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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구원론 (박일민 칼빈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by 【고동엽】 2021. 11. 10.

개혁주의 구원론

박일민(칼빈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죄인의 구원에 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유도 구원을 받는 데 있다. 그러면 이 구원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그리고 이 구원은 누구에 의하여 일어나는 것인가. 또 이 구원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근거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이제 이 문제들을 차례로 살펴보기로 하자.


구원의 의미
구원이라는 용어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는 매우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의미는 오직 하나 뿐이다. 그 의미는 예수님의 이름에서 잘 나타난다. 가리브엘 천사는 요셉에게 나타나서 장차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했다(마 1:21). 그리고 그 예수는 자기 백성을 저희의 죄에서 구원할 자일 것이라고 밝혀 주었다. 따라서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그리고 죄의 결과에서부터 해방되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죄의 결과인 죄책과 죄의 오염에서부터 해방되어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죄는 사람들에게 죄책과 오염을 안겨 주었다. 여기서 죄책은 죄의 결과로 말미암아 사람이 육체적이고 영적인 죽음과 더불어서 영원한 지옥의 저주에 이르게 된 것을 말한다.


죄책과 오염은 서로 구별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죄책은 법률적인 것이고, 오염은 실제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죄책은 유죄 선고를 받은 사람이 감옥에서 형을 사는 것과 같다. 형기가 끝나면 그 죄에 대해서 더이상 법률적인 책임이 부과되지 않는다. 하지만 감옥에서 형을 사는 사람은 선하게 교화되기 보다, 주변 사람들에게 오염이 되어지기가 더 쉽다. 그래서 형기를 마치고 난 이후에는 그 삶이 더욱 간교한 죄를 가중시키기 쉬운 상태가 되어지는 일이 많다. 오염은 이러한 상태에 비교되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은 이러한 죄책과 오염으로부터의 해방을 말한다. 즉 구원은 죄의 책임인 죽음에서부터 해방이 되어 생명으로 옮겨지고, '의롭다' 칭함을 받고, 하나님의 후사가 되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죄로 오염된 옛사람에서 해방되어 날마다 새사람을 입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고, 모든 육체의 연약함과 유혹을 견디어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의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여러 가지 위험이나 재난, 또는 육체의 질병이나 경제적인 가난 등에서 벗어나는 것만을 구원의 모든 것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큰 오해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현실적이고 육체적인 것에만 치중한 나머지,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에녹만을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성경에는 에녹보다도 형에게 죽임을 당한 아벨을 먼저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가난이나 죽음에서 기이한 방법으로 살아난 사람만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는 안된다. 성경은 오히려 주를 위해 굶주리고 헐벗음을 당한 자나 목베임을 당한 순교자들을 더 높이 찬양한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죄와 관련이 되어있다.


구원의 의미에 대한 세 가지 구분
죄와 죄의 결과들로부터의 해방은 한 순간에 모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법률적인 해방은 법률적 선언이 주어지는 순간에 즉각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실제적인 해방은 오랜 시간, 또는 일평생을 두고 점차적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구원은 그 시간적 적용에 있어서 다음 세 가지 의미로 구별되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성취된 구원
성경에는 구원을 이미 성취된 것으로 보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구원을 과거형으로 말한다. 사도 요한은 구원의 결과인 영생에 대하여 말씀하기를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하였다(요 5:24). 그리고 사도 바울도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다(엡 2:8).


우리는 예수를 믿을 때에 그 즉시로 거듭나게 된다(엡 2:1).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 여김을 받는다(롬 3:30). 하나님께서는 거듭난 사람에게 즉시로 양자의 영을 주어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해주신다(롬 8:15). 성경은 이러한 중생과 칭의와 양자됨을 가리켜서 과거형의 구원으로 말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이미 성취된 구원이다.


현재 진행중인 구원
성경에는 구원을 현재에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사도 바울은 구원을 과거형과 함께, 현재진행형으로도 말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히브리서의 저자도 현재진행형의 의미를 사용해서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지는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고 하였다(히 10:39).


중생한 사람 그래서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이라고 해서, 그의 모든 생활이 순간적으로 다 거룩해지는 것은 아니다. 후폐한 옛사람의 구습을 없애고 거룩한 새사람의 모습을 가지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싸움이 필요하다. 이 세상 사는 동안에는 이 싸움이 날마다 계속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싸움과 관련하여 말씀하기를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했다(고전 15:31). 성경은 성도가 걷는 이 성화와 견인의 과정을 현재진행형의 구원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이 현재 진행중인 구원이다.


장차 완성될 구원
성경에는 구원을 미래에 완성되어질 것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사도 야고보는 이미 믿음 가운데 있는 성도를 향하여 말씀하기를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고 했다(약 1:21). 과거와 현재진행형의 구원을 말했던 사도 바울은 또 빌립보 교회에 편지하기를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고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했다(빌 2:12).


예수를 믿는 사람이 죄의 모든 결과들과 사탄의 유혹에서부터 완전하게 벗어나는 것은 육체의 장막을 벗을 때이다. 그것은 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어진다. 성경은 성도가 장차 누리게 될 영화로운 상태를 미래형의 구원으로 말하고 있다. 이것이 장차 완성될 구원이다.


구원을 현재 진행중이거나 장차 완성될 의미에서 본다면, "구원받았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지금 받고 있는 중입니다"라고 하거나, "장차 받게 될 것입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진행중인 구원이나 장차 완성될 구원은 과거에 성취된 구원의 기초 위에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에 성취된 구원을 받은 사람은 현재와 미래의 구원도 받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믿음의 확신 속에서 어느 경우의 질문에 대해서도 분명한 대답을 할 수가 있다. "예, 나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성령의 적용 사역으로서의 구원
구원은 우리 스스로의 노력으로 얻어낸 결과가 아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값없는 은혜로 베풀어주시는 선물이다(엡 2:8). 여기서 하나님이라 함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가장 막중한 일인 구원은 삼위 하나님의 공통된 관심사이다.


삼위 하나님은 일체가 되시기 때문에, 그 존재나 사역에서 서로 분리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삼위의 인격은 각각 독립이 되어 있으므로 그 존재나 사역에서 일정한 순서가 구분이 있다. 성부께서는 창세전에 구원을 계획하셨다. 성자께서는 이 땅에 성육신을 하시어, 성부의 구원 계획에 따른 내용들을 객관적으로 단번에 성취하셨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성자에 의해서 성취된 구원을 그를 믿는 각 개인에게 현실적으로 적용을 시킨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날 예수룰 믿을 때에 우리 속에서 주관적으로 일어나는 구원은 성령께서 하시는 사역이라고 할 수 있다.


성령의 사역은 매우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하지만 그 대상과 목적에 따라서 둘로 나누어 볼 수가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없이 임하여 그들이 구원에 이르도록 하시는 사역이다. 우리는 흔히 이것을 보통사역과 특별사역이라고 부른다.


보통사역
성령의 보통사역으로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들 수 있다.


ᄀ. 생명을 잉태케 하시고, 유지하게 하신다(마 1:18).
생명은 우연하게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힘만으로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생명은 성령으로 말미암는다. 생명을 유지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을 존중히 해야 한다. 그리고 생명을 주신 성령께서 근심을 하지 않으시도록 근신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삶을 포기하거나 스스로 생명을 버리는 것은 성령 하나님을 거스리는 죄가 되어진다.


ᄂ. 각종의 재능들을 부여해 주신다(추 31:2)-성경구절 확인.
어떤 사람에게는 노래를 잘 하는 재능을 주신다. 다른 사람에게는 운동을 잘 하는 재능을 주신다. 또 바느질, 무용, 그림, 글씨 등을 잘 하는 재능도 주신다. 그래서 이 재능들이 서로 어울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도록 하신다. 모든 사람은 성령께서 부여해 주신 바 자기 나름대로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게 주어진 남다른 재능이 무엇인지를 가급적 빨리 알아내야 한다. 그래서 그 재능을 발견하지 못하거나 무시를 해버린다면, 한 달란트를 땅 속에 감추어 놓았던 사람처럼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불려지고 말 것이다.


ᄃ. 도덕질서를 유지케 하신다(롬 2:14-15).
사람의 양심이나 역사의 교훈이나 행정관리의 힘이나 특별하신 섭리 등을 방편으로 사용하여서 선을 증진케 하고 악을 억제케 하신다. 그리고 종교성을 자극하여 종교적 활동이 가능하게도 하신다(행 17:22). 이러한 성령의 사역이 있기 때문에 세상에는 죄가 관영함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나마 윤리와 도덕이 지켜지고 있다.


특별사역
특별사역으로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들 수 있다.


ᄀ. 그리스도를 자기의 참 구주로 믿을 수 있도록 세례를 베풀어주신다(마 3:11).
물로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다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다. 구원에는 반드시 성령께서 속사람에게 베푸시는 불세례가 있어야 한다. 물세례는 성령의 세례, 즉 불세례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음에 대한 외면적인 표로 행해지는 것이다. 이 성령의 세례는 여러 차례 또는 수시로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물세례의 경우처럼 일생에 단 한 번 받는다. 성령께서 주시는 세례는 그 효력이 약해지거나 취소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ᄂ. 믿는 사람들의 심령을 충만케 하신다.
구원함을 받는 사람은 그 구원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런데 구원에 합당한 열매인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깨어 죄를 대적하면서 날마다 더욱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한다. 성령께서는 믿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이 일이 가능하도록 충만함을 주신다. 성경은 성령의 세례를 받으라고 하신 일이 없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것은 명령한다(엡 5:18). 왜냐하면 성령의 충만은 믿음의 간구와 회개의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성령의 충만은 약화 또는 소멸이 되어질 수가 있다(살전 5:19).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기도가 필요하다.


ᄃ. 충만함과 함께 각종 영적 은사들을 주신다(고전 12장).
성령이 충만한 상태에서는 일반적으로 예언, 방언, 통역, 영분별, 병고침 등의 신령한 은사가 수반될 수 있다. 이 은사들은 사람에 따라서 매우 다양하게, 그리고 다양한 수준으로 주어진다. 어떤 경우에는 둘 이상의 은사가 임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은사가 전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가진 은사만을 높게 보고 다른 사람이 가진 은사를 소홀하게 여기는 것은 잘못이다. 그리고 영적인 은사가 있어야만 성령충만에 이르거나 성령충만을 유지하게 된다고 하는 것도 역시 잘못이다.


ᄅ. 믿는 사람 안에서 내주(內住)를 하신다.
믿는 사람의 몸은 성령께서 거하시는 전이다(고전 6:19). 성령께서는 믿는 사람 안에서 내주 하시면서,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인치고 보증하신다(고후 1:22). 힘들고 어려워 할 때에는 도움을 주시고 새 힘을 얻게 하신다(롬 8:26). 어찌해야 좋을지를 모를 때나 오묘한 것을 만날 때는 깨달음을 주사 하나님의 신비함이라도 통달케 하신다(고전 2:10).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기도 하신다(롬 8:16). 그래서 주님께서는 성령을 보혜사라고 부르셨다(요 15:26). 보혜사란 옆에서 속삭여 주는 자를 의미한다. 이 때문에 믿음의 사람은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을 행함은 주의 손이 나를 안보함이요,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고 찬송을 하게 되는 것이다.


ᄆ. 믿는 사람을 위해 중보의 기도를 하신다(롬 8:27).
믿는 사람이 연약해 있을 때나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고 있을 때, 성령께서는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친히 그를 위해서 기도해 주신다(롬 8:28). 이 때문에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하셨다(롬 8:28).


구원의 기초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기초로 하여 이루어진다. 선행, 기도, 예물, 공로 등 그 무엇이라도 구원의 기초가 되지 못한다. 이것들은 구원을 받았기에 생겨나는 결과이다. 심지어는 믿음마저도 구원의 기초가 되지 못한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구원을 하시고자 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다(엡 2:8).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고 하셨다(요 15:5).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원의 기초가 되심을 설명하기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을 즐겨 사용했다. 그는 우리를 가리켜서, 선한 일을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지으심을 받은 자라고 했다(엡 2:10). 또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일이나 말이나 지식의 풍성함을 누린다고 했다(고전 1:5). 그리스도 안에서 죽기도 하고 부활을 하기도 한다고 했다(살전 4:16, 고전 15:22). 또 그리스도 안에서 고난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도 받는다고 했다(롬 8:17).


구원이란 마귀의 자식이었던 자가 하나님의 자녀로 바뀌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지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그의 죽으심과 함께 의를 위한 고난을 당하는 것이다. 그의 부활과 함께 새생명으로 살아나는 것이다. 그의 고난과 함께 의를 위한 고난을 당하는 것이다. 그의 영광과 함께 영원한 영광을 누리는 것이다. 그의 순종과 함께 율법을 온전히 성취하는 것이다. 그의 승리와 함께 율법의 노예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를 닮아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같아져야 한다. 생각, 목표, 취미, 관심, 생활방식, 등 모든 면에서 그리스도와 같아야 한다. 그러기에 구원을 받아 그리스도의 장성한 모습을 갖추어 가는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것은 제도와 조직에 가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개개인의 심령과 생활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제도나 생활방식의 변화보다는 심령 즉 인격의 변화가 우선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구원을 위해서는 어떤 사이비 주장자들이 내세우는 것처럼 어떤 특정한 행동양식을 보여야 하거나 특이한 신비체험을 가져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특정 집단에 가담하거나 관계를 맺어야 할 필요도 없다. 제도나 생활의 개혁보다는 심령의 변화에 집중해야 한다. 심령이 변화되면 그 생각이나 취미가 예수님과 같아지게 되고, 따라서 육신을 즐겁게 하는 술을 자연스럽게 멀리하게 되는 경우가 이를 잘 입증해준다.


그리스도께서 이처럼 우리의 구원의 기초가 되시는 사실이 성경에는 여러 가지 비유들로 설명되어 있다. 예를 들면 삼위일체요(요 17:21), 아담과 그 후손(롬 5:12), 남편과 아내(엡 5:22), 머리와 지체(고전 12:12), 목자와 양(요 10:14), 포도나무와 그 가지(요 15:5), 건물과 모퉁이의 머리들(엡 2:20) 등이다. 이 모두가 서로 분리가 될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


구원은 우리의 모든 인격과 생활이 죄와 죄의 결과들로부터 완전하게 해방을 받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를 기초로 하여서 선물로 주어진다. 그리고 이 선물은 성령의 사역을 통해서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실을 바르게 이해하여서, 이 엄청난 선물을 값없이 주신 하나님께서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한다. 동시에 그 구원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온전한 모습을 갖추도록 정성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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