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스런 사람들의 위험성 눅3:15~17
오늘 본문 말씀은 눅3:15~17절입니다.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우리 한국교회는 선교 사상
그 유래를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큰 부흥을 이룬 교회입니다.
왜 우리 한국교회가 그렇게 부흥하고
남달리 다른 나라와 달리
빠른 성장을, 큰 성장을 하게 되었을까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한국교회 목회자들
또 장로님들, 직분자들, 교인들의
교회에 대한 충성도가
다른 나라하고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기 때문이 아닐까요?
열심, 충성, 헌신, 이런 면들이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의 큰 부흥과
성장을 이루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성장하던 한국교회가
어느 시점을 지나니까 정체하기 시작하고
그 다음에 퇴보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100주년을 맞이할 때쯤에
한국교회는 무서운 부흥이 있었습니다.
제가 신학교 들어갈 때에는
교회들이 그렇게 크지 않았어요.
그런데 제가 신학교 졸업할 때
1978년인가? 1970년대 말 즈음이 되니까
그러니 70년대 말, 80년대 초
1984년이 아마 100주년이었을 터인데
그즈음에 교회는 거의 대개 배가했어요.
그래서 교회들이 얼마나 커졌는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한국 기독교 선교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은근히 기대가 있었어요.
‘100주년을 기점으로 한국교회는 더 폭발할 것이다!’
그런데 100주년을 넘어서면서
한국교회는 더 이상 성장세를 멈추었어요.
그러곤 정체기에 들어서더니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어요.
지금 모든 교단의 통계를 보면
해마다 교인들이 줄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섬기는 (통합) 교단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큰 교단 중에 하나인데
저희 교단도 많이 줄어져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성공 속에 패망의 인자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게 아마 경제계나 경영 쪽에서 쓰는 말인 거 같아요.
굉장히 지혜로운 말이고
굉장히 중요한 말이에요.
‘성공 속에 패망의 인자가 있다’ 라고 하는 것이에요.
그것은 ‘성장 속에 패망의 인자가 있다’는 말로도 표현할 수도 있어요.
우리 한국교회 부흥과 성장 속에 있었던
패망의 인자가 뭘까요?
성공의 인자가 충성이었거든요. 우리 한국교회에
근데 그 충성 속에도 패망의 인자가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충성 속에 있는 패망의 (원)인자가 뭘까요?
여러분 충성하다 보면
열심히 하다 보면
사람들의 인정을 받게 돼요.
우리 목사님들의 헌신 때문에
우리 장로님들의 수고, 헌신 때문에 교회가 부흥했다...
그래서 칭찬받고 인정받으면서
점점 뭐가 되는가 하면
지도자가 돼요.
그 지도력이 굉장히 강력해져요.
많은 사람들의 전적인 신뢰를 얻으면서
그 지도력이 점차 지배력으로 바뀌어요.
선한 지도력이 인간적인 지배력으로 바꾸는 순간이
이게 패망의 인자인 것 같아요.
그러면서 점점 어떻게 되는가 하면
교회를 지배하기 시작해요.
그러다가 교회의 주인이 바뀌어요.
하나님이 주인이신 교회가 아니라
목사가 주인인 교회가 되고
돈 많이 내고 헌신했던 장로가 주인이 되고
그리고 오래 다닌 사람들이 주인이 되고
이러면서 교회는 경직돼요.
그리고 정체해요.
그리고 교회는 타락해요.
충성은 섬기는 것이지
지배하는 것이 아닌데
충성을 열심히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지도력이 커지고
지배하게 돼서.. 섬기는 자가 되지 않고
지배하는 자가 되는 것이고요.
근데 그 지배하는 것에 맛이 있거든요.
그 지배하는 맛에 들리면
그것을 통해서 점점 지배력을 강화하고
그래서 조직의 주인이 되고
임금이 되고
그러려고 하는 본성이 우리 인간들에게 있는 겁니다.
목사, 장로, 그런 ‘사람’들이 교회의 주인이 되면
교회는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교회는 퇴보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세례 요한은
충성스러운 하나님의 종이었어요.
그는 빈 들에서 살았어요.
자기 일신의 생활보다.
하나님께 대하여 그 소명에 가장 충실한 종이었어요.
그것이 하나님 앞에도 인정을 받았지만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았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어요.
그들이 마음으로 생각했어요.
‘저 분이 그리스도인가 보다’
‘그리스도인 것이 틀림이 없다
그렇지 않으면 저렇게 말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저렇게 살 수가 없다.. 해서
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을 따라다니게 되었어요.
세례 요한을 추종하는 세력들이 많아졌어요.
그걸 세례 요한이 알았어요.
나중에 사람들이 세례 요한에게 직접 묻기도 했어요.
당신이 메시아냐고
당신이 그리스도이시냐고 이렇게 물었어요.
물었을 때 그 분위기가 뭔가 하면
‘우리는 다 압니다.
당신이 메시아인 거 다 압니다. 우리 생각이 맞죠?’ 하고 확인하는 단계였습니다.
이때 우리 같은 인간이라면
우리가 속아요.
‘내가 몰랐나?
내가 정말 그리스도인 줄을 나만 몰랐는가 보다..’ 하고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사실은 그렇다고 자기만 수긍하면
그는 그냥 메시아로 사람들에게 떠받들게 되는데
세례 요한은 그때도 얘기해요. '나는 아니라'
아주 놀라서 얘기해요.
‘그런 소리 하지 말아라 나는 아니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 그리스도시다!’
‘나는 그분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한다’ 하며
그 발밑에서 섬기는 자로서
자기 자리를 늘 지켰지
지도자, 인정받는 사람
추앙받는 사람..
이런 것에 세례 요한은 관심이 없었어요.
그는 끝까지 그 자리를 지키다가
하나님만 높이고 예수님의 길만 예비하고
하나님을 높이고 영광 돌리고
자신의 삶은 그대로 지켰던 그런 사람이었어요.
▲여러분 오늘 이 말씀에
가장 귀기울여 들어야 할 사람이 누굴까요?
바로 저죠.
제가 암에 걸리면서부터
날기새 하려고 애쓰고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이 ‘자기 몸도 아픈데 저렇게 열심히 저러나?’
갑상선 수술하고 목소리도 안 나오는데도
안 나오는 소리로도 끝까지 (설교방송 사역 거르지 않고) 지키려고 하다 보니까
사람들이 칭찬하기 시작했어요.
그것이 저한테 인정이 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제가 많은 지도력을 갖게 되었잖아요.
여러분 우리 날기새 지금 20만 명이 넘었잖아요.
이때 사탄이 얘기하기 쉬워요.
그래서 자꾸 지도력이 커지다가
이게 지배력이 되고 착각이 되어서
자기가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내가 칭찬받고 내가 높임을 받고
내가 영광을 받다 보면
타락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날기새 지속될 수 없어요.
날기새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 드러낼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전할 수 없게 되는 것이에요.
이것이 충성과 성장과 성공 속에 있는 패망의 인자에요.
그렇게 되면 교회도 패망하고
나도 패망하게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 이 죄악된 인자가
이게 선악과 따먹은 원죄거든요.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는
이 죄악된 본성이 우리에게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세례 요한은 그것을 잘 이겨냈어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깨닫는 것이에요. '내가 조심해야지'
내가 좀 충성한다고 내가 열심히 헌신한다고
착각하면 안 되지... 이런 말씀을 깨닫는 거예요.
▲제가 젊어서 목회할 때
꽤 충성스러운 젊은 집사가 있었어요.
저보다도 나이가 어린
지방에서 교회를 다녔어요. 홍천에서 다녔었는데
정말 충성스런 일꾼이죠.
궂은일 다 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우리 집사였어요.
그가 어느 날 저한테 그랬어요.
'저 죽으면 하나님 손해죠. 뭐'
자기가 너무 교회에 충성하니까
'저 죽으면 하나님 손해지요.'
그래서 제가 장난쳤어요.
제가 좋아하고 가깝고 허물없는 집사니까
'야 아무개 집사, 그것 땜에 아직까지 못 죽었냐?
걱정 말고 죽어라, 나는 장례 전문이다.'
그러고 웃었던 적이 있습니다.
‘내가 영락교회 큰 교회에 있었잖냐?
교인이 하도 많아서 장례식 엄청 집례 했다.
하루에 네 가정도 장례 한 적 있다.
나, 너 같은 건 눈 감고도 파묻어!’
그렇게 말하고는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농담이었지만 그건 진담이었거든요.
그 소리를 들어야 할 것이 충성된 사람들이에요.
충성된 사람들에게는
그런 속임수가 사탄의 속임수가 늘 있어요.
여러분 속지 마세요.
나 없다고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요. 나 같은 걸 충성스럽게
충성스런 일꾼으로 써주시는 것이 고마운 것이지
나 하나 죽는다고 하나님이 그렇게 되는 게 아니에요.
우리 어제 읽은 말씀에도
‘네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유대인이라고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생각하지 말아라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들 수 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잖아요.
여러분 돌을 가지고도 충성스런 일꾼 만들 수 있어요.
나 같은 거 죽는다고 하나님 손해나실
그런 착각에 빠지면 안 돼요.
여러분 교회 충성한 사람들이
교회 안에 쓸데없는 자리를 많이 만들어내요.
그런데 연련할 필요 없어요.
그리고 자꾸 뭘 지배하려고 그럴 거 없어요.
그냥 끝까지 끝까지
예수님의 신발 끈 묶는 사람으로서
예수님만 높여드리고 하나님만 영광 돌려드리는
그런 세례 요한과 같은 삶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신앙에는요.
언제나 자기 부인이 있어야 돼요.
사탄이 우리를 자꾸 꾀거든요.
우리가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도록
하나님의 자리를 염탐하도록, 반역하도록 꾑니다.
근데 반역을 한다면
그 옛날에 가장 무서운 형벌을 받는 게
여러분 반역죄 아닙니까.
자기만 죽는 게 아니라, 그냥 멸문지화라 그러죠.
가문이 다 멸망을 받고
화를 입게 되는 게, 반역죄 아니겠습니까
그만큼 무서운 게 반역인데
우리가 늘 사탄의 속임수에 빠져서
그런 반역죄 짓기가 쉬운데
오늘 세례 요한의 말씀을 통해서
또 이 교훈을 얻고 이 깨우침을 받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늘 세례 요한처럼 나는 아닙니다.
나는 종입니다...
하는 자기부인이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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