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축복의 통로가 되자! (창 12:1-4)

by 【고동엽】 2022. 2. 10.

축복의 통로가 되자! (창 12:1-4)

 

미국에 가면 '메사추세스' 주에 '뉴 샴푸톤'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약 35,000명이 사는 작은 도시인데 거기는 특산물이나 관광 물은 없지만 조그만 오두막집 하나로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그 집 앞의 간판에는 '이 집은 비록 조그만 하지만 이 집은 미국 역사를 새로 만들어 낸 위대한 집입니다'라고 써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아래에 그 집에서 나온 인물들을 기록하여 놓았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 그 오두막에 집을 짓고 남편 조나단과 그 아내 사라가 가정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그들은 초라한 부부로 이름 없는 가문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12명의 자녀를 낳았고 그 후 4,5대에 걸쳐서 후손이 늘어가는 중에 부통령이 하나, 13명의 대학 총장, 3명의 주지사, 3명의 시장, 149명의 변호사, 48명의 판검사, 116명의 목사, 75명의 사업가, 25명의 발명가, 66명의 교수, 82명의 차관급 공무원, 68명의 의사가 배출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학자들이 그 가문을 연구한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결론은 조나단과 사라는 12명의 자녀에게 하나님을 잘 믿는 신앙을 축복으로 물려주었다는 것입니다. 조나단과 사라는 후손들에게 복의 근원(통로)이 된 것입니다. /할/
그렇습니다. 우리도 자식들에게 큰 재산을 물려주는것도 귀하지만 신앙을 물려주는 것이 더 큰 축복입니다. /믿/ 오늘은 복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갈대아우르에서 데라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나이 75세에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그러면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땅 가나안으로 갔습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거부가 되었고, 100세에 자식을 얻었으며, 175세까지 살다가 평안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의 족보를 보면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에서와 야곱을 낳고, 야곱의 열두 아들은 이스라엘의 12지파가 되어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 축복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후손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게 되었고 온 인류가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과 축복을 받았습니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고 말씀에 기록된 대로 '복의 근원'이 된 것입니다. 이 말은 의역해 보면 '너는 복의 통로(뿌리)가 될지라'라는 말입니다. /할/
우리도 이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바로 서면 아브라함의 복이 네 복이 됩니다. 갈3:14절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할/ ◀제목 소개!▶

 

1. 1절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①아브라함을 불러주신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아브라함이 먼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아브라함을 부르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신문지상에 간혹 대통령이 모범 시민을 청와대로 초청하였다는 기사를 보게 되는데, 그 사람은 그만한 자격이 있고, 그만한 일을 하였기 때문에, 대통령을 만나 뵙는 영광의 자리에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다는 것은, 대통령이 부른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부름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만큼 무슨 선한 일을 했기 때문이 불렀습니까? 아닙니다. 아무 자격이 없음에도 불러주신 것, 이것이 축복입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를 흔히 '십자가의 종교, 또는 사랑의 종교'라고 말하는데, 거기에 한가지 더 부친다면 기독교는 '부름의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롬8:30절에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이처럼 기독교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고 또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내가 하나님을 부르는 '부름의 종교'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을 부르신 그분이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불러서 목사로, 집사로, 성도로 세워 주셨습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교회는 부름의 공동체입니다. 교회란 헬라어로 '에클레시아' '부름 받은 자들의 무리'라는 뜻입니다. 자격이 있어서 불러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선택해서 불러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선택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선택해 주신 하나님께 충성해야 합니다. /믿/
여기 '여호와께서'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부르심으로서 '은혜의 선택'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간절히 기도하면서 '하나님! 나를 불러주소서!' 이래서 불러주신 것이 아닙니다. 오늘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부르셨습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소명'이라고 합니다. 본문에 보면 '여러 사람에게 이르시되'가 아니고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부르심은 개인적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구원과 생명과 하나님의 축복은 언제나 개인적입니다. 아버지의 믿음으로 자식이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아내의 믿음으로 남편이 구원받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철저하게 1:1의 관계입니다.
▶부르심의 3단계가 있습니다.

⑴나를 부르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을 수 있는 영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모세는 호렙산의 불꽃사이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고, 다윗은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베드로는 닭 우는소리에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고,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거꾸러져 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나를 부르시는 하나님, 여러분을 부르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오늘 이 자리가 주님 만나는 자리입니다.
⑵응답하는 단계가 있습니다. '예, 하나님! 내가 여기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네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고백했지만, 아담은 하나님이 부르시니까 숲 속으로 도망갔습니다. 지금도 아담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에 도망가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뛰어 받자 벼룩입니다.
⑶결단의 단계입니다. 믿음의 길은 곧, 결단과 선택의 연속임을 알아야 합니다.


②첫 번째 부르심의 명령은 '떠나는 생활'입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고향을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버릴 것을 명령하십니다. 성경은 역설적입니다. 버리지 않는 자는 취할 수도, 얻을 수도 없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기 위해 먼저 버릴 것을 요구하십니다.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이 말씀 속에 몇 가지 뜻이 있습니다.
⑴옛 생활을 청산하라는 뜻입니다. 엡4:22-24절에서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러니까 '옛 생활을 버려라'고 하십니다. '죄를 버려라'고 하십니다. 즉 '회개하라'는 말씀이고, 결심하고 결단하여 지키라는 것입니다. /믿/
⑵우상숭배에서 떠나라는 뜻입니다.
⑶자기중심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모든 것을 끊으라는 뜻(눅14:26)입니다.
⑷육신의 생각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롬8:6절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우리는 이래봬도 하늘나라 시민권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천국 시민의 법도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믿/ 그래서 우리는 육신대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 /아멘!/
⑸이기적인 생활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삶 속에 커다란 희열이 있습니다. ▶외나무다리에서 개 두 마리가 만났습니다. 개들은 서로 먼저 가겠다고 으르렁대면서 싸우다가 그만 둘 다 물어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양 두 마리가 역시 다리 위해서 만났는데 양들은 개들과는 달리 서로 인사를 나누고 한 마리가 엎드려주니 등을 타고 넘어가서 둘 다 무사히 건넜다는 이솝의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대접을 받고 섬김을 받으려 하시지 않고 오히려 많은 사람을 섬기며 목숨을 버려 남의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는 희생이 있었기에 만민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⑹본토도 버리라고 합니다. 사실 버린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굉장한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가장 믿음직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고향입니다. 그런데 지금 아브라함은 전라도에서 강원도로 옮기라는 말이 아닙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이민을 가는 것입니다. 낯설고, 물설고, 풍속과 언어와 습관이 다른 곳으로 가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당시 갈대아 우르는 굉장히 문명문화가 발달한 곳이랍니다. 지금부터 4000년 전인데도 고고학의 재료에 의하면 학교가 세워졌고, 대중목욕탕이 있었고, 도서관이 있었습니다. 이런 문명이 발달한 고향 본토를 떠나라고 하니 참으로 결단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인간적으로 의지하고 마음먹고 살아있는 그곳을 떠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가 이 땅에서 의지하고 있는 것들을 한 번씩 흔들어 보십니다. 돈을 특별히 의지하고, 돈 때문에 신앙이 자라지 못하는 사람에겐 돈을 잠깐 흔들어서 돈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서 깨닫도록 하는 은혜를 주십니다.
본토는 자기중심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자기중심, 자기의 본바탕을 전부 끊으라고 하십니다. 자기의 본바탕을 전부 쏟아버리고 그곳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차곡차곡 채우시기를 바랍니다. /할/
⑺본토뿐만 아니라 친척집까지 떠나라고 하십니다. 살아가는 데는 돈도 중요하지만 인간관계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사람은 외로워서는 못삽니다. 미국에 이민을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은 고생해서 돈은 벌겠지만 그들의 가장 큰 병은 고독,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 병, 외로움이 가장 크다고 합니다.
감방에서 가장 큰 형벌은 독방에 넣는 것이랍니다. 오늘 친척을 떠나라고 한 것은 인정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인정에 얽매이고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야! 낚시 가자, 산에 가자, 동창회 가자, 향우회 가자'는 소리가 많습니다. 그런데 성도는 그런 인정을 따라 가다보면 신앙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인정을 끊을 때는 인정 사정없이 과감히 끊어야 합니다. /아멘!/
⑻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십니다. 그 당시 그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섬겼으므로 우상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또 아비 집을 떠나라는 것은 세상 전통과 풍속, 습관 그리고 의지하고 살던 모든 것을 떠나라는 뜻입니다.
주님을 따라가는데 방해되는 세상의 권세와 명예, 돈, 인기, 영광을 떠나야만 생명의 길을 걸을 수가 있습니다. 보이는 우상만이 우상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이 우상일 수도 있습니다. 우상은 어떤 형태만이 아닙니다. 성경 속에 우상의 개념은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고 빠지는 것을 다 우상으로 봅니다.
마19장 예수님을 찾던 젊은 부자는 하나님보다 더 재물을 사랑했기에 생명의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오해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친척이고, 친구고 담을 쌓고 끊고 살아야 하느냐?'는 오해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이 떠나라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하면 너희가 만약 그런 것을 '본토, 친척, 아비'를 의지하고 있다면 그 의지하는 마음을 끊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무슨 일이 있으면, '땅이 있으니 괜찮다, 우리 삼촌이 청와대 비서관인데' 이런 생각을 가지면 하나님께 기도하기는커녕 '땅이 있으니 든든하다 배경이 있으니 큰소리치는 놈 나와 보라고 해' 이렇게 되어 버립니다.
떠나라는 것은 한마디로 땅 위에 있는 모든 것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의미입니다. /이해가 되면 아멘!/할/


▶우리가 떠날 것이 무엇입니까?

⑴죄악에서 떠나야 합니다. 죄가 있으면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시지를 않습니다. 죄는 어떤 말로도 합리화시킬 수 없고 어떤 모양으로도 흉내도 내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과감하게 버리고 떠나야지 가까이 하면 반드시 오염이 됩니다.
⑵불 신앙, 불순종에서 떠나야 합니다. 무엇이 죄인가? 믿음으로 하지 않은 것이 죄입니다. 롬14:23절에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할/
⑶신앙생활에 방해가 되는 모든 나쁜 습관에서 떠나야 합니다. /아멘!/
▶떠남의 의미는 무엇인가?

⑴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응답이며, 하나님의 이끄심에 대한 순종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⑵또 떠남은 삶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떠남은 새로운 은혜를 입는 길입니다. /아멘!/
▶떠남이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⑴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떠날 수 없고, ⑵말씀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떠나지 못합니다.


③두 번째 명령은 '하나님이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여기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것은 성별 된 새 이스라엘을 건립할 가나안 땅으로 가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위대한 신앙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 배경을 바울은 히11:8절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이 말씀을 대할 때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얼마나 믿음과 순종의 사람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떠나라고 하니까 다 버리고 떠났습니다. 또 약속의 땅으로 가라 하니까 그 땅에 대한 사전 지식도 없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같다는 사실에 순종하는 믿음을 봅니다.
여러분, 신앙 안에서 복 받는 첫째 비결이 순종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 인들이 다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지금 아브라함의 나이가 75세인데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평생 자기의 생각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기 때문에 축복의 근원이 되어졌습니다.
여러분! 앞에 뚜렷한 목표가 보이지 않아도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도 손에 잡히는 것이 없어도 귀에 들리는 것이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니 내가 믿나이다. 이런 신앙만 있다면 산이 옮겨집니다. 홍해가 갈라지고 여리고 성이 무너지며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믿/아멘!/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면 기적이 생깁니다. 여리고 성도 지시대로 순종했더니 무너졌습니다. 나아만도 지시대로 순종했더니 문둥병이 나았습니다.
날 때부터 눈먼 소경을 보고 제자들을 예수님에게 그것이 부모의 죄냐 자신의 죄냐 묻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부모의 죄도, 자신의 죄도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하시고 그를 불러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을 발라주고 저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소경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했을 때 두 눈이 번쩍 떴다고 요한복음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신앙은 모험입니다. 모험이 없으면 축복도 없습니다. 떠나라고 할 때 떠나시기 바랍니다. 죄에서 불의에서, 불 신앙에서 불순종에서 떠나시기 바랍니다. /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일평생 걸어갔습니다. 그의 아들, 이삭도 그의 손자 야곱도 가나안으로 갔습니다. 요셉은 죽은 유골이라도 가기를 원했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발걸음이 가나안을 향해 가는 발걸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향해 달려가는 발걸음이 되어야 합니다. /할/

 

2. 하나님의 말씀의 순종한 아브라함에게 어떤 복이 임했는가?(2-3)

 

구약 성경에는 복이라는 말이 310회 나오는데, 창세기에서만 88회가 나옵니다. 그만큼 창세기의 하나님은 인간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으로 나타납니다.
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 '내가' 라는 말이 5번나옵니다. 이는 그 일을 여호와 하나님이 친히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즉, 이루시고 성취시키시는 이가 하나님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복의 출처는 하나님이십니다.
①'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아마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이 말씀을 주셨으면 한마디로 '웃기네!'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75세, 그 아내 사라는 65세에 자식하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늙은이들에게 큰 민족을 이룬다니 누가 곧이듣고 믿겠습니까?
현대인들은 감각적으로 믿습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져 보고, 입으로 맛을 보고, 코로 냄새를 맡아보고 느낍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무조건 믿었습니다. 생명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오,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심을 믿었습니다.
인격적인 사고방식과 어떤 계산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음을 아브라함은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100세 때 이삭을 허락하시고 아브라함의 후손이 영적으로, 육적으로 큰 민족을 이루어 나갔습니다.
여러분! 유대민족이 얼마나 강하고 얼마나 큰 민족인가를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잘 압니다. 유대민족이 1948년 이스라엘 나라를 재건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정말 기적 중에 기적입니다. 2천년 동안 나라 없는 백성이었습니다. 그것은 나라는 없을지라도 그 민족들이 이스라엘 땅에 함께 모여 살고 있었더라면 괜찮을 것이지만 그들은 이스라엘 땅에 살지 못하고 그 땅을 아랍 사람들에게 빼앗겨 버리고 세계 방방곡곡으로 뿔뿔이 흩어져서 2천년 동안 방황하며 살아온 백성들입니다.
나라 없이 국토라는 땅덩어리도 없이 남의 나라에서 이리 저리 흩어져서 살아온 민족들입니다. 그것도 수난을 숱하게 받았습니다. 로마시대는 유대인 200만 명이 학살당한 기록이 있고,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의 히틀러에 의하여 600만이 넘는 유대인들이 학살당했습니다. 그렇게 비참한 박해를 받아가면서도 2천년동안 나라 없이 돌아다니던 그들이 팔레스타인 땅에 한 나라를 다시 건설할 수 있었다는 것이 기적입니다. /할/
역사의 기록을 보면 세계 제1차 대전을 독일과 터키 연합군대에 대한 영국과의 전쟁이었습니다. 한참 전쟁이 치열할 때, 영국은 화약이 떨어져 곤경에 빠졌습니다. 그때는 수지에서 화약을 뽑아냈을 때입니다.
그럴 때 영국 맨체스터 대학에 화학교수인 '와이만치' 박사가 화학적으로 화약을 만드는 법을 발명했습니다. 그 결과 영국을 화약을 대량생산 압도적인 화력으로 독일과 터키 연합군을 격파하고 터키가 점령하고 있던 팔레스틴을 점령했습니다.
영국은 1차 대전 승전국으로 의기양양했습니다. 영국의 왕실은 전쟁의 일등 공로자인 와이만치 박사를 불러 '경이 위대한 전적을 남겨 포상하려고 하는데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와이만치 박사는 '나는 유대인입니다. 그러므로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이 들어가 발붙일 곳을 주십시오.'
그러자 영국의 정부는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1917년 11월 2일 발포 외상을 통해 유대민족이 팔레스타인 귀환을 허락한다는 선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감격에 눈물을 흘리며 팔레스타인으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1930년 독일 나치정권의 유대인 박해로 600만이 학살되자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도망쳐서 팔레스타인은 유대인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팔레스타인의 아랍민족과 유대 민족 간에 끊임없는 갈등과 투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영국은 이 때문에 골머리로 앓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1947년 영국 총독부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UN에 상정했고, 유엔은 팔레스타인 분할 안에 동의하여 이스라엘과 아람 민족 간에 지역을 나누어주게 된 것입니다. 이 결과 나라를 잃고 2천여 년을 세계에 흩어져 살던 이스라엘민족은 1948. 5. 15 독립을 선포한 독립국가로 출범했습니다.
여러분! '왜 이스라엘 나라의 독립이 중요 하느냐?'하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루어 주신 것을 약속한 것을 이스라엘의 독립을 통해서 곧 주님 재림의 때가 결정되어서 영원한 영적인 새 땅과 새 예루살렘이 곧 도래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할/
예수님의 비유를 보십시오! 마24:32-33절에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독립을 못함으로 죽을 것만 같았던 이스라엘 그 무화과가 1948년 5월 15일에 와이만치 박사를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해서 독립국가로 나섬으로서 다시 잎사귀를 내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독립한 후 아람은 총 단결해서 이스라엘을 없애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의 섭리로 이스라엘을 세우셨기 때문에,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민족이기에 아랍진영이 총공격을 해도 이스라엘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1948년 5월 14일부터 11월 6일까지 여섯 달 동안 일억의 아랍과 300만 이스라엘과 전쟁이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아랍이 패하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 1956년 10월 29일부터 11월 2일까지 이집트가 수에즈운하의 국유화를 단행하자 이스라엘이 시나이 반도를 공격했습니다.
당시 이집트가 참패하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에 이스라엘은 1967년 6월 5일부터 10일까지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연합군과 유명한 6일 전쟁을 치러 승리했고, 이 전쟁의 승리로 골란 공원을 차지했고, 예루살렘 옛 성지를 완전히 회복했습니다.
이후 이스라엘은 1973년 10월 6일부터 20일까지 이집트 연합군과 또 전쟁을 했습니다. 이 전쟁은 유명한 10일 전쟁입니다.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이 취임하자 곧 일으킨 이 전쟁도 이스라엘의 승리로 돌아갔습니다.
이스라엘의 승리는 전쟁사적으로 보면 기적입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이 곳곳마다 이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이 직접 싸워 주셔서 이겨줍니다. /믿/
오늘 이스라엘의 역사를 자세하게 말씀드린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확증한 것도 되지만 때가 심히 가깝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아멘!/
②'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 명성, 명예의 축복입니다. 이 말은 '너희는 하나님의 선민이다. 그러므로 그 이름이 모든 사람들 위에 빛날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③'복에 근원이 될지라' 여기 근원이란 말은 '샘터, 샘 줄기, 통로'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샘물이 쏟아 나서 많은 사람들에게 마시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상용구절인 히6:13-15절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복의 출처가 어디인가? '내가 반드시' 본문의 배경 성구인 창22:16-17절에 '여호와께서'라고 했습니다. 복의 출처는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반드시'라는 말은 하나님의 필연성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하나님 자신의 약속입니다. 하나님 자신의 기쁘신 뜻에서 이러한 복과 번성의 약속이 유래되었습니다.
창1:28절에 '하나님이 그들에게(아담과 하와)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고 하셨던 그 분만이 복의 근원이시며, 영원한 복의 출처입니다. 하나님의 자기선언은 자신의 맹세와 약속으로 그의 신실함을 확증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러한 자기 선언에 거짓말을 할 수 없다고까지 하셨습니다(히6:16-18).
하나님은 반드시 복에 복을, 번성에 번성을 주겠다고 맹세하고 약속했습니다. 이 맹세와 약속에 대해서 하나님은 결코 거짓말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복과 번성이야말로 확실한 것입니다. 그것은 밝은 소망입니다. 왜냐하면 살아 계신 하나님의 복이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그 뜻이 일정하사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멘!/
▶복의 대상이 누구입니까?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고 했습니다. 여기 '너'는 아브라함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모든 자들의 표상입니다(히6:17). 그렇다면 이 복의 대상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란 구원받기로 작정된 하나님의 선택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과 번성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약속된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복의 대상은 예수 믿는 신자들입니다. 예수쟁이입니다.
▶복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⑴복과 번성이란 무엇인가? 구약성경에 말하는 '복'에는, '하나님께 무릎을 꿇다. 바르게 가다(걷다). 똑바르다, 바로 세우다. 즐겁다, 기쁘다, 선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복'이란 하나님의 요구를 따라 그 앞에 무릎을 꿇고(예배), 그를 쳐다보고 걸어가며(방향), 그를 기쁘게 하는 것(목적)을 의미했습니다. /할/
'번성'이란 물질과 자녀와 경영의 형통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복이 약속된 자들은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자요, 하나님의 향하여 걸어가는 자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입니다. 창12:2절에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라는 말씀은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복과 번성'의 약속을 직역한다면 '나는 너에게 가장 큰복을 주어서 많아지고 많아지게 할 것이다'입니다. /아멘!/
⑵복과 복, 번성과 번성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창22:17절에 '큰 복'이라고 했습니다. 그 큰복의 내용은 무엇인가?
㉠메시아 곧 구원을 의미합니다. 창22:18절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씨'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가문에서 출생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구원 사역을 의미합니다. 말하자면 예수를 통한 구원의 복을 의미합니다. 이는 큰복이요, 첫째가는 복이요, 생명에 이르는 영생의 복입니다. /할/
㉡영적 후손의 번성을 의미합니다. 창22:17절에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또 창12:2절에 '큰 민족을 이루고', 또한 창15:5절에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고 했고, 창17:6절에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 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니'라고 표현했습니다.
이것은 바로 신약 교회 운동의 번창과 번성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한 가정에서 한 사람의 신자로 말미암아 가족, 이웃, 교회까지 확장되어지는 신령한 크리스천의 수효가 많아지는 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멘!/
㉢명예와 물질의 복을 의미합니다. 참으로 아브라함과 그의 신령한 자손들이 움직이는 모든 세계는 예외 없이 그들의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아들 이삭에게 큰 물질적 상속을 남겼고, 이삭은 야곱에게 또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선한 명예와 물질적 복의 머리(아비)가 된다는 약속입니다.
㉣승리의 약속을 의미합니다. 창22:17절에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이는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계승하는 신령한 천국운동을 승리로 뜻하고 있습니다. /할/ 그러므로 예수 안에 있는 것이 축복입니다. /믿/
▶구 소련의 3대 기적이 있습니다. 나무는 많은데 종이가 없고, 원유는 많은데 휘발유가 없고, 땅은 넓은데 식량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습니까? 러시아나 공산혁명을 일으킨 후 아브라함 후손들을 저주하고, 핍박하고, 교회를 파괴하고 주의 종들을 시베리아로 유배시킬 때 그 땅에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고 그 땅에는 하나님의 축복의 문이 닫히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나라는 모든 것이 없는 나라가 됩니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나라는 모든 것이 잘 되는 나라가 됩니다. /아멘!/
⑶무엇이든지 근원이 있습니다. 아무리 큰 한강도 흐르기 시작하는 근원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주의 근원이 있고 복의 근원이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통로)입니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아브라함은 땅의 모든 족속의 복의 근원이 될 것을 하나님께서 예언하셨습니다. 그 예언대로 아브라함은 엄청난 복을 주셨고, 그 후 아브라함 후손들이 엄청난 복을 받았습니다. 미국 40대 재벌 중에 24명이 유대인이랍니다. 우리도 이 복을 받아야 합니다. /할/
㉡아브라함은 믿음의 근원(통로)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근원입니다. 그의 믿음은 흘러, 흘러 온 민족에게 미치고 있습니다. 바울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롬4장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믿는 사람의 조상이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의 믿음의 절정은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바칠 때라고 했습니다. 히11:17절에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할/
㉢아브라함은 기도의 근원(통로)입니다. 아브라함은 기도의 사람입니다. 조카 롯이 소돔과 고모라에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를 유황불로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셨습니다. 너무나 음란하고 죄 많은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되지 않기 위하여 50명의 의인이 있으면 구원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의인 50이 없었습니다. 45명만 있으면, 40명만, 30명만, 20명만 있으면 구원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그래도 없으니까 마지막 기도는 10명 의인이 있으면 구원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10명은 꼭 있을 줄 알았습니다. 롯과 롯의 아내 그리고 두 딸 그리고 두 사위, 그리고 두 사위 부모 이렇게 하면 10명입니다. 그러나 의인 10명이 없어서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기도는 그치지 않고, 롯의 가정만이라도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서 조카 롯의 가정을 살려냈습니다. /할/
㉣아브라함은 사랑의 근원(통로)입니다. 아브라함은 사랑의 사람이었습니다. 창18장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을 마음에 품고 살았는지 충분히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마므레 상수리나무 밑에 앉아 쉬고 있었습니다. 나그네 세 명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에게 달려가 몸을 굽혀 인사하고, 발을 씻어 드리고, 기름진 좋은 송아지를 잡아 그 나그네들을 대접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나는 지나가는 나그네를 집안에 모셔놓고 발을 닦아주고 송아지를 잡았다는 말을 아브라함 이외는 어디에서도 들은 적도 본 적도 없습니다. /할/
④'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복을 내리고' 하나님이 내편이 되고 내가 하나님 편이 되는, 하나님과 한편이 되는 축복입니다. 또 이 말씀은 아브라함이 복을 빌면 하나님이 들어주시겠다는 주의 종의 축복권입니다.
⑤'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내가 저주하리니' 하나님께서 모든 저주를 막아주시고 또, 보호하시는 축복입니다. 또 이 말씀은 아브라함을 누가 해하거나 손을 대면 하나님이 손을 대겠다고 하셨습니다. 애굽 왕 바로가 아브람 아내를 취하였다가 혼이 난 적이 있습니다. 하여튼 아브람을 저주하면 저주하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저주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⑥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다시 한번 메시아의 복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은 아브라함의 후손 가운데 천하 만민을 구원할 그리스도를 보내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창22:18절에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약속의 말씀대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가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멘!/
여러분! 우리도 아브라함이 받은 이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면, 하나님께서 우리편이 되시고, 내편이 되신다면, 우리는 결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자 요셉은 가는 곳마다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는 보디발의 집에 팔려 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요셉을 축복하시니까 보디발의 집도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창39:5절에 '그가 요셉에게 자기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복 있는 사람은 가는 곳마다 축복이 따라옵니다. 회사를 가면 그 회사가 잘 됩니다. 집안에 있으면 그 집이 잘 됩니다. 나라도 형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축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할/

 

3. 아브라함의 결정적인 축복의 원동력은 무엇입니까?(4)

 

4절에서 중요한 말씀은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그러니까 '좇아갔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쫓아갔던 것이지 다른 것을 쫓아가지 않았습니다. 보이는 어떤 증거를 쫓아간 것이 아니고 오직 말씀을 쫓아갔으니 얼마나 귀한 신앙입니까? 롬4장에서 바울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바라볼 수 없는 중에도 바라보고 믿고 달려간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아브라함은 말씀을 행동의 절대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여러분! 해바라기는 어느 곳에 있든지 항상 태양을 향한다고 합니다. 성도의 참모습은 태양을 향하는 해바라기처럼 언제나 하나님을 향하는 모습이어야 합니다. 이것을 가리켜 신앙심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신앙심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확고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 약속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 성경 66권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자신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을 따라가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인간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항상 현실보다 미래를 생각했습니다. 자기 계획보다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택했습니다. 하나님 편에 서서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기적적인 축복과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