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19일(수)■
(누가복음 3장) 15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 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7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18 또 그밖에 여러 가지로 권하여 백성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였으나 19 분봉 왕 헤롯은 그의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과 또 자기가 행한 모든 악한 일로 말미암아 요한에게 책망을 받고 20 그 위에 한 가지 악을 더하여 요한을 옥에 가두니라 (묵상/눅 3:15-20) ◆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 (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사람들은 혹시 요한이 그리스도가 아닐까 생각하며 그에게 물었다. 그러자 요한은 명백하게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님을 밝혔다. 구약 성경을 기록한 선지자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등 기라성같은 선지자들이 있지만, 이들은 모두 세례 요한보다 한 단계 아래였다. 세례 요한은 구약의 선지자 누구보다도 더 뛰어난 선지자였다. 그런데도 그는 사람들이 자기를 과대평가하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에 비하면 얼마나 보잘것없는 자인지 한마디로 말했다.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예수님께서 어떤 분인지 알기 전에는 어떻게 해서든 과대평가 받고 싶어서 이것저것을 자랑을 늘어놓지만, 예수님께서 제대로 알고 나면 자기를 자랑할 의욕이 사라지고, 남이 나를 대단하게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부담스러워진다. 말도 못 하게 위대하신 분이 나를 위해 겸손한 모습으로 이 땅에서 오셨고, 심지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제대로 깨닫게 되면 더는 자기를 자랑할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천문학자들이 거대한 우주를 관찰하고 나면 자신이 얼마나 작은 자인가를 깨닫고 잠시나마 겸손해진다고 한다. 하물며 우주보다 크신 그리스도를 깨달은 사람이 어떻게 자기를 자랑하겠는가? ◆ 성령과 불로 세례 주시는 분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16)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의 위대하심을 이 한마디에 표현했다.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그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신다." 성령과 불은 별개인가, 같은 것인가? 어떤 사람은 성령은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은총이며, 불은 불신자들에게 퍼붓는 심판이라고 한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성령과 불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고 주장한다. NIV는 'with the Holy Spirit and with fire.'라고 번역했다. 이 번역에 의하면 성령과 불 앞에 모두 with라는 전치사를 붙임으로써 성령과 불이 별개인 것처럼 했다. 그래서 성령은 알곡에게, 불은 쭉정이에게 임한다. 그러나 헬라어 성경에는 '엔(with, in)'이란 전치사가 하나다. 즉 'with the Holy Spirit and fire'이다. 이것을 보면 성령과 불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말도 일리가 있다. 실제로 사도행전에서 성령이 임하실 때, 불이 혀처럼 갈라져서 사람들에게 임했다고 하셨다(행 2:3). 불은 심판으로 묘사되기도 하지만(히 12:29), 우리 안에 불결한 것을 태워버리는 정화의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사 4:4). 그러므로 양쪽 주장이 모두 일리가 있다. 성령과 불이 하나인지 별개인지는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중요한 것은 우리 주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성령으로 세례 주시는 분이시다. 성도 중에는 물세례만 알고 성령 세례를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많은 사람이 복음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믿음을 가지면서 세계관과 가치관이 바뀌는 체험을 한다. 사실 그것도 성령의 역사이며, 거듭나게 하는 은총이다. 그러나 성령 세례는 단순히 마음을 새롭게 하는 일을 넘어서서 사람을 영적으로 능력있게 한다. 그래서 누가(Luke)는 성령세례를 '위로부터의 능력'(눅 24:49)이라고 정의했다. 성령 세례를 받으면 그는 정말로 참지 못하고 예수님의 증인으로서의 삶이 시작된다. 성령 앞에서는 모든 철학과 각종 이론이 무용지물이다. 그렇게 기독교를 미워하고 온갖 이론으로 공격하던 자도 성령을 받게 되면 천하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게 된다. 중학교 교사 시절에 아침에 교문에서 등교지도를 하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아이들에게 전도하고 있었다. 전도지 한 장 없이 그냥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얘들아, 예수님께서 사랑하신다. 예수님을 믿어라'하는 짤막한 말로 전도하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전도하는 저분은 도대체 왜 저럴까? 저런 전도가 효과가 있겠느냐는 논쟁은 의미가 없다. 그분은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성도 중에는 평생 성령 세례가 무엇인지 모르고 살다가 가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어떤 사람은 거듭난 성도들은 모두 성령 세례를 받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모든 거듭난 성도들에게는 성령이 계시다(롬 8:9). 단순히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을 성령세례라고 정의한다면 그 말도 맞다. 그러나 성령세례는 '위로부터의 능력'이다. 예수님께서 아기였을 때 시므온도 성령이 그 위에 계셔서 예언했다(눅 2:25). 그러나 성령세례를 받은 것은 아니다. 성령세례는 예수께서 승천하신 이후에 임한 것이다. 성령세례를 받으면 그는 참을 수 없는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다. 성령세례를 받은 자는 침묵하는 것이 복음 전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복음 사업에 단순히 돈만 보내주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직접 시간과 열정을 쏟게 된다. 오! 우리 주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시다! 이 세례를 받자. 그래서 능력 있는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자. 성령 세례라는 말이 부담스러우면, 다른 말로 불러도 좋다. 위로부터의 능력을 받자. 우리 주님은 구하는 자에게 얼마든지 충만하게 부어주시는 분이시다. 누가(Luke)는 이렇게 우리에게 주님 약속의 말씀을 전한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 11:13) 이 약속은 놀랍다. 우리 주님은 구하는 자에게 성령 세례를 약속하셨다. 어찌 주저하겠는가? 주님, 오늘도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행하게 해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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