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4월 09일] 부활신앙의 부활(행 4:13~22) - 곽선희 목사
https://www.youtube.com/watch?v=8h6WxqEFY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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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신앙의 부활 (행 4:13~22) - 곽선희 목사
오늘 부활절 아침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신약성경 사도행전 4장 13절로 22절의 말씀 되겠습니다. 신약성경 192쪽입니다. 192쪽 사도행전 4장 13절부터 봉독하게 됩니다. 이 계시의 말씀을 봉독할 때에 다 함께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 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 그들로 말미암아 유명한 표적이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게 하자" 하고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관리들이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라. 이 표적으로 나은 사람은 40여 세나 되었더라. 아멘.
미국의 로스앤젤레스에 가면 게티 박물관이라고 하는 유명한 박물관이 있습니다. 게티 박물관입니다. 저는 이 근방을 갈 때마다 꼭 여기를 한 번씩 둘러보는데요, 여러 번 가봤는데 갈 때마다 제 마음과 발걸음을 아주 이끄는 특별한 작품이 있습니다. 루벤스가 500년 전에 그린 그림입니다. 많은 그림 중에 이 두 점의 그림이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고요, 그 그림 앞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이 서 있는 걸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가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그림입니다. 막달라 마리아. 그 얼굴을 참 지혜롭게 그렸어요. 한쪽으로 보면은 창녀의 모습이, 한쪽으로 보면 거룩한 성녀의 모습이에요. 이 두 얼굴의 모습을 하나로 그렸는데요, 그걸 볼 때마다 그 루벤스의 그 천재성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아주 깊은 감동을 주는 그러한 그림입니다.
두 번째 그림은 도마가 예수님의 상처 난 옆구리에 손가락을 요렇게 넣어보는 장면입니다. 그런 장면입니다. 그 시간을 딱 사진으로 찍은 것처럼 그림을 그렸습니다.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7절입니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말씀하십니다. 바로 그 장면을 그림을 그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옆구리에 구멍이 나는데, 구멍 난 옆구리를 다 열어 보입니다. 도마가 무릎을 꿇고 두려운 마음으로 벌벌 떨면서 손가락을 넣어 보는 장면을 그림을 잘 그렸어요.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여러분 이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도마가 열한 제자가 모였을 때 잠깐 자리를 비웠었어요. 열 제자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아! 그리고 예수님을 부활한 예수를 만났다고 하는데, 도마는 뒤에 "나는 안 믿어. 당신들이 다 믿어도 나는 안 믿어. 내가 옆구리에 손가락을 넣어 보고야 믿는다" 이러고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 예수님이 그 사실을 아시고 나타나서 "도마야, 이리 와서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의 손가락을 넣어라. 그리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는 정말 깊이 깊이 감동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이 다 온 세계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아시는 대로 베드로는 로마에서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히고 여러모로 다 이렇게 순교했습니다. 도마도 선교했습니다. 도마는 인도까지 왔습니다. 그 먼 길을 가서 인도에서 선교했고, 인도의 도마 무덤이 있습니다. 역시 의심 많은 자가 믿음도 많아요. 의심을 많이 했던 사람이 확신을 얻으면 더 확실한 믿음의 사람이 되지 않나 뭐 그런 생각도 하게 됩니다.
예수는 분명 십자가에 처형되었습니다. 돌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 그러나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 사건, 온 역사에 딱 한 번 있는 부활 사건. 이 레저렉션 팩트(Resurrection Fact) 사건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엄청난 사건, 이것이 온 세상의 역사를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문제는 이 사건과 나와 무슨 상관이냐는 것이죠. 예수는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셨습니다. 이제 이 사건과 나와 어떤 관계가 있냐 그 말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부활의 첫 열매라고, 부활 생명의 첫 열매, 영생의 새 문을 열어 놓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2절에서 말합니다.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우리도 변화하리라."
예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도 부활할 것이고, 예수님께서 영화로우신 몸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와 같이 변화되리라. 크라이스트 라이크(Christ-like). 이것이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한번 생각해 봅시다. 부활은 죽은 다음에 오는 것입니다. 죽음이라는 과정을 거친 다음에 언젠가 오는 부활입니다. 그러면 현실은 어떻습니까? 오늘은 어찌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에 그것이 아주 상징적으로 큰 사건으로 나타납니다.
오늘 본문에 있지 않습니까? 베드로와 요한이 당시의 지도자들, 종교 지도자들이 제사장과 바리새인과 서기관 이런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담대하게,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부활을 증거합니다. 그래 오늘 성경 말씀이 아주 재미있게 말씀을 합니다.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히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것도 알고"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별 사람이 아니에요. 여기 보는 대로 학문 없는 자로 알았다. 그 헬라어로는 **아그라마타(aggrammatoi)**입니다. 이것은 '글'을 모르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아그라마타 하면 문맹입니다. 문맹, 글을 모른다 그 말이에요. "저건 아무 공부도 없고 글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아그라마타. 글을 배울 일이 없는 줄로 알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담대하게, 확실하게, 용기 있게 이렇게 예수 부활을 증거하는 모습을 보고 저들이 완전히 그 위세에 꺾입니다. 그리고 이걸 어찌할 수가 없어요. 이 용기, 이 담력이, 이 활력이, 생명력 무엇으로, 무엇으로 막을 수가 없는 거예요. 그것이 오늘 본문에 나타납니다.
그러면 이 사건이 있기 위해서 바로 또 전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가는 겁니다. 성전에 올라가다가 거기 앉은뱅이가 앉아 있는데 이 사람은 항상 거기 앉아서 구걸하는 그런 아주 전형적인 거지거든요. 구걸하는 사람이에요. 습관적으로 "구걸해 주세요, 구제해 주세요" 손을 내미는 거예요. 그때 베드로와 요한이 하는 말입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습니다." 그 말 끝에 아마도 이 앉은뱅이는 이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그래 돈 없으면 그냥 지나가. 내가 당신에게 바라는 건 돈뿐이니까 돈 없으면 그냥 지나가"라고 했을 거예요.
그때 부활하신 주님의 생명력이 역사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말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그러나 내게 있는 것으로, 내게 있는 것 예수의 이름, 내 주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라!" 전 생각합니다. 어떻게 앉은뱅이를 향해서 일어나라고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겠냐 이겁니다. 어디서 온 지식입니까? 어찌 이것이 가능합니까? 저 앉은뱅이가 바라는 것은 돈입니다. 손을 내밀었는데 이 사람을 보면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길 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이 베드로의 마음을 잡았어요.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내게 있는 것, 내게 있는 것 예수의 이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명하노니 일어나라!"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났어요. 오늘 성경에서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40세가 된 사람이에요. 아! 그래가지고 온 성전에 뛰어다니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합니다. 어떻습니까?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이 사건, 이것이 예루살렘 교회에 창립 기초가 됩니다. 이 기적이, 이 표적이, 이 표적은 부활 신앙의 표적입니다. 부활 신앙의 표적. 표적이 있어야 표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놀라운 역사가 예루살렘 교회에 나타나게 오늘 성경대로 이건 막을 수가 없어요. 말릴 수도 없어요. 베드로, 요한도 차지할 수도 없어요. 오늘 성경에서 분명히 말합니다. 베드로가 변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 그것이 오늘 현재적으로 나타날 때, 현재적으로 나타날 때 베드로와 요한이 변했습니다.
완전히 딴 사람이 됩니다. 그 옛날 베드로가 예수님 재판할 때 저 뒤에 섰다가 "당신이 갈릴리 사람이 아니요?" 할 때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한 사람입니다. 비겁하게 "나 예수 모른다"고 예수를 저주하고. 이러한 비겁한 베드로가 어찌 오늘 여기 와서 아주 통쾌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을 들어야 옳으냐, 하나님 말씀을 들어야 옳으냐. 너희가 판단하라." 굉장한 얘기입니다. 부활 신앙의 표적입니다. "하나님 앞에 있다." 하나님 앞에 있다. 여러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골방에 있든지 들에 있든지 어디에 있든지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다 노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비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 앞에 완전히 노출된 상태로 오늘 성경에서 말합니다.
아! 통쾌한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누구 말을 들어야 옳으냐? 너희 말을 들을까, 아니면 하나님 말씀을 들어야 옳을까?" 여러분 굉장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앞에 있다고 하는 것, 하나님 앞에 내가 존재한다고 하는 것, 그것이 부활 신앙의 표적입니다. 하나님 앞에 있어요. 그런가 하면 순교적 믿음, 사망을 이기는 믿음이 여기에 있습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뿐만 아니라 내 부활을 믿거든요. 그러므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죽음을 피하지도 않습니다. 부활 신앙의 표적, 부활 신앙의 표적. 그것을 현재적으로 경험하며 사는 사람 능력의 사람이요, 사랑의 사람이요, 지혜의 사람이 되고, 아니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이 되고, 믿음으로 승리하고, 사랑으로 미움을 이기는 그런 사람이 되더라는 말입니다.
부활 신앙의 표적, 그 표적을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 그것이 바로 부활 신앙의 표적입니다. 부활 신앙을 가지고 사니까 순교하고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그 얼굴은 천사와 같이 되었다 그럴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부활 신앙의 표적은 윤리적으로, 또 사회적으로도 나타납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보면서 느끼는 게 뭡니까? 유무상통했다. 성경을 볼 때 깊은 감동을 줍니다. "내 것을 내 것이라 하는 자가 없더라." 우리의 것이요, 하나님이 주신 것 우리 나누어 써야 돼요. 나눠 먹어야 돼요. 우리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야. 하나님의 것이면서 우리의 것이에요. 그런 완전히 가치관이 바뀌는 거예요. 사람이 달라졌어요. 이기심과 정욕과 자기중심적인 고집 사라졌어요. 이걸 알아야 합니다. 참사랑 앞에는 거짓 사랑은 물러가게 되어 있어요. 참사랑에 감격하면 이기적인 생각은 다 물러나는 거예요. "내 것을 내 것이라고 하는 자가 없더라." 그래서 유무상통하는 역사가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부활 사건, 이것은 물론 사후의 사건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현재적 사건입니다. 부활 신앙의 표적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부활은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신앙 사건으로, 신앙 사건으로 내게 다가올 때 내가 부활 신앙의 표적으로 살아가게 된다 하는 말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고 뭐 영화를 통해서도 많이 보시고 그랬습니다만 초대교회 때 많은 사람들이 순교했습니다. 로마의 원형극장에 끌려 들어가서 그저 사자 밥이 되고 창에 찔리고 해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에서 순교하고 그리고 신성로마제국이 탄생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순교한 사람들이 거기에 머물러 있었다가 그 벽에다가, 벽에다가 낙서를 해 놓았거든요. 말이 그리스도라는데 그 글들이 참 소중하게 오늘도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 로마의 원형극장 벽에 새겨 놓은 순교자의 유작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한 편입니다.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순교하기 직전에 벽에 써 놓은 것입니다. "나를 저주하시오. 당신들이 저주할수록 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사랑을 더 크게 느낀다. 나에게 침을 뱉으시면 나는 사랑의 숨결을 뿜어내게 될 것입니다. 나를 찌르시오. 나는 사랑한다고 절규할 것입니다. 나를 짐승들에게 먹이로 던지시오. 나는 사랑의 제물이 될 것입니다. 나를 불태우시오. 나는 사랑의 열매로 당신들의 증오를 녹여 버릴 것입니다."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 신앙을 가진 사람의 표적입니다. 부활 신앙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생활 양식입니다. 부활 신앙은 용기로, 담력으로, 인내로 그리고 사랑, 사랑으로 소중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이렇게 귀한 시간, 이 귀한 시간에 부활절을 맞게 하시고 부활절 예배에 참여하게 해 주신 하나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제 저 앞에 부활이 있음을 믿습니다마는, 저 멀리 있는 부활만은 아니라 그 부활을 믿는 믿음이 현재적으로 역사하여 부활 신앙의 표적을 나타내고 표적을 보며 표적 안에 표적과 함께 승리하는 하나님의 사람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부활 신앙의 부활 (사도행전 4:13-22) - 곽선희 목사 설교 요약
곽선희 목사는 사도행전 4장 13절부터 22절 말씀을 본문으로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 현재 우리의 삶에 가져오는 변화와 능력, 즉 '부활 신앙의 표적'**에 대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 본문 말씀 해설: 베드로와 요한의 담대함 (행 4:13-22)
- 배경: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의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고친 후, 당시 종교 지도자들(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 등)에게 붙잡혀 공회 앞에 섰습니다.
- 공회의 인식과 반응:
- 지도자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학문 없는 범인(아그라마타, 문맹)'**임에도 불구하고 담대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겼습니다.
- 그들이 전에 예수와 함께 있었던 사람임을 알았습니다.
- **병 나은 사람(40여 세)**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부인할 수 없는 '유명한 표적'임을 인정)
- 공회의 위협: 지도자들은 이 일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하려고, 베드로와 요한을 위협하여 이후에는 예수의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거나 가르치지 못하게 했습니다.
- 베드로와 요한의 답변 (부활 신앙의 표적):
-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통쾌하고 단호한 선언)
-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 결과: 관리들은 백성들 때문에 처벌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만 하고 놓아주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 부활 사건의 의미와 현재적 적용
1. 도마의 믿음 (게티 박물관 그림 예시)
- 목사는 게티 박물관에 있는 루벤스의 두 그림(막달라 마리아, 의심하는 도마) 중 도마 그림을 언급합니다.
- 도마의 의심: 도마는 다른 제자들이 부활한 예수를 만났다고 할 때, 옆구리에 손가락을 넣어 보고야 믿겠다고 고집했습니다.
- 예수님의 응답: 예수님은 나타나셔서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 결과: 도마는 깊이 감동했으며, 이 확신으로 인해 인도까지 가서 선교하는 등 더 확실한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의심 많던 자가 확신을 얻으면 더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음)
2. 부활 신앙의 현재적 능력 (앉은뱅이를 고친 사건)
-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가다가 구걸하는 40세 앉은뱅이를 만났습니다.
- 베드로의 선언: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그러나 내게 있는 것, 예수의 이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명하노니 일어나라!"
- 놀라운 역사: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나 성전에서 뛰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찬양했습니다.
- 현재적 부활: 부활은 죽음 후에 오는 것이지만, 부활을 믿는 믿음이 오늘, 현재적으로 역사할 때 베드로와 요한처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3. 부활 신앙의 표적과 생활 양식
부활 신앙은 현재 삶에 나타나는 강력한 변화의 증거이며, 다음 세 가지 표적으로 나타납니다.
| 표적의 영역 | 변화의 내용 (부활 신앙의 결과) |
| 개인적 변화 | 담대함과 용기: 과거 예수를 세 번 부인했던 비겁한 베드로가, 공회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누구 말을 들어야 옳으냐?'고 담대히 맞설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함. |
| 영적 변화 | '하나님 앞에 있다'는 의식: 하나님 앞에 완전히 노출되어 있다는 믿음으로 담대해짐. |
| 순교적 믿음 | 사망을 이기는 믿음: 부활을 믿기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음. (예: 순교하는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와 같음) |
| 윤리/사회적 변화 | 참사랑과 나눔 (유무상통): 이기심과 정욕이 사라지고, "내 것을 내 것이라 하는 자가 없더라"는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나 서로 나누는 공동체 형성. |
4. 순교자의 고백 (로마 원형극장 벽의 유작)
- 초대교회 순교자들이 원형극장 벽에 남긴 글을 인용하며 부활 신앙의 표적을 설명합니다.
- 핵심 내용: 증오와 박해(저주, 침 뱉음, 찌름, 불태움)에 대해 사랑, 사랑의 숨결, 사랑한다고 절규, 사랑의 제물로 응답하겠다는 내용입니다.
- 결론: 이것이 부활 신앙을 가진 사람의 생활 양식이며, 용기, 담력, 인내, 그리고 사랑으로 귀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 결론적 권면
- 부활은 역사적인 사건이며 사후의 사건이지만, 신앙 사건으로 내게 다가올 때 현재적 사건이 됩니다.
- 성도들은 멀리 있는 부활뿐만 아니라, 부활 신앙을 믿는 믿음이 현재적으로 역사하여 부활 신앙의 표적을 나타내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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