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참 좋으신 하나님! (시 100:1-6)
오늘 본문은 시편 전체 150편 가운데 가장 행복한 시입니다. 그래서 이 시편을 찬양 시라고 부르고 감사의 시라고도 부릅니다. 이 시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에 들어가기 위해서 성전주변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마음에 떠올리면서 자발적으로 감사와 기쁨으로 예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부른 시라고 합니다. 그래서 본문은 원망이나 불평이 전혀 없는 시종일관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 그분께 감사해야 합니까?
①나의 염려와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마음에는 온통 염려와 근심 걱정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 몸부림을 치기도 하고 밤을 새우면서 고민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때 응답이 늦어지거나 없을 때 얼마나 실망이 큽니까? 어떤 개척교회 목사님은 이런 탄식을 합니다. ‘나는 이제 하나님께 기도할 힘도 없어져 버렸습니다. 목회가 어려워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기도도 하고 부르짖어 보기도 하고 금식도 해 보았는데 응답이 없습니다, 나는 이제 기도할 힘도 용기도 잃었습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외롭고 고독하고 답답하면 그렇게 말하겠습니까? 이 탄식이 누구의 탄식이 아니라 나의 탄식입니다.
그러함에도 우리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듣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아멘!/ 하나님이 들으시는데 다만 내 때가 아니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할/
②내 뜻과 내 생각보다 더 깊게 생각하시고 배려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생각, 나의 소견, 나의 계획은 참 보잘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네 앞일을 하나님께 맡기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하나님께 나의 앞길을 맡기지를 못합니다. 그리고 그 고민들을 끌어안고 밤을 새워 고민하고 걱정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키에르 케골’은 ‘인간은 그렇게 고민하며 걱정하며 살아가는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의 생각이나 계획 그리고 배려는 우리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깊고 성숙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나의 앞길과 미래를 맡기고 살아가는 삶이 신앙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기도할 때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기도하라고 주님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③때로 필요시에 무거운 짐도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자식에게 언제나 쉽고 평안하고 안일하게만 해 주는 것만이 자식 사랑은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은 때로 아픔도 힘든 일도 수고도 필요합니다. 채근담에 보면 역경과 순경이란 말이 나옵니다. 순경은 평안함, 안일함, 풍성함의 삶을 말합니다. 사람이 이렇게 평안함과 안일함만을 추구하다 보면 그것이 마침내는 칼이 되어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역경은 어렵고 힘든 삶을 말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다가 순간 힘들고 고되고 어려움을 경험하며 살아가다 보면 후에는 그 고난의 삶이 참 공부가 되어 눈이 열리고 철이 들고 생각이 깊어지는 축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도자기가 반짝거리고 광채가 나는 것은 불가마에 들어갔다 나왔기 때문입니다. 영국 국왕이 도자기 공장을 방문했습니다. 공장에 가 보니까 한편에 반짝거리는 도자기가 진열되어 있고 또 한편에는 무광의 도자기가 진열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국왕이 이 도자기는 왜 광채가 나지 않느냐고 물으니까 공장장이 대답하기를 ‘이 도자기는 아직 불가마니에 들어가지 않아서 광채가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 광채 나는 도자기는 불가마에 들어갔다 나왔기 때문입니다.’하고 대답하더라는 것입니다.
불가마를 통과한 도자기는 연단을 받아서 광채가 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들로 하여금 날마다 편안하고 행복하고 온실 같은 환경만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때로 힘들지만 무거운 짐도 주십니다. 새는 무거운 두 개의 날개 때문에 공중을 마음대로 날아다닐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날개가 무겁다고 떼어 내면 새가 어떻게 공중을 날아다닐 수 있겠습니까?
미국 남부 앨라배마 주는 땅콩 생산지입니다. 그런데 앨라배마 주 엔터프라이즈라는 작은 도시 재판소 앞에는 ‘우리는 목화를 갉아먹었던 벌레들에게 감사한다, 이 벌레들은 우리에게 번영의 기회를 주었고 하면 무엇이든 된다는 신념을 주었다, 목화 벌레들이여, 다시 한 번 너희들의 수고에 감사한다.’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고 합니다.
원래 이 도시는 목화생산지였습니다. 그런데 1895년 어느 날 목화벌레들이 침입해 와서 그 넓은 땅에 재배한 목화나무들을 갉아먹어 쑥대밭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그 도시는 기근과 실직사태를 맞았습니다. 그런데 그 도시의 사람들이 그 사건을 계기로 해서 새 길을 찾아 모색하던 중 그 넓은 땅에 땅콩을 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땅콩농사가 너무나 풍작을 이루어 전화위복이 되어 아주 부유한 도시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도시 사람들이 목화 벌레들에게 감사하면서 비석까지 세워준 것입니다.
때로 이 세상에는 환란이 오기도 하고 고난이 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무거운 짐들이 사람들에게 새 길을 주기도 하고 전화위복의 은혜를 입게도 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로 무거운 짐을 주시기도 하고 고난도 주시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지경에 처하든지 합동해서 유익한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믿/
④약할 때 힘이 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은 강할 때, 일이 잘될 때, 평안할 때는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그런 때는 찾아오시지도 않으십니다. 그래서 평안할 때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고 체험하는 비율이 아주 낮습니다. 모세가 왕궁에서 살 때는 하나님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으셨습니다. 찾아오셔도 모세는 하나님을 모른 척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사람을 죽이고 전과자가 되어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 40년 살아가는 동안 완전히 새사람이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세는 산으로 들어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겸손히 엎드려 기도합니다. 그렇게 무릎을 꿇기까지 80년이 걸렸습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결국 이렇게 끝나는 것입니까?’하고 그는 눈물로 기도를 합니다. 그때 비로소 하나님이 모세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제 애굽으로 가서 고난 받는 네 민족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내가 강하고 힘이 있고 자만에 빠져 있을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나는 아직도 내 힘으로 스스로 설 수 있습니다.’하고 자만할 때는 처다 보지도 않으십니다. 그러니까 때로 내가 약하고 부족하고 힘들 때가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고 기회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가 은혜를 입을 때이고 복을 받을 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는 나의 약함을 자랑한다고 말했습니다.
본문은 하나님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 찌어다, 여호와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오,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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