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초월적인 사랑! (사 49:14-15)
본문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고통 속에 있을 때 그 백성들에게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을 잘 깨닫게 한 내용입니다. 당시 시온의 백성들은 계속되는 해방과 회복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바벨론의 포로생활이 너무도 혹독하고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호소하고 눈물로 탄원했는데도 무반응입니다. 기다려도 응답이 없습니다.
그때 백성들은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셨는가? 아니면 우리를 잊으셨는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응답이 너무 늦으면 사람들은 별 생각을 다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본문의 말씀입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원형을 보게 되는데 하나님의 모성적 사랑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모성적 사랑의 표현이 여러 곳에 나와 있습니다.
①땅에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것에도 관심 가지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공중의 새한 마리는 참 하찮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어떻게 죽는지 우리는 관심도 없고 보살피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존재들은 이 땅에서 별로 존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즘에 와서 사람들이 자연과 동물에 대해서 조금씩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공중의 참새 한 마리, 들에 핀 백합 한 송이 뭐가 대단합니까? 이스라엘의 백합은 들에 핀 야생화를 말합니다. 들에 핀 야생화 하나, 그것이 뭐 대단합니까? 그런데도 예수께서 참새 한 마리를 강조하셨고 들에 핀 야생화 한 송이를 강조하셨습니다. 그것은 참새나 야생화가 대단해서가 아니고 인간의 소중함의 의미와 값을 말씀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참새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창조물이고 들에 핀 야생화 하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찮은 것이지만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말씀하면서 ‘하물며’라는 부사를 사용했습니다. 그 말은 ‘더군다나’ 라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너희야 말하면 뭐 하냐’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모성의 사랑입니다. /아멘!/
②하나의 머리카락이 땅에 떨어지는 것에도 관심가지십니다.
우리는 내 머리에 난 머리카락이 몇 개나 되는지, 머리감다 머리가 빠져도 별 관심이 없습니다.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많은 머리카락 중 하나에도 관심을 가지시는 분이십니다. 그 말은 하나님은 그렇게 ‘자상하고 세밀하시다.’는 증거입니다. 또 그 말은 이 세상에 사람이 머리카락처럼 많아도 하나님은 나 한사람에게도 관심을 가지신다는 말씀입니다. /할/
이 세상에서 나 한사람이 얼마나 중요한 대상입니까? 세상에 사람이 그렇게 많아도 내가 없으면 무슨 소용입니까?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람은 나 자신입니다. 하나님은 나 한사람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얼마나 영광입니까? 하나님은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나를 기억하시고 계십니다. /믿/
③과부의 손에서 떨어지는 동전의 의미를 아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깊은 곳을 헤아리십니다. 사람들은 나의 깊은 마음을 모르지만 하나님은 아시고 헤아리시고 이해하십니다. 우리들이 조용히 무명으로 이웃을 도울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들의 마음을 기억하십니다. 우리들이 무명으로 헌금을 합니다. 사람들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향기입니다.
주님은 복음서에서 어느 가난한 과부의 부잘 것 없는 두개의 동전을 헌금하면서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많은 돈을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헌금하는 바리새인들의 모습도 보았습니다. 그 모습들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 가난한 과부는 전 재산을 넣었느니라.’ 주님은 그 가난한 과부의 마음을 헤아리셨습니다.
④굶주리고 실패하고 병들고 배고픈 사람들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은 배고픔의 고통입니다. 이 고통을 당해보지 않은 분은 그 고통이 어떤 것인가를 모릅니다. 하나님은 병들고 실패하고 넘어졌을 때 위로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사람들을 보내서 격려하십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격언에 보면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와서 위로해 주는 사람이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보내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위로하십니다. 그리고 때로 하나님 자신이 직접 찾아오셔서 격려를 하십니다. 엘리야가 이세벨과 싸우다 지쳐서 도망가 로뎀나무 아래 누워 죽기를 간할 때 하나님은 직접 찾아오셔서 엘리야를 위로하셨습니다. 엘리야는 그 위로를 받고 힘을 내서 호렙산에 무사히 도착을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하나님은 흡사 우리의 어머니 모습입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건강한 자식보다 약하고 부족하고 가난한 자식에게 더 애착을 쏟으십니다. 어떤 어머니는 여러 형제 중에 한 아이가 전신 마비된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아이의 모습을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전신이 뒤틀려 있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는 여러 형제들 놔두고 그 아이에게 정을 쏟습니다. 그러면서 여러 자식들 중에 이 아이가 제일 예쁘다고 말합니다. 그 아이가 정말 예뻐서 예쁘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이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이 세상에서 지치고, 넘어지고, 실패하고. 병든 사람에게 온 관심을 집중하고 계십니다. 마치 상하고 꺼져 가는 등불 같은 존재들까지도,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무 값이 없는 것 같은 사람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본문이 바로 하나님의 모성의 사랑이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여인이 어찌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하리라’ /할/ 이런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가시기 축원합니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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