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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함 없는 신앙! (엡 6:23-24)

by 【고동엽】 2022. 1. 22.

변함 없는 신앙! (엡 6:23-24)

 

사람의 삶은 꾸준하고 성실한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좋습니다. 언제 보아도 진지하고 충실하게 살아가는 모습은 누구에게나 포근하고 믿음직한 신뢰감을 줍니다. 이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가장 소박한 모습입니다.
초등하교 책을 보면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가 나옵니다. 토끼와 거북이가 달리기 경기를 했습니다. 토끼는 발빠른 짐승이고 거북이는 발 느린 짐승입니다. 처음부터 이 두 짐승의 경기는 상대가 안됩니다 해보나마나 그 결과는 뻔합니다. 그런데 결과는 거북이가 우승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성실 도를 말해 주는 우화입니다.
여기서 거북이는 노력형의 사람을 상징합니다. 재주도 부족하고, 머리도 좋지 않고 하고많은 약점이 있는 사람을 상징합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약점을 잘 알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서 힘써 노력을 합니다.
그 결과 끝에 가서는 아주 좋은 결실을 얻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반면에 토끼는 재주만 믿고 살아가는 사람을 상징합니다. 재주도 있고, 장점도 많고, 머리도 명석하고, 지혜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만을 너무 믿고 과신하다가 실패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 두 짐승의 게임은 처음부터 상대가 되지 못했지만 그 결과는 성실하고 진실하게 노력하는 거북이가 이김으로써 우리에게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이 같은 태도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신앙 생활을 하는 데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질입니다. 본문을 보면 축도의 내용이 나옵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 찌어다."
여기서 "형제들"은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결국 주님의 은혜를 입고 주님의 사랑을 입는 것은 주님을 변함 없이 사랑하는 데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신앙 생활의 비결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꾸준하지 못한 것이 문제입니다. 한결같지가 못합니다. 굴곡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들이 세례를 받기 전에 학습이라는 것을 먼저 받습니다. 이것은 한국에만 있는 제도입니다. 외국에서는 "내가 예수를 믿겠습니다."하고 고백을 하면 곧바로 세례를 줍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학습을 받고 6개월 있다가 세례를 줍니다.
왜냐하면 꾸준하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변덕 부릴 시간을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학습입니다. 참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 우리들이 무슨 일을 한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꾸준함과 성실함이 있어야 하지만 특별히 신앙 생활을 하는 데 이 요소는 절대적입니다. 이것이 없이는 신앙 생활이 이루어지지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꾸준하게 신앙 생활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기에는 몇 가지 기본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는 성경을 가까이하는 일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속에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들어 있습니다. 여기에 구원의 말씀이 들어 있고, 여기에 영의 양식이 들어 있습니다.
지성인은 책 속에서 지성의 양식을 공급받듯이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통해서 영의 양식을 공급받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가까이할 때 하나님의 뜻을 더 깊이 분별하게 되고, 우리의 미래, 운명, 천국, 내세까지도 깊이 있게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질문을 많이 합니다. 하나님이 어떻고, 동정녀 탄생이 어떻고, 부활이 어떻다고 말을 합니다. 듣다보면 가당치도 않은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얼마나 읽어보았느냐고 물어 보면 마태복음 조금 읽어보았다고 말합니다.
마태복음 조금 읽어보고서 하나님을 알 수 있다면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러니 그것을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어떤 이는 말하기를 "십자가를 지고 성경을 읽어야 진리를 알 수 있고, 원수를 사랑하며 기도해야 응답이 이루어지고, 자기 몸을 바쳐 헌신하면서 찬송을 해야 은혜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성경을 많이 읽고 많이 외운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마다 보면 어린 아이들을 교육하면서 성경을 많이 암송시키는 것을 보게 되는데 여기서도 생각할 점이 있습니다. 성경을 외우는 아이들은 대부분 그 뜻을 모르고, 내용도 모르고, 덮어놓고 외웁니다. 이것이 허점이라는 것입니다.
네비어스라는 선교 신학자가 한국에 와서 선교 현장을 분석한 결과 한국 사람들이 너무나 무식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문맹자가 너무나 많습니다. 이렇게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효과 있게 전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다가 얻은 결론이 "글을 읽지 못하니 암송을 시키라."는 정책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암송 대회라는 것이 생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글을 읽지 못하면 암송이라도 해서 성경 말씀을 가까이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암송을 많이 한다고 해서 반드시 능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성경을 가장 많이 암송했던 사람은 불행하게도 영등포 교도소에 있었던 죄수라고 합니다. 무턱대고 많이 외운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는 좋은 예입니다.
성경을 가까이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은 그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서 음미하고, 되새기고, 그 말씀을 생명의 말씀으로 받아서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때 그 말씀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운동력이 있게 움직여서 능력을 주고 양식을 주고 힘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이 힘을 받아 살아가는 것이 신앙의 생활입니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신학자 한 분이 '신학과 경건'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분은 이 책 속에서 말씀하기를 "할 수만 있으면 성경을 가까이하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한때 폐병으로 사경을 헤맬 때 병상에서 성경과 함께 살았다고 했습니다. 후에 그분이 고백하기를 "나는 그때 성경과 함께 함으로써 그 위기를 극복했다"고 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성경이 무기입니다. 이것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 생활의 첫 번째 기본입니다.

 

둘째는 묵상하는 생활입니다.

 

신앙 생활에는 묵상하는 생활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도 필수입니다. 예수님의 생활 중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이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이 북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분은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하기를 좋아하셨습니다. "새벽 미명에 예수께서 한적한 곳에 가사 기도하셨다(막 1:35)"고 했습니다. 때로는 강가에서, 때로는 들에서, 때로는 광야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그 조용한 시간, 조용한 곳에서 주님은 하나님을 생각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시 생각하고, 때로는 민족의 앞날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신앙 인에게는 이같이 묵상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시간을 통해서 자신을 성찰하고 말씀을 묵상하면서 기도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거기서 영감을 얻고, 거기서 은혜를 힘입어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마하트마 간디에게 기자가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디에서 그렇게 위대한 힘을 얻습니까?" 그 물음에 간디는 서슴없이 대답하기를 "그것은 월요일"이라고 했습니다. 일주일 중에서 월요일은 온종일 묵상으로 하루를 보낸다는 것입니다.
묵상을 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정당한가를 반성하고,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고, 자신이 믿고 있는 신과의 대화를 통해서 힘을 끌어낸다는 것입니다. 이 힘이 바로 경건의 힘입니다.

알버트 슈바이처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어렸을 때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서 예배에 참석하는 사이에 엄숙함에 대한 감각과 묵상에 대한 욕구가 몸에 배게 되었고, 나는 고요하고 엄숙한 예배를 통해서 경건을 배우게 되었다." 이것이 묵상을 통해서 얻어지는 축복입니다. 습관도 좋은 습관은 아주 좋습니다. 신앙적인 습관, 경건의 습관 얼마나 좋습니까?
아이들에게 식탁에서 의도적으로 식사 기도를 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아예 어려서부터 기도하는 습관이 몸에 배도록 해 주는 것입니다. 먹을 것이 눈앞에 놓이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도 어떤 때는 잊어버리고 한 숟가락 퍼서 서슴없이 입으로 들어갈 때가 있습니다. 들어가다가 생각이 났을 때 한 입 가득 물로 기도를 합니다. 순서는 바뀌었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 그 모습은 결코 밉지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생활 습관을 위해서도 중요한 일입니다. 다윗도 하루 세 번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를 했습니다. 다니엘도 그랬습니다. 그렇게 안 하면 생활이 바쁘다 보니까 그나마 기도할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현대인들에게는 가장 큰 약점이 있다면 바로 그 묵상하는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너무 바쁩니다. 조용히 앉아서 묵상할 시간이 없습니다. 새벽에라도 나와서 기도를 하고는 싶은데 이것이 잘 안 됩니다.
그래서 사람이 묵상을 하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지 못하다보면 고민조차도 없어지고 맙니다. 있다면 겨우 일상 생활에서 얻어지는 고민 정도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본질적인 고민이나 인간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어떤 내면적인 고민 따위는 생각조차도 없습니다. 그러니 이것이 신앙일 수가 있습니까?

칸트는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들은 나한테서 철학을 배우지 말고 철학 하는 것을 배우라."고 했습니다. 이를테면 깊이 묵상하고 명상하고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묵상이 없고 기도가 없고 사색이 없으면 짐승 화되어 갑니다. 비속화, 물질 화되어 간다는 말입니다.
어떤 외과 의사가 잃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수술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기도를 하고 들어갑니다. 수술을 무사히 마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이 사람을 사람으로 알고 수술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사람을 놓고 매일같이 째고, 자르고, 꿰매고, 하다 보니까 나중에는 그가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고 고깃덩어리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고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 신앙 인들은 늘 묵상을 하고 기도하는 생활이 뒷받침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감과는 하등 관계도 없는 인간만 남을 뿐이고, 육만 있을 뿐이고, 속물이 되고 맙니다. 이 상태로는 신앙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신앙인은 깊은 묵상 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내면의 소리를 듣고, 성령의 임재해 옴을 듣고, 느끼고, 분별해야 합니다. 그때 능력이 임하고, 힘이 주어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주어지는 힘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신앙 생활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묵상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셋째는 내용 있는 신앙인이 되려는 의지입니다.

 

신앙인은 정신을 지닌 신앙인이 되려고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이를테면 생명력 있는 신앙의 정신을 지니려고 힘을 써야 합니다. 이런 의지가 있는 사람은 세상을 막 살아가지 않습니다. 신앙 생활을 해도 무질서하게 하지 않습니다. 뭔가 그 모습 속에서 내용 있는 신앙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 외국의 신학자 한 분이 한국에 와서 교회들을 둘러보고는 감탄을 했습니다. 그 양적인 부흥과 그 열심과 열기를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돌아가면서 내린 결론 한마디가 "열심도 좋고, 열기도 좋은데,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너무나 값싼 은혜만을 구하는 것 같다."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정말 값지고 소중한 은혜는 구원을 받았고, 새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고, 이것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가 없는 가장 큰 축복인데 여기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고 막연한 어떤 복을 받고, 병을 고치고 하는 등의 너무 값싼 은혜만을 구하는 것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신앙의 진정한 값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는 말입니다. 모두 무지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말 좋은 신앙인으로 꾸준하게 살아가려고 하면 각오도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늘 가까이 하는 생활이고, 묵상하는 시간을 많이 갖는 생활이고, 정신을 지닌 신앙인이 되려고 하는 노력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성령이 내주하시는 것입니다. 그때 주어지는 힘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 신앙인의 생활인 것입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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