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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에 들지 말라 : 주기도(약 1:2-15 ) / 박조준 목사

by 【고동엽】 2021. 12. 20.

시험에 들지 말라

야고보서 1:2~15

 

 

 

그 동안 우리는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첫부분은 하나님께 대한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는 것.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해 달라는 것.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해 달라는 것.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간구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에게 필요한 간구가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죄사함을 얻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시험에 들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시험에 들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일용할 양식은 매일 매일 필요한 양식인데 현재를 위한 기도입니다. 죄를 사하여 달라는 기도는 과거에 대한 기도입니다. 그런데 시험에 들지 말게 해 달라는 기도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드리는 기도입니다.

 

오늘은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하는 기도를 생각 할 때에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이 기도가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지는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은 험악합니다. 문자 그대로 마귀가 우리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더구나 인간은 약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고 경고합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섰다고 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을 향해서 "깨어 있어 시험에 들지 않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시험'이라고 하는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물론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겠지마는 간단하게 말하면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시련'이란 뜻이 있습니다. 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누구나 다 시험을 봅니다. 시험을 보는 목적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학생의 실력이 어느 정도 되나 하는 것을 알아보려는 것과 이런 시험을 통해서 학생으로 하여금 시험준비를 하면서 더 공부하게 하려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별로 공부하지 않던 학생은 시험 때가 되면 밤을 세워 공부하고 그러면서 실력이 향상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우리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도 시험이 있는 것입니다. 이 시험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이 어느 정도 되나 하는 것을 알아보는 기회가 됩니다.

 

가령 창세기 2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에게 독자 이삭을 "내가 지시하는 산에서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어떻게 낳았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신다고 약속은 하셨지마는 얻지 못해서 그의 신앙이 흔들리기도 하고, 가정적으로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100살에 얻은 아들 아닙니까?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때 하나님의 기적으로 이삭을 낳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적으로 얻은 아들 이삭을 모리아 땅 산에서 번제로 드리라시니 시험 중에도 큰 시험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 시험은 역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이 어느정도 되나 하는 것을 알아보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시험에 통과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6-7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 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이처럼 시련의 의미의 시험이 있습니다.

 

야고보는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야고보서 1장2절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은줄 너희가 앎이라"했습니다.

 

그리고 12절에 보면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이것은 시험을 시련의 의미로 사용한 말입니다.

 

가령, 욥과 같은 사람도 이런 의미의 시험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시험을 이겼습니다. 그래서 그 믿음이 더 커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의미에서 인간을 시험하십니다.

 

그런데 다른 한가지 의미의 시험이 있습니다.

 

헬라말에는 시험이라고 ' '라는 단어를 썼지마는 의미가 다른 시험이 있습니다. 가령 영어로 test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조금 전에 말씀한 실력을 알아보기 위해서 하는 시험입니다. 그런데 영어로 temptation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것도 시험이라고 말합니다마는 의미는 다른 시험입니다. 그것은 유혹이란 의미의 시험입니다. 다시 말하면 죄에 빠지도록 이끄는 시험이 있습니다.

 

가령 마귀는 에덴동산에 나타나서 인류의 조상 하와를 시험했습니다. 이것은 유혹입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했습니다. 여자가 뱀에게 대답하기를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때 뱀이 여자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고 유혹했습니다.

 

뱀의 말을 듣고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 지라. 했습니다.

 

마귀는 선악과를 따먹어도 죽지 않는다고 속이면서 유혹했습니다.

 

이 마귀는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시며 기도하셨는데 나타나 예수님을 세 가지로 시험했습니다. '돌 가지고 떡을 만들라' '성전 꼭대기에서 내려 뛰라' '세상영광보이면서 내게 절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겠다'고 했습니다. 이것도 시험인데 말하자면 유혹입니다.

 

성경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책잡기 위해서 시험했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것도 유혹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별의별 시험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의미의 모든 시험을 다 이기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단련시키고, 향상시키려고 시험하십니다. 그런데 마귀는 인간은 넘어뜨리려고, 타락시키려고 시험합니다.

 

그러면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 말은 우리에게 시험이 아예 없게해달라는 기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시험이 없는 이 세상이란 상상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라고 한 말은 글자뜻 그대로 시험은 받지마는 (예수님도 시험을 받으셨는데) 시험에 빠지지 않게, 그 시험을 이기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우리는 이 기도를 매일 매시 드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악한 마귀는 공중의 세력을 잡고 있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우리를 시험할런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실 이 기도를 정성껏 드린다고 하면 이 기도에 따르는 우리의 할 일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 기도를 간절히 드리려면 성경에 있는 말씀대로 범사에 근시하고 깨어서 조심해서 행동해야 될 것입니다. 시험에게 들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시험에 빠지기 쉬운 곳을 찾아다니는 사람은 마치 자기 손가락을 불에 넣으면서 타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가운데 이런 분은 안 계십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시험이 어디서 오는 것을 미리 알고 항상 근신하는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악한 마귀는 여러 가지 길을 통해서 우리를 시험합니다. 그런데 보통 세가지 길로 우리를 시험합니다.

 

첫째는, 물질을 통해서 우리를 시험합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삼촌과 갈라서게 되면서 푸른 풀을 찾아 소돔과 고모라 지방에 갔다가 큰 낭패를 본 것을 우리가 기억합니다. 아간이란 사람은 좋은 곳과 은,금을 탐해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자기 장막에 숨겼다가 그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이 망신하고 그와 그 가족이 전멸하는 비극에 처하지 않았습니까? 가룟유다라는 예수님의 제자는 은30량이 탐이나 예수님을 원수들에게 팔고 자기는 너무 마음이 괴로워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마귀는 탐심을 통해서 항상 우리를 시험합니다.

 

물론 우리가 육신을 입고 세상에 살면서 물질이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나친 탐심은 물리쳐야 합니다. 물질을 어떻게 얻느냐? 그리고 어떻게 쓰느냐 하는데 대해 항상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돈을 버는데도 시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돈을 쓰는데도 시험이 있습니다. 올바른 길로 돈을 벌로 쓸 때는 하나님의 뜻대로 쓰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돈이 필요하지만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근본이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둘째는 남녀관계를 통해서 우리를 시험합니다.

 

삼손이 그렇게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을 가진 장사였지만 블레셋 간첩 들릴라와 가까이하는 동안 하나님의 신이 떠나게 되었고 그 말로가 비참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솔로몬왕은 세계 모든 왕의 존경을 바고 흠모의 대상이 되었고 그의 지혜를 배우려고 선물을 차에 싣고 줄을 지어 찾아왔습니다. 솔로몬의 영화는 예수님도 언급하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정욕으로 말미암아 천명이 넘는 처첩에게 빠지게 되고 결국 미련한 왕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 사는 사회에도 이런 예를 들자면 시간이 부족할 것입니다. 성도덕의 타락은 사회 멸망의 바로메허가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셋째는, 세상영광을 통해서 우리를 시험합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예수님께 찾아와서 "주님께서 영광으로 오실 때 하나는 우편에 앉게 하시고 다른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주옵소서"라고 간청했습니다. 명예욕에 사로잡히게 되면 큰 시험에 빠지고야 맙니다. 자기에게 절만하면 이 모든 것을 주겠다고 마귀는 언제나 우리 귀에 속삭입니다.

 

우리가 권세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 나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의 경륜이라면 얼마든지 높은 자리에 올라야지요. 저는 예수 믿는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고, 장관이 되고, 대통령이 되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권세는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에게 절하면서까지 이런 지위에 오르려고 하면 언제나 큰 시험에 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더구나 시험이 언제 옵니까? 분주한 때보다 한가한때 시험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아서 미리 조심해야 합니다. 다윗이 분주할 때 시험이 든 것이 아니고 전쟁은 부하들에게 맡겼기 때문에 자기가 일선에 나아가 직접 싸울 필요가 없을 때, 한가히 낮잠을 즐길 수 있을 때, 시험을 받아 큰 죄를 지은 이야기를 우리가 잘 압니다. 하루라도 일터에 나가지 않으면 생활이 어려운 부인이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남편이 돈 넉넉히 벌어다 주고 시간의 여유 많은 가정주부가 시험에 들기 쉽습니다.

 

우리 나라도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주5일제 근무를 하게 될 것입니다. 일주일에 40시간 일하고 이틀을 쉬게 됩니다. 노는 시간 많아지면 범죄가 많아진다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집에 있을 때보다 군에 나갔을 때 조심해야 합니다. 농촌에 있을 때보다 도시에 와서 더 조심해야 합니다. 어느 때나 악한 마귀가 시험하는 때를 알아서 미리 조심해야 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육체의 기관 중에 특별히 약한 기관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심장이 약합니다. 어떤 사람은 위장이 약합니다. 어떤 사람은 간장이 약합니다. 이것을 미리 알아서 그 약한 기관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특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악한 마귀는 언제나 그 약한 기관을 통해서 시험합니다.

 

어떤 사람은 정욕에 약합니다. 솔로몬이 그랬습니다. 어떤 사람은 특별히 먹는데 약합니다. 에서가 그런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물질에 약합니다. 아간이 그런 사람입니다.

 

사람마다 유혹의 창이 있습니다. 유혹의 창이 네게는 어떤 것인가를 알아서 그 창을 막아버려야 합니다.

 

그래도 시험을 당하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제자들을 향하여 "세상 사람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고 물으셨습니다. 여러 제자들은 자기들이 들은 대로 보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다시 제자들을 향해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얼른 고백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베드로의 고백을 들은 예수님은 거듭 칭찬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장차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서기관들과 제사장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있던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는 안되십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뜻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뜻만 생각하는구나"

 

보세요. 마귀는 공갈과 위협으로 우리를 시험하지 않습니다. 달콤한 말로,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서 유혹합니다. 사탄의 음성이 들릴 때 우리는 단호하게 "사탄아, 물러가라"고 전격전을 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 성품이 온유하고 겸손하셨습니다. 그러나 죄에 대해서마는 언제나 단호한 태도를 취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네 눈 가운데 하나가 죄를 범하면 그 눈을 뽑아 버리라. 두눈을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한눈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나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손 가운데 하난가 죄를 범하면 그 손을 찍어 버리라 한 손을 가지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낳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에 대해서, 시험에 대해서 단호한 태도를 취하셨습니다. 이것이 귀합니다.

 

우리가 인생행로를 걸어가노라면 인생행로 좌우편에 쓰러진 시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 사람들에게 이상과 포부가 없어서 그렇게 된 것입니까? 재간이 없어서 그렇게 되었습니까? 학식이 없어서 그렇게 되었습니까? 돈이 없어서 그렇게 되었습니까? 경험이 없어서 그렇게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시험에 들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험에 들지 않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시험에 들지 않을 수 있습니까?

 

소극적으로는 조심해야 되고, 적극적으로는 사람의 정열을 가져야 합니다. 삶의 정열은 우리에게 밀어닥치는 시험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최대의 방어는 공격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라고 기도하라 했습니다.

 

삶의 정열을 가진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무엇이 되어 보겠다고, 뜨거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귀합니까? 그런데 삶의 정열을 가진다고 우리의 삶이 성공으로 이끌어지는 것만은 아닙니다. 시험에 들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시험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져야할 십자가가 있는데 내 몫에 태인 십자가를 거부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꿈에 대해 정열을 가지게 하시고, 희생의 대가를 치루게 하시고, 헌신적인 열심을 통해 고통을 인내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의 힘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끊임없는 정열의 원천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없을 때 실패는 자명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로부터 어떤 응답을 기대합니까? 주님께서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여기 '자기를 부인하고' 하신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세상에서 영적인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기꺼이 참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자기자신을 존중히 여기는 자세가 없을 때 자기부정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자기자신을 부인하라'고 하신 주님의 명령은 창조적이고 건설적인 일을 하는데 헌신할 것을 명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십자가를 지는 것은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택해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헌신에로 인도합니다. 우리가 "주여,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쓰시옵소서' 라고 말할 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선한 일을 성취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지는 것은 부정적인 반응이 아니라 적극적인 행위입니다.

 

물론 십자가를 거부하고 싶은 유혹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RP서도 직면하셨던 시험이었습니다. 이 시험이 우리에게도 밀어닥치곤 합니다. 이 시험을 이길 수 있는 길은 믿음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나를 쫓으라' 하셨는데 무슨 뜻입니까?

 

담대하게 위대한 꿈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위대한 꿈을 가진 사람에게는 삶의 정열이 솟아납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담대히 따르고 있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회의적이고 냉소적으로 주님의 말씀에 반응합니다. 그래서 놀라운 꿈을 무너뜨립니다. 위대한 계획을 망쳐버립니다. 십자가를 회피합니다. 삶의 정열을 포기합니다.

 

그러므로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하는 기도는 그와 같은 자리에서 '하나님이여, 우리를 그런 부정적인 자리에서 구원하여 주옵소서'하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기도를 들으셔서 우리로 하여금 시험에 들지 않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주님을 따를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15장은 예수님의 교훈이 아름답게 요약된 부분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위대한 계획을 위하여 일하도록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택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은 그의 자녀인 우리가 성공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있으면 과실을 많이 맺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없이 그리스도인의 성숙은 없고, 그리스도인이 성숙하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주안에 있는 사람은 정열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세상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일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러므로 주안에 있는 사람은 십자가를 지지 않고 성공하려는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셔서 한평생 시험에 들지 않게 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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