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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의 출제 경향(1)
마태복음 4:1-11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40일 동안 광야로 나가셔서 금식하며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금식을 마치셨을 때 예수님은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준비가 되었을 때 사탄은 우리를 시험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탄의 시험을 두려워합니다. 세상에 사탄의 시험이 두렵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정말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사탄이 우리를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사탄이 우리를 시험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께 대하여 준비되지 않은 사람을 시험하지 않습니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사탄의 시험이 없다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하나님께 대하여 준비되지 못했다 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들이 사탄이 긴장하여 타겟으로 삼고 늘 시험하려고 하는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시험을 통과하여 사탄과 세상이 감당 못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신 내용을 성경에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통하여 사탄의 시험을 준비하라 하심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사탄의 세 가지 시험을 다른 말로 한다면 '사탄의 출제 경향'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시험을 볼 때 어떤 교수들은 open book을 시킵니다. 시험을 볼 때 책을 보아도 좋고 노트를 보아도 좋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책을 보고 노트를 보아도 실력이 없으면 답을 쓸 수 없는 문제를 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이 자신의 문제를 노출하셨어도 별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출제한 문제는 아무리 open book을 하여도 상관이 없다고 자신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단순히 책만 open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출제하는 문제까지도 open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사탄은 자신이 출제한 문제에 대하여 자신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탄은 언제나 그리고 누구에게나 광야에서 예수님에게 한 시험을 하려고 합니다. 사탄은 그와 같은 시험을 저에게도 할 것이고 여러분들에게도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탄이 예수님에게 한 세 가지 시험을 자세히 분석해 보고 그 문제를 풀기 위한 전략을 세울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탄이 첫 번째로 한 시험은 40일을 금식하신 예수님에게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먹고 봐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었습니다. 일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별로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매우 중요한 함정이 있습니다.
먼저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말은 마태복음 6장 33절의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는 말씀과 반대되는 말입니다. 단지 순서만 바뀐 것 같지만 바로 그 순서에 사탄이 노리는 함정이 있는 것입니다.
중국 대학(大學)이라는 책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만물에는 근본적인 것과 지엽적인 것이 있나니 곧 먼저 할 것과 나중 할 것이라. 사람 이 먼저 할 것과 나중 할 것을 바로 알면 도에 가까우니라"
먼저 할 것과 나중 할 것의 순서를 아는 것처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근본적인 일은 먼저 해야 하고 지엽적인 일은 나중에 해야 합니다. 근본적인 일을 먼저 하면 지엽적인 일은 자동적으로 근본을 따라 옵니다. 그러나 그 순서를 무시하고 지엽적인 일을 먼저 하면 근본은 지엽을 따라오지 못합니다.
우리말에 근본을 으뜸이라 하고 지엽을 딸림이라고 합니다. 으뜸을 먼저 하면 지엽은 자동적으로 따라옵니다. 그래서 그것을 딸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근본을 먼저 하면 지엽은 따라 오지만 지엽을 먼저 하면 근본은 따라오지 않습니다. 근본은 언제나 딸림이 아니라 으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6장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은 근본적인 일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를 생각하는 것은 지엽적인 일입니다. 근본적인 일인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생각하면 입을 것과 먹을 것 그리고 마실 것은 자동적으로 따라 옵니다. 성경은 그것을 '더 하여 주신다'라는 말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를 먼저 생각하고 염려하는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룰 수 없습니다. 사탄은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일하기 전에 먼저 떡부터 만들어 먹으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에 대하여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심으로 하나님의 의와 나라를 먼저 고수하셨습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만을 염려하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저들은 절대로 자신의 인생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만 자신의 인생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패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관심이 있는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인생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패배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생각하고 그에 대하여 관심이 있는데도 실패할까요? 순서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생각하지 아니하고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를 먼저 염려하고 생각하며 살기 때문에 관심은 있으나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지 못하며 실패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사탄은 금식하며 하나님 나라의 선교를 위하여 나서시는 예수님에게 그것을 말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할 때 그것을 무식하게 앞에서 막지 않습니다. 그것을 하지 말라고 유혹하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정면으로 막으면 오히려 우리들이 경계하고 반발하여 더 열심을 낼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다만 먼저 먹을 것은 먹고 입을 것은 입은 후에 하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고차원적인 사탄의 시험인 것입니다.
공자 논어에 君子有於義 小人有於利라는 말이 있습니다. 군자는 義를 따라 행동하는데 소인은 利를 따라 행동한다는 말입니다. 저는 사람이 利를 생각하고 추구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끄러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利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말씀하지 않습니다.
저는 공자의 말에 근본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러나 공자의 君子有於義 小人有於利라는 말에는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무조건 利를 추구하는 것을 소인배의 행위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교문화권에 있던 우리나라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을 천민으로 여긴 것이 아닌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의식이 우리 기독교 안에도 남아 있어서 물질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과 이해를 유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라고 말씀하심으로 떡을 부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부정하신 것은 떡이 아니라 '떡으로만 살려고 하는 것' '떡만 있으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부정하신 것입니다.
義가 利 앞에 있으면 그 利는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利가 義 앞에 있으면 그 利는 옳지 않은 것입니다. 부끄러운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보다 정확합니다. 무조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소인배나 하는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義를 생각하지 아니하고 먼저 이익부터 생각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단순히 義와 利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義와 利의 순서에 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사탄이 그 순서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익보다 먼저 義를 추구하며 산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를 염려하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산다는 것은 절대로 쉽지 않습니다. 그것도 어느 정도 먹고 마실 것이 보장되어 있는 상황이라면 모르지만 40일을 굶어 먹지 못하면 당장이라도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에서 먹는 것보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생각한다는 것은 정말 절대로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상황에서도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생각하셨습니다. 급하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선 먹고 보자는 식의 생각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이와 같은 정신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것이 얼마나 거의 불가능에 가까우리만큼 힘들고 어려운 일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자신이 출제한 문제가 open 됨에도 불구하고 전혀 그것을 염려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살 수 있기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정말 피나는 노력과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야 할 신앙의 궁극적인 goal중에 하나입니다
어떻게 그와 같은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어떻게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를 염려하지 않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생각하면 살 수 있을까요? 그것은 전적으로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 그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 그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 사랑도 보통 사랑이 아니라 십자가의 사랑이라는 것. 하나님은 나를 입히고 먹이시는 분이시라는 것. 하나님이 내 생명의 주관자이심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입히시고 먹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들의 백합화도 입히시고 공중하는 새까지 먹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직접 우리들에게 그 말씀을 하시면서 '하물며 너희 일까보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으신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드디어 그와 같은 염려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생각하고 사는 근사하고도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진심으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서 사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그것이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 손해가 되는가만을 주판질하는 사람이 되지 아니하고 '그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인가 아닌가?' '그것이 의로운 일인가 불의한 일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내가 과연, 드디어 그와 같은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근사하겠습니까? 저는 정말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먼저 떡부터 만들어 먹으라. 급박한 상황이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우선 네 배부터 채우라는 사탄의 시험에 대하여 예수님처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사탄의 자신만만한 이 시험에 보기 좋게 통과하고 싶습니다.
그에 못지 않게, 아니 그보다 더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와 같은 시험에 패스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보는 것입니다. 나 혼자만 그런 시험에 패스하여 산다면 물론 감사하겠지만 얼마나 외롭고 세상적으로 고통스럽겠습니까?
저는 제 사랑하는 가족이 특히 자녀들이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아이들이 그 힘든 시험에 패스하여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를 염려하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사는 아이들이 된다면 얼마나 근사하겠습니까?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저는 제가 섬기는 사랑하는 교회의 교인들이 그런 사람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모든 교인이 다 그럴 수는 없겠지만, 어렵겠지만, 교회를 이루어가는 중심이 그와 같은 사람들로 이루어질 수 있다면 그래서 그 교회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다 먼저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사람이었지만 결국 그에 감동해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사람으로 변화하게 된다면, 그와 같은 교회를 섬길 수 있다면 저는 세상에 그 어떤 값을 치루고서라도 그것을 사겠습니다.
저는 목사로서, 교육자로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젊은이들을 키워보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힘주시면 가능한 일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쓸데없는 욕심 부리지 아니하고 정말 하나님의 식대로 사는 사람을 키우는데 욕심을 두고 기도하며 최선을 다한다면 의의 푸른 나무가 가득한 세상에서 내 노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며 의의 푸른 나무가 가득한 세상에서 내 아이들과 손주들을 키울 수 있게 되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우리의 있는 힘을 다하여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삶의 목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이 참 좋습니다. 가르쳐 주신 모든 기도가 다 좋지만 저는 특히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말씀이 좋습니다.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으로 인하여 패역한 세상이 아니라, 서로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만을 생각하며 다투고 싸우고 속이고 죽이는 그런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생각이 이루어지는 근사한 세상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저는 너무 좋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를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사는 근사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을 위하여 기도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의의 푸른 나무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살 수 있기를 위하여 꿈꾸며 기도하는 사람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마태복음 4:1-11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40일 동안 광야로 나가셔서 금식하며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금식을 마치셨을 때 예수님은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준비가 되었을 때 사탄은 우리를 시험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탄의 시험을 두려워합니다. 세상에 사탄의 시험이 두렵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정말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사탄이 우리를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사탄이 우리를 시험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께 대하여 준비되지 않은 사람을 시험하지 않습니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사탄의 시험이 없다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하나님께 대하여 준비되지 못했다 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들이 사탄이 긴장하여 타겟으로 삼고 늘 시험하려고 하는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시험을 통과하여 사탄과 세상이 감당 못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신 내용을 성경에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통하여 사탄의 시험을 준비하라 하심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사탄의 세 가지 시험을 다른 말로 한다면 '사탄의 출제 경향'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시험을 볼 때 어떤 교수들은 open book을 시킵니다. 시험을 볼 때 책을 보아도 좋고 노트를 보아도 좋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책을 보고 노트를 보아도 실력이 없으면 답을 쓸 수 없는 문제를 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이 자신의 문제를 노출하셨어도 별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출제한 문제는 아무리 open book을 하여도 상관이 없다고 자신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단순히 책만 open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출제하는 문제까지도 open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사탄은 자신이 출제한 문제에 대하여 자신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탄은 언제나 그리고 누구에게나 광야에서 예수님에게 한 시험을 하려고 합니다. 사탄은 그와 같은 시험을 저에게도 할 것이고 여러분들에게도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탄이 예수님에게 한 세 가지 시험을 자세히 분석해 보고 그 문제를 풀기 위한 전략을 세울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탄이 첫 번째로 한 시험은 40일을 금식하신 예수님에게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먹고 봐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었습니다. 일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별로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매우 중요한 함정이 있습니다.
먼저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말은 마태복음 6장 33절의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는 말씀과 반대되는 말입니다. 단지 순서만 바뀐 것 같지만 바로 그 순서에 사탄이 노리는 함정이 있는 것입니다.
중국 대학(大學)이라는 책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만물에는 근본적인 것과 지엽적인 것이 있나니 곧 먼저 할 것과 나중 할 것이라. 사람 이 먼저 할 것과 나중 할 것을 바로 알면 도에 가까우니라"
먼저 할 것과 나중 할 것의 순서를 아는 것처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근본적인 일은 먼저 해야 하고 지엽적인 일은 나중에 해야 합니다. 근본적인 일을 먼저 하면 지엽적인 일은 자동적으로 근본을 따라 옵니다. 그러나 그 순서를 무시하고 지엽적인 일을 먼저 하면 근본은 지엽을 따라오지 못합니다.
우리말에 근본을 으뜸이라 하고 지엽을 딸림이라고 합니다. 으뜸을 먼저 하면 지엽은 자동적으로 따라옵니다. 그래서 그것을 딸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근본을 먼저 하면 지엽은 따라 오지만 지엽을 먼저 하면 근본은 따라오지 않습니다. 근본은 언제나 딸림이 아니라 으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6장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은 근본적인 일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를 생각하는 것은 지엽적인 일입니다. 근본적인 일인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생각하면 입을 것과 먹을 것 그리고 마실 것은 자동적으로 따라 옵니다. 성경은 그것을 '더 하여 주신다'라는 말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를 먼저 생각하고 염려하는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룰 수 없습니다. 사탄은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일하기 전에 먼저 떡부터 만들어 먹으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에 대하여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심으로 하나님의 의와 나라를 먼저 고수하셨습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만을 염려하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저들은 절대로 자신의 인생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만 자신의 인생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패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관심이 있는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인생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패배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생각하고 그에 대하여 관심이 있는데도 실패할까요? 순서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생각하지 아니하고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를 먼저 염려하고 생각하며 살기 때문에 관심은 있으나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지 못하며 실패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사탄은 금식하며 하나님 나라의 선교를 위하여 나서시는 예수님에게 그것을 말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할 때 그것을 무식하게 앞에서 막지 않습니다. 그것을 하지 말라고 유혹하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정면으로 막으면 오히려 우리들이 경계하고 반발하여 더 열심을 낼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다만 먼저 먹을 것은 먹고 입을 것은 입은 후에 하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고차원적인 사탄의 시험인 것입니다.
공자 논어에 君子有於義 小人有於利라는 말이 있습니다. 군자는 義를 따라 행동하는데 소인은 利를 따라 행동한다는 말입니다. 저는 사람이 利를 생각하고 추구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끄러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利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말씀하지 않습니다.
저는 공자의 말에 근본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러나 공자의 君子有於義 小人有於利라는 말에는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무조건 利를 추구하는 것을 소인배의 행위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교문화권에 있던 우리나라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을 천민으로 여긴 것이 아닌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의식이 우리 기독교 안에도 남아 있어서 물질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과 이해를 유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라고 말씀하심으로 떡을 부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부정하신 것은 떡이 아니라 '떡으로만 살려고 하는 것' '떡만 있으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부정하신 것입니다.
義가 利 앞에 있으면 그 利는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利가 義 앞에 있으면 그 利는 옳지 않은 것입니다. 부끄러운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보다 정확합니다. 무조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소인배나 하는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義를 생각하지 아니하고 먼저 이익부터 생각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단순히 義와 利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義와 利의 순서에 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사탄이 그 순서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익보다 먼저 義를 추구하며 산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를 염려하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산다는 것은 절대로 쉽지 않습니다. 그것도 어느 정도 먹고 마실 것이 보장되어 있는 상황이라면 모르지만 40일을 굶어 먹지 못하면 당장이라도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에서 먹는 것보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생각한다는 것은 정말 절대로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상황에서도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생각하셨습니다. 급하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선 먹고 보자는 식의 생각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이와 같은 정신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것이 얼마나 거의 불가능에 가까우리만큼 힘들고 어려운 일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자신이 출제한 문제가 open 됨에도 불구하고 전혀 그것을 염려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살 수 있기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정말 피나는 노력과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야 할 신앙의 궁극적인 goal중에 하나입니다
어떻게 그와 같은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어떻게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를 염려하지 않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생각하면 살 수 있을까요? 그것은 전적으로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 그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 그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 사랑도 보통 사랑이 아니라 십자가의 사랑이라는 것. 하나님은 나를 입히고 먹이시는 분이시라는 것. 하나님이 내 생명의 주관자이심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입히시고 먹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들의 백합화도 입히시고 공중하는 새까지 먹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직접 우리들에게 그 말씀을 하시면서 '하물며 너희 일까보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으신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드디어 그와 같은 염려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생각하고 사는 근사하고도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진심으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서 사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그것이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 손해가 되는가만을 주판질하는 사람이 되지 아니하고 '그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인가 아닌가?' '그것이 의로운 일인가 불의한 일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내가 과연, 드디어 그와 같은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근사하겠습니까? 저는 정말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먼저 떡부터 만들어 먹으라. 급박한 상황이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우선 네 배부터 채우라는 사탄의 시험에 대하여 예수님처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사탄의 자신만만한 이 시험에 보기 좋게 통과하고 싶습니다.
그에 못지 않게, 아니 그보다 더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와 같은 시험에 패스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보는 것입니다. 나 혼자만 그런 시험에 패스하여 산다면 물론 감사하겠지만 얼마나 외롭고 세상적으로 고통스럽겠습니까?
저는 제 사랑하는 가족이 특히 자녀들이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아이들이 그 힘든 시험에 패스하여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를 염려하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사는 아이들이 된다면 얼마나 근사하겠습니까?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저는 제가 섬기는 사랑하는 교회의 교인들이 그런 사람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모든 교인이 다 그럴 수는 없겠지만, 어렵겠지만, 교회를 이루어가는 중심이 그와 같은 사람들로 이루어질 수 있다면 그래서 그 교회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다 먼저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사람이었지만 결국 그에 감동해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사람으로 변화하게 된다면, 그와 같은 교회를 섬길 수 있다면 저는 세상에 그 어떤 값을 치루고서라도 그것을 사겠습니다.
저는 목사로서, 교육자로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젊은이들을 키워보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힘주시면 가능한 일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쓸데없는 욕심 부리지 아니하고 정말 하나님의 식대로 사는 사람을 키우는데 욕심을 두고 기도하며 최선을 다한다면 의의 푸른 나무가 가득한 세상에서 내 노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며 의의 푸른 나무가 가득한 세상에서 내 아이들과 손주들을 키울 수 있게 되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우리의 있는 힘을 다하여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삶의 목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이 참 좋습니다. 가르쳐 주신 모든 기도가 다 좋지만 저는 특히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말씀이 좋습니다.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으로 인하여 패역한 세상이 아니라, 서로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만을 생각하며 다투고 싸우고 속이고 죽이는 그런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생각이 이루어지는 근사한 세상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저는 너무 좋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를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사는 근사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을 위하여 기도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의의 푸른 나무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살 수 있기를 위하여 꿈꾸며 기도하는 사람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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