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제28강 이스라엘에 대한 권면(5:4-6)

by 【고동엽】 2022. 4. 16.

제28강 이스라엘에 대한 권면(5:4-6)

 

5:4-6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정녕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허무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염려컨대 저가 불같이 요셉의 집에 내리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을까 하노라

오늘 본문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부분은 4∼5절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지나간 과거에 이스라엘을 향해서 권면하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4절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이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5절 끝 부분을 보니까 "하셨나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미 말씀하신 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말씀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족속들을 향해서 "벧엘이나 길갈이나 브엘세바로 가지 말로 나를 찾으라"고 이미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어떻게 했다는 것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벧엘로, 길갈로, 브엘세바로 찾아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인이 되어 그들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 의해서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빠져 있습니다만 히브리어 원어 성경에는 3절과 4절 사이에 "이는"하고 원인과 이유를 밝히는 접속사가 있습니다. 3절에 보는 바와 같이 이스라엘이 천 명이 나가면 구백 명이 죽고, 백 명이 나가면 구십 명이 죽는 원인이 어디에 있다는 것입니까? 그 이유가 바로 4절과 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마디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벧엘로, 길갈로, 브엘세바로 찾아가서 외식적인 제사 행위를 하지 말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찾아서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않았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벌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아야 사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고 하나님께서 가증스럽게 여기시는 일만 행했습니다. 그러니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두번째 부분은 6절입니다. 내용은 4절에 있는 말씀과 똑같은 권면으로 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러나 시제적으로는 앞의 것과는 다릅니다. 지금 이 시간, 이 절망적인 시간에 다시 한번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너희가 죽어 마땅한 일을 했지만 그래도 모르니까 지금이라도 뉘우치고 여호와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5:14∼15의 말씀을 읽어보면 이 권면의 뜻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암5:14∼15) 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를 세울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긍휼히 여기시리라
다시 한번 정리를 해봅니다. 4∼6절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전반부는 4∼5절입니다. 내용적으로는 과거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권면하시고 경고하신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후반부는 6절입니다. 여기에는 현재의 권면과 아울러 경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비록 절망적인 상태에 놓여 있는 이스라엘이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긍휼이 풍성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돌아올 때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용서해주실지도 모른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자세하게 한 절 한 절 읽어가면서 그 뜻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먼저 4절입니다.
(5: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이르시기를"이라는 동사는 원문에 보면 과겨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말에는 현재형으로 번역되어 있지만 이미 지나간 과거에 다 말씀하시고 권면도 하셨고 경고도 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난 뒤에 권면과 경고의 내용이 실제적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우선 권면이 등장합니다.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 다음에는 권면보다 좀더 강한 경고의 내용이 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5:5)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정녕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허무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할 때 "나"는 누구입니까? 물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찾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 어디 계세요? 어디에 숨으셨어요? 못 찾겠다, 꾀꼬리." 이것이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까? 도대체 하나님을 찾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찾으라는 하나님은 찾지 않고 무엇을 찾았는지를 살펴봄으로써 하나님을 찾으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암4:6∼11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그들을 징계하신 다섯 가지 재앙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반응을 보여주었습니까?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었습니다. 거기에 후렴처럼 반복되는 말이 있었습니다. 무엇이었습니까?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온전한 회개를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전에 걸어가던 길에서 되돌아서서 온전히 하나님께로 되돌아와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까지 자행하던 모든 사회적 불의에서, 또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종교 행위에서 떠나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찾는다는 말씀을 우리가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는 줄 압니다. 첫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전에 자행하고 있던 모든 불의와 죄악에서 떠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같은 맥락의 말씀이 5:14∼15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암5:14∼15) 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를 세울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긍휼히 여기시리라
선을 사랑하고 선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악을 구하지 말고 악을 미워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찾는 것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한 마디로 공의를 세우며 공의를 행하는 것이 하나님을 찾는 길입니다.
두번째로, 이스라엘이 즐기고 있는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종교 행위에서 떠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되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암4:4∼5)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누룩 넣은 것을 불살라 수은제로 드리며 낙헌제를 소리내어 광포하려무나 이스라엘 자손들아 이것이 너희의 기뻐하는 바니라 이는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은 내팽개치고, 다시 말해서 공의를 행하라는 하나님의 뜻은 실천하지 아니하고 껍데기뿐인 의식적이고 외식적인 행위에만 연연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서 단호하게 경고하신 것입니다.
(암5:5)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정녕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허무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너희가 찾아야 할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시지 벧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벧엘이나, 길갈이나, 브엘세바나 다 적에게 파괴되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도 다 사로잡히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그런 곳에 찾아가지 말고 하나님을 찾으라는 말씀입니다.
정리해봅니다. 하나님을 찾는다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전에 찾고 즐기던 것에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그러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온다는 것은 무엇에서 돌아온다는 뜻이었습니까? 첫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행하고 있던 불의에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했던 불의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습니까? 한 마디로 가난한 자를 억압하고 착취하고 학대했던 일입니다. 둘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행하고 있던 외식적이고 형식적인 종교 행위, 즉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스런 껍데기뿐인 제사 행위에서 떠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그것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그리하면 살리라." 그리하면 죽지 않고 살겠다는 것입니다. 개인도 그렇고 가정도 그렇고 이스라엘 국가도 대적의 손에서 멸망치 않고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4절과 관련해서 우리가 한 가지만 더 생각하고 넘어갑니다. 4절에 나타난 권면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나를 찾으라"는 것은 조건이 되는 명령입니다. "그리하면 살리라"는 것은 조건이 이루어졌을 때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조건과 결과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 온통 조건과 결과로 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컨대 어떤 것이 있습니까?
(마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엡6:1∼3)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제가 물어봅니다. 조건이 먼저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결과가 먼저입니까? 당연히 조건이 먼저 충족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욕심만 많아서 결과만 바라고 있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생각은 하지 않고 "주여 모든 것을 내게 더해주옵소서"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옳은 생각입니까? 잘못된 생각입니까?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러면 너희가 살리라."
여기서 이스라엘의 잘못이 무엇입니까? 살기를 원하면서도 하나님이 말씀하신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것입니다. 찾으라고 하는 것은 찾지 않고 엉뚱한 것을 찾으면서도 살려고 하는 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5절로 넘어갑니다. 5절은 금지된 사항입니다. 즉 무엇무엇을 하지 말라는 경고와 함께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무엇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까?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우선 여기에 보면 지명이 세 곳 등장하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벧엘이 등장합니다. 벧엘은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이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던 곳입니다(창12:8). 아울러 그 뒤에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자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단을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감격적인 서원을 했던 곳입니다(창28:10∼22).
그런데 이와 같이 이스라엘의 종교적 요충지였던 벧엘에 북방 이스라엘의 창건왕이었던 여로보암이 무엇을 설치했습니까? 금으로 만든 송아지를 그곳에 설치해놓았습니다(왕상12:25∼33). 여로보암은 금송아지를 두 개 만들어서 하나는 이스라엘의 제일 북쪽에 있는 단에 두고, 또 하나는 이스라엘의 제일 남방에 있는 벧엘에 두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금송아지를 가리켜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린 신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왜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본시 여호와 하나님이 어디에 계신다고 믿고 있었습니까? 예루살렘 성전에 계신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최소한 절기 때가 되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저들의 관례였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북방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자동적으로 예루살렘에 쏠리기 마련이었습니다. 영악한 여로보암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남방 유다 왕국의 예루살렘으로 쏠리는 것을 방지하고 북방 이스라엘에 충성하도록 하기 위해서 두 개의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벧엘과 단에 두고 백성들을 미혹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루살렘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단과 벧엘에도 계신다. 그러니 구태여 예루살렘에 갈 필요가 없다. 너희는 단이나 벧엘에 가서 경배를 드려라." 그때부터 벧엘은 북방 이스라엘에 있어서 우상숭배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국가적으로 가장 중요한 종교적 중심지가 되었던 것입니다.
(암7:12∼13) 아마샤가 또 아모스에게 이르되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서나 예언하고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 이는 왕의 성소요 왕의 궁임이니라
여러분, 본래 벧엘이라는 말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벧엘을 찾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이유로 벧엘이 어떻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까? 5절 하반부를 보세요. "벧엘은 허무하게 될 것임이라." 허무하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3:14을 읽어봅니다.
(암3:14) 내가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보응하는 날에 벧엘의 단들을 벌하여 그 단의 뿔들을 꺾어 땅에 떨어뜨리고
하나님의 심판으로 벌을 받아서 단이 다 훼파되고 파괴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허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타깝게도 하나님을 찾아서 의지하려고 하지 않고 허무하게 될 벧엘을 찾아가서 그것을 의지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니 잘못이지요.
그 다음에 두번째로 등장한 곳이 길갈입니다. 길갈은 여리고 근처에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요단 강을 건너면서 그곳에서 가져온 열두 돌을 세운 곳이 바로 길갈입니다.
(수4:19∼20) 정월 십일에 백성이 요단에서 올라와서 여리고 동편 지경 길갈에 진치매 여호수아가 그 요단에서 가져온 열두 돌을 길갈에 세우고
수5:9을 한번 읽어봅니다.
(수5:9)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길갈이라는 이름의 뜻은 "굴러간다"는 뜻입니다. 무엇을 굴러가게 하는 것입니까? 애굽에서 겪은 수치를 다 굴러가게 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종살이한 수치를 다 끝내고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약속의 땅을 주어 주인으로 삼겠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말입니다. 그 뒤에 길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점령하기 위해서 진을 치고 있던 본부의 역할을 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또 뒤에 사울이 기름 부음을 받고 이스라엘 왕으로 세움을 입었던 곳도 바로 길갈입니다.
(삼상11:14∼15)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 모든 백성이 길갈로 가서 거기서 여호와 앞에 사울로 왕을 삼고 거기서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리고 사울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거기서 크게 기뻐하니라
이와 같이 길갈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길갈로 들어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길갈에 가는 것을 금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5절 하반부에 보면 길갈은 정녕 사로잡히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갔다가는 대적에게 사로잡혀 포로로 끌려갈 것이니까 아예 그곳에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4:2을 읽어봅니다.
(암4:2) 주 여호와께서 자기의 거룩함을 가리켜 맹세하시되 때가 너희에게 임할지라 사람이 갈고리로 너희를 끌어가며 낚시로 너희의 남은 자들을 그리하리라
갈고리로 코를 꿰고 낚시로 입술을 꿰어서 끌고 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예 그곳에 가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본래 길갈의 뜻은 "수치를 굴러가게 한다," 즉 이스라엘에게 땅을 준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범죄로 말미암아 오히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대적의 손에 잡혀가는 운명이 되고 만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번째 지명은 브엘세바입니다. 브엘세바는 어디에 있는 성읍입니까? 브엘세바는 북방 이스라엘에 속한 곳이 아니라, 남방 유다 왕국에 속한 지역입니다. 그것도 저 남쪽 에돔과 경계지역에 있는 성읍입니다. 그곳은 일찍이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조약을 맺은 곳입니다(창21:31∼33). 그리고 아브라함이 한동안 살았던 곳이기도 합니다(창22:19). 아브라함이 바로 이곳에서 살고 있을 때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셔서 이삭을 바치라고 했습니다. 그 뒤에 이삭이 하나님의 복을 받고 단을 쌓고 경배하던 곳도 역시 브엘세바였습니다.
(창26:23∼25)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하신지라 이삭이 그곳에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거기 장막을 쳤더니 그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나아간다는 말로 번역된 말을 원문의 뜻을 좀더 잘 살려서 번역하자면 "건너간다," 또는 "넘어간다"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왜 건너간다, 넘어간다는 말로 표현을 했겠습니까? 브엘세바는 북방 이스라엘에 속한 성읍이 아니라 남방 유다 왕국에 속한 성읍입니다. 따라서 이곳에 가기 위해서는 나라와 나라의 경계선인 무엇을 넘어가야 하는 것입니까? 국경선을 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브엘세바로도 넘어가지 말라고 표현을 한 것입니다.
당시로서는 남북간의 왕래가 다소 쉬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북방 이스라엘에서 열심 있는 사람들은 남방 브엘세바까지 가서 참배를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암8:14) 무릇 사마리아의 죄 된 우상을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기를 단아 네 신의 생존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하거나 브엘세바의 위하는 것의 생존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하는 사람은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
여기에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브엘세바로 순례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사실 아모스도 어디 출신이었습니까? 남방 유다 왕국의 드고아 출신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지금 북방 이스라엘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으로 보아서 당시에는 남북간의 왕래가 어느 정도 허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제가 한 가지 물어봅니다. 벧엘과 길갈에 대해서는 그곳으로 가지 말라는 경고와 함께 왜 가지 말아야 하는지 그 이유가 설명되어 있습니다. "길갈은 정녕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허무하게 될 것임이라." 그런데 브엘세바에 대한 경고는 나와 있지만 왜 안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것은 브엘세바가 이스라엘에 속한 성읍이 아니라 남방 유다 왕국에 속한 성읍이기 때문입니다. 벧엘과 길갈은 대적의 손에 함께 멸망을 당하게 되겠지만 브엘세바는 남방 유다 왕국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벧엘과 길갈과 함께 멸망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빠진 줄 압니다.
또 한 가지만 더 기억하고 넘어갑니다. 지명이 기록된 순서를 보세요. 벧엘이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길갈, 그 다음에 브엘세바가 등장했습니다. 그 다음에 다시 길갈이 나오고, 마지막으로 벧엘이 등장합니다. 이렇게 순서가 뒤바뀌는 구조를 X형 구조라고 했습니다. 이미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습니다만 5장 전체가 X형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6절로 넘어갑니다.
(5:6)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염려컨대 저가 불같이 요셉의 집에 내리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을까 하노라
여기에는 현재적인 권면과 그 권면을 지키지 않을 때 생기는 부정적인 결과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권면의 내용은 4절과 똑같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된다는 것입니까? "염려컨대 저가 불같이 요셉의 집에 내리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을까 하노라." 선택의 자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손에 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찾고 살 수 있습니다. 반면에 끌 수 없는 불에 의해서 스스로 파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전자를 택했습니까? 후자를 택했습니까? 생명의 길을 택하지 않고 멸망을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아모스가 그렇게 경고했는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가 결국은 주전 722년 앗수르에 의해서 완전히 흔적도 없이 지구상에서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본문을 좀더 살펴봅니다. "염려컨대 저가 불같이 요셉의 집에 내리사." 여기서 "저"는 누구를 가리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아모스 1장과 2장을 보면 불은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요, 무기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하나님 자신을 불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무슨 의미를 줍니까? 그것을 끌 자가 있겠다는 말입니까? 없겠다는 말입니까? 6절 하반절을 보세요.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을까 하노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바로 불이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이 불이 되셔서 공격하는 대상이 무엇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까? "요셉의 집에 내리사." 북방 이스라엘을 가리켜 요셉의 집이라고 했습니다. 북방 이스라엘 가운데 제일 강력한 지파가 에브라임과 므낫세입니다. 이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누구의 아들들이었습니까? 요셉의 아들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가리켜 일명 요셉의 집이라고 한 것입니다.
(삼하19:20) 왕의 종 내가 범죄한 줄 아옵는 고로 오늘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와서 내 주 왕을 영접하나이다
(옵1:18) 야곱 족속은 불이 될 것이요 요셉 족속은 불꽃이 될 것이며 에서 족속은 초개가 될 것이라 그들이 그의 위에 붙어서 그를 사를 것인즉 에서 족속에 남은 자가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이니라
(슥10:6) 내가 유다 족속을 견고하게 하며 요셉 족속을 구원할지라 내가 그들을 긍휼히 여김으로 그들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이 내게 내어 버리움이 없었음같이 되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라 내가 그들을 들으리라
그 다음에 "불같이 내리사 멸하시리니"라는 말을 들을 때 어디가 생각나십니까? 소돔과 고모라가 생각나지요. 소돔과 고모라처럼 멸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을 봅니다.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을까 하노라." 하나님 자신이 불이 되어 이스라엘 자손을 치시기 때문에 사람들이 마지막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종교적 중심지 벧엘까지도 더 이상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삶의 유일한 소망이 무엇이겠습니까? 벧엘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끝맺음하면서 한 가지 교훈을 삼고자 합니다. 사람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만들 때 기계로 만들지 아니하셨습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선택의 자유를 누리면서 살아갑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무슨 옷을 입을까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무슨 반찬을 해먹을까를 선택합니다. 그런데 이 선택의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전에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따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선택을 잘못했습니다. 그 결과는 참으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찾고서 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선택을 잘못했습니다. 벧엘을 찾고, 길갈을 찾고, 브엘세바를 찾았습니다. 사회적 불의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바른 선택을 해야 합니다.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엄청나게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우리 앞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생명의 길, 좁은 길이 있습니다. 반면에 세상이 보여주는 사망의 길, 넓은 길이 있습니다. 좁은 길이 험해서 가기가 어려운 것 같지만 그러나 실상은 생명의 길이요, 우리에게 참된 기쁨과 평강을 주는 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는 넓은 길은 보기에는 쉽고 좋아 보이지만, 결국은 사망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매일매일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늘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서 내 중심, 육신 중심에서 선택하지 말고 하나님 중심으로 바른 선택을 내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크고 작은 모든 일에 여호와 하나님을 찾아서 우리의 심령이 살고, 우리 가정이 살고, 우리 교회가 살고, 우리 조국이 살게 되는 귀한 역사가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