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생각이 허망해진 인생들! (롬 1:21-23)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두 가지를 요구하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장로교 소 요리문답 1문에 사람이 사는데 제일 되는 목적을 묻고 그 답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범죄 한 인간은 하나님과 단절되어 있습니다. 진실하신 하나님을 떠남으로 그 생각들이 허망해졌습니다. 또 빛이요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마음이 미련해지고 어두워졌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인간의 값’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9절에서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여러 모양으로 보이셨다.’고 했고, 20절에서는 ‘이미 창세 때부터 모든 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의 신성을 보여줘 알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도 하나님을 모른다고 핑계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21절에서는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감사하지도 않는다.’고 했습니다. 감사하지 않는 이유가 뭔가 하면 ‘마음이 어두워져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본 절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 없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까지 타락하는지 우리들에게 적나라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시작을 했습니다. 그 다음에 무엇으로 내려갑니까? 썩어질 사람으로 내려갔습니다. 그 다음에 또 무엇으로 내려갑니까? 금수로 내려갔습니다. 맨 밑바닥에 어디까지 내려갑니까?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꿉니다. 얼마나 한심합니까?
▶그런 인생들이 범하는 죄가 몇 가지 있습니다.
①원망 죄입니다.
이 원망 죄는 생각이 없어서 짓는 죄입니다. 입만 열면 원망하고 탓하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생각이 짧아서 그렇습니다. 좀 깊이 생각해 보면 모두가 감사할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감사는 깊이 생각하면서 얻어지는 은혜입니다. /아멘!/
그런데 알고 보면 불신자들 보다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더 원망을 잘 한다고 합니다. 그동안 내가 하나님을 잘 믿었는데, 새벽기도도 했고 11조도 드렸는데 그런데 왜 기도를 들어주지 않느냐는 식의 원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원망은 마귀가 좋아하기 때문에 마귀의 밥이 되고 맙니다. /할/
②교만 죄입니다.
교만은 거만하고 오만하고 자만하고 자기과신 하는 것을 교만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자기 과신이 크면 하나님을 신뢰하는 부분이 그만큼 작아지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믿음이 좋은 줄 알고 살아가는 것도 교만입니다. 그래서 남을 정죄하고 탓하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이런 우를 범하고 스스로 의롭고 신앙이 좋은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가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런 교만은 어설픈 사람에게 생각이 깊지 못해서 발생하는 마음입니다. 깊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설픈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운동도 어느 경지에 이른 사람은 표를 내지 않습니다. 어설픈 사람들이 매일 돌아다니며 주먹 자랑하다가 사고를 칩니다. 학문을 깊이 연구한 사람도 표를 내지 않습니다. 겸손합니다. 그런데 학문의 깊이가 없는 사람들이 다 아는 것처럼 행세하다 보니까 교만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부자는 티를 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검소합니다. 그런데 졸부들이 부자행세를 하며 나타내고 돌아다닙니다.
그래서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지만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가 됩니다. 약4:6절에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막는 무서운 함정이 교만입니다. 교만은 하나님의 은혜를 꺾어버립니다. 이 교만은 언제든지 우리로 하여금 주께서 우리를 멀리하게 만드는 무서운 죄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가만히 놔두는 것이 아니라 물리치신다는 것입니다. '물리친다.'는 말은 적을 대적할 때 쓰는 용어입니다. 교만한 자를 하나님은 적으로 보십니다. 그래서 대적하고 물리치신다고 했습니다.
③위선 죄입니다.
위선자를 영어로 ‘가면, 배우’란 뜻입니다. 배우는 연극할 때 속마음이 쓰려도 웃습니다. 왜냐하면 연극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위선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때로 이렇게 위선자가 될 때가 있습니다. 마음에도 없는데 좋은 체 하고 아는 체하고 잘 믿는 체하고 선한 체하고 경건한 체를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이 본의 아니게 이렇게 바리새인이 되는 것입니다.
④감사하지 않는 죄입니다.
마땅히 감사해야 함에도 감사하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오늘은 감사와 은혜를 잊어버린 시대입니다. 그리고 배신과 배은과 망덕이 난무하는 시대입니다. 오늘 어디에 감사가 있고 은혜가 있습니까? 그래서 오늘을 배은망덕 시대라 부르고 감사와 은혜를 잊어버린 시대라고들 부릅니다. 부모를 버리고 스승을 버리고 자기직장에 불을 지르고 부수고 친구를 버리고 신세진 사람들을 나 몰라라 하는 시대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기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상주시는 분이고 은혜주시는 분이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고 하나님 없이 살수 없음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 영광 돌릴 줄은 모릅니다. 그 말은 전적 믿음이 없다는 말입니다. 감사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원망하고 교만하고 위선에 가득 찬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모두 생각이 없어서 짓는 죄입니다.
▶그런데 감사하는 마음은 배우고 성숙해지고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나 주어지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여러 곳에서 감사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⑤왜 감사해야 하는가? 감사는 주님의 뜻이고,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할/
⑴감사는 '축복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입니다. 시:100:4절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여기에서 '그 문'은 하나님께서 계신 그 궁정(성전)의 문입니다. 승리가 있고 응답이 있는 곳입니다.
여러분이 거룩한 전에 올라오실 때 여러분의 가슴에 얼마만큼의 감사가 채워져 있습니까? 여기까지 이르도록 우리의 가정을 지키시고 나의 걸음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⑵감사하는 마음은 ‘믿음의 열매’입니다. 믿음이 떨어지면 우리의 마음속에 무엇이 싹틉니까? 원망과 불평, 불만이 터져 나옵니다. 이것들은 감사의 싹을 자르는 요소들입니다.
⑶감사하는 마음은 '더 큰 감사를 불러들이는 마음'입니다. 확실히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감사할 일이 더 많이 생깁니다. 감사하는 곳에는 또 기적이 일어납니다. 스펄 전 목사님은 ‘하나님은 별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해와 달이 필요 없는 영원한 천국의 빛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⑷감사의 조건은 '찾아 만드는 사람의 것'입니다. 저절로 내 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들기를 바라고 있으면 내 안에 있는 감사는 점점 가난해지고 결국엔 아무 것도 감사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감사는 감사할 조건을 찾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범사란 모든 일을 다 말하는 것인데, 눈물 날 일에 어떻게 감사하고, 가슴 아픈 일에 어찌 감사할 마음이 생겨나겠습니까? 그러나 그럴지라도 실패한 그 자리에서 감사할 일을 더듬어 찾으라는 말씀이요,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 눈물방울이 감사가 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어디서든지 감사의 조건을 찾아 만들라는 말씀입니다. 다니엘은 그 환경가운데에서도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6:10)고 기도합니다.
⑸감사는 구원받은 자의 마땅한 신앙의 행위입니다. 시50:23절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본문은 인간이 타락함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인생이 썩어질 우상에 절하고 숭배하고 그 생각이 허망해졌습니다. 그래서 시49:20절에 보면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다.’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깨달음이 은혜요 축복입니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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