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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염려하지 말라! (마 6:25-34)

by 【고동엽】 2022. 2. 12.

너희는 염려하지 말라! (마 6:25-34)

 

'헛쉘 포드' 목사의 '물새와 참새의 대화'라는 이야기를 아십니까? 어느 날 물새가 참새에게 말합니다. '참새야, 저 아래 땅위에서 허덕거리며 걸어다니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아라. 아우성치며 허우적거리면서 살고 있는 인간들의 꼴을 보란 말이야'
이 말을 들은 참새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물새야, 아마 쟤들은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없는 모양이지!' 세상 모든 짐을 지고 염려와 근심 속에 살아가는 어리석은 인생을 바라보며 나누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할/
본문에 보면 염려라는 단어가 무려 6번이 등장합니다. 그만큼 염려라는 말은 우리와 관계가 밀접한 것 같습니다. 정말 그 누구라도 염려의 그물에 걸려들지 않은 인생은 없습니다. 현대인은 저마다 염려가 내 뿜는 독소에 시달리면서 세상을 바삐 살고 있습니다.
▶염려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건강 때문에, 물질 때문에, 명예 때문에, 또 가정 문제, 자녀 문제, 노후 문제, 사업 문제 등등' 여러 가지로 염려하고 삽니다.
어떤 사람은 이제 100일도 채 되지 않은 아이를 안고 염려하며 한숨을 쉽니다. '이 아이를 앞으로 무슨 대학을 보낼까?' 미리 가불해서 염려를 합니다. 그런데 염려는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오히려 염려하므로 신경이 쇠약해지고 마음에 병이 생겨서 나중에는 큰 병으로까지 번지는 낭패를 당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죄와 벌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가 쓴 단편소설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정 러시아 시대, 시청의 동서기가 잘못해서 시장의 장화를 밟았습니다. 그는 즉각 사과를 했지만 시장은 누군가와 열을 올리며 토론 중이어서 그를 보지 못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그는 '시장이 나를 용서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되면 나는 목이 달아나고 그럼 가족들은 어떻게 되나?'하는 걱정 끝에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였으며 결국 다음날 시장을 찾아가 잘못을 빌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시장은 그를 본 척도 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가 다시 생각했습니다. '아마 나를 용서하지 않을 모양이구나' 다음 날 그는 다시 시장을 찾아가 애원을 했습니다. '한번만 봐 주십시오. 모르고 그랬습니다. 저는 처자식이 있는 몸입니다.'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매일 찾아와 알지도 못하는 소리를 늘어놓는 것을 보고 화가 난 시장은 '아니 당신 뭐 하는 것입니까? 혹시 미친 것 아닙니까?' 이 말을 들은 동서기는 절망적인 상태가 되었습니다. '시장은 끝까지 나를 용서하지 않는구나' 다음 날 아침 아내가 그를 깨우려고 흔들었을 때 그는 걱정과 절망으로 지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죽었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할/
사실 인간이 하는 근심 걱정 중 80, 90%가 다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시장은 구두를 밟았던 그 일은 까마득히 잊고 있었으며 그 일은 전혀 안중에도 없었는데 괜히 자기 스스로 지나친 근심과 걱정의 구렁텅이를 파고 그 속에 빠져 버렸던 것입니다.
집이나 빌딩에 화재가 났을 때 불 자체보다 무서운 것은 연기입니다. 대개 연기 속에 있는 인체에 치명적인 유독가스로 인해 순식간에 질식하여 많은 희생자가 발생합니다. 인간 삶에도 무거운 짐과 괴로운 일 자체보다 그 짐이나 일로 인하여 생겨난 근심 걱정 불안 초조 등이 마음의 파탄을 가져옵니다. 염려는 인간 삶에 치명적인 유독가스와 같아서 많은 사람들이 이 염려의 가스에 질식하여 죽어가고 있습니다. /할/
▶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동네에 죽음의 사자가 왔습니다. 한달 후면 동네 사람 이 백 명이 죽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상의한 끝에 이장이 담판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깎았습니다. 백 명만 데려가기로 한 것입니다.
한 달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삼백 명이 죽게 된 것입니다. 이장이 화가 나서 저승의 사자에게 가서 따졌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백 명만 데리고 갔소, 나머지는 내가 데리고 간다는 소리를 듣고 염려해서 죽은 사람들입니다.' 염려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적극적 사고의 힘'이란 책의 저자인 '노먼 빈센트 필' 박사의 글 중에서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글에서 강조하는 것 중에 일부가 우리 인간들이 생각하는 걱정 가운데 40%는 절대로 일어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0%는 과거에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걱정이라고 하니, 70%는 그냥 쓸데없는 걱정인 셈입니다. 결국 나머지 30% 중 22%는 별 것도 아닌 사소한 걱정이며, 4%는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한 걱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우리 인간들이 꼭 걱정해야 할 것과 고민거리는 4%밖에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결론적으로 96%는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말입니다. /할/
▶먼저 염려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염려는 헬라어원으로는 '메림나오'인데, '걱정한다, 근심한다, 마음이 찢어진다, 마음이 나누어지다. 분열되다.'라는 의미입니다. 영어로는 '워리'라는 단어를 썼는데 '물어뜯는다.'는 무서운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염려는 사람의 목을 꽉 물어 숨을 틀어막는 것(질식케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염려는 사람을 죽음의 골짜기로 밀어 넣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먼저 본문에서 결론을 찾는다면 예수님은 염려의 본질을 두 가지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는 '염려는 비생산적인 것'이라고 했습니다. 27절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그리고 또 하나는 '염려는 비 신앙적인 것'입니다. 30절에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할/
뜻이 있는 사람마다 철학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철학이라는 말을 굉장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철학이라는 것이 별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런 것이 바로 철학입니다.
우리 크리스천은 세상 사람과 구별되고 성별되고 거룩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생활철학이 되어야 합니다. 생활철학이 없으면 설계도 없이 집을 짓는 것과 같고, 나침반 없이 항해하는 선원과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 크리스천의 생활 철학 두 가지를 발견합니다. 하나는 '염려하지 말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할/

 

①너희는 먹고 마시고 입는 문제로 염려하지 말라!(25)
여기 '그러므로'는 앞의 말씀과 연결되는 접속사입니다. 24절에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한 여인이 두 남편을 섬길 수가 없듯이 성도가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선택의 중요함을 배웠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이 무엇입니까? 재물보다는 하나님을 선택한 백성들에게 주님이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을 선택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우리 주님은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쉽게 표현하면 의식주문제를 염려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먹고, 마시고, 입는 문제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가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먹기 위해 사느냐? 또는 입는 것이 인생의 목표냐고 물으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들 대답은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러한 것들에 관심의 전부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무엇입니까? 잘 먹고 잘 입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류 식당을 찾아다니고 메이커 상표의 옷을 입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 먹고, 잘 입으려고 보니까 따르는 결과하나가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자동적으로 물질에 대한 염려입니다. 돈이 있어야 잘 입고, 잘 먹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물질을 추구하다보면 근심과 걱정이 쌓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돈이 있어야 된다는 생각에 돈 버느라고 교회를 멀리합니다. 이러다 보면 신앙은 한마디로 완전히 불 신앙에 빠지게 되고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착각하며 교만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넘어짐의 앞잡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돈 때문에 영혼이 지옥 가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선택한 백성들은 먹고 마시고 입는 문제로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음식은 목숨을 위한 것이고 의복은 몸을 위한 것입니다. 목숨이 음식보다 중요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요합니다. 목숨과 몸은 목적이라면 음식과 의복은 수단입니다. 목적을 간과하고 수단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신앙의 눈을 떠야 합니다. 음식보다 목숨이 중요하고 의복보다 몸이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중요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이 그 몸에 필요한 의복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이 믿음이 있는 사람은 먹고, 입는 것 때문에 염려하지 않습니다. /믿/
우리가 어떤 문제 때문에 염려하는 것은 바로 불 신앙 때문에 염려하는 것입니다. 어떤 환경 적인 요인 때문에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염려의 본질은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불 신앙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신앙만 있으면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진다고 할지라도 염려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불꽃처럼 지켜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염려하지 말아야 할 이유로는 주님이 26절 이하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할/

 

②우리는 공중에 새들보다 정말 귀한 존재입니다(26).
'공중의 새를 보라' 예수님 당시 갈릴리 지방은 철새들이 아주 많았다고 합니다. 아마 주님께서는 하늘에 날아다니는 새를 바라보시면서 이 말씀을 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하늘에 날아다니는 그 많은 이름 모를 새들조차도 하나님께서 다 먹이시는데 '왜 걱정을 하느냐?'를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또 이 말씀은 하늘에 나는 수만 마리의 새들 중 한 마리의 새에 대해서까지도 하나님이 관심을 가지고 지키신다는 말씀입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새는 염려하지 않습니다. 미래를 위하여 물건을 쌓아 두지 않습니다. 그러나 잘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 공중에 나는 새들도 주께서 먹이시고 돌보신다면 우리가 공중에 날고 있는 저 새들보다 더 존귀한 존재임을 깨닫지 못하십니까? 우리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하나님을 닮은 존재입니다. 그뿐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인 쳐주시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굉장히 귀한 신분입니다. /믿/
우리가 이 땅에 살고 있지만 하늘나라 시민권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귀하게 보십니다. 그래서 '너희는 이것들 보다 귀하지 아니하냐?'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창공을 나는 새들에게서 배울 점이 많습니다. 새들은 내일의 운명을 모릅니다. 언제 사냥꾼의 총에 죽을지, 사나운 날짐승의 습격 때문에 생명의 종말을 고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오늘 주어진 삶의 기쁨과 즐거움을 버리지 않습니다. 저들은 내일 염려 때문에 오늘의 삶을 포기하거나 괴로워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들이 공연히 내일 일을 염려하고 슬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공중에 새들보고 배우라고 하십니다.
물론 이 말씀을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치 처분만 바라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만사 형통할 것이라는 식으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주님은 나무에 앉아 있는 새를 보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고 하십니다. 공중의 새는 먹이를 찾아 열심히 일하고 있는 새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인 새가 날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먹이나 입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새는 스스로 날아다니며 먹이를 잡아먹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도 일을 해야 합니다. 바울은 살후3:10절에서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되, 건강, 의욕, 꿈 등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주셔서 그것을 가지고 먹고살게 하셨습니다. 열심히 일을 해야 수고에 대가가 있습니다. /아멘!/
같은 내용을 소개한 눅12:7절에서는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다시 말씀드리면 '너희들의 머리털까지도 낱낱이 다 알고 있으니 제발 염려하지 말라 너희들은 참새들보다 정말로 더 귀한 내 자녀들이 아니냐?' 라는 말씀입니다. /할/
여러분, 사람마다 다르지만 보통 우리 머리카락이 몇 개 정도인지 아십니까? 10만개 정도 됩니다. 그리고 그 수명도 있습니다. 남자 머리카락은 4-5년, 여자는 6-7년 정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매일 50-100개 정도는 빠지고 그 정도 숫자가 새로 납니다. 한 사람에게 이렇게 복잡한데 하나님은 우리들 모두의 머리카락의 숫자를 다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변화무쌍한 너의 머리카락의 개수도 다 알고, 계시는데 너의 지금 형편과 사정을 내가 모르겠느냐 그러니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염려를 내려놓지를 못하는 우리에게 주님은 다시 염려하지 말아야 할 이유에 대해 덧붙여 또 말씀하십니다. 이제 27절에서는 '염려가 비생산적'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27절을 보십시다/

 

③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27)
성경 밑에 '주'를 보면 '키'라고 하는 말 대신에 '목숨'이란 뜻이 있습니다. 즉 '염려함으로 키를 한자나 키울 수 있느냐? 또 염려함으로 너희 목숨을 한 시간이라도 더 연장할 수 있느냐?'라는 질문입니다.
쉽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너희가 염려한다고 임의로 키를 키울 수가 없고, 염려한다고 임의로 목숨을 연장시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염려한다고 키가 자라납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생산성이 없는 염려 속에 빠져 있는 당시 사람들의 처량한 모습을 주께서 바라보셨습니다.
특별히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커다란 열등감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때 그들의 나라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로마인들을 생각할 때마다 그들이 로마 사람들보다 키가 더 작다는 열등감이 유대인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인들보다 키가 작은 열등감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키가 클까?' 하고 염려했지만 아무리 염려해도 키는 더 자라지 않습니다. 그처럼 염려는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살다 보면 이미 끝나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그런 일을 가지고 염려하는 것은 소용도 없고 어리석은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다른 좋은 길과 의미 있는 일을 찾아 행동에 나서는 것입니다. 긍정적 행동을 만들지 못하는 생각은 삶을 파멸시키는 무서운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지나가 버린 문제로 더 이상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할/
예수님은 이런 문제로 부질없는 걱정을 하고 있는 당시 자기 민족에게 이런 해학적인 메시지를 통해서 염려의 비 생산성을 지적하고 계신 것입니다.
염려란 하나의 사건에 대한 반응일 따름이지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도 아닙니다. 여러분, 긍정적인 행동으로 인도하지 못하는 염려는 우리 모두의 생존을 위협하는 파괴적인 힘 밖에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할/
미국의 한 설교자는 염려를 가리켜서 '염려란 마치 흔들의자와 같은 것이다.' 그 의자에 앉아서 아무리 흔들어 보십시오, 여전히 제 자리에 있을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염려를 해도 한발자국도 진전이 없는 그런 염려를 왜 하고 있습니까? 우리 모두 염려를 내려놓으시기를 바랍니다. 염려 대신 우리가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⑴우리의 염려를 다 주님께 맡겨 버리라! 벧전5:7절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할/ 신앙이 무엇입니까? 맡기는 것입니다. 내 인생문제를 맡기는 것, 사업은 하나님께 맡기고 자녀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질병도 맡기고 환란도, 핍박도 하나님께 맡기십시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염려를 맡기면 그때부터 우리의 염려는 우리의 염려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염려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실패하고 넘어지는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인생이 실패한다고 하나님도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하나님은 실패할 수가 없습니다.
엘로힘의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분이십니다. 죽었단 자를 살리는 권세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믿/ 여기 권고란 '돌보다. 관심을 갖다.'라는 말로써 '일으켜 세우리라, 높여 주리라'는 뜻이 있습니다. /할/
⑵염려대신 기도하십시다. 빌4:6-7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할/
기도의 사람 '조지 물려'는 '신앙이 시작되는 곳에 염려 근심 두려움은 사라지고 염려가 시작되는 곳에 신앙이 끝난다.'고 했습니다. 또 '모든 염려는 기도를 통해 제거된다.'고 했습니다.
▶어느 날 중세에 살던 '부루노'라는 수도사가 깊은 산에서 기도하는데 개구리들이 너무 울었습니다. 견디다 못해서 그는 창문을 열고 '시끄럽다!'고 큰 소리를 치자 잠시 조용했다가 조금 지나니까 이제는 언덕 너머의 잠자던 개구리까지 울어댔습니다. 너무 기도가 방해되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개구리 때문에 기도가 안 됩니다. 저 개구리들을 어떻게 좀 해주세요.'
그때 마음속에 이런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부루노야! 지금 개구리도 기도하고 찬양하고 있단다. 같이 기도하고 찬양하라.' 그 음성을 듣고 그 수도사가 신나서 창문을 열고 같이 기도했다고 합니다. 인생은 해석입니다. 아무리 환경이 어려워도 믿음으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해석하면 얼마든지 기뻐하며 살 수 있습니다. /아멘!/
영국의 대설교가인 스펄전 목사님은 '그대의 염려를 버리고 은혜 깊으신 하나님의 손에 모든 것을 맡기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사면초가에 있습니까? 기도의 통로는 열려있습니다. 기도는 지금도 홍해가 갈라지고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역사가 동반됩니다. /믿/아멘!/

 

④들꽃도 생명의 주님이 기르십니다(28).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만 하시고 그냥 내버려두는 분이 아닙니다. 관리하시고 간섭하십니다.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머리털 하나까지 세시는 섬세한 사랑으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하십니다.
들에 핀 한 송이의 백합화를 보십시오, 누가 그 꽃 하나를 위하여 거름을 주고 길쌈을 맵니까? 하나님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들꽃 하나를 위해서도 사시사철 태양을 주시고 바람을 주셔서 색깔을 입히시고 모양을 만드십니다. /할/
예수님은 아무도 돌보지 않은 들에 핀 한 송이의 백합화의 영광을 이 지상에서 한 인간이 가질 수 있었던 가장 큰 영광을 누렸던 솔로몬의 영광과 비교하고 계십니다. 솔로몬은 세상의 모든 지혜와 부와 명예와 권세를 가졌던 인류역사상 전무후무한 왕이십니다. 그러나 그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백합화 한 송이 보다 못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할/

 

⑤염려는 믿음이 적은 자들이 하는 것입니다(29-30).
꽃 한 송이가 '솔로몬의 그 큰 영광보다 더 귀한데 너희가 그 꽃보다 못하겠느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어째서 너희가 염려하느냐? 하나님이 너희 인생을 비극으로 마치게 할 것 같으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 송이 들 꽃보다, 한 마리의 새보다 천사보다도 더 귀한 존재입니다. 본문에서 주님은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천사도 흠모할 만한 일은 우리에게 주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찌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롬8:32절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아멘!/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무엇이든지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약1:5절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할/ 30절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염려라는 것은 바로 '믿음이 없어서'라는 것입니다. 염려는 불 신앙에서 오는 것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믿음으로 사십시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할/

 

⑥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31-32)
31절은 25절의 중복입니다. 선택은 바로 하라는 경고입니다.
32절에 '이방인'은 예수를 모르고 사는 세상 사람들을 가르친 말씀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모릅니다. 인생이 어디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지를 모릅니다. 한마디로 불쌍한 존재입니다.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 붙들고 '이제 놀고 먹어도 된다.'고 큰 소리를 쳤다고 합니다. 왜 큰 소리를 쳤겠습니까? '하나님이 다 필요에 따라 주신다.'고 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믿음이 좋은 사람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하라고 했고, 구하라'고 했습니다. /아멘!/ 여기서 우리가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은, 본문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신다는 확신을 가지라는 메시지라는 사실입니다.
염려 문제는 환경의 문제가 아닙니다. 신뢰의 문제요, 신앙의 문제요, 그래서 똑같은 환경에 처했을지라도 어떤 사람은 염려하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뜻을 찾습니다. 예컨대 불이 났다고 합시다. 한 사람은 '이제 나는 망했다.'고 대성통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 한 사람은 그 화제 속에서도 부인과 자녀들이 머리칼 하나 상하지 않게 해주신 것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자가 있습니다. 누가 신앙인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주실 줄 믿고 구하며 사는 자입니다. /아멘!/

 

⑦삶의 우선 순위를 바로 정하고 사는 자가 더해지는 복을 받습니다(33).
여기 '구하라'는 말은 '제테오'인데 기도하라는 말보다는 신앙생활에 '애써 노력하다, 부단히 노력한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먼저'라는 우선순위를 말합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라는 뜻입니다. 가치 있는 것을 먼저 구해야 합니다. 보람 있는 일을 먼저 해야 합니다. 하고 싶은 일만 하다 인생을 마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구하며 일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오신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 건설이었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며 외치신 말씀도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존 워너 메이커'는 미국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과 정열의 복음 전도자 '디 엘 무디'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백화점 왕입니다.
존이 다니던 교회는 오래된 건물이라서 비만 오면 지붕이 새고, 교회 마당은 포장이 안 되어서 진흙탕이 되기 일쑤였습니다. 사람들의 양말과 구두가 젖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예배당도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은 불평만 늘어놓을 뿐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했습니다. 13살이었던 존은 이런 안타까운 상황을 보며, 교회 마당 입구를 벽돌로 포장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마침 아버지를 따라 벽돌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벽돌 구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다음날부터 존은 하루 7센트인 자기 임금의 일부를 쪼개서 벽돌 한 장씩을 사서는 아무도 보지 않는 이른 새벽 교회마당 입구에 벽돌을 깔기 시작했습니다. 그 넓고 긴 교회 마당 입구를 어린 존 혼자서 포장하려면 2년도 넘게 걸릴 것입니다.
그러나 기적은 한 달도 채 못 되어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 담임목사인 '존 챔버스'목사가 몇 주일 째 벽돌을 까는 사람이 궁금해서 평소보다 일찍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주일학교에 다니던 존이 열심히 벽돌을 날라 포장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지켜본 목사는 감동을 받아 다음 주일 설교 때, 모든 교인들에게 어린 존이 한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교인들은 존의 신앙과 헌신에 감격하여 자신들의 이기적이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반성했습니다. 그리고 모두 힘을 합쳐 교회마당입구뿐만 아니라 낡은 교회 건물을 헐고 새로운 교회를 신축하기로 마음을 모았습니다.
이 어린 아이가 미국의 백화점 왕이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 보십시오. 하나님이 분명 축복하십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축복으로 바뀔 것입니다. /아멘!/
▶오래 전 조선일보 13면에 '록펠러 그는 긍정적인 달인이었다'라는 타이틀로 기사가 났습니다.
여러분, 세계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다가 사라졌는데 아직도 록펠러 만한 부자는 안 나왔습니다. 기사내용을 보니 지금 세계최고의 부자인 빌게이츠의 자산이 1010억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약141조가 됩니다. 그런데 록펠러의 재산은 3,183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약411조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지금 세계최고의 부자의 재산보다도 약3배가 더 많은 재산을 록펠러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이런 축복을 받게 된 배경에는 그의 어머니의 신앙교육이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어린 록펠러에게 이런 신앙교육을 시켰습니다.
⑴언제든지 교회에는 30분전에 가라! 록펠러는 40분전에 교회에 나왔다고 합니다.
⑵언제나 맨 앞자리에 앉아라! 앞자리가 금 자리입니다.
⑶항상 십일조를 하되 십의 구조하는 축복을 받아라! 그래서 록펠러는 십의 구조의 십일조를 했다고 합니다. 그는 회사에 십일조만 관리하는 직원이 42명이었다고 합니다.
⑷언제든지 담임목사님 편에 서라! /할/
이 네 가지를 어머니께서 유언하고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한 때 신앙이 흔들릴 때가 있었답니다. 그런 19세 때 록펠러가 여자에게 차이고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는데 어디에서 '어서 돌아오오∼'라는 찬송이 들려와서 그곳으로 갔더니 교회에서 예배 중이었습니다.
그 날 목사님의 설교 내용은 '부모도, 애인도, 못 믿는다. 믿을 것은 하나님뿐입니다'라는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그 말씀을 듣고 록펠러가 '맞아! 오직 하나님만 믿어야지!' 거기서 결단을 내리고 그 때부터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이 록펠러는, 서른 세 살에 백만장자가 되었고, 쉰 세 살에는 세계에서 제일 큰 부자가 됐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알록 피셔'라는 병이 와서 머리와 눈썹이 막 빠지고, 몸이 바싹바싹 말라 들어가는 무서운 병이 들었습니다. 이 병 때문에 잠도 못 자고 밥맛이 없어서 겨우 우유 한 컵에 크래커 과자하나 밖에 못 먹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담당 의사가 '록펠러 씨, 암만해도 당신은 일년을 더 넘길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라는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재산이 많으면 뭐합니까? 고민하면서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고 괴로워하던 어느 날, '내가 이렇게 많은 소유를 가지면 뭐하나.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돈은 아무것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모든 것이 되신다'고 소리쳤습니다. 그러더니 침대 밑에 내려와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하는데, 밤새도록 기도하고 그 다음 날 새벽을 맞이했습니다. 그 날 밤이 록펠러가 완전히 변화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록펠러는 그동안에도 교회 잘 다니는 교인이기는 했지만, 사실은 그냥 형식적으로 왔다 갔다 한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날 밤 이후에 변화가 일어나 그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 후로는 어머니의 유언대로 신앙생활을 착실하게 하기 시작하면서 뉴욕에 가장 아름다운 '리버사이드 교회'를 짓고, 록펠러 재단을 만들어서 가난해서 치료 못 받는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의료 재단을 만들고, 자기의 돈을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에 막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남에게 주다보니 몸에서 기쁨이 생기고 엔 돌핀이 나오고, 병균이 확 죽어 버렸다고 합니다. /할/ 그래서 이분이 건강해져서 98살에 세상을 뜹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지구상에 록펠러같이 큰 부자가 안 나왔다고 합니다. /할/ 우리도 록펠러와 같은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할/
▶의를 위해 사는 자들은 삶의 자세가 달라야 합니다.
⑴비판보다는 격려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분은 하는 말마다 예쁜 말만 골라서 합니다. 우리는 그런 격려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⑵자기 의를 버리고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자신이 의로운 양이라고 생각할수록 남들에게는 해로운 염소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자기 의로 하면 문제가 생기지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하면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겸손한 사람이 한 사람만 있어도 교회의 분위기가 엄청나게 밝아집니다.
⑶공동체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성공적인 시민생활의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국가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 줄까?'를 생각하기보다 '내가 국가를 위해서 무엇을 할 까?'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교회생활의 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교회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 줄까?'를 생각하기보다 '내가 교회를 위해 무엇을 할 까?'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항상 나의 기분과 감정보다는 교회를 먼저 생각하는 성숙한 마음과 공동체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아멘!/
⑷교회 부흥을 위해 최대한 힘써야 합니다. 특별히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교회 부흥의 최대 원리는 '모이기에 힘쓰는 교회는 부흥했지만, 모임을 등한시하는 교회는 쇠퇴했다'는 연구발표가 나왔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내가 먼저 모이기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아멘!/ 초대교회는 모여서 기도하고 흩어져서 전도했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전도하고 구원에 감격이 있어야 전도할 때 힘이 생깁니다. /할/
⑸크리스천의 제일 윤리가 말을 주의하는 것입니다. 말을 지혜롭게 못하면 문제를 잠재우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교회에서는 말을 주의해서 말하고 주의해서 들어야 합니다. 기도 부탁도 아무에게나 해서는 안 됩니다. 비밀을 지켜주고 정말 자신을 사랑하고 기도해줄 사람에게 해야 합니다.
상담도 아무에게나 받으러 가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어렵다고 한 소리가 어느새 새어나가기 때문입니다. 좋은 의도로 한 말도 몇 사람 거치면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주의하고 특별히 사람과 관련된 문제는 최대한 말을 자제해야 합니다.
⑹가정을 사랑해야 합니다. 교회사랑과 가정 사랑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가정생활을 잘하는 분들은 교회생활도 비교적 잘합니다. 그래서 교회 중직을 맡는 사람은 반드시 가정생활의 책임적 모습이 필요합니다.
⑺외모와 크기로 교회를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은 절대로 크기를 가지고 교회를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교회가 크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닙니다. 큰 교회를 선호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부담이 적은 곳에서 신앙생활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덩치가 큰 사람이 건강한 사람은 아닙니다. 교회도 큰 교회가 건강한 교회만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교회를 얼마나 소중하게 세워가고 내 땀과 눈물과 기도가 교회에 얼마나 많이 뿌려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멘!/
⑻교회를 잘 섬기는 자의 축복이 있습니다. 시84:11절에는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기쁨으로 섬기는 자에게 해와 방패가 되어주시고 은혜와 영화를 주시고 좋은 것을 아끼지 않고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또 시122:6-7절에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안에는 평강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이 있을지어다' /할/
사람에게는 귀소본능이 있습니다. 처음의 고향으로 되돌아가려는 본능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향을 그리워하고 또한 찾아갑니다. 그런데 '은혜 받은 자리'는 신앙의 고향입니다. 그런 신앙의 고향이 있는 사람에게는 결코 불안이 없습니다. 그런 신앙의 고향을 지금도 계속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 자리가 바로 오늘 여러분들이 앉아 예배드리는 행복한 교회임을 믿으시기를 소원합니다. /할/
⑼우리는 더하기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로 장정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먹이고도 12광주리가 남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어떤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까?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에게 주십니다.
신1:11절에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현재보다 천배나 많게 하시며 너희에게 허락하신 것과 같이 너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또 민6:24-26절에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 /할/

 

⑧내일 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사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34).
한마디로 내일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내일은 당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 속할 것입니다. 내일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께 내일을 맡기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일 때문에 염려하며 근심걱정하며 사로 잡혀있습니까? 믿음이 없으면 내일은 언제나 절망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으면 내일은 언제나 희망입니다. /할/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염려대신 큰 야망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기적을 베풀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모든 염려는 진실한 믿음이 그 해결책입니다. /믿/
▶영국의 한 직물 공장에는 '일을 하다가 실이 엉키면 즉시 공장장에게 보고하시오'라는 불문율이 있었습니다. 그 공장에 새로 입사한 여공 하나가 일을 하다가 그만 실이 엉켜져 버렸습니다. 자기가 보니까, 간단할 것 같아서 최선을 다해서 그것을 풀어 보려고 노력했는데, 풀리지는 않고 더욱 엉키기만 했습니다.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공장장에게 보고를 했더니 공장장이 와서 보고는 '왜 이것을 즉시 보고하지 않았느냐?'고 호통을 쳤어요. 여공은 '나는 최선을 다해서 실을 풀어보려고 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공장장은 '실이 엉켰을 때 당신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공장장에게 보고하는 것'이라며 크게 꾸짖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도 염려거리가 생겼을 때, 내가 그걸 해결해 보려고 돈 많은 친구 찾아가기도 하고, 뭐 힘깨나 있는 사람 찾아가기도 하고 의논하다가 보면, 맘 상할 일이 많이 생겨요. 꼬이기 시작하면, 누굴 찾아가도 안됩니다.
그러므로 문제가 꼬일 때 염려거리가 자꾸 생길 때 최선의 방법은 먼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것임을 여러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할/
▶옛날 어느 마을에 홀로 할아버지 한 분이 살고 계셨습니다. 하루는 그 할아버지가 공원의자에 앉아 쉬고 있었는데 동네 꼬마들이 그 할아버지를 알아보고 뛰어와서는 '할아버지 옛날 이야기 하나 해 주세요'라고 졸랐습니다. 할아버지가 잠시 생각하더니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옛날 어떤 마을에 한 청년이 살고 있었단다. 이 청년은 건넛마을에 사는 한 여자를 매우 사랑했단다. 하루는 그가 용기를 내어서 그 여자를 찾아갔었지. 그리고는 이렇게 청원을 했단다. '나와 결혼해 주십시오. 내가 어떻게 하면 당신과 결혼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을 좀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자 그 여자는 얼굴을 붉히면서 이렇게 대답을 했단다. '제게는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두 마리의 말과 다섯 마리의 소만 준비되면 언제라도 제게 오십시오. 그러면 제가 기꺼이 댁과 결혼하겠습니다.' 청년은 그 말을 듣고 너무나도 기뻤단다. 그래서 두 마리의 말과 다섯 마리의 소를 준비하기 위해서 그때부터 열심히 일을 했단다. 그렇지만 생각처럼 돈은 쉽게 벌리지 않았단다. 그래서 결국 그 청년은 그 여자와 결혼하지 못하고 혼자서 늙어갔단다. 어느덧 세월이 50년이나 흘러서 그 청년도 이제는 할아버지가 되고 말았단다. 그렇지만 그는 아직도 그 여자만을 사랑하며 그리워하고 있단다.'
할아버지가 이야기를 마치고 나자 동네 꼬마아이 중 한 아이가 대수롭지 않은 듯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에이, 할아버지. 그 뜻도 모르세요? '두 마리의 말과 다섯 마리의 소라면 두 말 말고 오소'라는 뜻이잖아요' 그 할아버지는 그 아이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렇구나! 바로 그런 뜻이었구나. 내가 그것도 모르고 50년 동안이나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었구나' 그러면서 그 할아버지는 땅을 치면서 통곡했습니다.
여러분! 물론 우스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두 마리의 말과 다섯 마리의 소를 스스로 마련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괜히 고생하며 헛수고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습니다. 문제를 쉽게 해결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두 말 말고 오소' /할/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주님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오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이 단순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서, 어리석게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를 스스로 구하며 고생하고 있습니다.
▶하루는 어린 딸이 자기 어머니에게 하소연을 했습니다. '엄마, 배가 아파요' 어머니는 아이의 머리도 한 번 짚어보고 여러 가지 진단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네가 배가 아프게 느껴지는 것은 아무래도 속이 비어서 그럴 거야! 뭐 좀 먹어야 되겠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딸아이에게 맛있는 음식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아이는 음식을 먹고 나니까 정말로 배가 아프던 것이 사라졌습니다.
그 날 저녁이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퇴근길에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왜 이렇게 머리가 아프지?' 그러자 딸아이가 얼른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빠, 머리가 아픈 것은 머리가 비어서 그래요. 머리에 뭘 좀 집어넣으세요'
여러분! 마음이 아프십니까? 마음 속에 근심, 걱정, 염려가 가득 쌓여 있습니까? 마음이 비어서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믿음을 집어넣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눈동자와 같이 지켜주시고, 우리를 돌보고 계신다는 믿음을 집어넣으십시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힘써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실 것이요, 때를 따라 도우시는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이며, 때마다 일마다 하나님의 평강을 허락해주실 것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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