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생각하며 사는 존재! (롬 7:19-25)
프랑스의 조각가 로댕은 '생각하는 사람'으로 유명한 조각가입니다. 사람들은 그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조각품을 통해서 바로 자기 자신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사도 바울의 고뇌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 고뇌는 또 다른 차원의 고뇌입니다. 이 고뇌는 아주 근본적인 고뇌이고,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영적인 아픔이고 탄식입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의 탄식은 ‘내가 원하는바 나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는 도다’라고 탄식을 합니다(19).
이 말은 쉽게 말하면 ‘나는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왜 자꾸만 악을 행하려는 마음이 내속에서 솟아 나오느냐?’는 말입니다. ‘나는 선을 행하고 싶고, 의를 행하려고 하는데 왜 자꾸만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는 내 마음과는 반대로 죄를 짓게 하고, 낙심하게 하고, 갈등하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결론지어 10-21절에서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느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24절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하고 고뇌에 찬 탄식을 합니다. 그리고 곧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이런 죄에서 이기고 승리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 밖에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몸부림치며 기도하며 고뇌하신 것은 창조주 하나님으로써 피조물인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질 것인가에 대한 고뇌이었고, 오늘 본문의 바울의 고뇌는 구원받은 인간의 마음속에 일어나고 있는 선과 악의 싸움에 대한 고뇌입니다.
▶왜 이런 고민이 우리 인간에게 있는가?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①사람은 영육을 함께 가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특수한 존재입니다. 발은 땅을 딛고, 머리는 하늘을 향하도록 창조된 존재가 인간입니다. 그런데도 정신과 육체가 함께 만족을 얻으려고 하다 보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파생되는 불균형 때문에 고민이 생기는 것입니다. 사람이 동물처럼 육신만 있다든지, 천사처럼 영만 있다고 하면 고민 없이 살 수 있을 테지만 우리는 육신적인 부분과 정신적인 부분을 함께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②사람은 행동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뭔가를 위해서 행동을 해야만 살 수 있는 존재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사람들에게 고민이 따르고, 고뇌가 따라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두 가지 행동 강령을 주셨는데, 하나는 ‘하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려 주신 행동의 대강령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언제 고뇌하게 되고, 후회하게 됩니까? 그것은 ‘하지 말라’는 것을 지키면 절대로 고민이 없습니다. 그리고 ‘하라’는 것을 하면 고민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대로 하지를 않기 때문에 고민이 생기게 됩니다.
사람은 행동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가장 힘이 있고 평안하고 자신감이 있고 마음이 좋을 때는 바로 ‘할 일을 마땅히 했을 때’입니다. /아멘!/ 사람이 떳떳하게 행동하지 못했을 때는 얼굴을 들지 못하게 됩니다.
③사람은 욕구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먹고 싶고, 입고 싶고, 우월하고 싶고, 나타내고 싶은 욕구가 사람들을 괴롭힙니다. 이 욕구는 갓난아이들에게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배가 고프면 웁니다. 그리고 먹어서 배가 부르면 아무 소리 않고 잠을 잡니다. 그래서 ‘에릭 프롬’은 ‘사람은 욕구가 충족되면 좋아하고, 충족되지 않으면 불평하는 존재’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욕구 중에서도 가장 큰 욕구는 삶에 대한 욕구입니다. 사형을 집행하기 위해서 사형장으로 가는 사형수들도 가는 길에 흙탕물이 있으면 발에 물을 묻히지 않으려고 비켜 간다고 합니다. 어떤 여인은 실연을 당해서 비관을 하다가 강에 빠져 죽으려고 가는데 바람이 하도 차가워서 감기 들까 봐서 다시 집에 가서 목도리를 하고 가서 빠져 죽었다고 합니다.
또 사람은 소유하려는 욕구도 대단합니다. 가진 사람은 더 가지려고 하는 욕구에 시달리게 됩니다. 누리고 있는 사람은 더 누리려고 하는 욕구에 시달리게 됩니다. 다스리는 사람은 더 많은 힘을 가지려는 욕구에 시달리게 됩니다. 높아진 사람은 더 높아지려고 하는 욕구에 시달리게 됩니다.
이것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고민하게 만들고, 고뇌하게 만들고, 때로는 후회하게 만들고, 그것이 또 올무가 되어서 고난을 겪게 만들기도 합니다.
④사람은 관계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이웃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도록 지음을 받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에서 관계가 좋아야 합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보다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아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만 잘되어 있으면 세상에서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죽음이라고 하는데 하나님과의 관계만 잘되면 죽음조차도 두려운 대상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또 이웃 간에 관계가 좋아야 합니다. 이런 관계들이 깨질 때 고민이 생기고 불화가 생기고 화목이 깨지게 됩니다. 이때 일어나는 현상이 무엇인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입니다.
▶24-25절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바울은 그저 오호라의 탄식 속에서 몸부림치며, 그 속에서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눈을 들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았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그 어떤 상황에서나 사망의 몸에서 건져주실 분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터져 나오는 감격스러운 외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이 외침은 '오호라의 탄식이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외침입니다. 여러분, '오호라'의 은혜가 있습니까? 즉시 '감사하리로다.'의 은혜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아멘!/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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