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벧전 5:7)
호남 지방의 한 장로님 이야기입니다. 장로님이 교회에서 말할 수 없는 한 가지 일로 심한 상처를 받아서 10년 간이나 교회를 떠나 타락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그 때 마침 옆에서 점을 치던 점쟁이가 소리를 칩니다.
"여기에 예수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발 가 주세요. 점괘가 안 나옵니다." 사람들이 웃으면서 말을 하기를 "허허, 술집에 무슨 예수쟁이가 있겠나?" 그러나 점쟁이는 계속 소리를 지릅니다. "아니오. 여기에 예수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에게 있는 영이 나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어서 나가 주세요." 점쟁이는 장로님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말을 합니다.
장로님은 너무나 민망했습니다. 장로가 술집에 앉아서 술을 마시는 것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빨리 술집에서 뛰쳐나왔습니다. 그리고 큰 나무 밑으로 갔습니다. 나무를 붙들고 엉엉 울면서 말하기를 "주님! 내가 주님을 떠난 지 10년이나 되었는데, 우리 주님께서는 아직도 내게서 성령 님을 거두어 가지 않으셨군요." 크게 깨달은 장로님은 그 후 새롭게 출발해서 훌륭한 장로님이 되어 충성을 다하고 있다고 합니다. /할/ ◀제목소개!▶
사람은 누구나 염려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얘기하면 염려하는 버릇이 있다는 얘깁니다. 어떤 부인은 자기 남편이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날까봐 발령이 나지 않았는데도 발령이 날까봐 9개월 동안을 염려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염려는 시간과 에너지의 낭비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대부분의 염려는 먼 훗날의 염려입니다. 지금의 염려가 아니라 먼 훗날의 염려를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고 우리의 생활 속에서 하나의 버릇이 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의 사람, 믿음의 거성, 그리고 고아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영국의 '조지 뮬러'목사님은 <믿음이 시작되는 곳에는 염려가 사라지고, 염려가 시작되는 곳에는 믿음이 끝난다.>고 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본문에서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고 했고, 사도 바울은 염려 대신에 우리들에게 기도하라고 당부했습니다.
빌4:6-7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할/
▶염려는 인생의 무서운 적입니다. 건강한 정신을 쇠약하게 합니다. 평안한 마음을 불안하게 합니다. 그래서 정신적인 건강을 해치는 것은 물론이고 육체적인 병인 소화불량, 고혈압, 불면증 등을 가져다줍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서 신앙적으로는 불신과 낙심으로 이끄는 신앙생활의 암 같은 존재가 바로 염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경 66권속에는 "근심하지 말라! 염려하지 말라! 낙심하지 말라! 무서워 말라!"는 말씀들이 무려 366회나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의 인간 사랑의 극치를 볼 수 있지 않습니까? 한마디로 일년 365일 동안 '염려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고 평안히 살라'고 하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일년이면 365일이니 365회만 나오면 '1년 내내 근심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이구나!' 생각할 텐데 왜 하필이면 366회나 나올까 하고 한 목사님이 깊이 생각을 해 보았답니다. 깊이 기도하고 묵상하다가 목사님이 손뼉을 치면서 감격했다는 것입니다.
하나가 더 많은 것은 여유 분이고, 또 4년마다 하루가 더해지는 윤달까지 포함해서 그 하루까지라도 믿음의 사람들에게 근심걱정하지 말고 살라고 하신 하나님의 세밀하신 관심임을 깨닫고 크게 감격했다는 것입니다.
이 깨달음의 감격이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심령 속에 넘쳐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1. 오늘 주제는 염려입니다.
우리가 한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여러 가지 불행한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병에 걸리는 일도 있습니다. 사업이 망하는 일도 있습니다. 직장을 잃는 일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일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럴 때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원망하고 염려하고 근심하게 됩니다. 불면증에 걸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들을 향해서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산상 설교에서도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했고,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도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했습니다.
염려와 근심은 우리의 삶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습니다. 마음과 몸과 영혼을 해칩니다. 마음과 몸과 영혼을 병들게 만들고 어둡게 만들고 죽게 만드는 것이 염려요 걱정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의 행복을 진심으로 원하시는 분입니다. 인생이 고생하고 고통 당하고 괴로워하며 살기보다는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인생들을 쉼의 광장으로 안식의 광장으로 초청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 신앙 사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①맡기는 내용입니다. 무엇을 맡기라고 했는가? '너희 염려'를 맡기라고 했습니다. 인생 길에 가장 무거운 짐인 '염려를 맡기라'고 했습니다.
②얼마만큼 맡길 것인가? 맡김의 정도입니다. 베드로는 '다 맡기라'고 했습니다. 일부만 맡기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업도, 건강도, 자녀도 다 맡기라고 하십니다.
③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맡기는 대상이 중요합니다. '주께 맡겨야' 합니다. 우상에게 맡기거나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이 세상에는 마음놓고 나를 맡길만한 대상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염려, 근심, 걱정이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오직 믿음의 대상이 하나님 한 분밖에 없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주님은 요14:1절에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십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못됩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절대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구를 믿어야 합니까? 오직 하나님 한 분만 믿어야 합니다. /할/ 그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염려를 다 해결하실 수 있는 능력자입니다. 그 분은 무에서 유를 창출해 내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④맡기는 태도입니다. '맡겨 버리라'입니다. ▶무거운 짐을 벗어 던져버리듯이 몽탕 맡겨 버리라는 것입니다. ▶염려하고는 관계를 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염려의 짐을 한꺼번에 벗어 던져버리라는 것입니다. ▶'맡긴다.'는 말은 '믿는다.'라는 말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맡기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은행을 믿고 맡기듯이, 이발사를 믿고 맡기듯이, 기차를 믿고 타듯이 맡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길 때 하나님께서 나에게 힘을 주셔서 마치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처럼 능히 감당하게 하십니다. /믿/아멘!/
우리가 가지고 있으면 우리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맡기면 그때부터는 하나님의 문제가 되는 줄 믿습니다. 맡기면 이제 그 문제가 네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의 문제입니다. 이 얼마나 홀가분한 일입니까?
2.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 말씀 속에서 몇 가지 의미를 찾아보자!
①인생은 염려를 지고 사는 존재임이 드러났습니다.
'노만 빈센트 필' 목사님은 "염려가 없는 곳은 딱 한곳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공동묘지, 즉 죽은 사람에게만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 치고 염려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어린아이에게도 염려가 있습니다. 늙은 사람에게도 염려가 있습니다. 돈 많은 사람, 지식 있는 사람, 권력이 높은 사람, 이런 사람들에게는 염려가 없는 줄 아십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더 많습니다. 모두 다 염려 속에 사는 것이 인생이랍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이 연약하므로 염려와 고통이 무거울 때 우리는 견디기 어려워하고, 염려와 고통이 엄청날 때, 우리는 절망하거나 낙심하게 되고, 염려와 고통이 우리의 능력과 노력에 벗어날 때, 우리는 두 손을 들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인생은 파도타기와 같습니다. 바다에는 파도가 없을 수가 없습니다. 그 파도가 '높으냐? 낮으냐? 강하냐? 약하냐?'의 차이 뿐입니다. 우리 인생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파도를 넘고 나면 또 다른 파도가 밀려오고 때로는 큰 파도가 밀려와서 우리를 완전히 덮치기도 합니다.
목회도 파도타기와 같습니다. 성도들의 한 가정들의 문제가 해결되는가 하면 또 다른 가정에 문제가 생깁니다. 그런데 저도 이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삽니다. 목회도 제가 하면 못합니다. 목회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긴 다음부터는 제 마음이 가벼워지고 자유 함을 얻습니다. /아멘!/
염려는 본래 '마음을 나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염려의 또 다른 의미는 '물어뜯는다'는 무서운 의미도 있습니다. 또 '사나운 짐승이 이빨로 목을 꽉 물어 질식해 죽인다'는 가공할 만한 의미도 있습니다.
염려는 질식하게 하고, 숨을 못 쉬게 하는 것입니다. 염려는 사람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상적인 생각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영어의 염려는 '날카로운 이빨로 갈기갈기 찢어놓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염려는 인간의 행복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것입니다.
이 말은 '나눈다, 이간질한다'는 뜻도 됩니다. 근심의 반대는 믿음입니다. 믿으면 하나가 되고 근심하면 둘이 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고 하나님을 의심하고 근심하면 하나님과 분리되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믿으면 하나가 되지만, 근심하는 일이 있으면 둘이 됩니다. 갈라지게 됩니다. 근심은 '이간자'입니다.
약1:8절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염려는 두 마음을 품어 마음에 평안을 빼앗아 갑니다. 그래서 감정이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감정으로 하여금 안정을 잃게 합니다. 염려는 이해도 나눕니다. 확신이 없이 흔들립니다.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판단 기준이 나누어집니다.
눅21:34절 하반 절에 보면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 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둔하여 진다'는 말은 '감각을 잃어버린다'는 뜻입니다. 염려는 영혼의 기능을 마비시킵니다.
그러므로 염려가 지나치면 기도가 끊기고 찬양이 멈추어집니다. 한마디로 믿음이 풍지박살이 됩니다. 그러면 누가 손해입니까? 우리가 손해입니다. 믿음이 풍지박살 나면 누가 좋아합니까? 바로 마귀, 사단이 좋아합니다.
▶염려, 근심, 걱정, 불안, 낙심이라는 말들은 다 같은 염려과에 속한 것들입니다.
▶주님은 염려하는 인생을 향하여 무어라고 하십니까? 마6:27절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그렇습니다. 염려한다고 작은 키가 커지는 것이 아닙니다.
염려한다고 죽음에서 우리의 생명을 일각이라도 연장시키는 것도 아닙니다. 염려한다고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염려한다고 무너진 사람이 일어서는 것도 아니고 대학 떨어진 자녀가 붙는 것도 아닙니다.
염려는 백해무익한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염려하며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합니다. 우리는 이 염려의 문제를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염려의 짐을 지고 괴로워하며 고통 당하는 인생들을 향하여 오늘 본문은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라"고 말씀하십니다. /할/
②하나님께서는 인생 속에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라고 요구하고 계십니다.
아무리 맡기고 싶어도 주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맡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자신에게 모든 염려를 맡기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이 세상의 영광은 같이 나누기를 원하는 사람은 많고 성공을 같이 나누기를 원하고 기쁨, 행복, 사랑을 함께 나누기를 원하는 사람이 많지만, 염려를 같이 나누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든지 염려의 짐을 떠맡기 싫어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너희 모든 염려를 다 나에게 달라고 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희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려라"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기쁨을 누리고 자유를 누리며 살기를 바라십니다. 어떤 부모든 자식이 잘 살기를 원합니다. 하물며 우리의 생명의 주인이 되신 영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문제 때문에, 염려 때문에, 고통 받는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십니다.
그래서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고마운 말씀입니까? 얼마나 큰 위로와 용기가 되는 말씀입니까?
여러분! 여러분들의 문제가 무엇이고 염려가 무엇입니까? 여러분들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있게도 하시고 없게도 하시고 높이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할/
사업을 맡기시고, 가정을 맡기시고, 질병도 맡기시고, 먹고사는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믿음 있는 자만이 주께 맡길 수가 있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믿음 있는 자를 기쁘시게 보십니다(히11:6). 그러나 의심하는 믿음은 책망하십니다. '네 믿음이 크도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워하였도다!' 하지만 의심하는 자들에게는 '왜 의심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책망하십니다.
▶야고보 장로님은 믿음과 의심을 이렇게 가르칩니다.
약1:5-8절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믿음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나의 염려를 떠맡으시겠다는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갖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주님께 맡긴다는 것은 할 수 없어 체험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 맡긴 다는 것은 괴로운 것을 피하려는 도피를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께 맡긴다는 것은 주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고 믿음으로 용기 있게 살아가는 행위입니다.
▶산상보훈에서 우리에게 주신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들의 백합화를 봐라! 공중의 새를 봐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라니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이런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할/
우리의 머리 위에 해와 달과 별들을 비취시는 분이 누구이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왜 하나님의 능력을 과소평가 하십니까? 원망하며 불평하며 살 것이 아닙니다. 근심하며 염려하며 살 것이 아닙니다. 찬양하며 기도하며 의지하며 살아가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지금도 주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원리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모두 다 맡겨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몽땅, 전부, 다, 왕창, 맡겨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한 부분은 내가 맡고, 다른 한 부분은 주님이 맡아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내가 좀 하다가 나머지 부분만을 맡긴다는 것도 아닙니다. 쉬운 것은 내가 맡고 어려운 것만 맡긴다는 것이 아닙니다. 절반씩 나누어 가지라는 것도 더욱 아닙니다.
너희 염려를 다 몽땅, 전부 다 맡겨버리라고 요구하고 계십니다. 맡겨 버리고 기억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할/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아멘!/
③맡기면 모든 염려를 다 처리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라" 여기 권고는 '돌보다, 관심을 갖다'는 의미를 비롯하여 '높이다, 일으키다'는 뜻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관심을 가지고 돌보셨습니다. 그래서 억울하게 옥살이하는데서 권고하셔서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세웠습니다. /믿/ 하나님은 항상 당신의 자녀들의 염려에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또 자녀들의 필요가 무엇인지 걱정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걱정하시면 다 해결됩니다.
잠16:3절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여기 '행사'는 인생사의 크고 작은 모든 일들입니다. 가정의 일, 자녀들의 일, 사업장의 일, 부모님의 건강의 일들까지도 다 포함합니다. 하루를 하나님께 맡기는 일로 시작하여 1년, 10년, 일생을 하나님 앞에 설 때까지 모두 맡기는 것입니다. 하루의 건강 뿐 아니라,! 평생의 건강까지 맡기는 것입니다. 자녀들의 입시 문제 뿐 아니라 자녀의 삶 전부를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업의 계획까지도 다 맡겨야 합니다. 최고의 지혜자 솔로몬은 "너희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희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시37:5절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여기 '길'은 과거 지나간 길이 아닙니다. 현재의 길과 앞으로 살아가야 할 미래의 인생의 길입니다. 이 길은 평탄한 길인지 험난한 길인지 아니면 좋은 길인지 슬픈 길인지 아무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인생 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맡겨주면 '이루어 주신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이룬다'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믿/
시55:22절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 하시리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다 맡기시기 바랍니다.
원수갚는 일도 주깨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롬12:19절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기도의 결과까지도 주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막11:24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맡긴 것만큼 책임져 주십니다' 그러니까 맡긴 것만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맡긴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로 하나님께 내 문제를 맡기는 것, 내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시42:5절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 맡기는 자에게 하나님의 권고하심이 있다고 했습니다. 인생문제의 해결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있습니다.
렘10:23절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 하니이다."
잠16:9절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찬363장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쌓인 날 돌아 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할/아멘!/
▶이스라엘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산이 생겼다고 말한답니다.
보통 문제를 산이라고 하지만 큰 문제는 큰산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막11:23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하셨으며 스가랴 선지자는 "큰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러면서 슥4:6절에서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을 이렇게 찬양했습니다. 시121:1-2절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 님은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오직 성령으로만이 큰산과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로케트를 타지 않고는 달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령님께 의지하지 않고서는 결코 큰산과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네 힘으로도 안되고, 네 능력으로도 안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힘 하나님의 성령으로는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이 사실 앞에 아멘 하는 자가 복을 받습니다.
3. 우리가 누구인가?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하나님이 우리의 머리칼까지도 다 세어보시는 관심을 가지시는 분입니다. 관심은 사랑입니다.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으로 8-12만개의 머리카락이 있다고 합니다. 서양 사람들은 8만개 정도, 동양 사람들은 10만개 정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시대를 보면 남자나 여자나 다 같이 머리카락을 길게 길렀습니다.
삼손은 머리가 길었다고 했고, 다윗의 아들인 압살롬도 긴 머리가 흠모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왕하2:23-24절과 이사야3:24절을 보면 대머리는 부끄러움으로 취급되기도 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레19:27절에서는 "머리 가를 둥글게 깍지 말"라고 했습니다. 또 민6:18절에서는 나실인의 서원을 한 사람들은 머리를 길러서 헌신할 것을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행18:18절을 보면 "바울이 일찍 서원이 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고 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불교의 승려들도 머리를 깎는데 그것은 세속을 버리고, 모든 것을 부처에게 맡긴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행27:34절 "너희 중, 머리 터럭 하나라도 잃을 자가 없느니라" 머리털은 본래 머리를 보호하는 일을 합니다. 따라서 머리 터럭 하나라도 잃을 자가 없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아무도 우리들에게 손 못 대도록 하며 우리의 생명을 지켜 보호하신다는 뜻입니다.
▶신약에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머리털에 비유하여 말씀한 것이 있습니다.
눅21:18절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치 아니하리라" 또 눅12:7절에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 말라. 너희는 참새보다 귀하니라"고 했고, 마10:30절에서는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서 귀한 존재라는 것을 주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가장 작은 부분인 머리카락까지 지켜주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는 말씀이 믿어지지 않습니까? /할/
4. 가장 귀한 재산이 무엇인가? 자신감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좋은 재산은 자신감입니다. 이 자신감은 재산 중 재산입니다. 여러분,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자신감을 갖는 일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은 내게 자신감을 주십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현재에 대해서 자신감을 갖고, 미래에 대해서, 종말 앞에서, 운명 앞에서, 죽음 앞에서 자신감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감 갖는 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할/ ▶왜 걱정이 되고 염려가 되는가?
⑴'나는 혼자다'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는 혼자다 생각될 때가 약해지고 불안해 지는 때입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자신감을 가지고 있을 때는 이방선지자 850명을 혼자 싸워서 이겼습니다. 그때 얼마나 자신만만했는지 모릅니다.
성경을 보면 아주 통쾌하게 이깁니다. 그런데 이세벨이 엘리야를 향해서 이를 갑니다. 그리고 사신을 보내어 말하기를 "내일 이맘때 네 운명도 저 사람들과 같이 만들겠다"는 전갈을 보내왔습니다. 그때 엘리야는 비로소 눈을 뜨고 보니까 자기 혼자인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순간 그는 용기를 잃습니다. 믿음을 잃습니다. 불안해집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그 당당하던 모습을 벗고 이세벨을 피해서 도망을 갑니다. 사람은 '나 혼자다'고 느끼는 순간 두려움이 엄습해 옵니다. 그때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왜 너 혼자냐, 아직 바알에게 절하지 아니한 자 7천명이나 있다"고 말씀해 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혼자가 아닙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믿/
⑵'장래가 불확실할 때' 염려와 두려움이 옵니다.
살아가다 보면 때로 장래가 막연할 때가 있습니다. 장래가 불안할 때가 있습니다. 자식들은 크고 빚은 늘고 집세는 올려달라고 하고 감당은 못하겠고 현실은 기댈 곳이 없고 가족들은 모두 나만 쳐다보고 있을 때 이때가 불안이 오고 두려움이 올 때입니다.
⑶'사람이 죄를 범했을 때' 불안이 찾아오고 염려가 옵니다.
아담과 하와가 열매 먹고 나서 얼마나 두려워했습니까. 하나님이 오셨습니다. 두려워서 피해서 숨었습니다. 나뭇잎으로 자신들을 덮었습니다. 더 멀어지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이 죄의 결과입니다.
죄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감을 상실하게 합니다. 그리고 늘 불안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죄인은 좇아오는 사람이 없어도 도망간다고 했습니다.
▶수양대군이 형 문종대왕의 충신 6명을 죄 없이 죽였습니다. 그리고 조카 단종을 죽이고 자신이 왕위에 오릅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이 살아갑니다. 사람을 죽이고 숨어살면 잡히지 않아도 매일 스스로 고문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것이 죄인들의 형벌입니다. 그래서 수양대군이 마음이 편안해지려고 불교를 믿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파고다 공원자리에 절을 지었다고도 합니다.
그런다고 근본이 치유되지 않는데 편안해 지겠습니까? 그래서 결국 그는 왕위에 오른 지 10년 만에 젊은 나이로 죽었습니다. 이것이 죄의 결과입니다. 죄는 사람을 두렵게 만듭니다.
⑷'영적으로 무력해질 때' 염려가 되고 두려움이 엄습해 옵니다.
이것이 가장 무서운 것입니다. 사람이 영적으로 무력증에 빠지면 세상이 재미가 없고 의욕이 없고 기쁨이 없고 감격이 없어집니다. 그렇다면 이보다 더 무서운 병이 어디 있습니까?
5. 염려 대신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①전능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것입니다.
요14:1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성경은 돈을 믿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믿으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주님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다면 근심하지 말고 염려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믿는다면 근심 걱정 버리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믿음이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주 예수를 믿음이 온 세상이기네> 그렇습니다. 믿음이 이깁니다. 모든 근심 걱정을 이깁니다. 세상 풍파를 이깁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는 믿음이 어떠한 풍파도 환난도 이기는 것입니다.
욥을 보세요! 욥이 그 환난을 어떻게 이깁니까? 믿음으로 이깁니다. 자식들이 모여서 놀다가 집이 폭삭 무너져 다 죽었습니다. 하늘이 노랗지 않겠습니까? 재산이 하루 아침에 다 날라 갑니다. 앞이 캄캄해지지 않겠습니까? 자기 몸이 병들어 죽게 생겼습니다. 왜 염려가 없고 왜 걱정이 없겠습니까? 원망하고 죽어라 그 마누라가 한 말이 맞습니다.
그 상황에서 누구인들 원망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요즈음 조금 살기 어렵다고 자살하는 사람이 한해에 12,000명이 넘습니다. 엊그제는 살기가 어렵다고 아이들을 옥상에서 아래로 다 내던져 버리고 자기도 뛰어내려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이거늘 욥은 10배 20배 더 고통이 심합니다. 왜 자살하고픈 마음이 안 생기겠습니까? 그러나 그에게 오는 자살의 충동을 막아주는 힘이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찾으신 자도 여호와시니 내가 주의 이름을 찬양 하리이다.'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입니다. 주신 자가 여호와시니 또 주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산 것만 해도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주셨다가 하나님이 찾아 가셨으니 내가 할말이 무엇이 있는가? 지금 것 누리게 하신 것만 해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욥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은 한번 하신 말씀은 절대로 변역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모세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신 말씀대로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게 하셨고, 광야에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와도 함께 하시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였습니다.
사41:10절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마28:18절 이하에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오셔서 "내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너희에게 말하나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결심합시다! 염려대신 하나님을 확실히 믿으십시다. /아멘!/할/
②하나님은 우리에게 감당할 시험 밖에는 주시지 않습니다.
고전10:13절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하나님은 너무 우리를 잘 아십니다. 우리의 믿음도 아십니다. 시험하실 믿음의 분량까지도 아십니다. 믿음의 분량이 넘는 시험을 주실 때에는 피할 길을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문제도 항상 능히 감당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염려가 되고 근심이 되겠습니까?
③중요한 것이 이것입니다. 기도입니다. 염려대신에 기도합시다.
빌4:6-7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아무나 염려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아무나 행사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자의 염려를 책임져 주십니다. 기도하는 자녀들에게 모든 짐을 지어주십니다. /믿/
▶고사성어가운데 '기인우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옛날 중국 '기'나라에 청년 하나가 있었는데 그는 늘 길거리에 앉아서 염려를 하고 걱정을 합니다. 그 걱정 때문에 아무 일도 못합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물었습니다. "무슨 걱정이 그렇게 많소" "하늘이 꺼질까봐 걱정이 되어서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습니다" 이 어이없는 대답을 듣고 자나가던 사람이 말을 합니다.
"옛날에 한번도 하늘이 꺼진 적이 없고 앞으로도 하늘이 무너지지도 않을 것이요, 또 무너진다 해도 별 수 없는 일인데 걱정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그제야 청년이 툭툭 털고 일어났다고 합니다. 여기서 나온 고사성어가 '기인우천'입니다. '기'나라 사람이 하늘을 걱정한다'는 것으로 곧 쓸데없는 걱정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것을 줄여서 '기우'라고 합니다.
'존 맥스웰'이 쓴 <생각의 법칙>에서 저자는 <생각을 바꾸면 믿음이 달라진다. 믿음이 달라지면 기대가 달라진다. 기대가 달라지면 태도가 달라진다. 태도가 달라지면 행동이 달라진다. 행동이 달라지만 실력이 달라진다. 실력이 달라지면 인생이 달라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어떤 행동을 바꾸려고 시도하기 전에 마음부터 먼저 바꾸라"고 말했습니다. 염려나 근심도 먼저 우리 마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먼저 몰아냅시다! /할/
▶결론을 지으려고 합니다. 본문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라" 시작도 맡기는 것이요, 결론도 맡기는 것입니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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