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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땅을 고치리라 (대하7:11~16)

by 【고동엽】 2021. 12. 31.

그 땅을 고치리라

 

역대하 7:11-16

 

 

 

역대하 3:1을 보면 솔로몬 왕이 하나님의 성전을 모리아 산에 건축했다고 했습니다. 모리아 산은 창세기 22장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친 곳입니다.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독자를 하나님께 번제로 바쳤던 모리아 산 위에 성전을 건축했다는 것은 오묘한 섭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역대하 6장은 솔로몬이 성전건축을 마친 후 하나님께 드린 기도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고, 7장은 성전봉헌과 하나님의 응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 신가를 살펴보겠습니다.

 

 

 

1.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12절을 보면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셨다"고 했고 "내가 이미 네 기도를 듣고"라고 했습니다.

 

"나타나셨다", "듣고"는 동사입니다. 성경은 도처에서 하나님은 "듣고, 보고, 말씀하시고, 오시고, 가시고l, 일어나시고, 기뻐하시고, 슬퍼하시고, 동행하시고 일하신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0:4을 보면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아무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은 살아서 움직이고 역사하시는 분이신데 손으로 깍고 다듬고 부어서 만든 것들을 신이라고 섬기는 것은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천주교는 십계명 가운데서 이 계명을 빼버렸습니다. 이유는 그들은 성자와 성물들을 만들어 숭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직접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기 때문에 성자들이나 마리아에게 기도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위대한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대통령 어머니만 되어도 대단한 찬사와 존경을 받는데 예수님을 낳고 기른 어머니야 말로 존경과 사랑의 대상이 되고도 남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대상은 아닙니다. 더구나 우리의 기도를 받을 수 있는 대상은 못됩니다. 되면 안됩니다. 큰일납니다.

 

교회 나온지 얼마 안되는 주부가 있었습니다. "자기 가족을 위해 기도하라. 목사님을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을 들을 때마다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족을 위해, 목사님을 위해 기도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기도하느냐였습니다. "주여, 제 남편 잘되게 해주시고, 제 아들도 잘되게 해주시고, 목사님도 잘 되게 해주옵소서."라고 기도를 하다보니 막연한 느낌이 들었습니다.누구 잘된 사람 없나, 그 사람처럼 되게 해달라고 할 사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언젠가 설교시간에 들은 사람인데 키도 엄청나게 크고, 덩치도 크고, 어느 나라의 군 총사령관이라는 사람 얘기가 떠올랐습니다. 그녀는 옳다 싶어 "그 사람처럼 되게 해 달라"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주여 제 남편 골리앗처럼 되게 해주시고, 제아들도 골리앗이 되게 해주시고, 저희 목사님은 더 큰 골리앗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마터면 한국판 골리앗이 세 명이나 나올 뻔했습니다. 얼마 지난 후 골리앗이 나쁜 사람이라는걸 알고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녀의 본심을 아시는 주님이시기에 그 기도를 이해하셨을 것입니다.

 

나타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믿고 기도를 힘씁시다. 반드시 들으십니다. 15절을 보면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라고 했습니다. 듣고 귀 기울이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2. 고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4절을 보면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치리라"고 했습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실체, 인격, 존재를 상징합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란 하나님의 명예를 걸고 선택한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그 백성이 하나님께 기도하면 그 백성과 그들이 사는 땅을 고쳐 주신다는 것이 본절의 의미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기도하느냐, 즉 기도의 태도입니다.

 

첫째, 악한 길에서 떠나야 합니다. 악한 길에서 떠난다는 것은 회개를 의미합니다. 회개란 죄와 불의와 불법의 현장으로부터 떠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을 떠나 하나님깨로 돌아오는 것이 회개입니다.

 

도둑질하는 죄를 회개한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러나 도둑질은 안하지만 그는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그의 회개는 회개가 아닙니다. 도둑질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고 더 큰 죄에게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떠날 것은 떠나고, 버릴 것은 버리고, 그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악한 길을 떠나는 것입니다.

 

둘째, 자신을 스스로 낮추어야 합니다. 이것은 자신을 과대 평가하거나 스스로 높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할 일은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사람은 자신을 낮춰야 합니다.

 

교만은 기도를 막고, 은혜를 막고, 축복을 가로막아 버립니다.

 

셋째, 하나님의 얼굴을 구해야 합니다.

 

본래 얼굴이란 목 윗부분, 머리 앞부분, 이마, 턱, 두 귀의 둘레 안쪽을 말합니다. 몸은 옷으로 감싸서 잘 안보이지만 얼굴은 그대로 드러나 잘 보입니다.

 

사람은 각각 타고난 얼굴이 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은 성형술의 발달로 얼마든지 다른 얼굴이나 예쁜 얼굴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관상쟁이는 헷갈릴 때가 많다고 합니다. 본래 타고난 얼굴이 진짜 관상인데 다 뜯어고쳤기 때문에 관상이 잘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얼굴은 변함이 없습니다. 사람의 얼굴은 나이를 따라 변합니다. 기후 따라 변합니다. 감정 따라 변합니다. 분위기 따라 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얼굴은 영원히 변치 않는 그 얼굴이십니다.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는 파리 르불박불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신비한듯한 모나리자의 미소는 지금까지 변치않고 그대로입니다. 단 그 미소는 움직이지 못하는 죽은 미소인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얼굴은 나를 바라보시는 얼굴, 나를 사랑하시는 얼굴, 나에게 말씀하시는 얼굴입니다. 그 얼굴을 구하면 고침을 받는 것입니다. 그 얼굴을 구한다는 것은 사모하고, 사랑하고,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은 선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싸우고 증오하는 사람들의 눈빛은 독기가 서리고 무섭습니다. 강아지도 잘못을 저지르면 주인얼굴을 피합니다. 사랑과 사모의 눈으로 주님을 바라보는 자, 회개하고 깨끗한 심령으로 주의 얼굴을 구하는 사람들이 복받고 고침받는 것입니다.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고 했습니다. 땅이란 흙, 경작지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씀하는 땅은 거기 사는 사람들과 경작지에서 생산되는 토산물들 채소, 곡식, 과일을 의미합니다.

 

출애굽기 15:26을 보면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땅도 사람도 창조하셨고, 그들을 고치십니다.

 

특히 그 땅을 고치신다는 것은 그 땅에서 행해지는 모든 행동들, 예컨대 경제활동, 정치활동, 사회활동 등을 다 고치신다는 것입니다.

 

최근 이어령씨가 쓴 칼럼을 읽었습니다. 배고픈 것을 풀어주는 것이 경제, 귀고픈 것을 풀어주는 것이 음악, 눈고픈 것을 풀어주는 것이 미술, 마음고픈 것을 정치나 경제가 풀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영적 존재인데 누가 무엇으로 영혼고픈 것을 해결할수 있습니까? 영혼의 고독이나 아픔을 음악으로, 미술로, 밥으로 돈으로 풀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런 것들로는 고픈 영혼을 채울수도 달랠수도 없습니다. 주의 얼굴을 바라보고, 주님을 사모하고, 주님께 기도할 때 영혼고픔은 해결되는 것입니다.

 

김영진 시인의 시 가운데 "음악이 없어도 춤춘다"라는 시가 있습니다. 시 하반부에 "거친 물줄기를 거슬러 / 모천으로 돌아가는 / 연어의 처절한 투혼 / 죽음으로 큰 삶을 이루는 / 찬란한 개선이다 / 오 오 희망이 있으면 / 음악이 없어도 춤춘다 / 나뭇잎처럼 / 꽃잎처럼."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희망이 있다면 음악이 없고, 문화가 없고, 문명이 없어도 춤 출 수 있는 것입니다.

 

하박국 3:17을 보면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라고 했습니다.

 

한 구절 속에 "못하며, 없으며"라는 말이 여섯 번이나 반복됩니다. 그것은 다 없어지고, 다 실패하고, 다 사라져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3:18을 보면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영혼이 고프고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 허전하고 의미가 없고 죽고싶고 바라볼것이 없는 사람들은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보라 평화의 주님 바라보아라

 

세상에서 시달린 친구들아 위로의 주님 바라보아라

 

힘이 없고 네 마음 연약할 때 능력의 주님 바라보아라

 

주의 이름 부르는 모든 자는 힘주시며 늘 지켜주시리

 

눈을 들어 하늘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 예수 얼굴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주리라"

 

 

 

3.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6절을 보면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신명기 11:12을 보면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43:5을 보면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하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8:20에서는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위의 네 구절만으로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확인하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항상 함께! 언제 어디서나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대통령 경호원도 항상 함께 있진 못합니다. 부모도 형제도 그렇습니다. 한 몸이라는 부부도 항상 함께가 아닙니다. 때로 함께 때론 따로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항상, 영원히, 언제 어디서나 함께 하십니다.

 

시편 121:8 말씀으로 결론을 삼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아멘.

출처 : 여호와닛시♥
글쓴이 : 주님의숲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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