거로 회귀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을 힘입은 저들은 이제 주님을 떠난 자신의 삶을 회개합니다. 그리고 온 세상에 복음이 증거 될 소망을 갖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꿈 꿉니다. 그리고 나가서 주님을 나타냅니다. 주님을 증거합니다.

바로 그것이 초대교회 성령 임재를 경험한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오늘 성령을 경험하신 여러분들, 이제 무엇을 하시렵니까?

살아 계십니까? 호흡이 있습니까? 권세가 있습니까? 물질이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그 모든 것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이겠습니까?

감사하십시오. 살리신 은혜에 여러분의 삶을 맡기십시오.

소망을 선포하십시오.

그리고 주님을,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십시오.

성령 강림절을 맞이하는 저와 여러분은 바로 회개자로, 꿈장이, Visionary로, 선포자로 승리하며 사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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