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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강 이스라엘에 대한 책망과 하나님의 능력(5:7-9)

by 【고동엽】 2022. 4. 16.

제29강 이스라엘에 대한 책망과 하나님의 능력(5:7-9)

 

5:7-9
공법을 인진으로 변하며 정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아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로 아침이 되게 하시며 백주로 어두운 밤이 되게 하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자를 찾으라 그 이름이 여호와시니라 저가 강한 자에게 홀연히 패망이 임하게 하신즉 그 패망이 산성에 미치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열심히 성소에 나아가서 제물을 드리며 하나님께 부르짖기도 하면서 여호와를 찾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지 아니했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도대체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찾는 방식을 거부하셨습니까?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이스라엘이 보여준 사회적인 불의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그 내용이 오늘 본문 7절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5:7) 공법을 인진으로 변하며 정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아
본문에 보면 굉장히 중요한 단어가 두 개 나옵니다. 공법과 정의입니다. 이 단어는 다른 곳에서도 반복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암5:24)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
(암6:12) 말들이 어찌 바위 위에서 달리겠으며 소가 어찌 거기 밭 갈겠느냐 그런데 너희는 공법을 쓸개로 변하며 정의의 열매를 인진으로 변하여
렘22:15∼17을 보면 이 두 가지가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위해서 왕과 같은 지도자에게 꼭 필요한 자질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렘22:15∼17) 네가 백향목으로 집짓기를 경쟁하므로 왕이 될 수 있겠느냐 네 아비가 먹으며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공평과 의리를 행치 아니하였느냐 그때에 그가 형통하였었느니라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하고 형통하였나니 이것이 나를 앎이 아니냐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나 네 눈과 마음은 탐람과 무죄한 피를 흘림과 압박과 강포를 행하려 할 뿐이니라
공법이라는 것을 영어로 justice라고 합니다. 정의는 righteousness입니다. 공법이나 정의나 비슷한 내용입니다만, 엄격하게 이야기한다면 공법이란 법관이 재판할 때 내리는 판결과 같이 외적인 면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정의는 그것의 동기가 될 수 있는 내적인 면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재판관의 마음속에 내적인 정의로움이 있어야 그것이 재판시에 외적인 공법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동전의 양면과 같이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본시 재판이란 무엇입니까?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공평하게 판결을 내려줌으로써 사람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공법을 인진으로 변하게 했습니다. 인진(茵蔯)이라고 하는 것은 쓴 쑥을 말합니다.
다음 구절들을 한번 찾아보십시다.
(신29:18) 너희 중에 남자나 여자나 가족이나 지파나 오늘날 그 마음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서 그 모든 민족의 신들에게 가서 섬길까 염려하며 독초와 쑥의 뿌리가 너희 중에 생겨서
(잠5:4) 나중은 쑥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같이 날카로우며
(렘9:15)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 곧 이 백성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우고
(렘23:15)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내가 선지자에 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우리니 이는 사악이 예루살렘 선지자들에게로서 나와서 온 땅에 퍼짐이라 하시니라
(애3:15) 나를 쓴 것으로 배불리시고 쑥으로 취하게 하셨으며
(애3:19)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암6:12) 말들이 어찌 바위 위에서 달리겠으며 소가 어찌 거기 밭 갈겠느냐 그런데 너희는 공법을 쓸개로 변하며 정의의 열매를 인진으로 변하여
(계8:11) 이 별 이름은 쑥이라 물들의 삼분의 일이 쑥이 되매 그 물들이 쓰게 됨을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더라
그런데 쑥에는 독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죽이는 데 사용합니다. 그러니까 공법을 인진으로 변하게 했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공법이란 본시 사람을 살리는 것인데, 그것을 인진으로, 사람을 죽이는 독이 있는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지도자나 법관에게는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법을 시행하여 즐거운 사회를 만들고 모든 사람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달콤한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것을 이용해서 불쌍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착취하고 억압해서 죽게 만드는 독과 같은 존재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공법을 인진으로 변하며"라는 말은 공법을 악법으로, 또는 선을 악으로 바꾸어서 사람들을 못살게 굴었다는 말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서 그것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억누르고 못살게 하는 데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사회질서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또 "정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아"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정의를 세워나가야 할 텐데 오히려 정반대로 그것을 경멸하듯이 땅에 던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던진다는 말이 이미 5:2에 사용되었습니다.
(암5:2) 처녀 이스라엘이 엎드러졌음이여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로다 자기 땅에 던지움이여 일으킬 자 없으리로다
시체를 짐짝 집어던지듯이 던진다는 말입니다. 아주 경멸적인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정의를 땅에 던졌다는 말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정의가 살았다는 말입니까? 죽었다는 것입니까? 정의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정의를 땅 속에 파묻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의 정의를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가 아니라, 부정과 부패로 타락한 세상으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는 말씀입니다.
7절 말씀의 구체적인 내용이 10∼1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들이 공법을 인진으로 변하게 하고, 정의를 땅에 던진 모습이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습니다.
(암5:10∼13) 무리가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며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하는도다 너희가 가난한 자를 밟고 저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취하였은즉 너희가 비록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하지 못할 것이요 아름다운 포도원을 심었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중함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궁핍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 그러므로 이런 때에 지혜자가 잠잠하나니 이는 악한 때임이니라
10절에 보면 성문이 나옵니다. 성문이 본래 무엇을 하는 곳이었습니까? 옛날 사람들은 성을 만들고 성문 안쪽에 넓은 광장을 만들었습니다. 16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암5:16) 그러므로 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모든 광장에서 울겠고 모든 거리에서 오호라 오호라 하겠으며 농부를 불러다가 애곡하게 하며 울음군을 불러다가 울게 할 것이며
여기서 말하는 광장이 어디에 있습니까? 성 안쪽에 있습니다. 이 성문 안쪽, 즉 넓은 광장은 주로 세 가지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1) 상거래를 위한 시장이 열렸습니다.
(왕하7:1)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일 이맘 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셨느니라
(왕하7:18) 일찍이 하나님의 사람이 왕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내일 이맘 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한즉
2) 전쟁터나 싸우러 나갈 때, 또는 다른 목적의 모임을 위해서 이용되기도 했습니다.
(대하32:6) 군대 장관들을 세워 백성을 거느리게 하고 성문 광장 자기에게로 무리를 모으고 말로 위로하여 가로되
(느8:1) 이스라엘 자손이 그 본성에 거하였더니 칠월에 이르러는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지고 오기를 청하매
3) 재판정의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창23:10) 때에 에브론이 헷 족속 중에 앉았더니 그가 헷 족속 곧 성문에 들어온 모든 자의 듣는데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신21:19) 부모가 그를 잡아가지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신22:15) 그 처녀의 부모가 처녀의 처녀인 표를 얻어 가지고 그 성읍문 장로들에게로 가서
(욥29:7) 그 때는 내가 나가서 성문에 이르기도 하며 내 자리를 거리에 베풀기도 하였었느니라
(잠24:7) 지혜는 너무 높아서 미련한 자의 미치지 못할 것이므로 그는 성문에서 입을 열지 못하느니라
오늘 본문과 관련되는 것은 성문이 재판정으로 쓰이는 경우입니다. 따라서 성문에서는 무엇보다도 공의가 서야 합니다. 그래서 15절에 보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암5:15)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를 세울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긍휼히 여기시리라
그런데 10절에서 말씀하는 상황은 어떠합니까? 무리가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공의를 실행한 자는 무리의 미움을 받아서 배척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판관들이 공의를 세울 생각은 하지 않고 뇌물이나 받고 돈이나 벌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계속해서 11절 이하를 읽어봅니다.
(암5:11∼13) 너희가 가난한 자를 밟고 저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취하였은즉 너희가 비록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하지 못할 것이요 아름다운 포도원을 심었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중함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궁핍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 그러므로 이런 때에 지혜자가 잠잠하나니 이는 악한 때임이니라
가장 공의로워야 할 성문에서 공의가 땅에 떨어지면 그 나머지는 어느 정도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나라의 사법부가 타락하면 그 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결코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족속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요구하시는 공법과 정의를 무시하고 범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 8∼9절로 넘어가겠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지를 노래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찬미"라고 칭합니다. 우선 4:13을 보십시다.
(암4:13) 대저 산들을 지으며 바람을 창조하며 자기 뜻을 사람에게 보이며 아침을 어둡게 하며 땅의 높은 데를 밟는 자는 그 이름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창조주 하나님, 심판주 하나님을 노래했습니다. 이런 것을 가리켜 찬미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8∼9절을 읽어봅니다.
(5:8∼9)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로 아침이 되게 하시며 백주로 어두운 밤이 되게 하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자를 찾으라 그 이름이 여호와시니라 저가 강한 자에게 홀연히 패망이 임하게 하신즉 그 패망이 산성에 미치느니라
8∼9절은 공히 하나님의 능력을 노래하고 있는데, 8절은 변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9절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죄지은 자를 멸하시고 패망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공법을 인진으로 변하게 했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로 변하게 하시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인간들이 야단스럽게 사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안되겠어!"하시면 하루아침에 우리 인간의 운명이 바뀌고 만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니까 죄지은 자에 대해서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죄지은 자를 멸하실 능력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불로써 심판하시고 타락한 인간들을 홍수로 멸하시는 등 우리가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심판하시는 능력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우리들에게 눅12:4∼5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눅12:4∼5)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심판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선 8절을 봅니다.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묘성과 삼성은 별자리의 일종입니다. 여러 개의 별이 모여서 하나의 군상을 이룬 것을 별자리라고 합니다. 묘성과 삼성은 욥기에도 보면 같이 등장합니다.
(욥9:9) 북두성과 삼성과 묘성과 남방의 밀실을 만드셨으며
(욥38:31) 네가 묘성을 매어 떨기 되게 하겠느냐 삼성의 띠를 풀겠느냐
묘성과 삼성이 함께 등장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묘성(昴星)이라는 것은 그리스 신화를 보면 지구를 떠받들고 있다는 신 아틀라스의 일곱 딸이 변해서 별이 되었다는 별자리입니다. 이 별자리는 가을부터 나타나서 주로 겨울철에 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삼성(參星)이라고 하는 것은 영어의 오리온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오리온은 아주 몸집이 크고 잘 생긴 사냥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오리온이 아틀라스의 일곱 딸을 너무나도 흠모한 나머지 하늘로 쫓아올라가서 별이 되었다고 합니다. 별 세 개가 유난히 밝게 빛나는 별자리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신화에서도 그렇지만 오늘 본문에 묘성이 먼저 나옵니까? 삼성이 먼저 나옵니까? 묘성이 먼저 나옵니다. 아틀라스의 일곱 딸이 먼저 별이 되고 난 다음에 오리온이 삼성이 되었습니다. 계절적으로 보면 묘성은 가을과 겨울에 나타납니다. 반면에 삼성은 봄과 여름철에 나타납니다. 우리 나라 식으로 생각하면 봄에 나오는 삼성이 먼저 나와야 할 것 같은데 묘성이 먼저 나왔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스라엘은 1년을 가을부터 시작합니다. 그래서 기을철에 내리는 비를 이른 비라고 하고, 반대로 봄철에 내리는 비를 늦은 비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묘성과 삼성을 만드셨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단순히 하나님께서 별들을 지으신 창조주시라는 사실을 노래하고 있는 것은 아닌 줄 압니다. 그 이상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변하게 하시는 능력이 있으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봄을 가을이 되게 하고 겨울을 여름이 되게 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공의를 인진으로 변하게한 것처럼 하나님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운명을 뒤집어 버리실 분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말입니다.
계속해서 8절을 읽어보면 그 내용이 분명해집니다. "사망의 그늘로 아침이 되게 하시며." 사망의 그늘이란 말은 무슨 뜻입니까? 성경에 보면 좋지 않은 형편을 아주 최상급으로 강조할 때 사망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우리가 잘 아는 시23편을 보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라고 했습니다. 아주 깊은 골짜기라는 뜻으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고 했습니다. 또 사망의 병이나면 무슨 뜻이겠습니까? 죽을 병에 걸렸다는 것입니다. 아주 심한 병에 걸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사망의 그늘이라는 것은 어떤 그늘이겠습니까? 칠흑같은 어두움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깊은 그늘로 아침이 되게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캄캄한 밤을 낮으로 바꾼다는 뜻입니다. 어슴푸레한 새벽이 바뀌어 아침이 되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캄캄한 칠흑같이 어두운 밤을 환한 낮으로 바꾸신다는 말입니다.
그 다음에는 정반대의 경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백주로 어두운 밤이 되게 하시며." 백주는 새벽이나 석양이 아니라 아주 환한 대낮을 가리킵니다. 그런 환한 대낮을 완전히 어두운 밤으로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자연의 질서를 변하게 하시는 초자연적 능력이 있으신 분임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모스가 말하고 있는 의도를 우리가 다시 한번 살펴본다면 이런 뜻이 됩니다. "이스라엘아, 너희가 공법을 인진으로 변하게 하고서도 살 줄 아느냐? 너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질서를 변하게 한 것처럼 하나님도 너희의 운명을 뒤바꿔놓으실 것이다. 너희가 가난한 자를 학대한 것처럼 너희 자신이 학대를 받게 될 것이다. 너희가 궁핍한 자를 억압한 것처럼 이제는 너희가 억압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너희가 잘 알지 않느냐?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변하게 하는 능력이 있으신 분이시다. 계절도 변하게 하시고, 밤과 낮도 바꾸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냐? 그러니 너희들의 운명이 이제는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 완전히 뒤바뀌어질 것이다."
그 다음을 보겠습니다.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자를 찾으라." 같은 표현이 9:6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암9:6) 그 전을 하늘에 세우시며 그 궁창의 기초를 땅에 두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자니 그 이름은 여호와시니라
무슨 뜻이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욥36:27∼28에 근거해서 생각합니다.
(욥36:27∼28) 그가 물을 가늘게 이끌어 올리신즉 그것이 안개 되어 비를 이루고 그것이 공중에서 내려 사람 위에 쏟아지느니라
비를 내리시게 한다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것은 땅을 촉촉히 적셔주는 가랑비가 아닐 것입니다. 어떤 비가 연상됩니까? 노아의 홍수가 떠오릅니다. 억수같이 내리는 비, 하늘의 창이 다 열리고 깊은 샘들이 터지는 비를 의미할 것입니다.
그런데 8절을 7절과 비교해서 생각해보면 이 말씀을 좀더 실감나게 이해할 수 있는 줄 압니다. 8절의 전반부인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로 아침이 되게 하시며 백주로 어두운 밤이 되게 하시며"라는 말씀은 7절의 말씀 가운데 전반부 즉 "공법을 인진으로 변하며"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반면에 8절 하반부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이라는 말씀은 7절의 하반부 "정의를 땅에 던지는"이란 말씀과 대응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정의를 땅에 던진 것처럼 하나님은 바닷물을 불러서 이스라엘의 지면에 쏟아 던지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을 이용한 하나님의 심판 능력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큰 해일이 일어나는 경우에 산더미 같은 파도가 육지에 부딪쳐올 것입니다. 무서운 현상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노아의 홍수 때 하나님이 홍수로 이 세상을 심판하셨다는 사실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기억시키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아무튼 이 말씀도 역시 자연질서를 변하게 하셔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정리하면 8절은 변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계절을 변하게 하시고 주야를 변하게 하시고 자연의 질서를 변하게 하시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8절 제일 끝 부분에는 "그 이름이 여호와시니라"는 말씀으로 끝맺음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5:1∼17에 기록된 애가의 절정이 되는 부분입니다. 이것을 축으로 해서 다음 부분은 다시 역순으로 찬미-책망-권면-애가의 순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성호, 즉 여호와라는 이름을 밝혀줌으로써 다시 한번 하나님의 위엄과 능력을 한층 더 강조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얼마나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신가? 평소에 익히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껏 여호와 하나님을 자기들을 보호하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으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정반대인 현실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제 자기들을 도와주는 보호자가 아니라 오히려 자기들을 무찌르는 대적으로 화하고 만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능력은 이처럼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는 구원의 능력이 되시지만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자들에게는 심판의 능력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9절로 넘어갑니다. 9절도 하나님의 능력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어떤 능력입니까? 심판하시는 능력, 멸망케 하시는 능력, 패망케 하시는 능력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5:9) 저가 강한 자에게 홀연히 패망이 임하게 하신즉 그 패망이 산성에 미치느니라
여기에 보면 패망이 미치는 대상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강한 자와 산성입니다. 이 두 가지는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강한 자가 사는 곳이 산성이고 산성에 살고 있는 이들이 강한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강한 자와 그들이 살고 있는 산성을 완전히 뒤집어 엎어 놓으셔서 패망케 한다는 것입니다. 공법을 인진으로 변하며 정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을 패망케 하실 뿐만 아니라, 공의가 땅에 떨어진 그 성읍조차도 존재할 가치가 없으므로 함께 멸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까 하나님께서 강한 자에게 패망이 어떤 식으로 임하게 하신다고 했습니까? "저가 강한 자에게 홀연히 패망이 임하게 하신즉"이라고 했습니다. 홀연히 임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홀연"이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문득 홀(忽) 그럴 연(然)자입니다. 문자적으로 갑자기, 문득이라는 뜻입니다. 본래 이 말의 원어적인 뜻은 번갯불처럼이라는 뜻입니다. 번개가 동편에서 서편으로 순식간에 번쩍이는 것처럼 순식간에 패망이 임하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강한 자들과 그들이 거하는 산성이 패망하는 데 오래 걸립니까? 그렇지 않으면 순식간에 끝나는 것입니까? 오래 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자연현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번개로 설명을 한 것입니다. 앞에 있는 8절에서도 아모스는 변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자연현상을 통해서 묘사했습니다. 별자리, 밤과 낮, 바닷물 등 자연현상으로 설명했습니다. 마찬가지로 9절에서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번갯불이란 자연현상을 가지고 무섭도록 위력있게 묘사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제 이스라엘의 대적이 되셔서 그들을 순식간에 패망케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슬피 울면서 애가를 부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몇 가지 교훈을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첫째, 우리는 공의를 세우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선지자 아모스는 이스라엘 백성이 공법을 인진으로 변하며 정의를 땅에 던졌기 때문에 저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5:24에서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암5:24)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
사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복받는 길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 나라의 공공기관과 단체가 다 오직 공법을, 오직 정의를 물과 같이, 또는 하수와 같이 흘리면서 공의의 법대로 운영할 때 우리 나라가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행복을 가져올 뿐 아니라 우리 자손 만대로 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나라가 어떻습니까? 정치하는 사람이야 본래 부패했으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 나라 교육기관을 한번 보세요. 예능계 대학의 입시 부정이 어떻습니까? 몇 천만, 심지어는 억대가 오간다고 합니다. 진리와 진실을 가르쳐야 할 상아탑인 대학이 병들었습니다. 요즘은 초등학교 선생님들에게도 돈봉투를 가져다주어야 반장도 시키고 관심도 기울여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모범적이고 똑똑한 아이라 할지라도 돈봉투를 갖다주지 않으면 반장은 고사하고 앉는 자리까지도 제일 뒷자리에 앉히는 세상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야말로 공법이 인진으로 변했습니다. 정의가 땅에 던져졌습니다.
이것들을 바로잡아야 할 자가 누구입니까? 정치인들을 기대할까요? 그렇지 않으면 절에 다니는 불교 신자들에게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을 바로잡아서 하나님의 공의가 이 땅위에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책임은 바로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들에게 있다고 봅니다. 여기에 있는 우리들로부터 이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촛불이 비록 작고 보잘것없지만 꺼지지 않고 불만 붙어 있다면 얼마든지 넓은 방안을 환히 비쳐줄 수 있습니다. 여기 있는 우리가 힘을 모아도 얼마든지 어둠을 밝힐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의, 이것을 붙들고 이것대로 살아가는 사람, 인간적인 견지에서 보면 시대에 뒤떨어져 안 좋은 것 같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것을 다 책임져주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다.
(마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너희는 어떻게 하든지 의를 찾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공의를 세우는 일에 힘쓰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불의를 행할 때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우리 생활에 불의가 있으면 그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불의를 행할 때 제일 먼저 하나님이 어디에 심판을 내리시는지 아십니까?
(사57:21)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우리 마음에 심판이 임합니다. 마음이 불안해집니다. 편치 않습니다. 그래서 죄지은 사람은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음식을 먹어도 제맛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도 회개하고 돌아서지 않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은 더 강하게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언제나 대적하십니다. 그래서 패망이 임하게 하시되 홀연히 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치시기로 작정하시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닙니다. 건강으로 치기도 하시고, 사업으로 치기도 하시고, 자녀로 치시기도 합니다. 순식간입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우리는 우리의 모든 불의에서 돌이켜서 어두운 이 사회를 밝히는 빛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할 때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신 그대로 우리와, 우리 가정과, 우리 자손과 우리 조국에 크신 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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