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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강 아모스가 본 두번째 묵시(7:4-6)

by 【고동엽】 2022. 4. 16.

제41강 아모스가 본 두번째 묵시(7:4-6)

 

7:4-6
주 여호와께서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주 여호와께서 명하여 불로 징벌하게 하시니 불이 큰 바다를 삼키고 육지까지 먹으려 하는지라 이에 내가 가로되 주 여호와여 청컨대 그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매 주 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켜 가라사대 이것도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아모스서에는 모두 다섯 개의 묵시가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아모스의 입에 담아주셨던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에 이어서 이번에는 아모스의 눈에, 또 마음속에 생생한 그림으로 담아주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뜻이 아모스에게 얼마나 더 생생하게 와닿았겠습니까?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도 단순히 입으로 읽는 것에 그치지 말고 그 광경을 머릿속으로 가만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예컨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말씀을 그 말 그대로만 읽지 마시고, 예수님이 두 팔을 벌리고 미소를 지으시며 우리를 영접해주시는 모습을 마음속에 그리면서 읽어보세요. 저절로 뛰어가서 예수님의 사랑의 품에 안기고 싶은 심정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실제로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모든 근심 걱정 염려가 다 사라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품안에서 느끼는 평안과 기쁨을 되찾게 될 것입니다.
오늘 살펴볼 두번째 묵시는 첫번째 묵시와 같은 요소로 되어 있습니다. 묵시의 기원, 묵시의 내용, 선지자의 간청, 여호와의 응답으로 되어 있습니다.
(7:4) 주 여호와께서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주 여호와께서 명하여 불로 징벌하게 하시니 불이 큰 바다를 삼키고 육지까지 먹으려 하는지라
"또 내게 보이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아모스가 두번째 묵시를 보았다는 말입니다. "주 여호와께서"라는 말은 묵시의 기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묵시의 내용은 "이러하니라"고 하는 말 뒤에 밝히고 있습니다. 아모스가 본 묵시의 내용은 주 여호와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에 신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첫번째 묵시나 두번째 묵시나 같은 내용인데 하나님께서 아모스에게 두 번 반복해서 묵시로 보여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앞으로 일어나게 될 사건이 너무나도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다음에 묵시의 내용을 보겠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명하여 불로 징벌하게 하시니 불이 큰 바다를 삼키고 육지까지 먹으려 하는지라"고 했습니다. 불은 징벌과 연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불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불의 정체가 무엇이겠습니까? 무엇을 상징하는 것이겠습니까? 경우에 따라서 불은 전쟁을 상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보니까 "불이 큰 바다를 삼키고"라고 했습니다. 우선 큰 바다가 무엇입니까? 우리말 성경에 "큰 바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테홈(    )은 본시 깊음을 의미합니다.
(창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창7:11) 노아 육백 세 되던 해 이월 곧 그 달 십칠일이라 그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시36:6) 주의 의는 하나님의 산들과 같고 주의 판단은 큰 바다와 일반이라 여호와여 주는 사람과 짐승을 보호하시나이다
(사51:10) 바다를 넓고 깊은 물을 말리시고 바다 깊은 곳에 길을 내어 구속 얻은 자들로 건너게 하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니이까
아모스 본문에서 "큰 바다"라고 번역된 말은 땅을 적시는 원천이 되는 깊은 샘을 의미합니다. 샘과 강물의 근원이 되지요. 다시 말해서 "불이 깊은 샘을 다 삼키고 육지까지 먹으려 하는지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불은 이글거리는 태양을 상징한다고 보는 것이 좋습니다. 본시 이 깊음은 문자 그대로 깊어서 어떤 것도 이것을 말릴 수 없습니다. 사실 땅 속 깊은 곳에는 언제나 충분한 양의 지하수가 있습니다. 사막 같은 곳에 오아시스가 있다는 것은 그 속에 지하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지자가 보니까 불의 세력이 얼마나 맹렬하던지 깊은 샘의 근원들을 모두 말려버린 후 이제는 모두 땅까지 먹으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있는 물까지도 다 말려버리는 것은 물론 이제는 땅까지도 다 녹여 버릴 기세로 덤벼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농부들의 고통이 얼마나 절박하겠습니까?
그 절박함을 보고서 선지자 아모스가 어떻게 했습니까? 사실 아모스는 선지자이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그대로 전하면 책임이 다 끝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모스는 다시 한번 이스라엘의 입장에 서서 중보 기도의 손을 높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모스는 한편으로는 하나님 편에 선 선지자의 역할도 감당하고, 또 한편으로는 백성들 편에 선 제사장의 역할도 감당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아모스와 같은 심정으로 늘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이웃, 가족이 잘못된 길로 나가면 우리는 선지자적인 사명을 가지고 그들을 깨우쳐주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에게는 제사장적인 사명이 있습니다. 눈물과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남의 아픔을 나의 아픔을 여기고, 남이 잘못한 것을 탓하기 전에 내 탓으로 여기면서 내가 대신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5절 말씀을 봅니다.
(7:5) 이에 내가 가로되 주 여호와여 청컨대 그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매
아모스는 다시금 "주 여호와여!"하면서 주 여호와께서 자비를 베풀어주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불을 명하신 분이 누구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그분만이 불을 제거하실 능력과 권세가 있으십니다. 그래서 아모스는 하나님에게 간구하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육신의 질고 때문에 고통 당하시는 분이 있으십니까? 우리 몸을 지으신 분이 누구십니까? 우리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한 부분도 강하게 하실 능력과 권세가 있으신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천지를 만드시고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병이 아무리 중할지라도 못 고치는 것이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오늘 매달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시여, 하나님은 나를 만드시고 나를 창조하셨사오니 나의 모든 병도 고쳐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하오니 자비를 베풀어주옵소서. 이 시간 주님의 능력의 손으로 저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주옵소서. 세상 의사들의 손으로 고치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하나님께는 능치 못할 일이 없나이다. 주여, 청컨대 고쳐주옵소서."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시고 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기적의 역사를 꼭 맛보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른 기도의 제목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이미 우리들에게 천국의 모든 신령한 복으로 다 주셨습니다. 기쁨, 사랑, 평안, 능력도 주셨습니다. 모든 지혜와 총명도 넘치도록 주셨습니다. 우리 주변의 환경 때문에,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신령한 복들을 빼앗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천국의 시민입니다. 비록 잠시 잠깐 동안 어지러운 이 세상에 살지만 우리의 시민권은 저 하늘 나라에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늘 나라 시민으로서의 특권을 그대로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의 시민답게 당당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5절에 있는 말씀을 다시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2절에 있는 간청과 동일하지만 한 가지가 다릅니다. 무엇이 다릅니까? "사하소서"라는 말이 "그치소서"라는 말로 바뀌었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시간적으로 대단히 위급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다 불타 없어지기 전에 불부터 그치소서"라는 말입니다. 아모스의 절박한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아모스가 간청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이스라엘은 너무나도 약해서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는 서 있을 수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진노 가운데서도 긍휼을 베풀어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스라엘의 회개에 기인한 것은 아닙니다.
과연 하나님은 아모스의 간구를 들으시고 진노 속에서도 긍휼을 베푸시사 뜻을 돌이키셨습니다. "이것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비록 이스라엘은 회개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심판을 연기하셨습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회개만 하였던들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악을 기억조차 아니하시고 "그래, 잘 돌아왔다. 내 아들아!"하고 탕자를 영접하시던 그 모습으로 이스라엘을 영접하시고 복주셨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가운데 아무리 중한 죄를 가지고 있는 이가 있다 할지라도 주저하지 말고 이 시간에 다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실 것입니다. 주홍빛보다도 더 붉은 죄를 흰 눈보다 더 희게 씻어주실 것입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죄를 멀리 옮기시며, 깊은 바다에 빠뜨릴 것이며, 기억조차 아니하실 것입니다.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죄를 감추려고만 하지 말고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시옵소서. 저는 이처럼 연약한 죄인입니다. 제 모습 이대로 주께 왔사오니 저를 받아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6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7:6) 주 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켜 가라사대 이것도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심판이 일어나지 않겠다고 다시 한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은 무한하십니다. 과거에 베푸신 자비와 사랑이 거역함을 당했다고 해서 거기에 따라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제약을 받는 것은 아닌 줄 압니다. 일흔 번에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끝없는 사랑이요, 하나님의 용서는 한없는 용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 시간 우리의 영을 맑게 해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지 못한 것들을 다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애통하는 자는 위로를 받을 것이고, 회개하는 자는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 성도의 눈물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이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악의 무거운 짐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다 풀어놓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자유함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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