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교회! 소문난 교회! (살전 1:1-10)
오늘은 사도 바울이 제 2차 전도 여행 중에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보고 마게도냐로 건너가서 제일 첫 번째로 빌립보에서 전도하여 교회를 세우고 나서 실라와 디모데를 데리고 두 번째로 전도한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하여 알아보려고 합니다.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냐의 거대한 항구도시로서 지금의 터키 지경에 있는데 '살로니카'만이라고 하는 해안의 머리에 위치한 곳으로 정치, 교통, 무역의 중심지였고 옛날에는 온천지대였다고 합니다.
A.D 150년경에는 이곳 인구가 20만명 정도의 큰 도시였고, 지금은 인구가 약 70만명이 넘을 정도로 큰 도시가 되었으며 그 중 약 30만이 유대인들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좋은 소문을 내는 교회였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좋은 소문이 난 교회라고 칭찬했습니다. 사도바울이 가장 기뻐하고 칭찬하고 자랑하고 자부하고 감사하게 생각했던 좋은 교회였고, 가장 자랑스럽게 여겼던 교회였습니다.
우리 교회가 벌써 16주년이 되었습니다. 우리교회가 ◀아름다운 교회, 소문난 교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제목을 정했습니다.
●먼저 교회의 사명에 대하여 몇 가지만 알아봅시다!
①예배입니다. 교회는 예배하는 공동체입니다.
행2:46절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왜요?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최우선적인 사명은 예배에 있습니다. 예배보다 더 우선적인 교회의 사명은 없습니다. 예배야말로 하나님을 향한 성도의 최고의 행위입니다. 예배야말로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최고의 표현이고 행동입니다.
②'케리그마' 즉 선교(전도)의 사명입니다. 주님이 가장 기쁘게 여기시는 것이 생명구원입니다.
③교육입니다. 교육은 영성훈련으로, 제자훈련으로 이어집니다. 잘 훈련된 예수의 제자들, 십자가의 군병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④'코이노니아' 즉 사랑과 친교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⑤'디아코니아' 즉 봉사의 사명이 있습니다. 교회는 이런 손길들을 통하여 성장합니다.
●교회가 왜 중요한가?
①교회는 천국 열쇠를 받는 곳입니다(마16:16).
예수님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하는 베드로에게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시고,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열쇠가 있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고, 축복의 문도 열 수가 있습니다.
②교회는 축복의 전당입니다(시84:4-5).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5절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③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곳은 교회뿐입니다. 정부청사에도 서울대학교에도 하나님이 임재하시거나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학개1:8절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학개2:7절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라"했고, 2:9절에도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곳입니다.
④교회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요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느니라"
⑤교회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입니다(마21:13).
●교회는 예배를 통해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의 큰 역할을 합니다.
①교회는 사랑의 보금자리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사랑을 주는 자가 됩니다.
②영적인 목욕탕의 역할을 합니다. 교회를 통해서 죄 씻음을 받습니다.
③영적인 잔치를 배설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영적인 음식을 먹고 에너지를 공급을 받습니다.
④영적인 병원의 역할을 합니다. 교회를 통해서 병을 고침 받고 건강을 얻습니다.
⑤영적인 휴식처입니다. 교회 나와서 예배를 드릴 때 마음에 평강과 안정을 느낍니다.
⑥영적인 학교의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이제 데살로니가 교회를 진단해 보고, 우리교회도 본받아서 하나님 앞에 칭찬 받는 교회가 되고 아름다운 교회 소문난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칭찬은 우리 인생의 가장 위대한 자산"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정말로 좋은 세상, 살 맛 나는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칭찬 아닙니까? 칭찬할 때, 칭찬 받을 때, 가장 기쁘지 않습니까?
칭찬하는 세상, 칭찬 받는 세상이 가장 밝고 아름다운 것이며, 칭찬 받는 사람, 칭찬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그 당시 마게도냐 지방과 아가야 지방에서 모든 믿는 자들의 본이 되었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다고 했습니다. 물론 소문 중에는 좋은 소문이 있고 나쁜 소문도 있습니다. 나쁜 소문일수록 많이 퍼지고 빨리 퍼져나갑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문은 믿음의 소문이요 자랑스러운 본받을 만한 소문이었습니다.
1. 바울이 하나님께 늘 감사하며 기도할 때마다 기억하는 교회였습니다.
2절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데살로니가 교회는 위대한 전도자 바울이 바라볼 때마다 감사가 흘러나올 만큼 대견한 교회였습니다.
바울이 이 서신을 쓸 당시에 데살로니가 교회는 설립된 지 불과 2,3년밖에 지나지 않은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그 짧은 연륜 가운데도 대견스럽게, 당당하게 성장해 가는 교회였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흔들리고, 불안할 때 데살로니가 교회는 신실한 믿음으로 알차게 자라가는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기억할 때마다 감사함으로 데살로니가 교회를 기도했습니다.
2. 신앙의 3대 덕목인 '믿음, 소망, 사랑'이 있는 교회입니다.
3절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①믿음의 역사가 있는 교회입니다.
여기 "믿음의 역사"란 믿음의 행위, 믿음의 활동, 믿음의 힘이라는 뜻입니다. 역사란 '비상한 능력'입니다. 즉, 믿음의 힘에 있어서 믿음의 바른 행동과 믿음으로 바로 일을 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믿음은 믿는 성도의 자본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 고 히11;6절에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은 금보다도 귀합니다.
믿음의 역사란 무엇입니까? 보이지 않는 믿음이 보이는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믿음이 있노라 하고 실제 행동으로는 표현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참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위선이고, 거짓이며, 죽은 믿음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믿음의 장이라고 불리는 히11:1에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즉 믿음은 실상으로 나타나야 하며 증거로 나타나야 합니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여기서 믿음은 살아있는 믿음, 생명력 있는 믿음, 행동으로 나타나는 믿음, 산 믿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성도들의 살아있는 믿음, 역사하는 믿음을 기록한 책입니다.
노아는 산 믿음을 가지고 방주를 만들었고, 아브라함은 산 믿음을 가지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무조건 순종하였으며, 믿음으로 100세에 얻은 아들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렸습니다.
예수를 만난 많은 사람들 중에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중풍병자와 네 친구가 믿음을 가지고 지붕을 뜯는 행동을 했고, 혈루증 앓던 여인이 믿음을 가지고 예수의 옷자락을 만졌고, 거지 바디메오는 믿음으로 예수님께 간구하여 눈을 떴습니다. 믿음에는 행동이 따르고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겨자씨 만한 믿음만 있으면 산을 들어 바다로 옮기우는 역사가 나타난다고 하셨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행동이 따르고 결과가 나타납니다. 믿음은 승리이며, 능력이며 강력한 무기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곳에 역사가 있고 기적이 있습니다.
▶주님은 항상 믿음 있는 자를 축복하시고 고쳐 주셨습니다.
막10:12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마9:29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마9:2/막2:5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가라사대 네 침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막5:34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병에서 놓여 건강할 지어다"
▶또 예수님은 믿음 없는 자를 책망하셨습니다.
마17: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마14:31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마17:20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케 해 줍니다.
막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믿음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믿음은 하늘 보좌를 움 직이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능력의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주안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믿/
▶어떤 교회에서 예배당을 짓고 있었습니다. 여러 석수들이 뜰에서 돌을 깎고 있었습니다. 그 교회 목사님이 수고하는 석수에게 "날씨도 더운데 수고하십니다"라고 인사를 하니 석수가 대답하기를 "배운 재간이 이것밖에 없으니 할 수 있소"라고 하더랍니다.
옆에 있는 다른 석수에게 같은 인사를 하니 그 석수는 기쁜 표정으로 "돌 깎는 재주를 배웠다가 이번에는 성전을 짓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하더랍니다.
똑같이 돌을 깎는 일을 하지만 한 사람은 믿음 없이 일하니까 보람도 없고, 기쁨도 없으나, 한 사람은 믿음으로 하니까 보람도 있고 기쁨도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요, 달란트로 알고 큰 믿음 가지고 역사를 일으키시기를 바랍니다.
②사랑의 수고가 있는 교회입니다.
사랑에는 반드시 수고가 따라야 합니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일평생 자식을 위해 허리가 꼬부라지도록 수고를 합니다.
할머니가 손자를 업고 몇 시간을 있어도 힘든 줄 모르고 즐거워하는 것은 그 손자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손자의 1/3무게의 돌멩이를 업고 있으라면 30분도 못 업고 있을 것입니다. 이는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하였기에 공주의 아들이란 자리를 버리는 수고가 있었고, 아프리카 흑인의 아버지라 불리는 슈바이처 박사가 흑인들을 사랑하였기에 그의 다섯 개나 되는 박사학위의 명예를 버리고 흑인들 안에 들어가 평생을 헌신하는 수고가 있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에는 언제나 희생적인 수고가 따릅니다. 3절 '사랑의 수고와'라고 했습니다. '사랑의 수고'란 말은 '자른다', '몸을 채찍으로 때린다', '애쓴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처럼 사랑의 특성은 수고와 희생입니다. 수고하는 사랑을 말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수고로운 봉사가 동반하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은 아내를 위해서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도 남편을 위해서는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 또한 자식을 위한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입니다.
수고하는 사랑, 이것이 데살로니가 교회가 다른 교회와 다른 점이었습니다. 입으로만 하는 사랑, 말로만 하는 사랑이 아니라, 자기희생의 수고가 포함된 사랑의 본을 그들은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8)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사랑은 하는데 수고가 없습니다. 사랑을 하되 계산적으로 합니다. 이기주의적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몸 버려 피 흘리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사랑한다면 우리의 몸과 마음을 바쳐는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마22:37-40절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두 가지 계명을 말씀하셨는데 바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실천하라고 하셨습니다.
③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가 있었습니다.
6절을 보면, 데살로니가 교회에 예수 믿는다는 사실 때문에 많은 환난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흔들리지 않고 신실하게 믿음을 지키며 인내하였습니다.
소망이 있으면 인내할 수 있습니다. 다실 오실 주님을 소망 중에 기다릴 줄 아는 교회였습니다. 소망을 갖는 것이 교회다운 교회의 본질입니다. 바로 인내하는 것인데 인내와 희망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희망이 있을 때에 어려움을 참아냅니다. 우리는 천국이 소망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저 천국을 소망하며 달려가는 순례자들입니다.
어려움은 참고 견디어야 합니다. 교회나 가정이나, 개인이나 어려움은 더 큰 축복으로 가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을 통과하면 하나님이 축복해 주십니다. 인내를 할 때는 반드시 소망이 있어야 인내할 수가 있고 인내의 가치가 있습니다.
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믿으면서 핍박도, 환난도, 궁핍도, 고난도, 역경도, 참아야 합니까? 이는 장차 주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에게 상주실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농부에게는 가을의 추수하는 소망이 있기에 찬 서리 내리는 봄부터 여름내 땀흘려 농사짓고 인내를 합니다.
공부하는 학생은 장차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소망이 있기에 밤잠 못 자면서 공부하고 인내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소망이 크면 인내도 커야합니다.
고전13;13절 말씀에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말씀했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기도의 제목이며 신앙의 덕목입니다.
이제는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가지고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데살로니가 교회는 성령의 능력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5절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세상을 살리는 방법이 여기 나온 세 가지입니다.
①능력입니다. 주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습니다. 우리로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완전히 절망된 상태가 하나님에게는 시작입니다. 그래서 "오직 능력"입니다.
앞에는 홍해요, 뒤에는 애굽 군대가 따라오고, 옆에는 깍아 지른 절벽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능력은 홍해를 가르십니다.
②성령입니다. "오직 능력과 성령과" 방법이 성령으로입니다. 성령 받아야 하나님의 일을 재미있게 할 수 있습니다.
③확신입니다. "큰 확신으로" 신앙은 확신입니다. 구원의 확신, 기도응답의 확신을 가지고 나가야 힘있는 성도입니다.
롬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고전4: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힘이 있고 능력이 있고 성령의 확신이 있기에 사도 바울이 가는 곳마다 복음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예수를 증거 할 때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며 통회하는 역사가 일어났고, 바울이 에베소에 갔을 때 "온 세상을 요란케 하는 자들이 이곳에 왔다"고 온 성이 소동하기도 했습니다.
교회의 부흥은 성령의 능력이 함께 해야 합니다. 개인의 신앙도 성령의 능력과 큰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데살로니가 교회는 모범적인 교회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성림교회도 데살로니가 교회와 같이 말씀의 능력과 성령의 확신이 함께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결코 사람의 힘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이 힘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슥4:6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4. 데살로니가 교회는 환란가운데서도 기쁨이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6절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①환난을 이긴 교회입니다. 여기 말하는 환난은 외적 고통으로 신앙 때문에 받는 핍박을 말합니다. 저들은 한 두 가지의 환난을 받은 것이 아니라 많은 환난을 받았습니다. 수많은 환난이 바울을 데살로니가에서 내 쫓았고, 남아 있는 성도들을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어떤 핍박도 저들이 말씀을 받아들이는데는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들은 환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에 기쁨이 넘쳤습니다. 이것은 곧 말씀이 저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환난 때문에 기쁨도 잃고, 자신의 모습을 비관하고 불평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교회는 환난 중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말씀 속에서 살았습니다. 이것이 곧 우리의 모습이어야 할 것입니다.
②성령이 충만한 교회입니다. 여기 성령의 기쁨이란 은혜 받은 성도의 참 모습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환난 중에서도 기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벧전1:8 "말로 다 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노라"고 했고, 사도 바울은 "내 형제들아 주안에서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3:1)고 했습니다.
성령 받은 성도는 기쁨이 충만합니다. 기쁨이 충만한 삶에는 어떤 사탄의 권세도 침투할 수가 없습니다. 기쁨이 충만할 때 원망과 불평이 사라집니다.
우리 성림교회 성도 여러분들도 항상 기쁨이 충만한 생활을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 본이 되는 교회입니다.
7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 데살로니가 교회는 본이 되는 교회였습니다. 교회다운 교회는 본이 되는 교회입니다.
여기 본이란 '쳐서 만든 자국', '모형'을 의미합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사도와 주를 본받은 결과 그들의 신앙은 전 헬라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의 본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주님을 본받은 자들이었습니다. 주님처럼 생각하고, 주님처럼 말하고, 주님처럼 행동하고, 주님처럼 살기를 몸부림쳤던 사람들입니다.
주님을 본받는 것이 신앙의 목표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위해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모습에서 그리스도의 냄새가 나야 하고, 향기가 있어야 합니다. 나를 통해 사람들이 주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성림교회에는 작은 예수가 많다, 예수님을 닮은 자들이 많다" 바로 이런 소문이 나야 합니다.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교회가 아니라 우리로 예수를 보는 교회, 바로 그런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어떤 면에서 본이 되어야 합니까? ▶예배 생활에 본이 되어야 합니다. ▶경건 생활에 본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 생활에 본이 되어야 하고 ▶전도 생활에 본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 생활에 본이 되어야 합니다.
6. 데살로니가 교회는 소문난 교회였습니다.
8절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식당이 잘 되려면 소문이 좋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의 소문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한번 좋은 소문이 나면 손님이 그치지 않습니다. 거리나 시설과 상관없이 찾아옵니다.
이 교회의 좋은 소문은 마게도니아와 아가야에 퍼졌습니다. 8절의 '들릴 뿐 아니라'에서 '들리다'는 나팔 소리가 울려 나가는 것처럼 크고 분명하게 선포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소문이 울려 펴져 나갔다는 말입니다.
이 두 곳은 당시 지역을 대표하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곧 교회의 좋은 소문이 인근에 퍼졌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소문은 각처에 퍼졌다고 말합니다. 교회가 세워진 지역들, 그리고 당시 세계의 끝이라고 하는 로마까지, 이 교회의 소문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꿈꾸는 교회는 '소문이 좋은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이 교회가 어떤 교회였기에 좋은 소문이 퍼졌을까요? 교회가 어떤 소문을 내야 할까요?
우선, 믿음의 소문입니다. 8절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진 고로" 3절에 바울이 쉬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한 이유를 그들이 가진 '믿음의 역사' 때문이라고 강조합니다.
교회가 세상에 낼 소문 가운데 믿음보다 앞서는 것이 없습니다. 교회는 믿음의 공동체이기에, 믿음을 돈독히 해야 하고, 그 믿음의 소문이 퍼져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뜻이요, 주님의 바램입니다.
일반적으로 믿음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금보다 귀한 믿음'이 있고,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습니다. 전자를 '구원받는 믿음'이라 말하고, 후자를 '역사하는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전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주어지고, 후자는 성도의 노력과 함께 커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 교회가 끊임없이 추구해야 할 믿음은 두 가지 모두 필요합니다.
7.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갔습니다(9).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여기 '돌아와서'는 '방향을 바꾸다'는 의미입니다. 죄악 생활에서 거룩한 생활로, 어두움에서 빛으로 완전히 바뀌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숭배하고, 조상들로부터 이어 내려온 우상을 버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환난 중에서도 말씀을 받은 결과 그들의 마음속에 심어진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로 하여금 우상이 얼마나 헛된 것임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옛 생활을 단호하게 끊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전통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면 여지없이 버릴 수 있는 신앙의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8. 주님의 재림을 대망하며 전도했습니다(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여기 '기다림'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준비를 갖춘 상태를 의미합니다. 특히 데살로니가서는 교리적으로 '종말론'이 주제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계22:20)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주님께서 앞으로 오실 영광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종말신앙은 신앙인의 기본 자세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입니다. 죽음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세상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고 언젠가 끝납니다. 주님은 반드시 이 땅에 다시 오십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세상이 아니라 하늘입니다.
▶종말신앙을 가지십시오. 종말신앙이 우리를 견고하게 세웁니다. 교만하지 않게 합니다. 욕심을 버리게 합니다. 사랑하고 용서하게 만듭니다. 후회하지 않게 합니다.
초대교회는 나만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좋아하는 그런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행5:42에 보면 "날마다 성전에 모여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임을 증거" 하였다고 했습니다.
전도는 신앙생활의 활력소입니다. 또 전도는 주님의 지상명령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자기 지역만 전도한 것이 아니라 전 헬라지역에 널리 전파하였습니다. 주님도 말씀하시기를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선교하는 교회는 힘이 있는 교회가 될 수 있고, 선교하는 교회는 능력 있는 교회가 될 수 있고, 선교하는 교회는 사랑과 소망과 인내가 넘치는 교회가 됩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가 해야할 가장 중요한 과제가 바로 선교와 전도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요, 주님의 마지막 유언이기도 합니다.
선교하고 전도하면 교회는 자연히 믿음의 소문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성림교회가 그런 좋은 소문이 나는 교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원합니다. 하나님은 이른 비도 주시지만, 늦은 비의 축복도 주십니다.
9. 데살로니가 교회는 축복을 받은 교회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주는 교회였습니다. 무엇을 주었습니까? 복음을 주었습니다. 생명을 준 것입니다. 도 선교비를 주었습니다. 그러기에 축복 받은 교회가 되었습니다.
행20:35절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고 하였고, 눅6:38절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안겨주리라" ▶개인도, 교회도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는데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주는 교회, 베푸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잠11:24절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저는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태어난 교회가 아니라 만들어진 교회입니다. 이 교회의 좋은 소문은 우연이 아닙니다. 온 성도가 하나가 되어 전도하는 일에 힘쓰고, 기도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놓치지 않았고,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종말 신앙을 잊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작은 예수로서 주님을 본받아 살았습니다. 그래서 소문이 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이제부터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아름다운 교회! 소문난 교회'가 되도록 우리 모두 노력하고 힘쓰고 죽도록 충성하여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 우리 성림교회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 (2004년 8월 15일 대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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