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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강 이스라엘에 대한 책망(5:10-13)

by 【고동엽】 2022. 4. 16.

제30강 이스라엘에 대한 책망(5:10-13)

 

5:10-13
무리가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며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하는도다 너희가 가난한 자를 밟고 저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취하였은즉 너희가 비록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하지 못할 것이요 아름다운 포도원을 심었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중함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궁핍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 그러므로 이런 때에 지혜자가 잠잠하나니 이는 악한 때임이니라

"무리가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며." 여기서 무리라고 하는 것은 누구를 가리키겠습니까? 9절의 말로 표현한다면 "강한 자"입니다. 강한 자들이 패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본문에서 밝혀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장소가 하나 등장하고 있습니다. "성문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보면 성문 안에 있는 무엇입니까? 16절에 있는 단어로 말해보시기 바랍니다.
(암5:16) 그러므로 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모든 광장에서 울겠고 모든 거리에서 오호라 오호라 하겠으며 농부를 불러다가 애곡하게 하며 울음군을 불러다가 울게 할 것이며
광장을 의미합니다. 이미 우리가 살펴보았습니다만 복습 삼아서 다시 한번 공부해봅니다. 성경에 보면 성문 앞 광장이 하는 역할이 세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1) 시장의 역할, 2) 모임 장소의 역할, 3) 법정의 역할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10절과 관계되는 성문의 역할은 재판정, 법정의 역할입니다.
제가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옛날 성문에서 열리는 재판을 머리 속으로 한번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누가 있어야 합니까? 첫째로, 재판하는 당사자인 원고나 피고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아모스 본문에서 말하는 재판의 당사자는 누구입니까? 10절에 나오는 무리, 곧 강한 자와 11절에 나오는 가난한 자가 재판 당사자입니다. 둘 중에 하나는 원고이고, 다른 하나가 피고가 될 것입니다. 둘째는, 판결을 내려주는 재판관이 있어야 합니다. 아모스는 무슨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까? "책망하는 자"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재판관이 하는 일은 책망하는 것입니다. 잘잘못을 바로 판단해서 잘못한 자를 벌주고, 책망하는 일이 바로 재판관이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바른 재판을 열었다가는 세력 있는 자, 강한 자에게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세번째, 증인이 있어야 합니다. 증인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자세가 무엇입니까? 정직입니다. 율법에서는 위증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습니다.
(출20:16)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신19:15∼19) 사람이 아무 악이든지 무릇 범한 죄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만일 위증하는 자가 있어 아무 사람이 악을 행하였다 말함이 있으면 그 논쟁하는 양방이 같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당시 제사장과 재판장 앞에 설 것이요 재판장은 자세히 사실하여 그 증인이 위증인이라 그 형제를 거짓으로 무함한 것이 판명되거든 그가 그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대로 그에게 행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런데 10절을 보면 아모스 당시에 이스라엘은 어떠하다고 했습니까?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하는도다"고 했습니다. 증인이 증인으로서 제대로 증언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회적인 압력, 뇌물 등으로 위증이 난무하는 타락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장 공의로워야 할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와 같이 정의가 땅에 떨어진 모습으로 바뀌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11절에서는 사법부가 타락한 결과로 나타나는 양상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 그로 인해서 하나님이 내리시는 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5:11) 너희가 가난한 자를 밟고 저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취하였은즉 너희가 비록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하지 못할 것이요 아름다운 포도원을 심었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사법부가 타락했으므로 이제는 강한 자들이 마음놓고 가난한 자를 밟고, 부당한 이자와 세를 긁어모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보면 "너희가"라고 했습니다. 아까 10절에서 "무리가"라는 말로 막연한 표현을 썼다가 이제는 청중을 향해서 "너희가"라고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직설적인 표현입니다. 아마 아모스가 외치는 말을 듣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은 속이 뜨끔했을 것입니다.
"너희가 가난한 자를 밟고"라는 말과 같은 표현이 2:7에도 나왔습니다.
(암2:7) 가난한 자의 머리에 있는 티끌을 탐내며 ("가난한 자의 머리를 티끌 위에 밟으며"라는 뜻임) 겸손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부자가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그 다음에 "저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취하였은즉"이라고 했습니다. 율법에는 가난한 자에게 이자를 받도록 되어 있습니까? 못 받게 되어 있습니까?
(출22:25) 네가 만일 너와 함께한 나의 백성 중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이거든 너는 그에게 채주같이 하지 말며 변리를 받지 말 것이며
(레25:35∼43) 네 동족이 빈한하게 되어 빈손으로 네 곁에 있거든 너는 그를 도와 객이나 우거하는 자처럼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하되 너는 그에게 이식을 취하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여 네 형제로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할 것인즉 너는 그에게 이식을 위하여 돈을 꾸이지 말고 이익을 위하여 식물을 꾸이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려고 또는 가나안 땅으로 너희에게 주려고 애굽 땅에서 너희를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네 동족이 빈한하게 되어 네게 몸이 팔리거든 너는 그를 종으로 부리지 말고 품꾼이나 우거하는 자같이 너와 함께 있게 하여 희년까지 너를 섬기게 하라 그때에는 그와 그 자녀가 함께 네게서 떠나 그 본족에게로 돌아가서 조상의 기업을 회복하리라 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바 나의 품군인즉 종으로 팔리지 말 것이라 너는 그를 엄하게 부리지 말고 너의 하나님을 경외하라
요즘도 유대인들은 미국 등지에서 재단을 만들어서 장학기금을 운영합니다. 가난한 유학생이 그곳에 가서 학비를 빌립니다. 물론 이자는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얼마나 지독한 사람들입니까? 이자 대신 무엇을 요구하겠습니까? donation을 요구합니다. 자발적으로 헌금하라는 것입니다. 율법은 어기지 않으면서도 챙길 것은 다 챙깁니다.
가난한 자들이 농한기가 되어서 먹을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부자에게 가서 밀을 좀 빌렸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이식은 받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공법이 인진으로 변하고, 정의가 땅에 떨어진 세상에 그런 것이 제대로 지켜질 리가 있습니까? 부자들은 부당하리 만큼 많은 이자를 요구합니다. 그러니 가난한 자들이 갚을 재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자들은 가지고 있던 농토도 다 빼앗기고, 더 나아가서 2:6에 기록된 상태처럼 되어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암2:6)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궁핍한 자를 팔며
이와 같이 부자들, 강한 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억압하는 일에 시녀가 되어 장단을 맞춘 것이 누구라는 것입니까? 바로 타락한 재판관들입니다. 그러니 아모스가 이렇게 탄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공법을 인진으로 변하며 정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아."
강한 자들은 가난한 자들을 밟고, 부당한 이득을 취해서 그것으로 무엇을 했습니까? "너희가 비록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했다고 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화강암으로 으리으리한 집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집을 지을 때는 무엇을 사용했습니까?
(사9:10) 벽돌이 무너졌으나 우리는 다듬은 돌로 쌓고 뽕나무들이 찍혔으나 우리는 백향목으로 그것을 대신하리라 하도다
흙으로 벽돌을 찍어서 집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난한 자들을 착취해서 모은 돈으로 다듬은 돌을 사용해서 집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왕상6:36) 또 다듬은 돌 세 켜와 백향목 두꺼운 판자 한 켜로 둘러 안뜰을 만들었더라
(왕상7:9) 이 집들은 안팎을 모두 귀하고 다듬은 돌로 지었으니 척수대로 톱으로 켠 것이라 그 기초석에서 처마까지와 외면에서 큰 뜰에 이르기까지 다 그러하니
(왕상7:11) 그 위에는 척수대로 다듬은 귀한 돌도 있고 백향목도 있으며
위에서 본 대로 다듬은 돌은 성전이나 임금이 사는 궁궐을 짓는 건축재료였습니다. 그러니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치와 호화가 얼마나 극치를 이루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저들은 가난한 자들을 착취한 재물로 왕과 같이 호사스러운 생활을 했습니다.
저들은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고, 또 아름다운 포도원을 심었다고 했습니다. 사5:1∼2이 우리에게 아름다운 포도원이 어떠한 것인지를 설명해줍니다.
(사5:1∼2)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나의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었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 포도를 맺혔도다
아름다운 포도원이 가져야 할 두 가지 요소는 1) 기름진 땅 2) 좋은 종자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강한 자들이 다듬은 돌로 아름다운 집을 짓고, 또 아름다운 포도원을 가꾸었지만 그곳에 살 수 있다고 했습니까? 아닙니다. 그곳에 살 수도 없었고, 포도주도 마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너희가 비록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하지 못할 것이요 아름다운 포도원을 심었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헛수고만 실컷 했습니다. 바벨탑처럼 쌓기만 하고 다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와 비슷한 표현들이 성경에 자주 등장합니다.
(신28:30) 네가 여자와 약혼하였으나 다른 사람이 그와 같이 잘 것이요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하지 못할 것이요 포도원을 심었으나 네가 그 과실을 쓰지 못할 것이며
(미6:15) 네가 씨를 뿌리나 추수하지 못할 것이며 감람을 밟으나 기름을 네 몸에 바르지 못할 것이며 포도를 밟으나 술을 마시지 못하리라
(습1:13) 그들의 재물이 노략되며 그들의 집이 황무할 것이라 그들이 집을 건축하나 거기 거하지 못하며 포도원을 심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하나님의 심판을 뜻하는 말씀들입니다. 무엇을 성취한 것 같지만 다 허무한 것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입니다. 불의로 쌓는 재물은 결코 축복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다 무너지고, 짓밟히고 말 것입니다. 나중에 가서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그날에는 이러한 저주에서 풀려나고 회복이 됩니다.
(암9:14)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리니 저희가 황무한 성읍을 건축하고 거하며 포도원들을 심고 그 포도주를 마시며 과원들을 만들고 그 과실을 먹으리라
그러나 지금은 멸망과 패망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12절로 넘어갑니다.
(5:12)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중함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궁핍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언제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고,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했습니까? 또 우리가 언제 가난한 자를 밟고 그렇게 착취했습니까?"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아무리 죄없는 척해도 하나님은 속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속 중심을 환하게 파헤치시는 분이십니다.
"너희의 허물이 많고 중함을 내가 아노라." 여기서 "너희"라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말이고 "내가"라는 것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전지하신 하나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을 낱낱이 다 파악하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허물이나 죄악이나 다 똑같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행동들을 가리킵니다.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말보다는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서 같은 뜻을 가진 다른 낱말을 사용하는 것이 히브리인들의 표현 기법 중 하나입니다. 허물이 많다는 것은 빈도가 높다는 것, 자주 있다는 것이고, 죄악이 중하다는 것은 정도와 강도가 아주 세다는 뜻입니다.
그 다음을 보면 죄악이 구체적으로 세 가지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의인을 학대하며, 둘째는, 뇌물을 받고, 셋째로, 성문에서 궁핍한 자를 억울하게 했다고 했습니다. 이 세 가지가 다 어디에서 행해지는 것이라고 했습니까? "의인"이라는 것은 죄 없는, 법적으로 잘못이 없는 자를 말합니다. 그런데 그런 자를 학대한다는 것입니다. 어디에서 그렇다는 말입니까? "뇌물을 받고"라고 했습니다. 어디서 뇌물이 오가는 것입니까? 세번째 죄악에서 가르쳐줍니다. "성문에서." 성문에서 궁핍한 자를 억울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는 서로 관련이 깊습니다. 아무런 죄가 없는 의인이 어찌 학대를 받습니까? 의인을 학대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재판관에게 뇌물을 주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세번째로 보니까 돈 없는 궁핍한 자는 무엇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까? 억울함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율법에 보면 뇌물은 못 받게 되어 있습니다.
(신16:18∼2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각 성에서 네 지파를 따라 재판장과 유사를 둘 것이요 그들은 공의로 백성을 재판할 것이니라 너는 굽게 판단하지 말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며 또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너는 마땅히 공의만 좇으라 그리하면 네가 살겠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을 얻으리라
뇌물은 사람의 눈을 어둡게 만듭니다. 또 성경에 보면 가난한 자를 항상 보살피라고 했습니다.
(신10:18)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나니
(시146:9) 여호와께서 객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강한 자들은 뇌물로 재판관들을 구워삶아서 서로 한 통속이 되어서 가난한 자들을 억압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정경이 유착한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비슷한 현상들이 남방 유다 왕국에도 있었습니다.
(사5:23) 그들은 뇌물로 인하여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에게서 그 의를 빼았는도다
(사10:1∼2) 불의한 법령을 발포하며 불의한 말을 기록하며 빈핍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여 내 백성의 가련한 자의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13절로 넘어갑니다. 오늘 공부의 결론이 여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5:13) 그러므로 이런 때에 지혜자가 잠잠하나니 이는 악한 때임이니라
무슨 뜻입니까? 좀 어렵습니다. 우리말 성경은 13절을 10절과 같은 맥락에서 해석을 하려고 애를 쓴 것 같습니다. 10절과 13절을 제가 같이 연결해서 읽어봅니다.
(5:10) 무리가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며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하는도다
(5:13) 그러므로 이런 때에 지혜자가 잠잠하나니 이는 악한 때임이니라
무리가 바른 말 하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고 또 공평하게 판단하는 것을 원치도 않기 때문에 이런 악한 때는 지혜로운 자의 경우에 차라리 입다물고 가만히 있는 것이 더 낫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대다수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석하면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됩니다. "이렇게 악할 때일수록 아모스와 같이 더 소리를 높여야지 지혜자라고 하면서 비겁하게 잠잠해서야 되겠는가?" 어두울수록 더욱 빛을 발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13절을 조금 달리 해석합니다. 또 조금 달리 번역합니다. 저는 이 13절을 10절과 연결해서 생각하지 않고 차라리 11절과 연결해서 생각하고 싶습니다. 우선 11절을 다시 한번 읽어봅니다.
(5:11) 너희가 가난한 자를 밟고 저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취하였은즉 너희가 비록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하지 못할 것이요 아름다운 포도원을 심었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11절을 두 부분으로 나누라고 하면 어디를 끊겠습니까? "너희가 가난한 자를 밟고 저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취하였은즉"까지가 원인입니다. 그 다음에 그 결과 어떻게 된다는 것입니까? "너희가 비록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하지 못할 것이요 아름다운 포도원을 심었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원인과 결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13절도 12절에 대한 결과로 해석을 합니다. 12절과 13절을 붙여서 읽어봅니다.
(5:12∼13)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중함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궁핍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 그러므로 이런 때에 지혜자가 잠잠하나니 이는 악한 때임이니라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중함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궁핍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 여기까지가 원인입니다. 그 결과 13절에 나오는 내용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13절은 하나님의 심판을 담은 내용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선 13절에 사용된 "잠잠하다"는 동사가 실제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벌받는 모습을 묘사할 때 종종 사용되고 있습니다.
(삼상2:9) 그가 그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으로 흑암 중에서 잠잠케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애2:10) 처녀 시온의 장로들이 땅에 앉아 잠잠하고 티끌을 머리에 무릅쓰고 굵은 베를 허리에 둘렀음이여 예루살렘 처녀들은 머리를 땅에 숙였도다
(애3:28)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메우셨음이라
(암8:3) 그날에 궁전의 노래가 애곡으로 변할 것이며 시체가 많아서 사람이 잠잠히 처처에 내어 버리리라 이는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따라서 우리가 이 13절을 하나님의 심판의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라고 좀더 자신감을 갖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끝 부분에 나오는 "이는 악한 때임이니라"는 말을 조금 뉘앙스를 달리해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는 재앙의 때임이라." 다시 말해서 "이는 심판의 날임이라"고 생각해도 무난합니다.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제일 문제가 "지혜자"가 누구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말 성경에 지혜자라고 번역을 해놓아서 지혜자를 선지자나 의인과 같이 좋은 사람이라고 선입견을 가지고 해석을 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긍정적인 말로 보면 지혜자라고 번역을 할 수 있지만, 부정적인 면으로 해석을 하면 간교한 자, 영악한 자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족속들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영악했습니까? 바보같은 사람이 어떻게 재판관을 구워삶을 수 있겠습니까? 가난한 자들을 올가미를 씌워서 잡아 넣는 것이 가만히 앉아서는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교활한 지혜를 총동원해야 가능할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우리말 성경에서 "지혜자"라고 번역된 말은 차라리 영악한 자, 부유한 자, 교활한 자, 다시 말해서 아모스의 공격 대상이 되는 강한 자를 지칭한다고 보는 것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제가 다시 13절을 해석하면 이와 같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강한 자가 잠잠해지나니 이는 심판의 때임이니라." 하나님의 심판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는 말씀입니다.
10∼13절을 제가 다시 한번 천천히 읽어봅니다. 오늘 배운 것을 머리 속에 되새기면서, 특별히 13절의 의미를 다시 한번 음미하면서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5:10∼13) 무리가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며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하는도다 너희가 가난한 자를 밟고 저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취하였은즉 너희가 비록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하지 못할 것이요 아름다운 포도원을 심었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중함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궁핍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 그러므로 이런 때에 지혜자가 잠잠하나니 이는 악한 때임이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심판 당할 때의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암3:14) 내가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보응하는 날에 벧엘의 단들을 벌하여 그 단의 뿔들을 꺾어 땅에 떨어뜨리고
(암4:2) 주 여호와께서 자기의 거룩함을 가리켜 맹세하시되 때가 너희에게 임할지라 사람이 갈고리로 너희를 끌어가며 낚시로 너희의 남은 자들을 그리하리라
저들이 잠잠할 수밖에 없습니다. 낚시에 코와 입술이 꿰어 끌려가는 판에 어떻게 잠잠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잠잠하지 않으면 코가 찢어지고, 입술이 찢어지니까 자기만 더 손해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동안 가난한 자를 억압하고 착취해서 다듬은 돌로 집을 짓고 산성에 살며 아름다운 포도원을 짓고 호화스럽게 살았지만 이제는 순식간에 그 삶이 뒤바뀌어질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공법을 인진으로 바꾸어놓았기 때문입니다. 정의를 땅에 던졌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한 가지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중함을 내가 아노라." 이 말씀은 꼭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주신 말씀은 아닌 줄 압니다. 여기에 있는 우리 모두가 똑같이 이런 소리를 들어도 마땅한 줄 압니다.
한번은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끌고 예수님에게 왔습니다. 따집니다. "모세는 이런 여자를 돌로 치라고 했는데 선생은 무엇이라고 말하겠소이까?" 그때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그들은 모두가 양심의 가책을 받아서 돌을 놓고 슬그머니 다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줍니까? 자신은 정결하다고 돌을 던지겠다는 사람도 따지고 보면 다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깨끗하다고 생각할 때 그 사람은 영적인 교만에 빠지고 맙니다.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중함을 내가 아노라." 우리는 이 말씀이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우리의 회개를 재촉하기 위해서 주시는 말씀인 줄 알고 애통하는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겠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우리가 애통하는 가운데 이 시간에 하나님의 위로가 충만하게 우리에게 임하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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