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예수! 다른 복음은 없나니! (갈 1:6-10)
행4: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성경에 보면 오직 외길을 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중에 세례요한은 오직 예수를 위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예수를 위해서 태어났고 예수를 위해서 살다 예수를 위해서 죽었습니다. 그는 평소 입버릇처럼 한 말이 있습니다. ‘나는 그의 신을 들기 조차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보름달처럼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그믐달처럼 쇠하여야 하리라’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도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언젠가 그는 인구조사를 했습니다. 만일 외침이 있을 경우 칼을 들고 나가 싸울만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를 계수했는데 그 결과 170만 명이 나왔습니다. 그는 내심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나라를 지키는 국방력이 든든한 것입니다.
그때 갓 선지자가 찾아와 ‘하나님께서 노하셨소, 그러니 하나님이 주시는 벌을 받으시오, 3년 동안이 땅에 기근입니까? 3개월 동안 적으로부터 도피생활을 하겠습니까? 3일 동안 온역을 당하겠습니까?’ 그때 다윗은 회개합니다. ‘내가 죄를 지었소, 내가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사람을 믿으려 했으니 참으로 죄를 지었소. 이제 내가 죽을 찌라도 하나님의 손에 죽겠소, 그러니 하나님이 주시는 온역을 택하겠소.’ 다윗은 언제나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과 함께 하며 살았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바울도 그런 사람입니다. 그도 오직 예수 때문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 예수 때문에 다 포기하고 그를 위해 일하고 그를 위해서 살아가는 삶을 행복해하고 즐거워하고 보람을 느끼며 일생을 투자한 사람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고백하기를 ‘다른 복음은 없나니/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찌어다/내가 사람을 기쁘게 하랴 하나님을 좋게 하랴 내가 사람의 기쁨을 구하였더라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아주 복음관이 분명하고 확실합니다. 이런 사람은 그 삶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행복은 삶의 분명한 목적을 발견했을 때입니다. 그것을 사명이라 하고 목적이라 하고 뜻이라고 말합니다. /아멘!/ ▶그래서 행복에는 필수 요소가 있습니다.
①오직 예수가 목적이어야 합니다.
예수 없는 행복은 그 생명이 짧습니다, 바울은 바울 되기 이전에는 여러 조건들을 우상처럼 여기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늘 자랑했습니다. 우월감을 가졌습니다.
사실 조건들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참 유용한 것입니다. 좋은 가문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엄청난 프리미엄을 선사합니다. 케네디가, 록펠러가, 카네기가 하면 미국의 3대 가문입니다. 그 가문에 속해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프리미엄이 주어져 있습니다. 좋은 학벌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학벌은 세상에서 알아줍니다.
그래서 학벌은 오늘 사람들의 우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조건들을 가지고 있으면 남들은 운동장 처음부터 뛰어야 하지만 중간에서 뛰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서 조건들은 이렇게 좋은 역할을 합니다.
바울은 그에게 주어졌던 조건들을 그렇게 자랑하고 좋아했지만 그가 예수를 만난 후 그것을 미련 없이 버리고 전도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 그의 겉모습은 초라하게 보였지만 내심 그는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것은 그가 새로운 목적을 발견하고 그 목적을 소지했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에 예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복은 예수가 내 안에 함께 하는 삶입니다. /할/아멘!/
15세기 이태리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42세 때 밀라노의 로드비치 공이 와서 예수의 최후의 만찬 모습을 그려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다빈치는 혼신을 다해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예수를 중심에 놓고 제자들을 좌우로 여섯 사람 씩 배열했습니다. 그림이 완성되자 친구에게 평가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친구가 그림을 보더니 아주 감탄했습니다. 제자들을 예수님 좌우로 잘 배치했고 훌륭한 작품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도 예수님 손에 든 은잔이 가장 아름답다고 칭찬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다빈치의 얼굴이 하얗게 변해버렸습니다. 그리고 붓으로 그림을 X자로 지워버렸습니다. 이에 놀란 친구가 ‘왜 아깝게 그림을 망쳐놓느냐’고 반문하자 다빈치가 ‘이 그림은 예수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중심이 은잔이 되어버렸으니 실패작이다, 폐기처분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멋있는 신앙의 모습인가?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믿/
②오직 예수가 내 삶에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는 주일날만 만나고 믿는 대상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주일날 와서 예배드리는 동안만 예수를 부르고 돌아가서는 일주일 동안 잊고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그 속에 예수가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래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예수를 언제나 앞세우고 예수가 언제나 내 생활의 중심에 모셔야 합니다. 주님은 요15:7절에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할/
③오직 예수를 나타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깨달음으로 끝나서는 아니 됩니다. 기독교는 깨달았으면 곧 바로 행동하라고 강조합니다. 깨달았으면 행동해야 하고 희생해야 하고 모험이 뒤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그곳에서 기적이 일어납니다. /아멘!/ 그러나 행함이 없는 신앙 속에는 영적 체험이 없습니다. 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20-30년씩 신앙생활을 했는데도 변화가 없습니다.
당시 사도바울의 라이벌은 아볼로였습니다. 그는 그 시대의 대 웅변가였고 가는 곳 마다 화려한 박수와 환호를 받았습니다. 그에 비하면 바울은 너무나 초라하고 가난하고 빈약한 전도자입니다. 또 바울이 사울 때 동료였던 바리새인들이나 제사장들은 지금 모두 출세해서 당당한 자리에 올라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지금 아주 초라한 거리의 전도자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이렇게 외칩니다. ‘나의 나 됨은 하나님의 은혜로라’ /할/
바울의 이 선언은 진정한 만족과 행복과 즐거움이 배어 있습니다. 무한한 자유 함과 진정한 행복감의 고백이 서려 있습니다. 그것은 그 삶에 예수가 완전히 점령하고 지배하고 붙잡고 있기에 가능한 고백입니다. 행복은 이렇게 예수께 잡히고 정복당하는 것입니다. 덜 정복당하면 용기도 힘도 자신감도 없습니다. 완전히 잡히고 정복되고 매일 때 그 속에서 진정한 자유의 함성이 들이게 됩니다. /아멘!/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누구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자신감에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단들이 들어와 복음을 흐려놓고 있습니다. 그때 바울은 ‘다른 복음은 없나니/하늘로부터 온 천사라 할지라도 우리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할/
이런 확신 있는 복음이 우리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고 강함과 담대함을 주고 위대한 승리자로 만들어 주십니다. 이런 귀한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소원합니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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