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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강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절망감(8:11-14)

by 【고동엽】 2022. 4. 15.

제47강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절망감(8:11-14)

 

8:11-14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그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 무릇 사마리아의 죄 된 우상을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기를 단아 네 신의 생존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하거나 브엘세바의 위하는 것의 생존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하는 사람은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서 이스라엘이 당하게 될 절망감을 묘사해주고 있습니다. 범죄한 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될 것이고, 더 이상 그들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비록 어떤 어려움이 앞에 놓여 있다 할지라도 우리에게 소망이 있으면 얼마든지 참고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망이 없을 때는 모든 것이 끝장입니다.
단테가 쓴 유명한 종교적 서사시 {신곡}을 읽어보면, 지옥의 입구에 아래와 같은 글귀가 적혀 있다고 합니다. "이 문으로 들어가는 모든 자들은 소망이라는 것을 버려라." 무슨 뜻이겠습니까? 소망이 없는 곳이 바로 지옥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더 이상 소망이 없습니다. 저들에게는 완전히 끝이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절망적인 상태를 오늘 본문은 우리들에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크게 두 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대지는 11∼13절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지진과 일식에 이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하게 될 기근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기근은 육적인 양식이나 물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심판의 날에 애통하면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어떤 희망의 메시지를 구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미 기회를 놓쳐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을 주지 아니하실 것이므로 저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로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두번째 대지가 14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진정으로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돌아오지 아니했습니다. 저들의 관심사는 오직 임박한 심판에서 벗어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어떤 신이라도 좋으니까 그 신으로부터 자기들을 구원해주겠다는 메시지를 듣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아모스는 그 모든 일이 부질없는 짓임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11절 말씀부터 차례대로 한 절씩 읽어가면서 살펴보겠습니다.
(8:11)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11절 말씀은 기근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육적인 기근도 무섭지만 영적인 기근이 더 무서움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전달자 양식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보라 날이 이를지라." 종말론적인 양식이라고 했습니다. 무엇인가 지금과는 다른 어떤 새로운 현상이 앞으로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용은 뒤에 곧 이어서 등장합니다. 부정적인 사건이 나올 수도 있고, 긍정적인 사건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4:2과 8:11에서는 부정적인 사건이 등장합니다.
(암4:2) 주 여호와께서 자기의 거룩함을 가리켜 맹세하시되 때가 너희에게 임할지라 사람이 갈고리로 너희를 끌어가며 낚시로 너희의 남은 자들을 그리하리라
(암8:11)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반면에 9:13에서는 긍정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암9:1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그 때에 밭 가는 자가 곡식 베는 자의 뒤를 이으며 포도를 밟는 자가 씨 뿌리는 자의 뒤를 이으며 산들은 단 포도주를 흘리며 작은 산들은 녹으리라
오늘 본문에서는 장차 하나님의 심판으로 일어날 현상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기근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제일 큰 재앙은 아마도 기근일 것입니다. 배고파 본 사람만이 배고픔의 고통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옛날 분들은 보릿고개라는 배고픈 시절을 다 겪었습니다. 또 6.25 당시 배가 고팠던 경험을 다 기억하고 계신 줄 압니다.
유니세프(UNICEF)의 보고에 의하면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2초에 약 한 명 꼴로 굶주려 죽는다고 합니다. 1년에 1천4백만의 사람들이 굶어죽는다는 것입니다. 또 세계 인류 가운데 10억의 인구가 하루 1달러 미만으로 근근히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현재 실정은 어떠합니까? 너무 많이 달라졌습니다. 공보처가 공식 보고한 것을 보면 음식 찌꺼기만 1년에 8조 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언제 우리가 그만큼 배가 불렀습니까? 그야말로 식생활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육적인 기근도 무서운 재앙이지만 그것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 있습니다. 본문은 그것을 우리들에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육적인 기근보다 더 무서운 것은 영적인 기근이라는 것입니다. 육적인 기근은 가견적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책을 세울 수 있습니다. 또한 육적인 기근은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무리 길어도 잠시 잠깐의 이 세상의 삶으로 끝나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기근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쉽습니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끝장나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장차 당하게 될 괴로움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세세토록 밤낮 당해야만 한다는 사실입니다. 지옥의 고통은 영원토록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신8:3의 말씀이 기억나십니까?
(신8:3)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가장 답답한 것이 무엇입니까? 가난입니까? 병입니까? 사업의 실패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으면 우리가 이와 같은 일을 겪는다 할지라도 오히려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가장 답답한 것은 기도가 막힐 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을 때입니다. 말씀이 내 속에 살아 역사하지 못하고 들어도 깨달음이 없을 때 그때는 영혼의 상태가 심각해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말씀으로 경고하셨습니다. 저들에게 선지자가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저들에게 율법이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단지 저들의 마음이 완악하고 강퍅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끝이 이르렀습니다.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찾는다 할지라도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눈길을 돌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완전히 등을 돌리고 마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떠합니까?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 속에서 허덕이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성경이 있습니다. 도처에 교회가 있습니다. 라디오를 켜면 시간마다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과연 나 자신이 내게 향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 홍수와 같이, 폭포수와 같이 쏟아진다고 해도 귀를 막고 마음의 문을 닫고 듣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에 허덕이는 사람입니다.
12절로 넘어갑니다. 12절 말씀은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하는 기갈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8:12)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여기에 보면 동서남북 네 방향 가운데 어느 방향이 있습니까? 북과 동이 나타납니다. 남쪽과 서쪽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대신에 남쪽과 서쪽을 말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입니다. "이 바다"는 가까운 데 있는 바다입니다. 염해(鹽海), 지금의 사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저 바다"는 대해(大海), 곧 지금의 지중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라는 말은 "동서남북의 양 사방으로"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 왔다갔다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평소에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갈급해 하는 심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았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이제는 때가 늦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어찌 살 수가 있겠습니까? 더 이상 소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저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기 위해서 찾아다니는 모습을 오늘 본문에서 세 가지 단어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비틀거리며," "달려," "왕래하되."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고 허둥지둥 찾아다니는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을 했지만 그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얻지 못하리니." 이미 때를 놓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이 등을 돌려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를 놓쳐서는 안됩니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반드시 기회를 잡아야 합니다.
성경은 언제나 우리들에게 지금을 강조합니다.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이 중요합니다. 지금 기회를 붙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고후6:2에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고후6:2)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지금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찾을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은혜를 받을 만한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큰 구원의 역사를 체험할 때라는 것입니다. 기회를 잃지 마세요. 기회를 잃으면 그 책임을 내가 져야 합니다. 내게 화가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13절 말씀으로 넘어갑니다. 13절은 기갈이 어느 정도인지를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8:13) 그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
"그날에"는 심판의 날입니다. 여호와의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멸망시키시는 날입니다.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라고 했습니다. 건장한 젊은이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조차도 어떠하다고 했습니까?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야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더 이상 이스라엘에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조차도 완전히 지쳐서 기진맥진하다면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가 다 똑같은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저들은 신체적으로도 약했지만 영적인 기갈로 인해서 마음에 용기를 다 잃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리해서 모든 소망을 다 잃어 버리고 완전히 절망 상태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14절을 보겠습니다. 14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헛된 신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이 얼마나 무력한 것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8:14) 무릇 사마리아의 죄 된 우상을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기를 단아 네 신의 생존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하거나 브엘세바의 위하는 것의 생존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하는 사람은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
여기에 보면 세 가지 종류의 맹세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사마리아의 죄 된 우상을 가리켜 맹세하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단에 있는 신의 생존을 가리켜 맹세하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브엘세바의 위하는 것의 생존을 가리켜 맹세하는 것입니다. 낱말은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만 그 의도는 궁극적으로 같습니다. 맹세는 신이나 또는 어떤 장소를 가리켜서 맹세합니다. 맹세의 대상으로 무엇을 말할 때는 언제나 그것에 충성하는 뜻으로 그렇게 합니다. 그럴 경우 그 신이, 또는 그 장소가 보증이 되어서 맹세가 성취되도록 역사한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른 신의 이름으로 맹세했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에 대한 배역을 의미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마리아는 이스라엘의 수도였습니다. 그리고 단은 이스라엘의 북쪽 끝에 있는 도시로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두었던 곳입니다. 물론 오늘 본문에서 아모스가 꼭 그 금송아지를 지칭해서 말하지는 않았지만 "단아 네 신의 생존을 가리켜 맹세하노라"고 할 때 그것이 여호와가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브엘세바는 남방 유다 왕국 가운데서도 남쪽 끝에 있는 성읍입니다. 그 당시에 열심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브엘세바까지 순례의 여행을 했던 것을 이미 우리가 살펴보았습니다.
(암5:5)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정녕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허무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아랍 사람들은 오늘도 자신들의 성지인 메카의 순례 여행을 두고서 맹세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합니다.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가 있는 줄 압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브엘세바의 순례 여행을 두고 맹세를 했습니다.
그러나 아모스는 오늘 본문에서 이런 맹세가 소용없는 일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헛된 것을 두고 맹세하는 사람은 그 결과가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5:2에서도 그와 비슷한 말씀이 이미 기록되어 있습니다.
(암5:2) 처녀 이스라엘이 엎드러졌음이여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로다 자기 땅에 던지움이여 일으킬 자 없으리로다
헛된 신은 결코 그들을 돕지 못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저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했기 때문에 하나님도 저들을 돕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저들은 엎드려지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결과가 되고 말 것입니다. 배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철저한 죽음만이 있을 뿐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여기까지 생각하고 본문 말씀에 입각해서 한 가지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시편 1편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1:1∼2)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 있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복을 받게 됩니까?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라고 했습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속에 충만히 거할 때 우리는 자동적으로 아름다운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는 행사가 다 형통할 것입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 형통하리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렇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그 마음속에 살아 역사할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봅니다. 예쁜 꽃이 화병에 꽂혀 있습니다. 그러나 오래 가지 못합니다. 한 주만 지나면 쓰레기통에 버려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뿌리에서 올라오는 생명의 즙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에 충만하지 못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기갈에 시달릴 때 우리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결국은 시들어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일시적으로는 잘되고, 일시적으로는 성공하는 것 같지만 그런 사람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삶이 고달프십니까?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지 않습니까? 사업이 부진합니까? 가족이 화목하지 못합니까? 왜 그런지 아세요? 생수가 말랐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생명의 즙이 떨어져버렸기 대문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더 붙들고,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더 굳게 서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 다시 한번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을 떠나지 않고 충만히 거할 때 자연히 아름다운 열매를 많이 맺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하루도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시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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